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 : 음탕한 계집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양지영.손재석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여자는 얌전하고 음전해야 한다는 편견에 맞서, 음탕하다고 낙인 찍혀진 여자들에 대한 그 열화와 같은 비난에 맞서, 우리 여성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봐달라고 선언하고 있는 책이다. 삼손과 데릴라의 데릴라에서부터 시작해 자의반 타의반 사람들의 구설수와 언론에 오르내리는 여러 여성들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우리네 여성들이 어떻게 오해받고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논하고 있는 책이다. 신랄하고 ,도발적이고, 냉소적이며, 까칠하다. 그녀가 그렇게 까칠할 수밖엔 없는 이유는 물론 그녀 성격 자체도 한 몫 했을테지만서도, 그에 앞서 언론에 의해 조작된 여성에 대한 신화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누구 못지 않게 성에 탐닉해서 살았던 그녀는 보통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것이 편견일지도 모른다고, 당신들이 음탕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에 탐닉하게 된 데는 그녀가 성을 밝히는 여성이라서라기 보다, 우울증의 영향이 컸다. 즉 즐겨서 섹스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본인이 정신없이 살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이들, 본인은 고통과 좌절때문에 정신줄 놓고 살았던 것 뿐인데, 사람들은 그녀가 대단히 음탕한 여자로 여긴다는 간격이 그녀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누군가 나서서 말해줘야 하는게 아닐까. 난 전혀 즐기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건 성에 관한 즐거움을 탐닉한게 아니라 좌절에 대응하려는 나의 발악이었을 뿐이라고.


본인이 그런 경험을 했기에 그녀는 자신과 같은 많은 여성들을 알아본다. 자신만의 좌절과 고통을 지닌 여성들을, 하지만 엄청나게 오해를 받고 있는 그녀들을. 예를 들어 보자면, 자신의 삼십대 정부의 아내를 총으로  쏘는 바람에 유명해진 십대 소녀 에이미를 들 수 있다. 언론에서는 그 아이를 가리켜 까진 아이라고 한 단어로 일갈하지만서도, 저자가 바라보는 에이미는 그저 사랑받고 싶어하는 멍청한 아이일뿐이다. 그녀가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것은 그녀가 진짜로 그렇게 되바라진 아이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멍청해서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 못하는 아이였을 뿐이라는 것...정말로 일리있는 견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환상이고, 그런 환상속에서 조강지처를 죽이는 십대 정부는 눈이 번쩍 뜨일만큼 섹시할 뿐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음탕과 섹스의 화신이 되어버린 에이미는 사실 그 자신을 변호할 수 있을만큼 똑똑한 아이가 아니었다. 여기서 저자가 놀라는 것은 에이미야 아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왜 그녀를 보호하려는 어른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였다. 아무도 그 아이가 아직은 미성숙하기 그지 없는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서서 그녀를 보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저자는 깨닫는다. 에이미가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된 배경에는 그녀 가족들의 무심함이 컸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곤 생각한다. 어쩜 세상에서 말하는 음탕하다고 일컬어지는 모든 여자들은 어렸을때부터 가족내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정한 사랑이었을 뿐인데, 세상이 그녀들에게 돌려 주는 것은 음탕하다는 비난과 섹스의 화신이라는 낙인이라고. 그 어느것도 그녀들의 정체성에 걸맞는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녀들을 그렇게 보길 원한다고. 왜냐면 그게 그녀들을 이용하는 면에서 편리하니까. 그런 낙인이야말로 여성들을 사물화시키며, 그녀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본인들에 대한 자각을 훼손하면서, 그녀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사랑에 대한 갈구를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아~~~ 사랑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들이 그렇게 바람에도 왜 아무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음탕한 계집이라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쓰고 있긴 하지만 오로지, 여성들을 변호하고 있는 책이라고 보심 된다. 우리들의 생각, 우리들의 좌절, 우리들만의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내놓고 까발리고 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일컬던데, 그럴만했다. 이렇게 톡 까놓고 여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드무니 말이다. 음탕한 계집이라는 자극적인 제목때문에 성에 대한 음란한 고발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들은 염려를 접어 놓아시길. 그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성들과 언론에 의한 편견에 맞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실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거든? " 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똑똑하고, 예민하며, 또 한편으로는 순진하고, 낙담했으며, 사랑받지 못해 안달이 난 어린 아이에 불과할 뿐이라고. 너희들이 우리를 안다고 생각하는건 전혀 오해라고 말이다.


가끔, 나 역시도 언론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이건 아닌데 싶을때가 있다. 저건 확실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데, 하지만 편견이란 것을 너무도 강해서 쉽사리 고쳐지질 않는다. 하지만 그게 잘못 된  것이라고 나서서 말하기엔 우리 여성들은 너무 지쳤고, 귀찮고, 나서서 알려 주자니 똑똑한 척을 하는 것 같아 주눅이 든다. 그런 선택적 침묵에 대항해서 내가 할 말을 해야 겠다고 나선 이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찌나 용감하던지, 도발에 가까운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흐믓한 미소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런 여자들을 가리켜 여전사라고 해야 겠지. 아마도 우리 여성들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면 이런 여자들의 용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침묵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보였다는 의미에서 .물론  때론 엄청난 통찰력으로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지만, 종종 길을 잃고 헤메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뭐, 살짝 무시하고 보면 되니 대단한 것이라고 하긴 힘들다. 본문 자체가 워낙에 굉장한 파워를 지닌 문장들이라 그 정도로는 이 책의 가치가 내려가진 못한다. 남성들도 보면야 좋겠지만, 그건 희망사항이고. 일단 이 책은 여성들이 먼저 봐야 할 듯 싶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 누구에게 자신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싶어서 말이다.  우리들만의 진실을 찾는 여정이 늘 의미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가는데에 장애물이 너무 많기에, 그저 주저 앉아서 하소연만 하고 있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생각을 해, 그리고 말해~~ 이 작가처럼 말이야!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내려 놓으면서 과연 지금의 시대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진지하고 통찰력 있는 책을 쓸만한 작가가 이 시대에 배출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 왜냐고? 어째 점점 더 세상에 얄팍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30대를 넘어가면서 쓴 글이다. 과연 요즘 시대에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고 사는 사람이 있을런지 싶다. 그 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런지...아마도 이 책은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완성도면에 있어서야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그 가치는 충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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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8-2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네요. 이 책이 이런 내용이라니...제목만 보고 뭐지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한번 읽어 봐야겠네요.

이네사 2012-08-24 23:17   좋아요 0 | URL
이런 내용도 있고,그 외에도 이런 저런 여성들에 대한 편견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는 책이여요.
실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랍니다. 하지만 그걸 다 썼다간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아주 아주 대강만 적은 것여요. 책에 대한 인상만 보여 드린다는 생각에서 말이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어떤건 횡설수설 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들어볼만한 이야기가 많아요. 경치게 웃기는 분석들도 많구요. 아하~~~ 하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부분도 있죠. 아마 보시면 저랑 다른 의미에서 재밋게 보실 수 있을 거여요.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까. 적어도 지루하진 않을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