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걸음으로 신나는 책읽기 63
황선미 지음, 하니 그림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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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린이의 시점에서 고민하고 성장하는 동화책을 본다. 이책은 소심한 영재가, 자신을 닮은 겁쟁이 예비 안내견 바론과 함께 아빠의 돌봄 아래에서 같이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영재의 아빠는 '퍼피워킹'을 위해 기꺼이 '바론'의 만의 자원봉사자가 된다. 1년 동안 아빠의 돌봄을 받게될 바론은 다시 시각 장애인의 안내견이 되어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퍼피 워킹'이라고 한다. '강아지의 걸음으로'라는 뜻이다. 이 강아지의 걸음은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발걸음이다. 

눈이 불편한 사람의 눈이 되어줘야 하기에 횡단보도 건너는 법, 계단을 안전하게 오르내리는법, 전철이나 버스 타는 법을 배워 발걸음을 같이하도록 노력한다. 규칙을 배우고, 뛰거나 짖지 않는 연습도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이탈하고 싶어도 잘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마디로 '하지 말라는건 참고, 해야 하는 것만 하는' 훈련을 통해 얻어낸 걸음이다. 강아지 자신도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뛰고 싶을 때도 있고 두려운 것들도 있을 테지만 그런 마음보다 시각장애인의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위해 발걸음을 맞춘다. 이런 바론의 발걸음은 함께 사는 영재의 걸음에도 영향을 준다.

조심하고 배려하며 자기 한걸음 한걸음의 발걸음에 대한 책임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사명감. 

영재는 강아지의 걸음을 보며 자신의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한발 내딛는다. 
오랫동안 끙끙 앓으며 괴로워했던 어떤 순간의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을 존중해야 다른 사람과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더 유대감 있는 관계로 한발 다가서려는 용기를 배운다.  

"때 쓸일이 아니야, 옳은 말이지만."

"누구 도우미가 될지 모르겠지만, 누구한테든 도움이 되지 않겠어?"

"정답이 어디 하나뿐이겠어? 다른 길도 있는거지"

영재의 아빠는 바론을 곁에 두며 영재에게 많은 삶의 힌트를 준다.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법, 서툴고 두려운 걸음걸이도  함께 발 맞춰 걷는 법,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법, 잘못했을 땐 사과하고 잘못된 일을 당했을 땐 똑바로 마주하여 사과 받는 법, 그리고 용기내어 용서하는 법.

바론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강아지가 되었다.
도움 받은것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영재도 결국 자신의 감정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니 타인과의 관계도 더 진솔해 질 수 있었다.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나란히 걷는 강아지의 걸음으로 우리도 타인과 보폭을 맞추며 걸어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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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라이프
장 줄리앙 지음, 손희경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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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하고
'관계'를 맺으려 애쓰고
수고스러움이 애석하고
드로잉으로 '소통'하고
'존재'하기위해 '유머'를 건낸다
모던 라이프는 '농담조'의 '기록'이다



'내가 열지 말았어야 하는것,
오늘 아침 떠버린 내 눈
열고 나가버린 현관문
열고 일해버린 노트북
오늘 내가 내뱉고만 그 말들'

이처럼 단어수가 제한되어 있거나 아무말도 필요하지 않은 본질적으로 순수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큰 울림을 준다. 
위트가 있고 풍자가 있고 블랙 코미디가 있다고 했던가. 
"주변에 대한 관찰의 기록, 일종의 그래픽 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이 제법 어울린다.
등장인물들은 무표정하고 다크서클과 입꼬리가 내려가 있으며, 일어나면 일하고, 월요일이면 출근하기 싫어하는건 똑같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생기는 염증, 스마트폰 중독, 사이버 폭력, 현대인의 외로움 등을 포착하여 현실에 유머감각을 던져준다.

