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y Your Dead (Paperback)
Penny, Louise / Sphere / 201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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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 전에 다 읽었는데, 그 이후로 후유증이 만만찮다. 이보다 더 재밌는 책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만사가 귀찮고 심드렁하고 우울하다. 분명 다 읽고난 직후에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너무 재밌는 책을 만나는 것도 그다지 썩 반갑지 않단 말이지. 뭐, 초등학교 시절부터 쭈욱 겪어왔던 증상이다 보니 지레 짐작이 되기도 하고, 뻔하게 예상이 되기도 하는데도, 겪을때마다 여전히 기분이 안 좋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루이즈 페니의 책들 중에서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보게 되면 증상이 조금 가라앉을려나, 하여간 간만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남겨주고 있는 루이즈 페니의 책이 되겠다.

 

 이 책은 전작brutal telling 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녀의 책을 다 읽어본 것이 아니라서 두 작품 사이에 다른 책이 끼어 들었는가는 모르겠으나, 시간상으로 보자면 아닌 것이 확실한 듯하다. 하여간 brutal telling의 시점이 가을이었다면 이 책은 다음 해 겨울이다. 쓰리 파인즈의 사건을 해결한지 7~~8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전작이 여행하기 딱 좋은 선선한 날이었다면 이젠 길가에 오래 서 있었다간 동사를 걱정해야 하는 겨울이다. 그간 우리 주인공들에게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전작 brutal telling의 범인으로 잡힌 올리비에는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중이고, 가마슈 경감은 하얗게 눈이 내린 퀘벡의 거리를 걸으면서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골똘히 생각중이다. 그에게는 그간 엄청난 일들이 일어 났고, 지금 그것의 결과물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실수에서 기인한 것 같아 괴롭기만 하다. 자책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거닐던 그는 그간 자신이 거만했던 탓에 진실을 보지 못했던 적은 없었는가 되돌아 보게 된다. 그런 회의감은 가마슈로 하여금 작년에 해결한 올리비에 사건을 다시금 파헤치도록 만들게 한다. 부하를 시켜 다시 한번 쓰리 파인즈에 가보도록 지시한 가마슈는 이번에는 올리비에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사건을 파헤쳐 보도록 지시를 한다. 부하는 이미 꼼꼼하게 살펴본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보라는 가마슈의 지시가 못마땅하긴 하지만, 가마슈가 누군가. 아무 이유없이 무언가를 지시할 사람이 아니질 않던가. 투덜대는 마음을 억누른 채 가마슈 없이 쓰리 파인즈에 내려 가게 된 그는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아온 마을 주민들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이제 문제라면 그에게 과연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사건의 결말을 뒤업는 진상을 알아낼 정도로 능력이 있을까 라는 점. 과연 천하의 가마슈가 그 사건에 있어 실수를 하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아니면 단지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려 마음이 약해진 가마슈 경감의 실수에 대한 강박증이 불러온 불안에 불과한 것일까? 가마슈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자신보고 해내라는 것인지 부하는 자신이 없다. 

 

한편, 퀘벡을 거닐면서 소일삼아 캐나다의 역사를 공부하던 가마슈는 한 남자가 도시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의 관할이 아니기에 상관하지 않으려 했던 가마슈는 도서관 건물을 관리하는 유지로부터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문제는 죽은 사람이 퀘벡에서도 미친 걸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퀘벡의 시조라 할 수 있는 champlain의 무덤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계의 영웅인 champlain의 무덤을 찾던 사람이 영어권계의 중심부인 오래된 도서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퀘벡 주민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영어계 시민들과 불어계 시민들 사이의 해묵은 정치적인 갈등이 가라앉지 않은 시점에 발견된 프랑스계 시민의 죽음은 자칫 잘못하면 혼란으로 이끌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사건이었던 것이다. 일단 범인을 잡기 위해 단서 추적에 나선 가마슈는 범인으로 지목될만한 사람들이 늙고 힘이 빠진, 영어권계의 유력 골수 분자들 뿐이라는걸 알게 된다. 과연 그들중 누군가가 그렇게 잔인한 살인을 할 수 있을까가 의문인 가운데, 그보다 먼저 왜 살인을 하게 된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된다. 이에 가마슈는 범인을 잡기 위해선 오래전 죽어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는 퀘벡의 시조 champlain의 무덤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과연 가마슈는 역사가들조차 찾지 못했다는 퀘벡의 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망령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느때보다 괴롭기만한 가마슈는 자신의 지혜로도 풀지 못하는 것들이 있음을 통감하게 되는데...

