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이 되다 -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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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미술의 양식과 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편견이 없다. 다만 그는 미술 작품이 현실의 특징을 담기를 바란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그의 작품과는 분명 상당히 거리가 있는데도 그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인 화면을 존경한다. 그는 훌륭한 작품들이 모두 그렇듯 몬드리안의 작품은 ' 그안에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어떤 식으로든 진실에 관심을 가지는 미술에만 흥미를 느낍니다. 나는 그 작품이 추상인지 아닌지, 또는 어떤 형식을 취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라고 그는 덧붙였다.--p38

 

프로이드는 " 나는 항상 미술가가 가장 힘든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미술가가 겪는 어려움은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 항상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미술가가 오로지 내면의 방향감각에 의지해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하고, 전적으로 내부에서 부가되는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그러면서 자신이 세운 그 목표가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유분방한 무질서라는 개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p.130

 

 

이 책에 대해 이러저러 주절주절 칭찬의 말을 늘어놓으려다가 그 어떤 말도 내 입담으로는 사족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족이거나 객쩍은 수다이거나 그마저도 못 되면 허세 절은 감상 나부랭이로 그칠것 같은 느낌이. 그건 이 책의 성격을 고려해볼때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예의가 아니다. 최대한 단백하고 건조하게,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해도 좋을만한 두 사내가 찬찬히 서로를 관찰해 나간 8개월을 담아놓은 것이니 말이다.  한 사람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은 이 책을 쓰기 위해.그들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최선을 활용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이 책과 초상화인 Man with a blue scarf 인 것이고... 그렇다면 이 책은 과연 어떻게 쓰여지게 된 것일까?

 

이 책이 쓰여지게 된 계기는 저자가 루시안 프로이드에게 초상화의 모델이 되겠다고 제안한데서 비롯된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가는 약속을 잡고,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자는 그의 방에서 어떻게 포즈를 취하는게 좋은지 묻고 있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 구상화가의 모델이 되었다는 흥분이 가라앉자 이내 찾아오는 것은 따분함과 언제 이 과정이 끝날까 하는 조바심. 다른 사람이 모델이었다면 그 시간들이 그저 무료하게 지나가는 의미없는 것들이었겠지만서도, 그가 누군가. <다시 그림이다.>라는 책을 통해 데이비드 호크니를 대중에게 명쾌하고 유려하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낸 미술 평론가 아니던가.모델로써 포즈를 취하는 동안 그는 노화가가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과정들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해 나간다. 더불어 노화가의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나눈 대화들 역시 기록으로 남겨둔다. 그것이 가까이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렇다면 루시안 프로이드가 누군가가 궁금해지실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친손자라는 그는 천재 화가로써 천재 가문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와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지로 인해 화가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는 루시안은 프로이드 가문이 달래 프로이드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프로이드에 대해 이런 저런 폄하를 한다고 해도 그 가문이 우리들의 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대를 건너 뛰었음에도 손자가 이렇게 똑똑하다니...그 프로이드야말로 정말로 천재였겠구나,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범접하기 힘든 사람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왜냐면 루시안 프로이드 역시 만만한 분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표지 앞 면에 깡 말라서는 깐깐하게 생긴 분이 바로 그 분인데, 외모만큼이나 성품 역시도 그런 모양이었다.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자질에 무엇보다 그것을 볼 줄 아는 통찰력, 난센스를 경멸하는 태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알아내는 지성에 돌을 뚫는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해내고 마는 저돌적인 성품, 퉁명스럽게 느껴질만큼 허세 없음과 어디에서고 솔직할 수 있는 정직함등...저자가 조근 조근 설명해 가는 루시안 프로이드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이런 개성 넘치는 화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기해서 말이다. 그냥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지성체의 매력 덩어리들이었다니...나의 삐뚫어지고 무지한 편견이 심히 부끄러워지더라. 