 저널과 유머는 사회와 소통하며 존재하기 위한 방식이다. 결국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유머를 더해 다시 그것을 공유하려는 다정함이다. 세상과의 소통, 공유 이말은 그림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밥먹기 전 사진부터 찍어 남기기, 콘서트장에서는 공연관람보다 동영상촬영이, 회사에서는 커피를마시고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키고 일을한다. 이런 아이러니함에 유머 한스푼.


어때 어떻게 보여 어떻게 느껴

그래서 어떻게 할래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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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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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스낵바가 도시 뒷골목에 있다고 한다.

그녀의 스낵바에 스템프 찍으러 가고 싶다.

상처받은 그들에게 적절한 음료와 행동을 권하던 그 모습이 인상깊다.

내가 가면, 어떤 걸 권해줄까. 어떤 음료를 마시게 될까.

나에게도, 스템프를 주며 또 오라고 말해줄까.

책 제일 첫페이지의 『오늘도 상처받았나요?』의 원제가 써져있다.

『スナック キズツキ』 라고 가타카나로 쓰여있는데,

スナック(Snack)은 말그대로 스낵(간단한 식사, 간식) 그 자체이지만,

경식당(スナックバー)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キズツキ(傷つき)도 말그대로 상처받은, 혹은 상처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딱따구리 스낵바 キツツキ(啄木鳥)スナックバー(Snack bar)라는 작명은 결국,

상처입을 사람을 뜻하는 키즈츠키(傷つき)와 딱따구리를 뜻하슨 키츠츠키(啄木鳥)라는 유사한 발음에서 유래한 스낵바로 일본식 농담에서 자주 볼수 있는 언어유희식 개그가 녹아든 작명센스다.

장소를 BAR로 정하고, 주제를 상처받은 사람으로 정했으니

분명 상처받은 여러 손님이 들어올테고, 이는 곧 에피소드식으로 구성될꺼란 얘기.

드라마화 하기 좋은 소재고, 예상대로 드라마화되었다.

가벼운 구성이지만, 그 해결책을 섣불리 제시하는건 어려운문제다.

자칫 분위기가 무겁거나 동정, 신파로 치우칠 수도 있고, 상처받은 사람의 본능적인 방어막으로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역으로 이용한 스낵바는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하고, 무엇보다 상대가 판단을 할 새도 없이 훅 들어온다.

뜬금없이 노래한곡 하죠, 지금 당장 해보죠, 저부터 할께요 시작~! 이런식이다.

노래할때 음 높게 잡죠? 피아노를 쳤었군요? 발사이즈 240이죠? 등으로 이미 상대에 대해 안다는 말투도 덤이다.

하지만 그 훅 들어오는 펀치는 누구보다 상냥하고 다정하다.

어떠한 조언이나 충고도 함부로 건내지 않는다.

어떠한 '행위'를 '함께'하고, 그 손님마다 필요로 했을 서비스만 있을뿐.

그리고 누구나 듣고 싶지만 쉽게 들을 수 없는 '수고 했어요, 오늘도' 라는 말을 건내며 다가간다.

무엇보다, '술'로 취하거나 마법을 걸지 않고도 단단한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하거나 차가운 음료와 함께하는 것이 스낵바 딱다구리의 큰 특징이다.


저기요, 이봐요, 당신으로 불리며 이름이 없던 나카타에겐

따뜻한 두유라떼와 라이브 기타연주, 즉흥 노래를.

매일 작은 배려를 하느냐 작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다치에게는 라씨(인도식 플레인 요거트 음료)와 핸드롤 피아노 연주, 즉흥노래를.


소외감을 자주 느끼는 사토에게는

시나몬 로스팅으로 산미가 있는 북유럽 커피와, 에어 기타연주, 즉흥노래를.

자격지심이 있는 타키이(동생)에게는

백지책을 두고 창작 낭독을.

가장이자 장남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타키이(형)에게는

망고주스와 공중전화로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전화통화를.

자신을 시시하고 평범하다고 느끼는 도미타에게는

코코아와 창작 문장 끝말잇기를.

