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환생 블루스
마이클 푸어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 세상에 만번의 삶을 부여받은 자가 있다면? 과연 그는 결과적으로 어떠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에 조금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맨 프럼 어스' 의 주인공이 바로 그러한 현상?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선사시대부터, (영화 속) 현대에 이르기까지 14000년을 오롯이 살아온 인물이다. 때문에 그는 그 누구보다 지성이 넘치고, 또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니며, 심지어는 영화의 흐름 내내 주도권을 쥐며, (등장인물)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도 한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 또한 위의 인물과 비교해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 이들이 느낄 '고통'의 정도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히 소설 속 주인공이 보다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때가 있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은 아주 오래도록~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 삶의 형태에 있어서, 그는 이른바 '윤회'에 가까운 삶의 릴레이를 이어간다는 점에 있어서, '불사'와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영생?을 누리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이에 결과적으로 정의하자면,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현상을 초월한 인물은 되지 못했다.
단지 그는 부여받은 수 많은 기회를 소비해 가며, 자칭 '초월자'의 주문에 걸맞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세상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잔인하고, 선하고, 위대하고, 난잡하고, 고결한 삶 등을 이어가도? 초월자는 그가 진정 주문에 걸맞는 자가 못했다며 책망하고, 또 설득하며 보다 더 충실한 삶을 주문하게 되는데... 이때 나는 이러한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결국 주인공 그 또한 지극히 평범한 삶, 언젠가 끝나는 삶을 사는 한명의 인간에 불과 하다는 감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기나 짧으나, 인간은 그 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역사라는 큰 틀에 맞추어 '삶'을 생각해보면, 그 각각의 삶이란 언제나 안타깝고, 허무하며, 종종 짧기만 하다는 감상을 충분히 품게 하기도 한다. 때문에 가만히 생각하면, 주인공의 그 능력이란, 나름 선택받은 자를 위한 '혜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정작 그 혜택의 주인공은 독자에게 '정말로 긴~~~ 인간의 성장과정을 드러낼 뿐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 그는 삶을 살아간다는 선택지에 있어서, 방황하고, 낮설어하고, 절망하고, 몰입하는 등의 제각각의 선택을 한다. 그야말로 만번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정답'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그는 상대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존재가 되지도 못했고, 또 그 만번의 삶이 다할때 까지도 이른바 '정신을 못차리는' 방황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본래 삶이란그러한 것이 아니던가? 초월자는 분명, 그 혜택을 밑거름삼아 '인간을 초월한' 진리가 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그저 인간의 틀을 벗어난 존재가 되지 못한다. 물론 과거 스스로 미륵?이니 용의 아들이니 하며 초월자를 칭한 권력자(종교인)은 많았으나,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그 삶을 소모하는 과정에 있어서, 결국 모든 이가 완벽할 수 없다? 라는 일종의 메시지를 전하여 했던것이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