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피 할로우 - 워싱턴 어빙의 기이한 이야기 아르볼 N클래식
워싱턴 어빙 지음, 달상 그림, 천미나 옮김 / 아르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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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이때 누군가는 옛 문화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주장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도대체 이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건가?' 하는 의문만이 쌓이는고전 또한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를 지루하다, 어렵다 라고 말하며 꺼리게 되는데,   이에 나에게있어 바로 이 책이 내가 꺼리는 책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동화이다.   그리고 이 책의 일러스트를 보아도, 위의 많은 내용에 비해서, 상당히 동화적이고, 또 몽환적인 가치를 담아닌 것들이 많다.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가치를 바라보면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도 아니요,교육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라는 감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을 접하며 들었던 가장 첫 감상은 그 마을사람들이 보여준 무지함에 대한 허탈감과, CSI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냉정한 보안관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라는 나름의 정의실현 욕구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주제인 '머리없는 기사' 는 전설을 넘어, 이야기속 주인공의 목숨을 앗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독자들은 어째서 '듀라한'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선생'을 습격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게 된다.


그야말로 듀라한의 존재로 큰 이익을 본 사람... 즉 누군가의 계획으로 인하여, 선생은 살해를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때문에 현대인의 상식에서 보면 이는 이미 '오컬트' 의 영역을 벗어났으나,  이어서 등장하는 다른 주변 인물들은 이 사건을 마주하며, 비극적이지만 어쩔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라 정의하며, 결국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나는 답답했다.   범인이 뻔히 보이는데... 그리고 그 범인이 점점 원하는 그대로 모든것을 얻어가고 있는데, 독자는 그것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어야 한다.    아!  그야말로 고구마 한상자를 씹어먹는 듯한 답답함이다.   허나 그것은 '어른'이 된 나의 시선일 뿐!    '혹시 어린 아이들은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문득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궁금해진다.    그야말로 아주 오랜 북미사회에 있어서, 이 많은 동화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오락에서 벗어나, 그 당시만의 사고방식을 오롯이 녹여낸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날에 있어서, 그 내용보다는 이야기 속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겼다.  그야말로 옛 할로윈을 글로서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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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지음 / 웨일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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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개성과 자극을 이끌어내고, 심지어는 광대와 같은 익살스러움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오늘날 교육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분명 나 스스로는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학문의 방법에 대하여, 나름의 신선함과 같은 감상을 받는다.   그야말로 언젠가부터, '유머'는 단순히 정신없이 웃거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하여, 소모하는 것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예를 들자면, 원활한 인간관계와 능력등을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흔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나는 (과거) 외국의 '빌 브라이슨'과 같이 보다 유머로 무장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르게 생각하면, 그 위트넘치는 책들의 대부분을 (기존의)'한국의 책에서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였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보다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적 목적을 지닌 책'