 

무려 세 가지 사건들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던 루이즈 페니의 추리 소설이다. 그녀의 데뷔작인 <스틸 라이트>에 못지 않는 수작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이렇게도 촘촘하고 긴장감 있게 풀어 나가는지 감탄을 하면서 본 책이 되겠다. 사건이 세 개나 되는 통에 자칫 복잡해지기만 한다거나, 연결 고리를 잃는다거나, 사건들 중 하나가 흥미가 덜할때 지루할 수도 있을텐데도, 어찌나 영리하게 사건들을 구성해 놓았던지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대단한 신공이지 싶다. 더군다나 이 책속에서는 퀘벡의 정치와 역사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그 치밀함과 해박함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하여간 루이즈 페니의 책을 읽을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늘 어느 부분에서는 감탄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가이지 싶다. 한 작가에게 매번 놀라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녀는 그렇다.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도 작품마다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매번 나를 놀라게 했었는데, 루이즈 페니도 그런걸 보니, 그녀만큼 영리한 사람이지 싶다. 하여간 작가에 대한 칭송은 아무리 해도 부족할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치기로 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가마슈 경감의 고뇌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초반의 장면부터 자신의 실수를 곱씹는 가마슈 경감을 보는데, 이건 그 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완벽한 경찰은 없었으니 말이다. 왜일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수습을 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사랑하는 부하가 죽고, 그는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다. 과연 그는 자신의 상처를 추스릴 수 있을까? 그리고 여전히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올리비에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까? 가마슈는 다시금 불가능한 일들에 도전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과정이 볼만한 추리 소설이었다. 도전이 있고 극복이 있고, 그걸 풀어가는 과정들의 지혜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가마슈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 참 좋다. 가마슈를 주연으로 하는 영웅담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모두 다에게 주연할 기회가 주어지는 민주적인 작품이라고 할까? 다들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공감이 가는 대사 하나쯤은 날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등장인물들 모두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이 작가가 인간을 보는 시야가 참으로 넓지 싶더라. 뭐, 이 분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이야 이미 입증이 된 것이니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하여간 재능이 출중하다 못해 넘치시는 듯 보이는 작가를 만나서 너무 반가웠던 책이다. 이렇게 즐거운 독서를 하게 해주셔서 작가에게 고마웠고, 책이 너무 재밌었기에 리뷰는 간단하게 잘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이렇게 버벅거리는 나를 보려니 안타깝다. 이보다 잘 쓸 줄 알았는데, 희망이었을 뿐인가보다. 그러니 말하건데, 행여나 이 리뷰만으로 이 책에 대한 인상을 단정짓는 우는 범하지 마시길...내가 아무리 리뷰를 잘 쓴다고 해도 이 책의 진가를 다 말하진 못했을터인데, 그나마도 잘 쓰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혹시 나중에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일단 보시길. 어느때 읽으시건 간에 재미는 보장해 드리니 말이다. 거기에 덤으로 벅찬 감동에 진한 인간애마저 느낄 수 있으니, 안 보면 오히려 손해인 책이 아닐까 한다. 그나저나...나는 이제 또 무엇으로 이 책을 읽고난 시름을 달래리요? 아마도 한동안은 궁싯대면서 괴로워하고 있어야 할 듯 싶다. 되도록이면 빨리 다음 타자가 등장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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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데이 2013-10-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루이즈 페니 책을 찾아보다가 저보다 더 가마슈 경감 시리즈를 열심히 보는 분이 있구나 해서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겨 봅니다. 저도 번역본 두 권 보고 아쉬워서 나머지도 챙겨 보다가 A rule against murder (Brutal Telling 전 편이요)까지 보고 말았었거든요. Bury your dead 다음에 한 권 더 나왔나요? A trick of the light? 재밌다고 하시니 저도 계속 봐야겠네요. 기대 돼요~ :D

