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전쟁 - 과학이 바꾸는 전쟁의 풍경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9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이동훈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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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기술의 발전을 불러온다 주장한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을 세세히 들

여다 보면, 소설 영화에 머물렀던 많은 상상의 산물이 이미 완성되거나, 그 활용을 앞두고 활발

히 계발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이라 하더라도, 그 활용되는

장소는 전장이다.     사람을 죽이고,사물을 파괴되는 것이 주 목적인 장소... 게다가 위의 기

술들은 윤리적 문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알고있는 전쟁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과연 가까운 미래, 아니 오늘날 각각의 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은 어디, 무엇을 위

하여 존재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모습을 접하는 서적으로서 나름의 흥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무인 드론, 핵무기의 소형화, 전자기 펄스, 벙커파괴용

폭탄의 진화, 빔무기, 생화학적 무기 등 아직 우리들에게 생소한 무기들도 있지만, 반대로 이

미 많은사람들에게 인식된 대중화?된 무기들도 많다.    특히 초 강대국인 미국에 의해서 실험

되는 무궁무진한 무기들의 기술력과 가능성은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미해학자들의 의견을 빛

내는 소재거리가 되어주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전쟁에 대한 상식이 뿌리 체 흔들이고 있다는 감상을 받기 풍분하다.


물론 그 많은 논란거리를 논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앞선 초 강대

국은 이미 '자국의 논리'를 앞세워 전장에 그 기술을 아낌없이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그 기술

을 마주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있어서, 그 기술은 공포의 대상이 되기 충분 할 것이다.    과

거 막강한 재래식 무기(군대)를 보유한 이라크 후세인이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몰락하고, 게릴

라 작전을 통해 전투를 수행하는 수많은 테러집단들이 소리없이 다가오는 소형 무인기의 미사

일에 의해 죽어 나갔다.  과연 그들에게 있어 전쟁이란 무엇이였을까?   저항도 못하고 항전도

불가등한 압도적인 전력과 기술... 무엇보다 아직 소수의 선진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그 신 기

술 앞에서 과연 '약한' 많은 나라들은 그 발전을 경탄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두려움

과 경계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 처럼 나는 단순히 발전하는 기술의 미래를 보다 단순하

게 보지 않고 있다.    역사가 가르쳐 주지 않는가?  기술의 발전과 무기의 흉포함은 정작 전쟁

의 시작을 막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그 기술의 '실험체'가 될지...그것을 생각하면 나

름 한없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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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시대 나의 첫 성경 시리즈 2
장피에르 프레보 지음, 김주경 옮김, 허규 감수 / 조선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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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책 곳곳의 삽화에 이끌렸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정작 책을 마주하

자 느낀 감상은 예술적인 삽화를 접한다는 기쁨이나, 성경이 묘사하는 역사의 이모저모를 접한

다는 기쁨보다는 무언가 허무한 느낌이 더 컸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의 권장연령은 어린이

나 청소년에 알맞는 정도이며, 1.2.3권과 같은 시리즈물이 그렇듯 책 하나로 주제의 모든 내용

을 접 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실망감을 억누르고, 책

이 가져다 주는 어떤 내용을 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신앙심이 없는 인간이 성서를 읽어

무얼 하겠느야만, 그래도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장점이

라 보니, 별 말없이 접하는 것이 옮다고 본다. 


머나먼 옛날 성경이 말하는 시대에 모세는 자신들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빠져나왔다.   그

리고 신은 그들을 위한 땅을 마련해 주었고, 그들은 결국 이민자와 토착민들을 아우르는 신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서 그들은 '잘 살았답니다.'라고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역

사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성경이 표현하는 이야기는 건국을 넘어 분열과 멸망을 그린다.   신

을 섬기는 행위를 잊어버린 인간들을 벌하는 신 이에 왕국은 분열되고, 신의 선택을 받은 또 다

른 지도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결국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민족 대부분이 포로가 되지만, 성

서는 이 모든것을 신의 섭리로 해석하며, 위기를 시험이라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그곳에서 이야기를 마친다.   그러나 나는 역사를 통해 아시리아의 포로인 신의