반듯한 가정을 꾸리고있지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않는 가호에게는

생과즙 100퍼센트 사과주스와 탁상 미러볼을 올려두고 댄싱퀸 춤과 즉흥노래를.

주부의 삶으로 자기자신과 열정을 잃은 미나미에게는

아이스커피와 탭슈즈로 탭댄스를.

지나가는 나이인 열일곱의 지금 이 순간을 잃고싶지 않은 메이에게는

스스로 해먹는 따뜻한 코코아와 샌드위치. 충분히 비에 젓는 연습을.

이 모든 것들이 시종일관 감정이 좀처럼 드러나보이지 않는 그녀와 함께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과 대화에서 충분히 마음에 울림을 주는 몇몇 대사들이 나온다.

 

적당히 맞춰줄 테니까 내키는 대로 불러봐요.

지금 느끼는 감정.

나만 또 손해봤어.

오늘도 작은 손해를 봤어.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쌓이고 쌓인 손해를 돌려받고 싶은걸까..?

잘 안풀리는 것 처럼 보이지, 내인생

나는 내 인생을 잘 모르겠다

이정도면 괜찮다고 몇번이고 나 자신에게 들려줘야 할 만큼

나는 누구를, 무엇을, 의식하고 있는걸까?

그는 생각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자인 거구나.

하지만 그는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역사에 출장을 온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사 위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쌓여가는

티끌같은 존재일 것이다.

꿈은 이루기면 하면 안돼.

멀어지지 않도록 등에 동여매고 걸어가야 해.

직선으로만 가다보면 부딪치고

그때마다 상처를 입어서 상처투성이가 돼

(그럼에도) 충분히 젖어보렴



상처를 받았다, 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상처에 젖었다, 라고 말하는건 어때요, 라고.

비에 (잠시) 젖었던 오늘이 지나, 비가 그쳐 다시 건조되는 날이 오면,

그땐, 따뜻한 코코아를 마셔보라고.

나만 마시지 말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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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의 1초 인생 기린과 달팽이
말린 클링엔베리 지음, 산나 만데르 그림, 기영인 옮김 / 창비교육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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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의 1초 인생 』을 읽고 쓴 한줄 평

누구든, 어디에 있든, 웃음을 주고 떠나는 외로운 1초 인생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슬픈 존재이지만

그 '나타난다'는 곳이 어디인지, 누구에게 인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함 속에 놓여있다.

방귀의 시간은 1초이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리다 갈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방귀의 시간도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초반에는 방귀가 등장하는 여러 장소에 대해 나온다.

어느 곳에서든 방귀가 등장할 수 있다, 는 것은 방귀는 여러 곳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입장에 대한 시선을 약간 틀면 이러한 재미있는 방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 산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우주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은 방귀는 어디든 잠깐이지만 행운처럼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 잠시 머물다 가는 방귀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고 사라진다. 그러니 방귀를 부른 당신도 지금 당신이 있는 주변과 순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긱 하길.

중반 이후에는 방귀를 끼는 여러 사람에 대해 나온다.

제 아무리 교양있고 고상한 사람도 방귀를 피할순 없다는 것.

안뀐 척 모르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방귀는 사람을 가라지 않고 공평하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주변 사람들의 겉모습과 배경에 사로잡혀 편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길.

약간의 풍자적인 시선이 서려있는 듯한 몇몇 페이지는

역시 그림책도 어른이 쓴 책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아이들도, 이를 눈치 챌 수 있으려나.


방귀는 다음 방귀를 뀌기 전에 사라져 버려

그래서 방귀는 거의 친구를 사귈 수 없지

멈칫 하고 공감했던 장면

이야, 이젠 방귀한테도 감정이입을 하는구나.

이런 입장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동화의 힘인것 같다.

이러한 연유로 제일 첫페이지에 '방귀는 외롭고 슬픈 존재'라고 설명한 모양이다. 머물다 간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함께 할 이가 없기에.

