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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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한 사회고발 소설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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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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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I 마거릿 애트우드 I 차은정 옮김 I 민음사




나쁜 소식은 예전에도 존재했고, 우리는 그것을 헤쳐왔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또는 아직 손가락 빠는 아이였을 때 

일어난 사건을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한다.

나는 그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우 리는 그것을 헤쳐왔다.




넬이 열 한살 일 때 어머니는 여동생인 리지를 낳았다. 사춘기인 넬은 동생을 돌봄에 있어 힘에 부친다. 문학시간에 [나의 전 공작 부인]이라는 시에 대해 배웠다. 예전에 공작들은 전문적 독살자들이었다는 것을 역사 로맨스 작가들을 통해 알고 있었고 남자 친구인 빌은 다른 남자친구들처럼 떼를 지어 어슬렁거리며 여학생들의 가슴에 대해 소리를 질러 대는 그런 부류의 아이가 아니었다. 빌은 분명 다른 남자친구들처럼 연애의 일반적인 주기를 따르지 않는 아이였지만 부족한 그의 문학에 대해 도와주다 싸우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대학에 갔고 일을 하며 자연스레 독립하며 가정교사로 취급되는 누군가의 여자가 되었다. 시골의 농장으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과 티그와 함께 살지만 그는 아직 유부남이었다. 주위에서는 둘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커리어 우먼이었던 오나는 많은 남자들을 만났지만 정착하지 못했고 퇴직을 했으며 점점 빛을 잃어갔다. 나는 티그의 아이를 가졌고 오나가 집을 사달라는 요구에 집을 사줬지만 오나는 혼자서 죽음을 맞이한다.





<도덕적 혼란>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자전적 소설이며 단편집이고 연작소설이다. 굳이 단편별로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시녀이야기>를 통해 접한 그녀는 무서운 작가였다.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우선지만 <시녀이야기>는 내게 굉장한 충격과 무서움을 준 책이기에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사람의 책을 읽기가 조금 망설여졌었다. 35년 만의 <증언들>을 통해 희망적인 이야기도 쓸 줄 아는 작가였음을 확인했고 이번 <도덕적 혼란>을 통해 이런 부드러운 이야기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다시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도덕적 혼란> 속 주인공인 넬은 중년의 어머니가 육아가 힘들어 사춘기의 그녀가 어린 동생을 돌봐야했고 엉뚱한 일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전문직 여성이 되어 자신보다 연배가 있는 커리어우먼을 동경하지만 그녀의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 모습은 소설 속 남자친구와 다투며 시 속 여성을 욕했던 그 사춘기의 여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녀는 분명 테스나, 공작부인을 호구라 칭했다. 바보같이 남자를 너무 믿고 나쁜 남자들의 손아귀에 쉽게 걸려드는 것에 대해 왜 이런 불운하고 짜증스러운 멍텅구리 여자들에 대해 공부해야 하며 그녀들의 인생이 앞으로 나의 미래에 어떤 소용이 있는지 의문을 품었기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사춘기 소녀들의 흔한 생각과 억울함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공감을 많이 느꼈지만 이런 여성이 성장해서 부부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유부남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넬의 모습은 안쓰럽다. 사랑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한 느낌이다.



<도덕적 혼란>은 주인공이 상황이 가져다주는 불합리성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들은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게 하는 힘을 가졌으며 그녀의 생애를 통해 인생의 의외성과 애착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인공인 넬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생을 천천히 지나오며 죽음을 목전에 둔 어머니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부모님의 삶을 짚어보는 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하는 모습으로 비춰져 그녀의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는 도서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어떤 작품보다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고 이제는 농익음의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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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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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박종대 옮김 I 열린책들