이네사 2013-10-08 10:06   좋아요 0 | URL
전 A rule against murder 는 아직 못 봤구요.그 전에 <잔인한 계절>이라는 책이랑 Brutal Telling 그리고 Bury your dead 본게 다네요. A trick of the light도 재밌다고 해서 보려고 하고 있구요.< 잔인한 계절>은 다른 작품만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크게 한 방 먹이더라구요.
Brutal Telling은 <잔인한 계절>보단 낫지만 뭐, 중간에 조금 지루하게 전개 되지만 안 읽을 수 없는게 다음의 Bury your dead와 바로 연결이 되요. 루이즈 페니의 작품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출간 순서대로 읽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작품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정도는 등장인물들이 연결이 되기 때문에 뭐랄까...드라마 보는 듯이 보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계속해서 루이즈페니의 책을 읽어 보려구요.A rule against murder도 재밌나요? ㅋㅋㅋ
뭐, 재미 없다고 하셔도 읽긴 하겠지만서도....뭐라 답하실지 솔깃하긴 하네요.^^

썸데이 2013-10-08 22:00   좋아요 0 | URL
음.. 저는 잔인한 계절은 재밌게 봤어요. Brutal Telling이 더 낫다고 하시니 게다가 Bury your dead는 최고 수작이라니 하핫 ;) 마침 타이밍도 좋게 다른 서점에서 Brutal Telling만 세일하더라구요. 금욜에 맞춰 주문해서 이번 주말에 봐야겠어요.

A rule against murder는.. 그냥 평작이에요. 게다가 배경이 쓰리 파인스가 아니라 가마슈가 다른 마을로 휴가 갔을 때 일어나는 얘기라 그 동네 특유의 느낌이 없어서 전 좀 아쉬웠어요. 그냥 시리즈 전체 다 보고 허전하다 싶을 때 읽을만한 정도랄까요?

아마존에 보니까 시리즈가 하드 커버로 한 권 더 나온거 같더라구요. 가을 내내 읽을 책이 충분하겠어요. 가마슈와 쓰리 파인스는 왠지 가을과 어울리지 않나요? 아마 스틸 라이프 단풍잎 커버 인상이 강했어서 그런가봐요 ^^

이네사 2013-10-08 22:2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가마슈 경감하고 쓰리 파인즈하고는 왠지 가을이 더 어울리죠. 캐나다라는 곳 자체가 북쪽에 위치해서 인지 여름보다는 가을 느낌이 강한기도 하구요. 지도에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다는 외진 곳 쓰리 파인즈라는 곳 자체가 주는 쓸쓸한 느낌도 그렇고 말이죠. 가을에 딱 읽기 좋죠. 루이즈 페니의 책은...살인범이 싸이코 패스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전 좋더라구요. 주변에서 있음직한 일들에, 어딘가 있을만한 사람들이라는 친근한 느낌이 들잖아요. 실제로 영어나 불어는 쓰는 것도 아니고, 캐나다에 사는 백인도 아닌데 친숙한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게 아닐까 하네요.

A rule against murder는 평작이라구요. 그럼, 잔인한 계절보다 못하단 말인데, 거기에 쓰리 파인즈가 배경도 아니구요. 흠....패스해도 괜찮겠네요.
잔인한 계절 재밌게 보셨다면, 다른 두 권은 실망하지 않으실 거여요. 전 치명적인 은총이란 잔인한 계절은 좀 별로였거든요. 다른 작가의 책에 비하면 별로라는 말을 들을만한 퀄리티는 아니지만서도, 스틸 라이프에 비하면 좀 덜 재밌다 싶었어요. 그래서 더이상 안 보고 있다가 이번에 보게 된 것인데, 잘 했다 싶더라구요. 재밌었거든요.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론은 요즘 작가들 중에서 루이즈 페니처럼 쓰는 작가도 드물다는 거여요.
다른 작가들은 뼈다귀처럼 줄거리 빼면 남는게 없는 경우가 많은데, 루이즈 페니의 책은 읽고 나면 뭐랄까, 뭉클한 여운이 남아요. 어떻게 이렇게 쓰지 싶은 통찰력 있는 문장들에 반하게 되고 말이죠.
어쨌거나 반갑네요.^^
루이즈 페니를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서 말이죠. 좋아하는 것에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건 참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입에 거품 물면서 설명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도 책 읽으면 제깍제깍 리뷰 올려 드릴께요.
어떤게 제일 나은지 우리 다 읽어 제껴 봅시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