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헐리웃에서 성공적인 일가를 이뤄낸 바이스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상한 나라의 헐리웃을 들여다 보고 있던 영화다. 카리스마 넘치는 심리 상담사이자 성공 카운셀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아버지 샌포드, 출연한 시트콤의 성공으로 국민 남동생으로 불릴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벤지,  아홉살때부터 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아들을 건사하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엄마 크리스틴, 그들의 성공은 일면 난공불락으로 보인다. 샌포드의 고객으로 어릴적 의부에게 당한 성추행을 상담받고 있는 여배우 하바나는 자신보다 더 아름답고 유명했던 죽은 엄마의 환영에 남모르게 시달린다. 거기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녀를 찾는 감독이 줄어들자 그녀의 불안은 극에 달해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다. 다들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지만, 헐리웃이기 때문에, 헐리웃이라서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곳에 <나는 나쁜 베이비 시터였다.> 는 후드 티를 입는 여자가 찾아온다.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냐는 말에 가족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름은 아가사,  예쁘장한 얼굴에 군데 군데 얽은 화상 자국으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갖게 하는 그녀는 어쩌다 화상을 입었으며, 그녀가 찾아 간다는 가족은 어디 있는 것일까? 그들이 진짜로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작품답게 초반부터 정신없이 몰아치는데 당해낼 장사가 없어 보이던 영화다. 분명 칼이나 총이 메인으로 등장하지 않는 영화임에도, 그런 것들이 실제로 날라다니는 영화보다 살벌하다. 선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들이 어찌나 과격하던지 공포물도 아니고 스릴러물도 아니며 피가 난자한 영화도 아닌데 보는 내내 쫄아서 봤다니까. (엄마야, 나 이사람들 무서워 하면서 하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이 등장했을때가 떠오르면서, 어떻게 블랙 코미디를 보면서 관객을 벌벌 떨게 하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배우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총알처럼 날라다니고, 칼날처럼 허공을 가르는데,  저리도 끔찍한 말을 눈썹 까딱하지 않고 흔연스럽게 해댈까 가히 궁금해지더라. 아름답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 입에서 우리 주변에서는 흔하게 보기 힘든 , 아니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도 목격하기 힘든,  격이 다른 대화를 보게 해준다는 것이 이 영화만의 강점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이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가를 검색한 것이었으니, 그 파괴력과 통찰력에 대해선 짐작이 되실 것이라 본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뭐라 해야 할까? 이상한 나라의 헐리웃을 고발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니면 광기와 약물과 가식과 불안에 절을대로 절은 헐리웃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떤 것이든 헐리웃의 진면목이 이런 것이었나 라면서 눈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한 것은 틀림없다. 인기 스타라는 가면 뒤에 감추어진 제 정신 아닌 사람들의 모습을 통렬하게 보여주던데, 어찌나 기괴하던지 추악하다는 단어는 애교겠다 싶더라. 전작들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던 감독은 과거의 작품은 이걸 찍기 위한 연습이었어! 라는 듯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고,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인데다, 거기에 더해 배우들의 연기 역시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특히나 불안에 떠는 한물간 스타를 연기하던 줄리엣 무어는 이 영화로 칸느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탔다고 하던데, 당연하다 했다. 연기력이야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배우라, 연기를 떠나 말해 보자면, 이런 역을 해보겠다고 나섰다는 자체로 상을 주어야 한다. 역 자체가 어려운 역이라서 말이다.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인데다 , 유아적이고 얄팍한 자아를 가진 여배우 하바나라는 역을 연기하면서 매 장면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도 자연스러워서 그녀의 실제 성격을 의심하고플 정도였다. 그외 주목해야 할 배우는 미스테리한 소녀 역을 연기한 아가사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인데, 정말 헉소리 난다. 어쩜 그렇게 천진스런 얼굴을 가지고 천연덕스럽게 맛이 간 여자 역을 똑소리나게 하던지 말이다. 경악할만한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와 늘 떠들어 대는 수다와 다를바 없다는 듯 뱉어 내는데, 연기를 참 잘하지 싶더라. 영화속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고르라면, 여배우 하바나가 드디어 바라던 배역을 따내고 노래를 부르던 장면과 아가사가 샌포드의 성공학 테이프를 틀어놓고 춤을 추던 장면을 들 수 있는데,  두번째 경우는 그저 아가사가 자신의 방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을 뿐인데 어찌나 기괴하고 섬뜩하던지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었다.  존재만으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 이 배우는 그 점에서는 전매특허를 따놓은 듯 싶다.

해서 결론은 수작이란 것. <아메리칸 뷰티> 정도의 급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두 작품 중 어느것이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작품성에서보면 아메리칸 뷰티가 완벽하지만,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한 수위란 생각이 들었다. 내년도 아카데미상에 작품상이나 각색상 정도는 기대해봐도 좋을 듯 싶던데, 그건 일단 지켜 봐야 겠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참신하고 독특한 영화를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장담하건데 지루하지 않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실거다. 막장도 정도를 넘어가면 예술일 수도 있고, 블랙 코미디도 도를 넘어가면 공포물보다 무섭다는걸 가르쳐 드리리니,  여러모로 정신 확 깨는 듯한 기분이 필요하신 분들에겐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추신> 비슷한 영화로는 <트윈 픽스>+<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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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10-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부산영화제 다녀오셨나요? 이거 정말 보고싶었는데 못봐서 정말 아쉬웠거든요. 이거 대신 본 영화가 너무 구려서 더욱 후회스러운 ㅠㅠ 리뷰 보니 개봉하면 꼭 보러가야 할 것 같네요 ㅎㅎ

이네사 2014-10-09 07:14   좋아요 0 | URL
전 이 영화 별로 기대 안 했었거든요. 그냥 줄리언 무어가 나온다길래 , 상을 받았다길래 ...해서 보게 된 영화인데,보니 알겠더라구요. 상받을만한 영화였다는 것을. 저도 다른 영화들 면면을 살펴 봤는데 제가 보기엔 이만한 영화는 없었지 않을까 싶더군요. 물론 다른 영화를 본게 아니라서 자신할 순 없지만서도요.

그런데 전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신선하게 봤는데, 올해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요.
다른 분들은 안 그러신 모양이더라구요. 제가 원래 다른 사람들하고 취향이 같지 않아 평이 다른 것에 익숙하긴 한데,
그래도 이번에는 당혹스럽네요. 제 눈에는 분명 수작인데, 아니라는 분들이 더 많아서요. 그것도 자신있게...
하니 뽀님도 넘 기대하진 마시고 영화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요. 나중에 실망하시면 어쩌나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