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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지친 하루의 끝에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비스듬히 문가에 기대어 있는 택배물을 발견한다. 바로 #창비 로부터 온 책이였다.
아아, 이건 분명 얼마전에 창비에서 '응원을 선물해 드립니다'라는 이벤트에서 스스로에게 파이팅 하는 응원글을 쓰고 당첨되어 온 『#그림을그리는일』이라는 책이다.
책을 발견하자 마자 벌써부터 하루의 끝에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그 흔한 위로의 말을 들을 것 처럼 힐링이 되었다.
몇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맡에 누워 스텐드 불에만 의지한 채 페이지를 펼쳤다.
만화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다 읽고 잠을 청할 생각이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난 첫 페이지부터 마음을 빼았기더니 이내 몇 페이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코끝이 찡하더니 이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다가 결국 울어버렸고, 예상과는 달리 끝까지 못읽고 잠이 들었다.
나는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내 청춘도 영화 같았으면 했다. 결과야 어떻든 청춘의 시절이 눈부신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다. 하지만 현실은 편집없이 길고 지루하다. 이 길고 지루한 영화의 끝이 그림이 아닐수도 있겠다. 너무 슬프지만 않다면 그것도 괜찮겠다.
<그림을 그리는 일>,초록뱀
'꿈', 이라는 말은 여전히 뭔가 몽롱하고 멀리 있는 느낌이다.
'현실', 이라는 말도 여전히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알긴 알아버렸지만 아직 잘은 모르는것 같은 어설픔.
그 사이에 '그림 그리는 일'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취미로 꾸준히 하는 나는, 언젠가 취미로 사주를 봤을때 그런말을 들은 적이있다.
"그림을 직접 그려서 성공할타입은 아니네, 가르치거나 주변일을 해야될것 같은데."
본래에도 업으로 삼기엔 부족하다 느끼고 있었기에 종종 잘그리네요 같은 칭찬의 말에 하는 대답이라곤 겸손도 포기도 뭣도 아닌말.
'낙서인데 뭘'이라는 말.
서랍 속에 넣어두기엔 아직 너무 좋아서 어설픈 웃음을 짓는다.
주인공인 성민이에게 그림은 낙서에서 애정에서 열정에서 업으로 그렇게 변해갔다.
처음엔 그도 주변 반응에 눈치보며 낙서를 숨기듯 지내는 평범한 그림쟁이에서 가정 형편으로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공대에 진학해 흐르듯 살다가 그 흐름속에 다시 그림에 마주하고 그제야 미대전과를 생각한다.
예전 그때처럼 꼭 미대를 가야겠냐는 말에 이번엔 힘주어 '나도 그림잘그려'라며 목소리를 내며 도전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된다.
그러나 정작 그림을 그리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 일을 계속 하려하는가.
넌 왜 그리는데? 그림말야, 왜 그리냐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네가 그리려는 이유가 뭐냐고.
<그림을 그리는 일>, 초
넌 왜 그리는데? 그림말야, 왜 그리냐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네가 그리려는 이유가 뭐냐고.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건
그림 그리는 데 이유가 있다는 걸까 없다는 걸까.
표출의 욕구일까, 인정의 욕구일까, 유희적 욕구일까, 그 무엇도 아니라면 동시에 지니고 있는걸까.
시종일관 체념과 고집의 그 중간 어디쯤 되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에게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마음가짐과 생활의 형태를 얼마나 들쑤셔 놨는지 서술한다.
이건, 정말이지 그림그리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 중 하나이자, 그러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이다.
늘 느끼지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사는 모습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결국 한 이야기를 맞이할때 '맞아맞아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느끼거나 아니거나 그 둘 중 하나니까.
책을 다 읽은 후에 체증인지 먹먹함인지 알 수 없는 마음에 휩쌓여 있었고,
그제야 책 뒷표지를 본 나는, 추천사에 쓰여진 두가지의 난제를 그제야 확인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 (과연) 행운 일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아아 이책은 결국, 이 두가지의 난제를 품고 서술하고 있었구나.
그림을 그리는것도, 그만두는것도 결국 내 이야기들.
내이야기의 서술방식이자,내이야기의 연장선들.
나는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처음을 들춰보았다
첫 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종종 인생이 이렇게 외로운 것인가 생각한다.
세상에 잘난 사람은 왜 이리도 많은지, 그 사이에서 나는 또 얼마나 작은지.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던데 갈수록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담기가 어렵다.
'또 작아질려 그러네.'
군중 사이에 뒤섞이며 너무나 자주 느끼는 고정적인 이 대사.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며 자신의 존재를 너무나 손쉽게 '우주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사.
수십번 비교하지 말고 살자라고 얘기하면서 수백번 비교하고 난 뒤에 오는 이 대사.
아, 또 작아지려고 하네.
작구나 작아, 요만해 라며 손가락으로 표시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아.
나는 이 대사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다들 미래를 준비하듯 나 또한 그런거라고 믿었다.
자신을 증명해낼 그 한줄을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리 게으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국 알바 이력서 경력란 한 줄도 못 채우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다른 걸 좀 해놨더라면 지금하고는 달랐을까?
다 때가 있다고 했다. 아직 오지 않았을 거란 희망이 그림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 희망도 더 이상 나를 현실에서 떨어뜨려 주지는 못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을까.
