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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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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프랑스 아동문학상 '마녀상(소시에르 상)'을 수상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읽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엄마와 둘이 떠난 평화로운 여름 휴가의 나날을 그리며 '홀로'있는 시간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 다른 가족과의 교류로 '북적'이는 시간을 번갈아가며 보내면서 어느새 아끼는 물건을 나눠줄줄 알고 신발도 홀로 신을 수 있을 만큼 자라나게 된 아이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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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처음을 보면 '한 자리에 머물려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모든 장소에게 나의 아버지와 아들에게'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를통해 엄마의 어린 시절 기억이 서려 있는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책 이야기가 델핀 페레 작가 자신이 어린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농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의 양만큼 물감이 퍼지는 수채화로 감정의 퍼짐과 풍경의 펼쳐짐을 순수하게 잘 그려낸 여름 풍경의 삽화가 눈에 띈다. 초록빛 들판과 산, 푸른빛의 밤, 밝은 집안, 엄마와 함께하는 아이의 여름 이야기는 싱그러운 여름의 감각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담아냈다.
아이는 늘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를 늘어놓는다. '발견'하고 '관찰'한 것들을 엄마와 공유하고, 널부러지듯 정리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늘 혼난다. 그것은 집안이기도 하고 풍경 속 자연과 자연물, 자연생물 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을 관찰하고 묻고 발견한다. 발견한 모든 것들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생명체가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물건들에 이름이 생기고, 널부러진 그 물건들은 사연이 있다.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어서 이것을 가지고 있다 얼른 저것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잔뜩 어지르며 노는 아이는 치우지도 않는다.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버리자, '싫어요 다시 필요한걸요.'
-장난감 좀 늘어놓지 말거라! 옆으로라도 치우렴, '아직 놀이가 안끝났어요'
-밥먹자! 손씻으렴(그만하렴), '안돼요. 지금 스파이거든요'
아이는 무언가를 계속 찾고 발견하며, 무언가를 계속 쌓아두거나 계속 늘어트리며 놀기도 하지만, 또 무언가는 계속 잃어버기도 한다.
그것은 때때로 아이의 애착물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어디에다 두었냐고 물으면 '모른다'고만 답한다. 아이에게 그 물건은 '모자' 였다.
이 모자는 이 책의 제일 처음, 그러니까 아이에게 엄마가 여름 휴가를 떠날 것이니 '준비해' 라고 할 때 제일 처음 '준비물'로 챙겼던 물건이기도 했다.
아이는 시골에 가서 제일 처음 한 일들도 그런 나열하기들이였다. 찬장위에 사탕을 찾아 좋아하는 맛을 고를때까지 어지럽히고, 가장 신기 쉬운 장화를 고를때까지 신발장을 어지럽히고, 쓸모 없는 코르크마개를 열개이상 모으면서 '혹시 쓸모가 있을지 모르잖아요'라는 자기만의 주장을 내세운다.
"들어봐."
그러나 아이가 엄마의 시골에서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하는 놀이는 조금 달랐다. 엄마는 조용히 새와 바람이 부대끼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하기도하고, 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소리를 내보기도 하는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봐 봐."
어떤 것들은 직접 다가가거나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관찰해야 할 때도 있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그들의 세계를 존중해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관찰자인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풍경은 가만히 앉아서 저 너머를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 돌위가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자리야.'
엄마는 저 멀리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름다워요.'라고 대답한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득히 먼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라는걸 아이는 아는걸까, '엄마, 무슨생각 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아이였다.
"느껴봐."
엄마는 풀 숲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풀 숲에 누워 땅과 하늘과 가까와 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아직은 여름 밤 공기가 차가운 아이가 춥다고 말하면, '이리오렴'이라고 하며 가까이 앉으며 체온을 내어주는 법도 가르쳐 준다.
