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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평점 :

아킬레우스의 노래 I 매들린 밀러 I 이은선 옮김 I 이봄
우리는 피로 이루어진 세상, 그 피로 영광을 쟁취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싸우지 않는 건 겁쟁이들뿐이었다. 왕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든지 전쟁에 나가서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
메노이티오스 왕의 아들 파트로클로스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왕자가 아니었다. 귀족의 아들을 실수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로 귀족들의 반발을 살까 우려한 왕은 파트로클로스를 프티아로 유배보낸다. 그곳은 파트로클로스와 같은 왕자들의 유배지였다. 늘 혼자였던 그를 친구로 지목한 프티아의 왕자 아킬레우스. 둘은 언제나 함께였고 친구가 되지만 얼마 후 프티아의 왕은 아킬레우스를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를 가르친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보낸다. 아킬레우스를 따라 간 파트로클로스는 함께 케이론에게 사냥법, 의술, 목공 등등의 기술을 배우고 어느 새 둘은 친구가 갖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다.
본국으로부터 소환명령을 받고 프티아로 돌아온 아킬레우스. 그리스는 전쟁을 준비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아의 파리스가 납치를 해간 것에 대해 그리스의 많은 나라의 왕들은 전쟁을 준비한다. 미모의 공주 헬레네에게 청혼하려했던 구혼자들은 오딧세우스의 요청으로 헬레네가 남편감을 정하고 남편이 되지 못한 이들은 헬레네의 선택을 존중하며 만약 헬레네를 빼앗아가려는 남자가 있을 경우 그녀의 남편의 편에 서겠다는 맹세를 했던 이들이 모두 모여 헬레네를 다시 찾고자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님프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예언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스키로스 섬에서 여장을 시켜 생활하게 한다. 그럼에도 섬으로 오딧세우스 일당들이 찾아오고 결국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은 시작되고 십년에 걸쳐 지리한 싸움이 계속된다. 신전의 여인을 전리품으로 데려간 아가멤논에게 여인의 아버지인 대사제가 딸의 몸값을 가지고 딸을 찾으러 오지만 돌려주지 않는 아가멤논. 그 이후로 역병이 돌고 이 사태가 아가멤논 때문인 것을 어머니에게 확인한 아킬레우스는 사태를 진정시키려 아가멤논에게 여인을 돌려주고 제사를 지내기를 권유하지만 아가멤논은 그런 아킬레우스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파트로클로스의 친구가 됨)를 빼앗아간다. 장수의 명예인 전리품을 빼앗간 아가멤논에게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불참하고 그리스군은 연속 패배한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여해주길 바라던 사람들의 바램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움으로 변질되고 파트로클로스는 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슬픔에 젖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예언을 알면서도...
그는 주저앉아서 내 배에 얼굴을 댄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의 눈물 때문에 내 몸이
점점 미끌미끌해진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각색한 <아킬레우스의 노래>, 기본 바탕은 <일리아스>의 내용이기에 거친 장수들과 핏빛 전쟁의 이야기이니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겠다 싶었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넘어선 그들의 사랑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파트로클로스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들의 만남과 아킬레우스를 아끼고 그의 명예를 지켜주는 싶은 마음과 전쟁이야기, 그리고 테티스, 예언 등을 파트로클로스의 담담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전해준다. <일리아스>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친구로 규정하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두 사람을 동성애 관계로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거만하며 인정머리 없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아킬레우스의 노래> 속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헥토르를 만나러 가는 멋진 장수이며 전체를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는 캐릭터로 아가멤논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보통 신화를 보면서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고 공감이 어려운 부분은 그들의 행적만 있을 뿐, 행동에 대한 이유, 배경을 알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소설로 그려지는 매들린의 <아킬레우스의 노래>나 <키르케>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잘 대변해주기 때문에 공감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트로이전쟁은 헬레네라는 여자 때문에 생긴 전쟁인데, 헬레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 단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는 이유로 맹세를 하고 맹세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 이것은 맹세에 대한 맹목적이면서도 빼앗은 영토도 포로도 없는 무의미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 속에서도 빛나는 파트로클로스는 배려와 사랑의 아이콘이다. 사랑하는 이의 명예를 생각하며 싸움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는 약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하는 이유나 전장에서 아킬레우스처럼 용감하게 싸우려는 모습에서 전쟁 속에서 꽃피는 사랑은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고전적 동성애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가의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아킬레우스의 노래>. 전쟁이야기 <일리아스>가 이렇게 재미있고 슬프게 재탄생될 줄이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