현실의 벽은 원래 이렇게 컸었나.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늘 내안에 남아 빛나는 것
그건 그림이 아니라 바로 그 시절의 나였다.
<그림을 그리는 일>,초록뱀
내게도 순수하게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누구나 순수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림이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열정을 붓고, 집중과 몰입의 즐거움을 알고, 다음에 또가 즐겁기만 하는 시절이.
그러다 어느순간 '현실자각'타임이 온다.
평범한 가정, 무난한 성격, 튀지 않는 외모, 적당한 성격, 평범한 재능.
인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못하지도 않는 단계.
늘 그쯤 어딘가에 멈춰섰다.
<그림을 그리는 일>,초록뱀
이를테면 '내가 이걸 계속해서 성공할수 있을까'라는, 일종의 '성공타령 타임' 이랄까.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림은 발에 차일만큼 많았고 그만큼 쉽게 잊혀졌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그림을 그리며 자기안의 무언가를 그 안에 꺼내 놓았을 거다. 그들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니까'라는 말은 나에게 답이 될 수 없었다.
내 안에 답이 없으니 좋은 작업이 나올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찾을 수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닐텐데.
그래, 그리자. 그냥 그리자.
답을 찾은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하고 싶은거 한다' 라는 건 이기적으로 살기 위한 핑계일까.
그렇다면, 그 안에서 하고싶으며 하고 사는 '나는 내내 행복한가'
그안에서 무언가를 찾았지만 늘 다시잃어버리는 느낌이 드는건 뭘까.
무언가 하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에 느끼던 불안감, 그때 문득 이게 다 그림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던 일이자 그간의 삶을 통틀어 유일하게 하게 잘 하고 싶었던 일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이래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으면 안됀다고 했던가.
그일을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너무나 절망적이여서.
유일한 것이 멀어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버릴까봐 그게 너무나 두려워서.
웃게 하는것도 울게 하는 것도 한가지 일이라니 웃기는 일이다.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면서 진로에 확신하고 착실히 살아가던 명식이형과 '그림이든 음악이든 덕분에 즐거운 시절이 있었다는 거.'에 만족하며 다른 취업의 길로 걸어간 재훈이,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 있는 성민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확신에 차 보이던 명식이 형도 어느정도 현실과 조율하고, 벗어나 보니 별거아니더라 라고 말하는 재훈이도 아쉬움은 남겨둔다. 그래서 모두에게 한번씩 공감하게 만든다.
"완성도 아닌 그림을 망칠까봐 더 못그리거나 조금 망쳤다고 다시 시작하면 다음에 또 같은 자리에서 멈추게 돼. 끝까지 가봐, 더 망쳐봐"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이 장면을 보면서 언젠가 들은 몇가지의 말들이 동시에 생각났다.
"과도하게 열중하고 지나치게 몰두하면 일도 사랑도 실패해"
"노래를 부르다 마지막에 삑사리가 나면, 사람들은 그 노래를 망쳤다고 생각해. 삑사리가 나기 전 잘 부르던 모든 순간을 뒤로하고"
"망했어" "망쳤어" 라는 말을 할때면 이런 말들이 생각나곤 했다.
거기에 이번에 이 말 한마디가 더 추가될 것 같다.
그래 뭐, 망치는게 어디있겠어. 처음부터 완성된것도 아닌데.
그냥 한번, 가보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나 이번엔 도망치는거 맞는 거 같아.'
'아냐. 도망치는게 아니라, 그냥..살아가는 거야'
<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인생이 성공과 실패라는 두 단어로 표현되기엔 너무 단순하고 허망하다.
안정된 삶과 불안정한 삶도 그 표현 안에 속해 있고,
방황한다, 도망쳤어, 포기했어, 힘내야지, 괜찮아 라는 표현들도 그 궤도 위에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별거 아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야 라는 듯이 마지막에 내 뱉는 도망치거나 그러는게 아니야, '그냥 살아가는 거야'라는 표현이 되려 위로가 되는 거다.
'도망쳤다 같은 말에 얽매이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도망 쳤다', 가 아니라 '그만 뒀다' 단지, 그 뿐인거야.' 라는 언젠가 <수짱의 연애>에 나왔던 유치원부원장님의 대사가 생각나게 하는 이 '그냥 살아가는 거야'라는 대사는 작가의 말에서도 한번 더 언급 된다. '중요한 것은,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인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길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걷던 그 길에서 벗어 난다는 표현도 어쩌면 웃기는 표현 일 수도 있겠다. 도망친다는 표현은 더더욱 맞지 않겠구나.
끝없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가지 않았던 길이나 다른 선택에 대해 돌아보며 후회하고, 그렇게 결국 선택한 대로 살아갈 뿐이지 그게 도망가거나 꿈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비난할 일은 아닌것 같다.
그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내가 하는 그 어떤 일이든.
이렇게 책 읽기는 다시 맨 끝으로 돌아와 두가지 난제를 다시 맞이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 (과연) 행운 일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난제에는 또 다시 울컥해 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아직 마음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책을 품고 독서모임에 나갔다.
독서 모임에 나가서 읽었던 책을 소개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말로 핵심적으로 느꼈던 부분만을 간추려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이 마지막 서술 부분에 힘 주어 말했고 그렇게 이 책을 정리했다.
'그 모든게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