우리 모두가 뿌리를 박고 있는 어머니 대지이자 음악적 영감에 양분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이자,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것의 사타구니에서 음악적 씨앗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창조의 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맥주를 한 잔 하며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들려주는 한 남자. 콘트라바스의 소리를 들었냐고 묻는 이 남자는 국립 오케스트라 소속 콘트라바스 연주자이다.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모든 악기의 토대가 되며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콘트라바스는 남성이지만 여성적 악기이며 태초의 악기임을 피력한다. 하지만 곧 그는 연습을 위해 집에 엄청난 돈을 들여 방음장치를 했고 오페라 연주 후에는 엄청난 땀을 흘려 평소 체력을 키워두지 않으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는다. 거기에 더해 처음부터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이는 없으며 더욱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어린아이는 없다고.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비와 추위에 약해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줘야 하고 덩치가 커서 의인화시킨다. 항상 자신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어 부딪치거나 하다못해 여자와 단둘이 있을 때도 녀석은 모른척하지 않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콘트라바스를 향해 그는 악담을 늘어놓는다. 끔찍한 악기라고. 뚱뚱한 노파같으니! 히프는 축 처지고 허리는 한마디로 참사이며 가늘지도 않지만 심지어 길기까지 하고. 어깨는 좁고 곱사등이처럼 축 늘어어져 있어.... 바로 콘트라바스의 발전사적 이유 때문인데 위쪽은 바이올린같고 아래는 비올라 같아서 모든 악기 중에서도 가장 못생기고 둔하고 기품 없는 악기이며 괴물같고 박살내고 싶다고 심지어는 불에 태워버리고 싶다고 악담을 쏟아놓는다.




오랜동안 콘트라바스와 함께 하며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있었고 그(콘트라바스)와의 하모니를 위해 손에서 타는 냄새가 날만큼 굳은 살이 박히며 노력해 온 연주자는 사실상 콘트라바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콘트라바스의 역사나 콘트라바스 연주법과 악곡들은 배움으로 되는 일이지만 콘트라바스를 의인화시켜 생각하며 뚱뚱한 노파로 보이는 콘트라바스는 그의 영혼에 자리잡은 동반자같은 악기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자신에 대한 질책을 콘트라바스에 퍼부으며 맥주 한잔 하며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인간 사회의 복사본이라고 표현한다. 어디건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무시를 받는데 마치 콘트라바스 연주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듯 얘기하며 그는 사랑하는 사라를 떠올리며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콘트라바스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오른 손으로는 마치 활로 그녀의 엉덩이를... 왼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잡고 마치 G현의 셋째 마디를 짚듯이 독주하듯... 하며 콘트라바스가 매우 에로틱한 악기임도 놓치지 않고 말이다. 그는 오랜 시간 콘트라바스와 함께 해온 시간을 돌이켜 본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맥주 한 잔 하다보니 내일 있을 연주회를 예상하며 그의 인생을 몽땅그리 차지한 만만한 콘트라바스에 대해 사랑, 미움, 증오, 집착, 애착, 지겨움, 애증을 담아 주저리주저리 넋두리와 푸념을 내뱉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독백이었던 것이다.




음악은 이성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저 높은 곳에 있다.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힘이,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이 음악에서 나온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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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
장샤오헝 지음, 최인애 옮김 / 다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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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I 장샤오헝 I 최인애 I 다연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하버드대학교의 탈 벤 샤하르 교수의 강의 중 하나가 '긍정심리학'이다. 첫 강의를 시작했을 때 겨우 여덟 명의 학생이이 수업을 들었고 그 중 두 명은 강의 신청을 철회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번째로 강의를 열었을 때 무려 400명이 신청했고 세 번째 학기에는 855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학생의 부모와 가족 심지어 각종 매스컴 종사자들까지 강의를 듣겠다고 찾아왔었다는 그 유명한 강의를 바탕으로 저자 장샤오형은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에서 말하고 있다.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답을.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나는 행복한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과연 몇 명이나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다보면 자기계발에 소홀해지고 반대로 정신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만 관심을 쏟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모든 면에서 두루 균형 잡힌 삶을 원한다면 때때로 자기 자신을 점검해봐야 하며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한다. 행복은 마음가짐이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만의 장점에 집중하고 나답게 살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나 답게 살라는 말에 추가적으로 4강에서는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 인생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남과 비교하다보면 자기 비하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신은 불행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남과 비교하기 보다는 앞서 말한 자신의 장점에 집중하고 자기 실수에 관대해지며 남이 아닌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라고 한다.