누구나 방귀 소리에 미소를 짓지

제일 좋아했던 페이지.

맞어, 어렸을때는 똥, 방귀, 트름, 코딱지 같은 분비물에 꺄르르 웃어대며 무조건 좋아했었지. 방귀탄이라는 놀잇감도 있었을 분더러 가짜 방귀 소리가 나는 아이템에도 '아이 냄새나' 이러면서 불쾌함 보다는 유쾌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건 성인도 마찬가지다.

친구들끼리 있다가, 운동을 하다가, 웃다가, 조용한 곳에서, 격식있는 자리에서 등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방귀소리는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 앞에 '웃음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라는 단서가 웃프게 들려온다.

방귀소리에 함께 웃고 떠들 수 없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웃음을 짓지 못한 다는 것.

'신선하진 못해도 상쾌하게 한다'는 표현이 참 좋았다.

키가 크든 작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나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둘다 아니든

누구나 (배와 엉덩이만 있다면) 같다

말린 클링엔베리, 산나 만데르 『방귀의 1초 인생』

책의 마무리이자, 이책이 결국 말하고 싶었던 마지막 페이지.

방귀는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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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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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하루의 끝에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비스듬히 문가에 기대어 있는 택배물을 발견한다. 바로 #창비 로부터 온 책이였다.

아아, 이건 분명 얼마전에 창비에서 '응원을 선물해 드립니다'라는 이벤트에서 스스로에게 파이팅 하는 응원글을 쓰고 당첨되어 온 『#그림을그리는일』이라는 책이다.

책을 발견하자 마자 벌써부터 하루의 끝에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그 흔한 위로의 말을 들을 것 처럼 힐링이 되었다.

몇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맡에 누워 스텐드 불에만 의지한 채 페이지를 펼쳤다.

만화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다 읽고 잠을 청할 생각이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난 첫 페이지부터 마음을 빼았기더니 이내 몇 페이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코끝이 찡하더니 이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다가 결국 울어버렸고, 예상과는 달리 끝까지 못읽고 잠이 들었다.

나는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내 청춘도 영화 같았으면 했다. 결과야 어떻든 청춘의 시절이 눈부신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다. 하지만 현실은 편집없이 길고 지루하다. 이 길고 지루한 영화의 끝이 그림이 아닐수도 있겠다. 너무 슬프지만 않다면 그것도 괜찮겠다.

<그림을 그리는 일>,초록뱀

'꿈', 이라는 말은 여전히 뭔가 몽롱하고 멀리 있는 느낌이다.

'현실', 이라는 말도 여전히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알긴 알아버렸지만 아직 잘은 모르는것 같은 어설픔.

그 사이에 '그림 그리는 일'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취미로 꾸준히 하는 나는, 언젠가 취미로 사주를 봤을때 그런말을 들은 적이있다.

"그림을 직접 그려서 성공할타입은 아니네, 가르치거나 주변일을 해야될것 같은데."

본래에도 업으로 삼기엔 부족하다 느끼고 있었기에 종종 잘그리네요 같은 칭찬의 말에 하는 대답이라곤 겸손도 포기도 뭣도 아닌말.

'낙서인데 뭘'이라는 말.

서랍 속에 넣어두기엔 아직 너무 좋아서 어설픈 웃음을 짓는다.

주인공인 성민이에게 그림은 낙서에서 애정에서 열정에서 업으로 그렇게 변해갔다.

처음엔 그도 주변 반응에 눈치보며 낙서를 숨기듯 지내는 평범한 그림쟁이에서 가정 형편으로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공대에 진학해 흐르듯 살다가 그 흐름속에 다시 그림에 마주하고 그제야 미대전과를 생각한다.

예전 그때처럼 꼭 미대를 가야겠냐는 말에 이번엔 힘주어 '나도 그림잘그려'라며 목소리를 내며 도전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된다.

그러나 정작 그림을 그리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 일을 계속 하려하는가.