이때,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만들어진 것은 다름아닌 '만화'다.   그러나 나는 그 만화에서 벗어난 '글'을 통해서도 충분히 재미있다, 유익하다. 느낄 수 있는 것을 새삼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다.    물론! 이 책을 통하여, 보다 체계화 된 '학문'을 학습 할 수 있다! 라고 정의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저자는 보다 포괄적이고, 흥미로운 여러가지 테마를 취합하여, 그 만의 위트를 양념으로서, 약간 첨가했을 뿐이며, 이 때문에 나의 감상에 따르면, 이 책은 결국 스낵같은 책에 머물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단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적어도 독자들이 이 내용을 이해하면, 몸에?아니 머리의 발달?에 있어 나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저자는 후기를 통해 일상의 언어로 과학과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다.  라고 주장해왔다.   오늘날 학생들 사이에, 수.과학을 포기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과연 어떻게 해야, 그 어려운 학문이 사람들의 뇌리에 스며들 수 있을지!   이처럼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질문과, 해답이 담겨진 의미있고, 또 재미있는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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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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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과 맞물려, 전해지는 어떠한 가치관... 이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 선비와 사대부의 나라 등과 같은 수 많은 가치들을 고려할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서 한국의 전통적 국민성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 나의 학창시절만 하더라도, 옛 유교적 인간관과 윤리관이 가지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고, 또 오늘날과 같은 개인&자유주의에 대한 가치관이 생겨나게 되었을때에도, 때때로 이를두고, 한국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서양화... 라는 장대한(지식인의) 비판글이 언론 등에 공공연하게 올려지고, 또 읽혀지기도 했으니... 어쩌면 지금의 내가, 그 과거로 돌아간다면?  분명 그 분위기에 답답함을 호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사람은 응당 예와 효를 다해야 한다...   물론 이는 모두가 울림?이 있는 말이지는 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위처럼 '모범적인 삶'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예로 그 아무리 고고한 삶에 대하여, 교육받는다 하더라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수 많은 '욕구'에 굴복하거나, 휘둘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른바 세상이 발전하며 등장하기 시작한 자유주의와 더불어, 의.식.주. 문화 등에 이르는 삶의 밀접한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 분명 그것은 사람의 편의와 만족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옛 윤리관이 모두 외면당해야 마땅하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과거 조선시대에 있어서도 그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과연 그 속의 사람들은 어떠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바로 그 끓어오르는 욕구에 대한 (조상들) 나름이 부끄러운? 내용들을 보다 적나라하게 독자에게 드러내려 한 것으로서, 이해를 하면 좋겠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과연 남.녀의 만남이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이처럼 위의 질문에 대하여, 오늘날 현대의 가치관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이는 단순한 동물의 '종족번식'의 개념을 초월한 수 많은 가치관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더 나아가, 보다 더 폐쇄적이였던, 조선의 만남에 대한 그 만의 주장을 편다.    이에 나의 감상을 말하자면, '시대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 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조선의 불평등'에 대하여 라고 정의해야 할까?  분명 그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조선의 그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욕구는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가문끼리의 결합이 우선되고, 정갈함을 강요하며, 신분간의 격차에 엄격했다는 것은 분명 개인사에 있어서 만큼은 큰 불행이라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엄격함 속에서도, 만남과 성(姓)의 문화는 그 나름의 해법과 '편법'에 힙입어,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아니...도리어 독자들은, 예법과 도덕을 말하던 옛 군자들의 꼴사납고, 적나라한 모습들을 마주하면서, 혹 조선의 국시 자체를 허례허식으로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 조선은 성을 억압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이념과 윤리관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지식인과, 권력자가 누린 그 성의 자유(또는 횡포)를 한번 더 떠올려보자, 이른바 과거 권문 세족이라 하면 반드시 따라다니던 그것!  그 기득권을 휘두르며 만들어낸 '후실' 과 '정부'의 존재에 대하여...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크게 한번 비판적인 시선을 던져줄 필요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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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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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서도 역사를 접하다보니, 의외로 이를 다루는 매체 그 나름의 성향이 눈에 들어온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이는 크게 세가지의 유형이 있는데,  첫째는 옛부터 쭉 이어져온 사건 발단 교훈 등을 표현한 교과서형이 있을것이고, 또 하나는 여느 방송에서 보여지듯 '이야기'나 '야사'에 더 힘을 쏟는 유형이 있을것이며, 마지막으로는 '그 날' 과 같이 보다 더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시선과 물음을 던지는 유형이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위의 세가지 유형으로 이 책을 판단한다면?  분명 이 책은 '그 날'의 이야기를 다룬 책! 그야말로 이야기에 깊이가 있는 책으로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실제로 역사속에서, 아니...세계2차세계대전의 서장을 알리는 주요한 사건 중에서,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은 그다지 세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나치스독일과 히틀러, 괴링에 이르는 군국주의자들이 보다 큰 영향력과 자신감을 얻었다는 '부분'만은 크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어째서 오스트리아가 그리 무력한? 모습을 보였는지, 어째서 '그'는 그리 쉽게 히틀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때 저자는 프랑스인 특유의 현한하고, 또 개성적인 문체를 통해, 그 날의 이야기를 풀어 나아가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병합... 이처럼 대외적으로 볼때, 이 사건은 나치 독일의 약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서 회상되고는 한다.   물론 사실상 오르트리아는 무력했고, 또 그 병합과정을 엿보았을때에도 '전광석화' '무혈입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를만큼 신속하고, 또 허무했던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무력, 카리스마, 정치력... 과연 그들이 압도당했던 이유는 무엇이였나?