"남보다 뛰어난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진정한 자랑거리는 과거의 자신보다

뛰어난 것이다."

-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을 들어 설명한다. 인생에 승패란 없으며 승패를 겨뤄야 한다면 바로 자기 자신과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이 자신보다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자신의 행복은 축소경으로 보고 남의 행복은 확대경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 무릎을 쳤다. 맞는 말같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남을 부러워할 때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우리가 먼 곳의 풍경을 부러워하며 그곳에 시선을 뺏기느라 바로 눈앞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을 발견하는 눈일 것이다. 남의 정원에 핀 꽃을 부러워하느라 정작 자신의 정원에 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지 못하는 것, 누구나 하는 실수이지만 이제 알았다면 내 정원에 눈을 돌리자.



영화 [와호장룡]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네가 두 손을 꽉 쥐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손을 활짝 편다면 세상이 너의 손 안에 있을 것이다."... 너무 멋진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온통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돈, 명예, 권력, 지위 등등.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리 욕심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가진 것조차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움켜쥐고 놓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욕심은 깔끔히 포기하라고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 포기하는 것은 무능한 선택이지만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적절할 때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베풀라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숭고한 일은 없으며 우리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고 베푸는 것처럼 다른 이에게도 베푼다면 분명 영혼의 기쁨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1 장 1 장이 모두 좋은 이야기로 넘쳐나는데 이런 책은 빨리 읽어버리면 좋은 의미가 희석되고 날아가 버릴까 싶어 매일 조금씩 읽으니 다 읽고난 지금 행복이 넘친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어울리는 일화와 유명인사들의 말이 같이 담겨 좀 더 내용이 와닿는다. 또한 뜬구름 잡기식으로 그저 '베풀라, 비교말라, 행복해라' 의 이야기들이 아니라 과감히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고도 하는 채찍질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매일 한참 바쁘고 시간에 쫓기며 내가 도대체 뭣 때문에 지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힘드나? 라고 생각되는 시간에 잠깐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를 보게 되면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라도 들은 듯 마음은 평온을 찾는다. 집 밥을 먹으면서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면 미슐랭 5스타의 식사가 되듯. 그래서 이 책은 며칠에 나눠서 조금씩 읽어야 효과를 보는 듯하다. 요즘 조금은 지치고 삶의 의미가 희미해지며 스트레스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면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를 추천해드립니다. 말이 필요없는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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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제인 오스틴 지음, 앨리스 패툴로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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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I 제인 오스틴 I 강수정 옮김 I 지학사아르볼



P. 489 아버지가 너의 기질을 잘 아는데, 너는 남편 되는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도, 어엿하게 살 수도 없는 사람이야.


P 493 제 미모에는 처음부터 아랑곳하지 않았고, 제 태도, 당신에 대한 제 태도는 줄잡아 말하더라도 거의 무례한 수준이었죠. 당신에게 말을 할 때면 늘 고통을 주려고 했고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제가 건방져서 좋아진 건가요?