넌 왜 그리는데? 그림말야, 왜 그리냐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네가 그리려는 이유가 뭐냐고.

<그림을 그리는 일>, 초

넌 왜 그리는데? 그림말야, 왜 그리냐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네가 그리려는 이유가 뭐냐고.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건

그림 그리는 데 이유가 있다는 걸까 없다는 걸까.

표출의 욕구일까, 인정의 욕구일까, 유희적 욕구일까, 그 무엇도 아니라면 동시에 지니고 있는걸까.

시종일관 체념과 고집의 그 중간 어디쯤 되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에게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마음가짐과 생활의 형태를 얼마나 들쑤셔 놨는지 서술한다.

이건, 정말이지 그림그리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 중 하나이자, 그러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이다.

늘 느끼지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사는 모습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결국 한 이야기를 맞이할때 '맞아맞아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느끼거나 아니거나 그 둘 중 하나니까.

책을 다 읽은 후에 체증인지 먹먹함인지 알 수 없는 마음에 휩쌓여 있었고,

그제야 책 뒷표지를 본 나는, 추천사에 쓰여진 두가지의 난제를 그제야 확인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 (과연) 행운 일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아 이책은 결국, 이 두가지의 난제를 품고 서술하고 있었구나.


그림을 그리는것도, 그만두는것도 결국 내 이야기들.

내이야기의 서술방식이자,내이야기의 연장선들.

나는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처음을 들춰보았다

첫 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종종 인생이 이렇게 외로운 것인가 생각한다.

세상에 잘난 사람은 왜 이리도 많은지, 그 사이에서 나는 또 얼마나 작은지.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던데 갈수록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담기가 어렵다.

'또 작아질려 그러네.'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군중 사이에 뒤섞이며 너무나 자주 느끼는 고정적인 이 대사.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며 자신의 존재를 너무나 손쉽게 '우주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사.

수십번 비교하지 말고 살자라고 얘기하면서 수백번 비교하고 난 뒤에 오는 이 대사.

아, 또 작아지려고 하네.

작구나 작아, 요만해 라며 손가락으로 표시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아.

나는 이 대사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다들 미래를 준비하듯 나 또한 그런거라고 믿었다.

자신을 증명해낼 그 한줄을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리 게으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국 알바 이력서 경력란 한 줄도 못 채우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다른 걸 좀 해놨더라면 지금하고는 달랐을까?

다 때가 있다고 했다. 아직 오지 않았을 거란 희망이 그림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 희망도 더 이상 나를 현실에서 떨어뜨려 주지는 못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을까.

현실의 벽은 원래 이렇게 컸었나.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늘 내안에 남아 빛나는 것

그건 그림이 아니라 바로 그 시절의 나였다.

<그림을 그리는 일>,초록뱀


내게도 순수하게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누구나 순수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림이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열정을 붓고, 집중과 몰입의 즐거움을 알고, 다음에 또가 즐겁기만 하는 시절이. 

그러다 어느순간 '현실자각'타임이 온다.


평범한 가정, 무난한 성격, 튀지 않는 외모, 적당한 성격, 평범한 재능.

인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못하지도 않는 단계.

늘 그쯤 어딘가에 멈춰섰다.

<그림을 그리는 일>,초록뱀

이를테면 '내가 이걸 계속해서 성공할수 있을까'라는, 일종의 '성공타령 타임' 이랄까.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림은 발에 차일만큼 많았고 그만큼 쉽게 잊혀졌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그림을 그리며 자기안의 무언가를 그 안에 꺼내 놓았을 거다. 그들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니까'라는 말은 나에게 답이 될 수 없었다.

내 안에 답이 없으니 좋은 작업이 나올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찾을 수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닐텐데.

그래, 그리자. 그냥 그리자.

답을 찾은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하고 싶은거 한다' 라는 건 이기적으로 살기 위한 핑계일까.