하여간 그렇게 평생 인기가 있건 없건 간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루시안 프로이드는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 인생을 즐기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 늘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 그의 성실한 태도를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던 저자는 실제로 눈 앞에서 목격하면서 그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그의 모델을 서는 매일 매일이 언제나 즐겁거나 흥미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나중에 결과물이 나왔을때 그는 자신이 굉장히 잘한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이 정말로 근사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몹시 궁금했던 저자는 화가가 포착해낸 초상화에 저의기 만족한다. 더군다나 그의 초상화에는 루시안 프로이드가 쓴 적이 없다는 파란색 물감이 들어간다. 그가 매고 있던 파란색 스카프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Man with a blue scarf는 그렇게 완성이 되었고, 저자는 그 시간들의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낸다. 


아마도 그 둘 모두에게 윈윈하는 시간들이었지 않는가 한다.

 

리뷰가 집중을 못하고 헤매는 관계로 이쯤해서 접기로 하고, 기록측면에서 이 책을 보면서 신기했던 점 몇 가지는 들자면, 


하나는 루시안 프로이드의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얼굴 윤곽선을 그리고 내용물을 채워 나가는 반면, 루시안은 중심으로부터 세밀하게 살을 붙여 나갔다고 한다. 부분들을 모아서 전체를 만든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는 참으로 신선하지 않는가 한다. 그렇게 해서도 초상화가 그려진다니, 역시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번째는 화가는 영혼을 담아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시다시피, 사진은 우리의 영혼을 담아내지 못한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긴 하지만서도, 우리의 영혼은 사진 속엔 잘 포착이 되질 않기에 우린 종종 자신의 사진을 보면서도 낯설게 느끼곤 한다. 화가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가장 근사치로 그려내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내 눈에는 루시안 프로이드가 그린 저자의 초상화야말로 저자와 똑 닮아 있었다. 저자 역시도 처음에는 자신의 그림을 낯설어 했지만, 자신을 완벽하게 포착해냈다는 사실에는 수긍한다. 자신은 보지 못하는 찰나의 나를 그려내는 숙련되고 통찰력 있는 솜씨. 저자가 루시안을 그렇게 극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경지에 아무나 오를 수 있는건 아니니 말이다.


세째는 이 책은 글도 탁월하지만 그림도 그렇다. 간간히 들어가 있는 루시아와 그의 친구들의 그림은 요즘 그림들을 이해하는데도, 루시아의 위대함을 이해하는데도 제격이지 싶다. 글 읽는 것이 귀찮으신 분들은 그림이라도 구경하시라고 권해 드린다.


네째는 아직까지도 그림을 이렇게 진지하고 힘들게 소위 장인정신을 가지고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다들 유명해지고 싶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마당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고집쟁이가 있었다니...루시안 프로이드가 존경스럽더라. 재밌는 것중 하나는 가족의 내력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카사노바의 일화를 들으면서 그가 "카사노바는 소시오패스였군." 이라고 간단히 일축했다는 대목이다. 이 무서울 정도로 놀라운 직관적인 통찰력이라니...이 삐쩍 마른 노 화가를 우리가 주목해봐야 하는 또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가 죽기 전에 해낸 저자에게 감사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루시안 프로이드를 이렇게 잘 알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내가 지금  루시안 프로이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건 전적으로 저자의 필력 덕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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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2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시안 프로이드는 앙리마티스를 피카소 보다 더 좋은 화가라고 했다는 구절이 있더군요. 피카소는 남을 놀래키련누 목적으로 그렸고, 마티스는 대상을 이해? 하기위해 그렸다는 평과 함께.. 상당히 그럴사한 평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뭍튼 루시앙 프로이드의 그리도 그림이려니와 그의 그림을 대하는 자세는 - 마지막 날까지 그렸다는 - 정말이지 동물적인 태도는 , 과연 생명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하게 합니다.

이네사 2014-03-26 16:52   좋아요 0 | URL
랄프님도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셨는가 보군요. 저도 정말 그렇군 이라고 생각했었답니다.
가문에 내려오는 유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섬뜩할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신 것 말이죠.
읽으면서, 이런 화가가 있었다니 하면서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흥미롭게 본 책이었어요.
아마도 랄프님도 저와 같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 책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