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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평점 :
잘 찾아왔어. 제대로 찾아왔어.
창비교육의 제 1회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꼬리와 파도』는 2021년 체육교사 무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제자들을 보면서 이 '낯설지 않은 순간'이 자신의 일이였던 1999년도의 청소년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그때의 도움이 꼬리가 되어 파도처럼 다시 현대의 연대로 이어지는 '모두가 지켜주고자 하는 이야기'이자 '지켜주는 이야기의 책이다.
이 책은 현재의 이야기로 시작해 과거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이런 액자식 구성을 통해 시대별 청소년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폭력의 고리 역시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담아냈다.
교사와의 갈등에서는 세대간 인식 차이 및 권위의 악용과 맞서고, 이성 친구와의 갈등에서는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다루고, 동성 친구와의 갈등에서는 사이버/물리적 폭력과 보이지 않는 서열에 대해 다룬다. 즉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각각의 청소년이 저마다의 위기와 시련을 겪으며 폭력과 권위에 맞서며 연대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친구들과 같은 박자로 뛸 때의 발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뭐든 될 수 있을것 같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넓고 따뜻하고 단단한 집을 짓자.
축구와 태권도를 잘하여 여러모로 인기 많은 무경, 학교 폭력과 왕따로 강해지고 싶었던 예찬을 중심으로 주변에 저마다의 상처를 앉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세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적인 갈등과 위기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환기시킨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사건들은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과거이자 바꾸지 못했던 현실이다. 결국 상처 입는건 청소년들이였고, 독자들은 이들의 성장을 바라면서 독자 자신의 성장의 발판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고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스쿨 미투 사건' 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의 여고생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속에서의 일상은 성희롱과 언어폭력, 성추행은 만연하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때문에 '내가 만만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 같고, 성희롱과 차별 발언 제보를 한다 한들 조사를 받는 교사는 '친근함의 표현'이었을 뿐이였으며, 조사를 받고 돌아온 교사는 자신을 지목한 사람을 찾아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내놓기 쉽상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주변 사람들은 되려 '피해자'에게 그게 뭐가 '자랑'이라고 들춰내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되었기에 '그런일'들은 흔하게, 사라지지않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억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조용히 지나가는것만이 답인것 같은 날들이 말이다.
나만 그런것도 아니지만, 나만 시끄럽게 굴일도 아닌것만 같은 날들이 말이다.
우리의 몸을 버리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야 하고, 누군가에 의해 침범당한 것은 '개인'의 처신 문제인것 처럼 여겨지게 했다. '쯧쯧쯧, 조심좀 하지'라는 시선으로 '네'탓을 하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권리를 빼앗고, 인권을 빼앗는 2차, 3차가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른채.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인가.
잘못한 사람은 있지만 잘못한 사람이 저지를 일을 당한 사람의 그 다음은 없었다.
학교 안을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순간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무방비한 아이들을 찌르는 말들, 성차별적이고 성희롱인 말들.
그 말을 한느 사람들과 그들을 방관하는 사람들.
그런 말들과 사람들을 수면위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수면 위로 들춰내고 싸우는 일은 외로웠고 주변에서 등을 돌리는 일은 흔한 일었다.
그럼에도 목로리를 내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분명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또다른 용기를 퍼트리기 마련이다.
넌 잘못한 것 없다.
잘못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요.
아이들은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외로웠으나 의연했고, 두려웠으나 눈감진 않았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건 아니었다.
이들은 서로 품고 있던 상처를 드러내어 '너의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지나간 너의 상처와 앞으로 다가올 비슷한 상처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연대의식으로 아픔을 나눈다.
스쿨 미투의 꼬리는 포스트잇이였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With you 라는 글자와 혼자가 아니야, 지켜줄게라는 글자가 나타나며 번지기 시작했다. 이 책 속의 꼬리는 유등축제에서 나타났다. 자신과 친구들이 겪은 일들을 리본에 적어 유등 축제장에 전시된 유등에 몰래 매달아 긴 파란 꼬리를 이루었고 큰 파도처럼 인터넷 카페와 언론의 관심을 얻어내면서 연대의 긍정적인 목소리로 앞으로 보다 올바른 길로 바로잡아가며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용감한 일을 하려면 용감해져야지.
우리는 마음을 꼬리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꼬리의 파도는 결국,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 결국 '변화'를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물결의 흐름으로, 우리의 지나치지 않는 실천력에 대한 호소이다. '나라도' 귀기울여 들어주겠다. 지나치지 않겠다.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잘 얘기했다고 다독이며 다정한 눈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주겠노라고. 그리하여 앞으로도 이어질 '성장과 연대의 가치'를 믿고 있노라고.
'우리'가 지켜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줄게.
친구들의 목소리에 응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도' 지켜줄게.
그리고 그 "지켜줄게"의 파도의 힘은 소설의 맨 처음 대사이기도 했던 '제대로, 잘 찾아왔어"라는 말과 다시한번 맞물리며 함께 다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개개인의 목소리는 비록 작지만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하길 응원하는 친구와, 기꺼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어른과, 세상에 울림으로 퍼질 수 있도록 공동체가 모여진다면 세상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한걸음씩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