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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평점 :
웬만한 책은 나와 함께 읽던 엄마가 요즘은 책을 멀리하신다. 갑자기 그 이유가 궁금해진 나는 어느날 엄마에게 왜냐고 물어 보았다. 엄마의 대답은 간단했다. 요즘 책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아쉽다는 듯 한마디 보태신다. " 너희들 키울때 읽은 책들이 참 재있었는데, 요즘 책은 그만 못 한 것 같아..." 습관적으로 변명할 말을 찾던 나는 순간 멈칫 했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서다. 학교 졸업 후 그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그 시절 책들이 더 좋다는 말에는 나 역시 동감이었다. 왜일까? 의문이 들었다. 왜 그때 읽은 책들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쩜 그땐 재밌는 것들이 드물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지금처럼 냉소적인 어른이 되기 전이라서거나, 구슬 굴러가는 소리에도 웃음을 터트린다는 감성 넘친 시절이라서도 그랬을 수도 있다. 혹은 어쩜 그 기억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과대 포장된 그리움 말이다. 오히려 지금 그 책들을 읽는다면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진짜 그럴지가 궁금해졌다. 눈치 채셨을지 모르는데,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그 궁금증을 이 책을 통해 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문의 답은' 그렇진 않더라.' 였다.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내심 흐믓했다.
실은 이 책의 작가 팔리 모왓은 어릴적 나의 우상이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의 책인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를 읽지 못하게 숨겨둘 정도였다.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라치면 다가오는 끔찍한 상실감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밌는 책을 찾을 수 없다는 허무함에 이어지는 우울, 책을 다 읽어 버렸다는데 대한 자책감--실은 하도 읽어서 외울 정도였지만서도--무기력감에 비탄...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내가 그 시련을 견뎌 냈는지 모르겠다. 이겨낸 내가 기특할 뿐이다. 어쨌거나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망각 속으로 보내 버려야 했던 그를 어른이 되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이 책의 저자가 팔리 모왓이라는걸 알고는 펄쩍 뛰었다. 오호,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책을 한 권만 쓰신게 아니었군. 반가운 마음에 허겁지겁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난 그의 책을 좋아할까? 조금은 의심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
다시 한번 내가 왜 그를 그토록이나 좋아했는지 알게 됐다. 그에겐 내가 좋아하는 모든 자질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정함, 유머, 유년 시절의 천진함을 그대로 간직한 행동거지, 동물을 이해하려는 따스한 마음, 주어진 지식이 아닌 자신이 목격한대로 이해하려는 정직성, 편견에서 벗어날 줄 아는 개방성, 아무도 살지 않는 툰트라에서 1년동안 늑대를 연구할 만큼 무식한 저돌성,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이건 에스키모 원주민이건 간에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겸허한 균형감각...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흐릿해진 시절이지만 그 어릴때도 내 눈은 틀림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엄마의 말도 맞았다. 예전의 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사설이 길었는데,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호구지책으로 캐나다의 산림 연구원이 된 저자는 늑대를 연구하라는 발령을 받고 마지못해 툰드라로 떠나게 된다. 남들은 말도 안 된다며 기겁한 프로젝트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시켰겠지 라는 단순 무식한 생각으로 받아들였다는 저자는 하여 삼림이 우거진 허허벌판 속에 달랑 혼자 남게 된다. 외로움은 뒷전이고, 우선 연구감을 만나지 못할까 걱정하던 그는 우연히 늑대 가족을 만나곤 엄청 기뻐한다. 다행히도 그가 어설프게 지었던 아지트가 늑대가 지나가는 길 위에 있었던 것이다. 늑대를 만난 김에 허둥지둥 연구를 시작한 그는 그날부터 그가 늑대를 관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다소 멍청한 이 직립 보행 괴짜를 관찰하는 것인 지가 애매한 관찰 일지를 적어내려 가게 된다. 그리고 그 1년 간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냈을 때가 거반 40년 전이니, 과거엔 늑대에 대해 편견이 심했다는 사실을 모르실 것이다. 그런데 40년 전에는 늑대는 그야말로 인간과 절대 가까이 할 수 없는 파렴치한 놈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순록 숫자가 감소하는 것이 다 늑대 탓이라고 판단한 정부가 마구잡이로 늑대 사냥을 허가해 주었고, 그 덕에 늑대의 수는 급감해 가던 중이었다. 저자는 이에 의문을 품는다. 늑대 개체 수가 그렇게 줄었음에도 순록 수 역시 줄어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1년간의 연구를 통해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늑대의 주식이 순록이 아니고 쥐라는 사실을 밝혀내다. 그간 순록이 줄어든 것은 늑대가 아닌 백인들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명확하고 논리적인 설명에도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핑거 포인팅... 죄를 가리키는 방향에 오류가 있었음에도 오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 명백한 사실이 그 당시엔 이권 다툼에 정치권까지 끼여들어 모왓을 거짓말장이로 몰고갔다니 참 어이가 없다.
그렇게 그가 당시론 파격적으로 늑대에 대한 진실만을 적어 내려갔다는 점이 마음을 울린다. 오만과 이권이란 색안경에서 자유로운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얼마든지 인간의 입맛에 맞춰 늑대는 정말로 못된 놈들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텐데, 내 우상이었던 그는 차라리 인간의 오해를 살 망정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역시 내가 존경할 만한 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지 진실해서 이 책이 맘에 든건 아니다. 그보단 재밌었기 때문이다. 처음 늑대를 연구 하겠다면서 오도방정을 떨때부터 그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군다나 그가 관찰하는 늑대 가족들은 인간에게도 보기 드문 개성과 인간미를 갖추고 있었는데, 듬직한 가장 늑대와 새침한 엄마 늑대, 그리고 삼촌 늑대 역활을 톡톡히 하던 늑대 알버트와 통통 튀던 아기 늑대들등, 읽는 동안 그 만큼이나 나도 그들에게 애정을 가질 수 밖엔 없었다. 모왓이 늑대를 따라한다면서 소변으로 경계를 표시 하는 장면이나, 늑대를 관찰하기 위해 위장 관찰 중인 그를 보곤 " 쟤 뭐니? 좀 바본건 같지 않니? " 라는 표정으로 쳐다 봤다는 늑대들, 소변을 보는 모왓을 향해 응큼한 눈길을 보냈다는 엄마 늑대, 그리고 늑대 말을 해석해 주던 에스키모 주술사의 이야기등, 얇은 책임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어찌나 재밌던지 그가 철수한다고 하니까 내가 다 섭섭하더라. 이미 그가 40년전에 그만 둔 일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1년만에 늑대 연구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그는 그 뒤 늑대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 덕에 지금은 늑대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밌다. 얇다. 너무 우스워 내내 낄낄거렸다. 재밌는 동물기를 넘어 좋은 책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울지 않는 늑대라는 칙칙한 제목은 부디 잊어 주시길. 기발하게 재밌는 책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거 혹 아시는지. 늑대를 이해하는 길이 인간을 이해하는 길도 된다는 것 말이다. 존 던이 말했듯이, 인간은 누구나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결국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이해는 우리를 위한 이해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