생소한 곤충들을 관찰하고, 모닥불을 쬐고, 풀잎으로 연주하기, 풀밭에 눕기, 다락방 보물 찾기, 열매 따기, 귀뚜라미 잡기, 물놀이 등을 하면서 엄마의 어린 시절에 놀던 놀이의 세계로 초대받는다. 엄마가 그 시절에 식탁 아래 붙여놓아 딱딱하게 굳어 마치 '천년'은 된것 같은 껌을 발견하는 모습은, 엄마와 아이가 아득한 엄마의 '아이 시절' 을 공유하는듯 보이기도 했다.
아이가 시골 풍경속에서 관찰하고 발견하기에 열중하는 만큼, 엄마는 지금은 곁에 없는 아버지(아이의 할아버지)의 흔적찾기에 젖어있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자리야.'
'할아버지가 네 나이였을때를 상상해 봤어'
'할아버지가 뱀을 담아 오신게 기억나' 등의 말들 속에서 엄마는, 아버지를 그리면서도 아이가 자신과 아버지의 추억이 잔뜩 깃든 장소에서 자신과 아이의 추억도 잔뜩 깃들길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네가 느꼈던 것들을 아버지도 느꼈겠지, 그리고 나도 느꼈던 감정이고, 그리고 앞으로 네가 큰다면 너 역시도 '그랬었지'하고 남게 될 감정일거야. 우리는 '동시에'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겪어왔고' '격게될' 감정이기 때문에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이 (사진 속) 커다란 아기가 할아버지라고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엄마도 우셨어요?' 라는 아이의 질문들을 통해서 아이의 발견하기와 엄마의 추억찾기는 연결고리를 지니며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이제 아이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옮겨지고, 언젠가 아이가 자라면 자신의 아이에게 '어머니'의 기억을 '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때때로 아이는 혼자 보내는 시간 속에서 성장하기도 한다.
아이가 이 여름의 풍경 속에서 스스로 찾아보고, 발견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며, 꿈꾸는 모든 행위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유년 시기' 라고 부르는 이 시기를 모두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 우리에게 '당신의 유년 시절을 어땠냐' 고 물어본다면, 더듬거리며 기억을 찾는 쪽보다, 그 시기를 겪었던 장소로 자녀를 데리고가 자녀에게는 어떤 유년시절로 남게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은 대답을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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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얼 찾았는지아세요?"
"엄마가 뭘 찾았게?"
홀로있는 시간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 우리가 때로는 홀로 경험하는 것과 공유한 '사소한 발견과 일상'을 골고루 다는 이 책은, 자연스럽게 '인생을 이루는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다른 사람과의 교류, '모두',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의 의미.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즐거운 시간이 있고, 비밀도 생기고, 나누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는 것. 그런 '일상'과 '관계'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조금만 더 있다가요'
'제가 뭘 찾았는지 아세요?'
'엄마랑 단둘이 있고싶어요' 라면서 엄마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때로는 응석도 부리고 때로는 엄마의 말에 '싫어요', '나중에요','아직이요' 라며 핑계를 대기도 하던 아이는 이 시골에서 자라는 기간 동안 조금은 성장하게 된다.
엄마가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이제는 엄마랑 나랑 단 둘이다!'라는 생각에 보채기도 하지만, '만남'은 반갑다. 엄마와의 '소리놀이'덕분에
'자갈밟는 소리'만 듣고도 손님이 놀러왔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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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의 한 관문처럼 열중하던 신발끈을 스스로 메어 신발신기에 성공하게 되고, 소중하지만 자주 잃어버리던 '모자'를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며 아주 조금씩, 천천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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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름 휴가의 끝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어요" 라는 고백과 함께 이야기는 끝난다.
'언젠가는 어른이 되고 삶의 비밀들을 아는 할머니가 될 어린 조카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라는 옮긴이 백수린의 말처럼, 이 책은 저마다 갖고 있는 여름의 기억을 꺼내게 하면서도,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혹은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될 다음 세대들에게 어떤 여름의 기억을 선물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