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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LA의 부촌에 홀로 사는 리처드 노박은 겉보기엔 부족한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살뜰히 보살펴 주는 가정부에 몸매를 관리해주는 트레이너, 노화방지 식단을 챙겨주는 영양사까지 주식으로 번 돈으로 돈 칠갑을 하면서 흥청망청 살아가던 리처드, 그의 평온한 삶은 갑작스런 통증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대도 911에 대신 전화 걸어줄 이 조차 없다는걸 깨달은 그는 병원에 도착해 전화 걸 사람조차 없자 막막해진다. 용기를 내어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돌아오는건 야박한 핀잔, 기가 꺽인 그는 더 이상 전화기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못한다. 병명을 모르겠다는 의사들의 말에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갑자기 도넛이 먹고 싶어 충동적으로 도넛 가게에 들어간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그를 반기는 도넛 가게 주인 앤힐에게 리처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리처드를 재치있게 위로하면서 앤힐은 그에게 도넛 상자를 건네주고, 돈을 건네는 리처드에게 자신을 무시한다면서 화를 낸다. 리처드는 이렇게 삭막한 도시에서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서먹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건강하게 산다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지만 정작 음식다운 음식은 먹지 못하고 살았던 것처럼 인간다운 접촉없이 오랜 세월을 보냈던 그는 울음을 멈출 수 없자 당황한다. 앤힐이 메르세데즈를 몰고 싶다는 말에 자신의 차를 몰고 도넛 가게로 향하는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통증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궁리하게 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일 중독자였던 아내를 떠나 LA로 이사온 지 어언 10여년째, 아들 벤과 거리가 멀어진 것에 가슴이 찢어졌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고통을 차단해왔다는걸 느끼게 된다. 아내를 벤을 동생을 만나야 겠다는 생각도 통증을 없애지는 못하자 그는 결국 진료를 받기로 한다. 의사는 심리적인 고통이 육체적인 고통을 야기할 수도 있다면서 그에게 고통을 유발할만한 일들이 혹 있었는지 되돌아보라고 한다. 다시 한번 곰곰히 과거를 돌아보던 그는 마트에 들렸다 야채가게 코너에서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한다. 왜 울고 있냐는 그의 질문에 당신은 변태냐고 앙칼지게 대꾸하던 그녀는 곧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가 하인인줄 알고 있는 아이 셋에 무심한 남편, 반복되는 일상에 숨이 막혀버렸다는 그녀는 혹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그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는 헤어진다.
한편 그의 거대한 저택 한쪽 정원에 구멍이 뚫리자 그는 다시 911에 전화를 건다. 로스앤젤스의 특성상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면서 혹 집이 무너질지도 모르니 대비를 하라는 공무원의 말에 리처드는 하는 수없이 말리부의 하얀색 집을 임대한다. 그 구멍에 이웃집 소녀의 말이 빠지자 그는 말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옆집 남자가 유명 배우라는걸 알고 있던 그는 허탕삼아 도움을 구하고, 배우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말을 구해내자 뿌듯해 한다. 말리부의 집에 둥지를 틀은 그는 거지같은 차림새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를 돕고 싶은 마음에 옷가지를 내다 놓았던 리처드는 그가 옆집에 사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말에 깜짝 놀란다. 옆집 남자와 우정을 쌓고, "울던 여자" 가 집을 나오자 그녀를 도와주며, 간강범에게 납치되어 가던 트렁크속 여자마저 구한 그를 미디어에선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서, 자신마저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이 낯설다고 말하는 그에게 드디어 아킬레스건이었던 아들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들 벤을 만날 생각에 설레던 리처드는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벤의 격렬한 반항에 부딪히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격렬한 통증덕분에 자신의 삶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한 사내의 이야기다. 처음 그는 통증의 원인을 몰라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짐작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일중독으로 인한 외로움을 아내와 대화로 풀어내지 못한 그는 한마디 저항도 못한 채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을 하면서 아들 벤과 멀어지게 된 그는 자신이 슬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무감각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마치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런 실패도 없었을 거라는 듯이... 감정은 그를 속일 수 있었지만 정직한 몸은 그렇지 않았다. 그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한꺼번에 터뜨려 버린 몸, 몸은 더 이상 고통을 담아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는 수없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된 그는 꽁꽁 얼러두었던 자신의 감정을 되돌이켜 보게 된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감정이 살아있는 섬세한 사람이었으며 , 사랑을 하고 도움을 주며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마치 어제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다른 삶을 살게 된 그는 흐르는 물처럼 자신의 삶이 유연하게 흐르는 것에 놀라고 만다. 하지만 그런 유연함도, 남을 도우려는 다정함도, 타인과 공감하려는 마음도 과거의 고통을 다 치유해내지는 못한다. 남들에게 그렇게 친절하면서 왜 내겐 그렇게 하지 못했냐고 울부짖는 아들 벤을 보면서 비로서 그는 과거를 직시하게 된 리처드, 자신의 아들을 향한 절절하고 애타는 사랑을 한번도 전하지 못했던 것을 그제서야 후회하는 그는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갈 것인가?
깜찍할 정도로 매력적인, 잘 짜여진 소설이었다. 20억년전에 멸종된 검치가 돌아다닌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식을 뉴스로 전하는 이상한 도시 LA, 그 기괴한 도시에서 마찬가지로 기괴한 삶을 살고 있던 한 남자가 어떻게 이러저러한 소동을 거치면서 인간성을 되찾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었는데, 넘쳐나는 소동과 어디로 흘러 들어갈지 모르는 사건들 속에서도 시종일관 잃어버리지 않던 작가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읽는 내내 흐믓한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 참 꿈도 크시네, 꿈 깨셔 "라며 비웃었는데,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가면서 그 냉소는 사라지고 말았으니... 물론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난 재미만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오랜만에 게 거품 물면서 엄마에게 읽을만한 책을 찾았다고 떠들어댔더니--눈이 나빠진 엄마는 요즘 내가 추천하는 책만 읽는다.--대강 줄거리를 들은 엄마도 수긍을 하신다. 특이한 이야기라고... 읽어가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 그림이 그려지길래 이건 누가 영화로 안 만드나, 영화로 만들기 딱일 것 같은데 했더니만 이미 영화로 만들고 있단다. 놀랍지도 않다. 기대된다. 누가 주인공으로 나올지, 울고 있는 여자는 누구일지, 옆집 작가 남자는 누구일지, 지극히 인간적이던 도넛 가게 주인은 또 누가 맡을 지...이런 저런 자잘한 이야기들로 아마 누가 감독을 맡는다 해도 말아먹긴 좀 힘들지 않을까 한다. 하여 이 영화도 미리 찜한다. 피할 길 없는 통증으로 인해 시작된 한 남자의 삶 되돌아보기 여정을 통해 감동과 재미를 느끼고 싶다시는 분은 보셔도 될 듯... 섬세한 붓으로 터치하는 듯했던 세밀하고 탄탄한 문장들이나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그들이 나누는 개연성 넘치는 대화,이혼한 아버지의 심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들이 다른 소설과는 차별되던 신선한 점이었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하지는 못할 지라도 적어도 지루한 순간만큼은 구할지도 모른다고 감히 단언한다. 단지 단점이라면 좀 심하게 착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니, 착한 것들에 알러지가 있는 분들은--특히 남자분들-- 멀리하셔도 상관없겠다. 난 분명히 경고했으니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