롱본의 베냇 가는 딸만 다섯이다. 베냇 부인은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이 인생과업이었다. 비어있던 네더필드 파크에 엄청난 재산을 가졌다는 미혼의 젊은 남자 빙리 씨가 세를 들어온다. 잘생기고 신사다웠으며 호감가는 인상의 빙리씨는 그의 친구 다아시 씨와 빙리 씨의 두 여동생과 함께 왔는데 다아시 씨는 세련되고 훤칠한 체구로 당당한 태도의 신사였으며 연 수입이 1만 파운드라는 소문에 많이들 관심을 가지지만 금새 오만한 태도로 인하여 까다로운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빙리 씨와 베냇 가의 맏딸인 제인은 금새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해서 누가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인의 동생인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가 친구인 빙리에게 "참아 줄 만은 하군. 하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로 예쁘지는 않아." 라고 한 말에서 엘리자는 그를 오만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집에 딸만 있어서 배넷 씨가 사망했을 경우 그의 재산은 한정 상속제에 의해 콜린스 씨에게 상속이 된다. 이 점에 콜린스 씨는 배넷 씨댁을 방문해서 자신이 성직자가 되었으며 딸들에게 보상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제인은 빙리 씨와 결혼이 성사된 것처럼 배넷 부인은 말하자 콜린스 씨는 엘리자를 자신의 부인으로 점찍고 청혼을 한다. 사랑의 감정없이는 결혼할 수 없는 엘리자는 거절하고 콜린스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던 엘리자의 친구인 샬럿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롱본의 근처 부대에 위컴이라는 새로운 군인이 왔는데 사교성도 좋고 잘생겼으며 좋은 인상을 풍기는 청년이었고 엘리자와 잘 어울렸다. 시내를 둘러보던 위컴과 엘리자는 우연히 마주친 다아시 씨와 어색한 만남이 신경쓰였던지 다아시 씨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다아시 씨의 부친이 유언으로 위컴 자신에게 부여한 성직권을 다아시 씨가 박탈한 이야기를 하자 엘리자는 점점 다아시 씨를 싫어하게 된다. 하지만 다아시 씨는 엘리자에게 청혼을 하는데....





<오만과 편견>은 1797년의 작품이다. 당시로서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희귀하고 힘든 일이었다. 스스로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결혼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가 생겼다. 이러한 것들이 <오만과 편견>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배넷 부인의 인생과업이 딸들을 시집보내는 것이나 멋지고 돈이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여자들, 아들이 없어서 한정상속(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토지와 집 등 재산을 남자에게 한정시켜 상속하도록 한 영국의 제도)을 해야하는 것 등이 그렇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면서도 제인 오스틴은 그야말로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인상을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나 자신의 너무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에서 사람들은 오만함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상대를 알기도 전에 편견이 생기는 부작용을 또한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때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기분이 좋고 무시를 하면 기분이 상해 선입견과 무지를 따랐던 엘리자베스를 통해 여성의 허영심을 보여준다. 나름 분별력이 있는 캐릭터였던 엘리자베스를 통해 나에 대한 상대의 관심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모습을 여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피력하고 있다.



이 작품이 200년 전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잘 읽혔음에 놀라웠다. 가독성이 굉장히 좋았는데 앞서 읽은 지학사아르볼의 <프랑켄슈타인>의 번역자인 강수정님의 번역이었다. 이분의 번역이 좋아서 이분이 번역한 책만 골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은 모르지만 고전의 번역은 원작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불어넣어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은데 강수정님의 번역이 내게는 두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시대적 배경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술술 읽었을 만큼 가독성이 좋아 책의 두께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만과 편견>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친구에게 청혼한 남자의 마음을 달래주다 눈이 맞은 샬럿이라는 캐릭터나 다아시의 여동생에게 온갖 정성을 쏟다 일이 틀어지자 다른 여성들을 공략하는 돈을 보고 신붓감을 정하는 위컴이라는 인물, 딸들의 결혼에 전전긍긍하고 오로지 그것에만 매달리는 배넷부인, 오만함을 뒤집어 쓰고도 끝끝내 사랑을 쟁취하는 다아시라는 인물이 그렇다. 베냇 가문의 다섯 딸들도 각각 차별화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웃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얻는 큰 이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최고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무리 재미있어도 재독은 쉽지 않다. 재독이 어려운 이유는 결말을 알고 있어 매달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의 재미는 절정에서 느끼고 결말은 우리에게 도착지에 도착했을 때의 안정감을 준다. 미리 맛본 안정감에서도 신비감이 떨어지지만 절정에서 치솟은 궁금증은 재독에서는 다시 느끼지 못할 부분이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 같은 도서는 절정에서 주는 궁금증보다는 전개과정에서의 주인공들의 심리와 상황이 주는 재미들이 다시 재독으로 이끌 수 있는 매력을 지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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