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라의 돼지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 주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스타덤에 오른 민속학 교수 오우베 다이치로는 8년전 케냐에서 딸을 사고로 잃은 뒤 술에 절어 산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망가져 가는 것은 아내인 이쓰미도 마찬가지...조교와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만았던 둘의 사이는 점차 거리를 알 수없을 만큼 멀어져 간다. 어떻게 해야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지 감을 못 잡는 채 방황을 하던 부부는 아내가 신흥 종교에 빠지면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신흥 종교 주창자가 실은 사기꾼이라는걸 아내에게 설득한 오우베 교수는 기분 전화삼아 가족들을 데리고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다. 딸을 잃은 뒤 절대 발을 들여 놓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땅으로 말이다. 

물론 그것은 본인의 의지때문은 아니었다. 아프리카 주술사들이 진짜인가 라는 궁금증을 찍기 위한 TV 다큐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건한 제자와 아내, 아들과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난 청년과 함께 아프리카로 간다. 오랜만에 주술사의 마을인 "쿠미나타투"에 도탁한 교수 일행은 그곳이 초토화 된 모습에 의아해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악한 주술사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는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그들의 말에 반신반의하게 되는데....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책에 관한 첫인상을 말하자면 일단 두껍다. 두꺼운데다, 주술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에 아프리카와 민속학을 넘나드는 이야기들로 종회무진 정신이 없었던 소설이었다. 다행이라면 소재가 무거운 것에 비해 작가의 서술 자체는 무겁지 않아서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이런 소재를 별로 매끄럽달 수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밀고 나가는 나카지마의 저력에 새삼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고나 할까. 하여간 특이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주술사가 진짜인가 사기인가...라는 물음에 작가는 이렇다 저렇다 단정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진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기이니 조심하라는 정도? 그 사기 수단들을 이 책 한 권을 통해 세세히 까발리고 있다고 보면 좋을 정도로 다양한 사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 분야에 대해 작가가 꽤나 연구한 느낌이 들었다. 대충 넘겨짚어서 쓰는게 아니라, 르뽀기자 답게 제대로 취재를 해서--다시 말해 발로 뛰어서--글을 쓴다는 점은 참 우러러 보이더라. 하나의 소설을 쓰는데 이 정도의 공은 들여야 하지 않냐는 듯,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정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 주던 점도 장점... 

자, 그렇다면 장점에 대해선 대충 이야기 했으니 이제 단점에 대해 이야기 해야 겠지? 

가정 먼저 눈살을 찌프리게 한 것은 작가 본인의 소설적 자아같아 보였던 오우베 교수를 통해 대마초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려는 시도였다. 담배보다 대마초가 낫다네...라는 말을 일평생 주장하고 다니셨다는데, 꼭 그걸 이 책 속에 풀어놓으셔야 했는지, 그것도 열 세살 어린 아들에게 대마초를 권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본다고 해도 열 세살 중학생 아들에게 대마초를 권하는 장면은 징그러웠다. 도무지 그 나이 아이에게 대마초를 피면서 환상이나 뽕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대단히 쿨한 부모인 듯 포장하는 장면은 역겹더라. 나카지마상, 당신 아이 없죠? 잉? 아마 진짜 아들이 있어서 자신의 아들에게 대마초를 권했다면 나중에 그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주장하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나카지마상, 그건 아니여요. 열 몇살 먹은 아이에게 대마초는 무리랍니다. 그걸 꼭 그렇게 소설속에 쓰고 싶으셨나요? 묻고 싶었다. 

알콜 중독에 대한 이야기 역시 그 자신을 연상하게 해서 별로였다. 자신이 그 파괴력을 너무 잘 알면서도, 뭐랄까. 쉽게 다룬다고나 할까?  

이야기 자체도 좀 엉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선을 연구했다는 선승이 아프리카에서 온 주술사에게 허무하게 당하는 장면이나--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것이었으면 도무지 왜 그렇게 대단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공을 들여 그를 선전했다냐--마지막에 가문의 신비력을 내려받은 사람으로 오우베 교수가 뜬금없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설정 역시 그랬다.  

간간히 보이는 유머와 기괴한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풀어낸 문장력은 좋았지만서도, 그 장점에 비해 단점들이 두드러지다보니--실수라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그가 왜 이렇게 뚱뚱한 소설을 만들만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류 작가가 될 수 없었을지 이해가 됐다. 한마디로 일류가 되기엔 품성이 모자란 다고나 할까.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일류대 못간 것에 평생 울분이 되었을 천재 작가님께서 입에 거품을 물고 뒤집어 지실테지만서도 말이다. 일본인인데다가, 알콜중독에 기행스런 삶 때문인지 50대 중반에 돌아가신 양반이라서, 내 리뷰를 읽지 못하실테니 다행이다 싶다. 

그의 장점과 동시에 단점 역시 뚜렷이 보이던 소설, 한마디로 특이한 소재긴 했고 , 또 그걸 성실하게 풀어내긴 했으나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많이 부족한, 잘 쓴 대중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어딘지 어설픈 소설이 되겠다. 뭐, 어쨌거나 이건 내 느낌이지만서도 말이다. 하여간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나카지마라는 작가에 대해 가졌던 흥미가 사라졌으니, 매력은 그다지 보장되지 않는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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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11-03-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첫번째 들었던 생각이 '일본의 그 많은 퇴마사, 음양술사, 공작(응?)은 다 어디 갔나?' 였어요.
앞부분의 신흥종교에 빠진 아내의 이야기는 군더더기처럼 보였고, 신흥종교의 사기행각을 밝혀내면서 부부간의 갈등도 깨끗이 봉합되는 건 어쩐지 억지스러운 느낌이 가시질 않네요. 물론, 특이한 소재를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
근데.. 성경에 나오는 '가다라의 돼지몰살사건'은 뻥이라는 것일까요?

이네사 2011-03-16 02: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제목하고 내용하고가 그다지 잘 매치되진 않았죠? 굳이 왜 그 제목을 달았을지 의아하긴 하더군요. 억지로 갖다붙인 느낌이 역력...하여간에, 그다지 잘 만들어진 소설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걸 이렇게나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서 놀랐어요. 저라면 중간에서 길을 잃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절망했거나...^^

zizi 2011-03-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은 모르겠는데 딸이 있어요. 딸도 소설가랬나? 암튼 부모님이(라모부인도) 요상하다 보니 체념한 말투가 인상적이었어요. '난 추리소설은 못써!'라고 징징 거리더니 역시 엉성하군요. 그래도 이 책이 출세작인데..

이네사 2011-03-28 23:09   좋아요 0 | URL
와아~~~딸이 있었다구요? 의외인데요? 딸이 있었다고는 하나 진심으로 키우진 않으신 모양인듯...
아이를 진심으로 키운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런 발언은 못하거든요.
이 책에 출세작이여요? 하하하...하긴 조사를 꼼꼼하게 하시고, 도입부가 박진감이 있긴 했거든요.
전체적으로 본다면 잘된 작품은 아니지만서도. 이 작가의 최고작품은 < 오늘밤 이 바에서는> 인가 그 책인것 같아요. 그건 참 좋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