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오파비니아 4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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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리처드 포티라고 하지만, 난 삼엽충에 관심이 없는데...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는데.. 이게 과연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까? 라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이래 저래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 밖엔 없던 책이지만, 리처드 포티니까, 재미 없으면 당장 집어 던지면 되니까라는 이유로 나를 달래가며 읽게 된 책, 역시나 리처드 포티는 대단한 분이라는걸 확인한 책이 되겠다. 어찌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발이 많이 달린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특히나 딱딱한 몸체를 가진 것을 죽자사자 혐오하는 내가, 그것도 오래전에 멸종이 되어버린,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그들의 딱딱한 몸체밖에는 없는 화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럴때 보면 열정이란 것이 얼마나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것인지 깨닫는다. 삼엽충이 없어도, 내진 삼엽충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나를 하루밤 사이에 삼엽충 열성 지지자로 만들다니... 뭐, 열성 까지는 아니래도 삼엽충이 귀엽다거나, 내진 멋진 생명체였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싶다. 아마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도 리처드 포티와 같은 열정이 있었던게 아닐까? 개종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울리 없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감화되는걸 보니 쉬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열정에 휩쓸려 버리는 것은 알고보면 그다지 특이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다만, 특별한 것이라면,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것일지도... 

 

그리하여, 우리는 만나게 된 것이다. 삼엽충에 대해 무진장 하고픈 말이 많은 사람을... 그의 이름하여 리처드 포티! < 위대한 생존자들> 이나 <대영 박물관>을 읽은 나로써는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었지만서도, 읽고난 지금은 안 읽었음 어쩔뻔 했어 하며 안도하고 있다. 알고보니, 리처드 포티의 전문 영역이 삼엽충이더라. 물론 다른 책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무심하게 흘려 들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흘려들을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가 '내 전문은 삼엽충이여요 '라고 한 것은 그가 자신을 너무도 겸손하게 칭한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삼엽충에 목숨 건 사내였던 것이다. 다른 책을 썼을때도 물론 열정을 다해 쓰셨겠지만서도, 아마 이 책을 쓰셨을때만큼 신이 나진 않으셨을 거란 짐작이 될 정도로 그의 열정이 곳곳에 묻어났다. 열정은 때론 과묵한 사내를 수다쟁이로 만들기도 하는데, 바로 이 책이 그 증거다. '이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 그러니 내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못한다면 나는 그냥 죽는게 나을 거야!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걸? 왜냐면 나에겐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으니까', 라는 듯이 그는 쉴새없이 조잘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재미 있어서 말이지, 그가 왜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가 됐다. 즉, 그에겐 남에게 털어놓고 싶어 죽을만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말로하면 삼엽충 너드(nerd)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괴짜 정도? --라고 할만한 그는 13살 이후로 삼엽충에 빠져 살아왔다고 한다. 왜 멀쩡한 자신이 그렇게 될 수 밖엔 없었는지를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읽고 나면 단박에 이해된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이 가져다 주는 가장 큰 파급 효과가 아닐까 싶다. 삼엽충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들이고, 우리가 그걸 모르는 이유는, 내진 우리가 삼엽충 너드로 살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난 그에게 지고 말았다. 삼엽충이 리처드 포티 같은 대단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치 매혹적인 생명체였다 것을 말이다. 실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만 이 책을 읽었더라고 내 인생의 진로가 바뀔 수도 있었는데 싶어서...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서도도, 삼엽충이라는 것이 인생을 걸고 연구를 해보고 싶을만치 매력적이라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나는 정말 너무 너무 쉬운 여자인가보다. 책 하나 읽고는 이렇게 꼴랑 넘어가다니...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공룡에 빠져 있는 조카가 계속 생각이 났는데, 그건 녀석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재밌어 할지 싶어서였다. 공룡에 한정된 그의 시야가 넓어지고, 공룡보다 더 흥미로운 생명체가 이 지구상에 득실댔다는 사실에 상당히 신기해 하면서 으쓱해 했을 것이다. 안타까웠다. 아직 어린 탓에 이 책을 들이민다고 해도 무엇이 좋다는지 아직은 모를 것이라는 것이... 녀석이 읽기엔 복잡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때론 오래 사는 것에도 이점이 있지 싶다. 어렸을때는 전혀 알지 못할 새로운 세상을 발견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서론이 길었다. 정작 궁금하신 것은 책에 대한 내용이 뭐냐는 것일텐데... 뭐, 사실 내용은 그냥 읽으면 된다. 내용이라고 요약해 놓을 만한 것이 없는 것이, 흥미가 생기시면 그냥 읽어내려 가면 다 알게 되는 것이라서 말이다. 이 책은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라, 과학을 대하는 자세, 내진 과거를 읽는 다는 것에 대한 흥분, 그리고 탐정처럼 삼엽충의 조각들을 모아 과거 지구상에 있었던 일들을 추리 해 나간다는 점에 있는게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그냥 읽으면 되는 책이라는 소리다. 품격있으면서도 위트 넘치는, 요즘 근래 보기 드문 인간미를 가진 저자를 믿고, 그저 그가 하는 말이니 그냥 다 좋은 것이려니 하고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고, 안다고 해도 이 책을 통해 배울 것이 있을지리니...그것이 삼엽충에 대한 것이건, 과학에 대한 자세이건,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건, 아니면 저자의 돋보이는 인격이건 간에 말이다. 아마도 다 읽고 나면 그간 혐오스럽거나 전혀 상관없이 보아왔던 삼엽충의 화석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척이나 매혹적이라는 사실도... 놀랍지 않는가. 공룡보다 3배나 더 긴 시간동안 이 지구를 지배한 주류 종이었던 삼엽충이 이젠 더이상 살아있는 모습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화석과 저자의 설명만으로도 삼엽충이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져서는 그들을 더이상 주변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대단한 설득력이다. 얇은 책 한 권 읽는 동안 작가의 안타까움에 함께 동참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기분 좋은 넘어감이었다. 그렇다보니, 이 리뷰를 쓰는 지금 이 책을 집어들고 읽지 않는 당신이 안스러울 지경이다. 이렇게 재밌는걸 모를테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기분을 매번 느낄 수 있는건 아니니까. 하여간 글을 잘 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열정으로 남을 감화시키는 재능을 가지고 있던 저자, 이렇게 특별한 책을 써주신 리처드 포티에게 감사를 드린다.  언젠가 조카가 이 책을 집어들고 재밌게 읽는 날이 오길 그려보면서, 아마도 시간이 좀 걸려야 하긴 하겠지만서도, 그 날이 오면 녀석도 분명 굉장히 신나 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실은 벌써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워 지려 한다. 이런 즐거움을 선사한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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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3-03-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저자의 <런던 자연사 박물관>은 읽었었는데 그때도 참 신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네사 2013-03-15 22: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런 책도 있더라구요. 전 정말 이 책 읽어야 하나 마나 한참 고민했더랍니다.
리처드 포티 작품만 아니면 절대 눈길도 주지 않았을 거여요.
정말 리처드 포티는 대단한 양반 아닌가요?
이렇게 지루한 소재를 가지고 그렇게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게 참 기적 같아 보이더라구요.
이런 책들은 좋다고 소문이 많이 나야 하는데 말이죠. 선입견때문에라도 주저하시는 분들이 없었음 좋겠네요.
참, 전 이 책이 <런던..>보단 더 재밌더라구요. 그 책도 신나게 읽으셨다면 이 책도 신나게 읽으실 거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