(혹 같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서...라는 이유는 아니였겠지. /출처 구글 이미지 )


그러나 저자는 그 사실과 함께, 히틀러에게 무력했던 또 다른 모습의 '협력자'또한 드러낸다.    과연 그들의 본 모습은 누구일까?  앞서 말한 괴링? 히믈러? 아니면 수 많은 차치 친위대?   아니다!   저자는 이들과 달리, 눈에 띄지는 않지만, 사실상 '같은 부류'와 다를 바 없는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신랄하게 드러내고, 또 비판한다.


그러고 보면, 역사의 흐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또 누가 있을까?


이때 저자는 사실상 그 (사건) 속의 모든 사람들을 비난한다.   권력을 잡아가던 '대세'에 자금와 편의를 제공한 독일의 기업가들, 국가의 존립에 손을 대려는 독재자 앞에서 '저항하지 못했던' (표지 속) 슈슈니크, 그리고 독일군의 진격을 호기심의 눈으로 또는 오락거리로 삼으며, 격렬히 환영한 국민들의 그 모습... 이처럼 그는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역사의 비극!  그 시작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드러내었다.  그야말로 대중, 사업가, 정치인, 권력자... 이 모두가 어리석었던 새로운 비극의 그 이야기가, 다시끔 이 책을 통해 드러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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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블루스
마이클 푸어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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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세상에 만번의 삶을 부여받은 자가 있다면?   과연 그는 결과적으로 어떠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에 조금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맨 프럼 어스' 의 주인공이 바로 그러한 현상?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선사시대부터, (영화 속) 현대에 이르기까지 14000년을 오롯이 살아온 인물이다.    때문에 그는 그 누구보다 지성이 넘치고, 또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니며, 심지어는 영화의 흐름 내내 주도권을 쥐며, (등장인물)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도 한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 또한 위의 인물과 비교해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  이들이 느낄 '고통'의 정도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히 소설 속 주인공이 보다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때가 있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은 아주 오래도록~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 삶의 형태에 있어서, 그는 이른바 '윤회'에 가까운 삶의 릴레이를 이어간다는 점에 있어서, '불사'와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영생?을 누리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이에 결과적으로 정의하자면,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현상을 초월한 인물은 되지 못했다.


단지 그는 부여받은 수 많은 기회를 소비해 가며, 자칭 '초월자'의 주문에 걸맞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세상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잔인하고, 선하고, 위대하고, 난잡하고, 고결한 삶 등을 이어가도?  초월자는 그가 진정 주문에 걸맞는 자가 못했다며 책망하고, 또 설득하며 보다 더 충실한 삶을 주문하게 되는데...   이때 나는 이러한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결국 주인공 그 또한 지극히 평범한 삶,  언젠가 끝나는 삶을 사는 한명의 인간에 불과 하다는 감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기나 짧으나, 인간은 그 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역사라는 큰 틀에 맞추어 '삶'을 생각해보면,  그 각각의 삶이란 언제나 안타깝고, 허무하며, 종종 짧기만 하다는 감상을 충분히 품게 하기도 한다.  때문에 가만히 생각하면, 주인공의 그 능력이란,  나름 선택받은 자를 위한 '혜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정작 그 혜택의 주인공은 독자에게 '정말로 긴~~~ 인간의 성장과정을 드러낼 뿐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 그는 삶을 살아간다는 선택지에 있어서, 방황하고, 낮설어하고, 절망하고, 몰입하는 등의 제각각의 선택을 한다.   그야말로 만번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정답'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그는 상대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존재가 되지도 못했고, 또 그 만번의 삶이 다할때 까지도 이른바 '정신을 못차리는' 방황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본래 삶이란그러한 것이 아니던가?  초월자는 분명, 그 혜택을 밑거름삼아 '인간을 초월한' 진리가 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그저 인간의 틀을 벗어난 존재가 되지 못한다.  물론 과거 스스로 미륵?이니 용의 아들이니 하며 초월자를 칭한 권력자(종교인)은 많았으나,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그 삶을 소모하는 과정에 있어서, 결국 모든 이가 완벽할 수 없다? 라는 일종의 메시지를 전하여 했던것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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