그렇다면, 그 안에서 하고싶으며 하고 사는 '나는 내내 행복한가'

그안에서 무언가를 찾았지만 늘 다시잃어버리는 느낌이 드는건 뭘까.


무언가 하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에 느끼던 불안감, 그때 문득 이게 다 그림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던 일이자 그간의 삶을 통틀어 유일하게 하게 잘 하고 싶었던 일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이래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으면 안됀다고 했던가.

그일을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너무나 절망적이여서.

유일한 것이 멀어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버릴까봐 그게 너무나 두려워서.

웃게 하는것도 울게 하는 것도 한가지 일이라니 웃기는 일이다.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면서 진로에 확신하고 착실히 살아가던 명식이형과 '그림이든 음악이든 덕분에 즐거운 시절이 있었다는 거.'에 만족하며 다른 취업의 길로 걸어간 재훈이,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 있는 성민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확신에 차 보이던 명식이 형도 어느정도 현실과 조율하고, 벗어나 보니 별거아니더라 라고 말하는 재훈이도 아쉬움은 남겨둔다. 그래서 모두에게 한번씩 공감하게 만든다.


"완성도 아닌 그림을 망칠까봐 더 못그리거나 조금 망쳤다고 다시 시작하면 다음에 또 같은 자리에서 멈추게 돼. 끝까지 가봐, 더 망쳐봐"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이 장면을 보면서 언젠가 들은 몇가지의 말들이 동시에 생각났다.

"과도하게 열중하고 지나치게 몰두하면 일도 사랑도 실패해"

"노래를 부르다 마지막에 삑사리가 나면, 사람들은 그 노래를 망쳤다고 생각해. 삑사리가 나기 전 잘 부르던 모든 순간을 뒤로하고"

"망했어" "망쳤어" 라는 말을 할때면 이런 말들이 생각나곤 했다.

거기에 이번에 이 말 한마디가 더 추가될 것 같다.


그래 뭐, 망치는게 어디있겠어. 처음부터 완성된것도 아닌데.

그냥 한번, 가보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나 이번엔 도망치는거 맞는 거 같아.'

'아냐. 도망치는게 아니라, 그냥..살아가는 거야'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인생이 성공과 실패라는 두 단어로 표현되기엔 너무 단순하고 허망하다.

안정된 삶과 불안정한 삶도 그 표현 안에 속해 있고,

방황한다, 도망쳤어, 포기했어, 힘내야지, 괜찮아 라는 표현들도 그 궤도 위에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별거 아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야 라는 듯이 마지막에 내 뱉는 도망치거나 그러는게 아니야, '그냥 살아가는 거야'라는 표현이 되려 위로가 되는 거다.

'도망쳤다 같은 말에 얽매이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도망 쳤다', 가 아니라 '그만 뒀다' 단지, 그 뿐인거야.' 라는 언젠가 <수짱의 연애>에 나왔던 유치원부원장님의 대사가 생각나게 하는 이 '그냥 살아가는 거야'라는 대사는 작가의 말에서도 한번 더 언급 된다. '중요한 것은,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인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길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걷던 그 길에서 벗어 난다는 표현도 어쩌면 웃기는 표현 일 수도 있겠다. 도망친다는 표현은 더더욱 맞지 않겠구나.

끝없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가지 않았던 길이나 다른 선택에 대해 돌아보며 후회하고, 그렇게 결국 선택한 대로 살아갈 뿐이지 그게 도망가거나 꿈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비난할 일은 아닌것 같다.

그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내가 하는 그 어떤 일이든.

이렇게 책 읽기는 다시 맨 끝으로 돌아와 두가지 난제를 다시 맞이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 (과연) 행운 일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난제에는 또 다시 울컥해 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아직 마음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책을 품고 독서모임에 나갔다.

독서 모임에 나가서 읽었던 책을 소개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말로 핵심적으로 느꼈던 부분만을 간추려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이 마지막 서술 부분에 힘 주어 말했고 그렇게 이 책을 정리했다.

'그 모든게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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