아들들이 결국 자신의 지배자들을 교화하는데 성공함을 알고있다.   그 증거로 그리스도의 신

앙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지 않은가?   기독교는 오늘날에도 강력한 문화권을 형성한 종교이

다.   그리고 그 신앙의 주체는 믿고 섬기는 것에 있다.    과거 왕국의 지도자들도 그랬을 것이

다.  성서에 기록된 그대로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고 섬긴다.    과연 그 믿음의 가치

는 어드정도였을까?   그리고 성경과 역사의 사이에서의 연관성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비록 그 궁금증이 모두 풀린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물음을 풀기 위한 방향이 어느정도 보인

다고나 할까?   바로 그것이 이 책을 읽은 보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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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트
로버트 레피노 지음, 권도희 옮김 / 제우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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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 라고 칭했다.    지속적인 군사적 확장을 통해 유럽전

역을 자신의 문명권으로 흡수한 제국... 때문에 그 지칭은 그 자긍심을 표출하는 최고의 자화자

찬이였겠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선 왠지 오만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다지 좋

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허나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나 역시 '우리의 지구'라는 오만함을 당

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이다.    두발로 걷고, 생각하고, 각각의 사물을 쓰임새있게 사용

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  때문에 스스로  '생태계의 정점에 올랐다' 주장하는 인류는 실질적으

로 지구의 모든것을 사유화 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오늘날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 다른 동물들은 없다.    몇몇의 공상과학소설이 묘사하

는 '괴물'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이며, 정작 두려워 해야 할 것은 각종 병원균이나,

미생물을 옮기는 작디 작은 동물들이나, 곤충들의 존재이다. 물론 인류는 이 모든것을 극복 할

수 있다 자만하지만, 저자는 이에 흔한 '괴물'의 존재에 의지하지 않은 새로운 계층을

그 오만에 대하여 강력한 일침을 날리는데 성공한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소설의 재미는 '모트'라 칭하는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 보다

는 '능력을 가지게 된' 동물들이일으키는 각각의 사건을 접하는 것이라 본다.    현실과 별반 다

를 것이 없는 세상... 그러나 사고(思考)하는 능력을 가진 여왕의 목적에 의하여 세상의 모든 동

물들이 변화의 길을 걷게되는데, 바로 그 변화가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

어버린다.


그 변화란 바로 '동물의 인간화'다.   심지어 생각하고, 말하고, 두발로 걷고, 손을 마음대로 사

용할 수 있게된 동물들은 곧바로 인간을 최고의 적으로 여기고 공격하기 까지에 이른다.   우

리 속에서 가두어져 식용으로 길러지던 동물, 투견과 같은 인간들의 오락거리로 거두어지고 길

러지던 동물, 사고팔기 위하여 번식용으로 길러지던 동물, 자연이 아닌 인간에 의해 기계화된

거리에서 살기위해 몸부림치던 길거리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에게 있어 인간이란

한 없이 증오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그렇게 인간은 짐승의 위치로 되돌아 갔다.   사냥당하고, 식용이되고, 자신들의 도시에서 밀려

나 여왕의 지식탐구에 이용되는 존재로의 퇴보.   이때까지 모트도 인간화가 되어버린 동물로

서 인간을 죽였다.   증오스러운 인간, 자신들을 노예화한 인간! 그러나 그러한 인간을 대신하

여 동물들의 세계가 구축되어가는 그 시점에 이르자, 모트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반대로 동물

들 스스로가 이 점차 '인간'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였다.    이에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

에서 방황하는 모트의 모습을 그린다.   그저 사랑했지만, 헤어지게 된 여인을 되찿고 싶다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온 모트에게 능력이 부여됨으로서, 어느덧 동물세계 일원으로서의 책

임과 의무가 생겨난다.   


군대에 들어가 '전설의 존재'가 된 모트, 여왕이 부여한 기회를 '은혜'로 여겨 죽도록 충성하는

동물들, 반대로 사고하는 능력을 발판삼아 진정한 '독립'의 실을 걸으려는 동물들과 생존을 위

해 몸부림 치는 인류까지. 이 소설은 바로 그 혼란스러운 세상을 무엇보다 잘 묘사한 작품으로

서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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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왕자 1 - 조선의 마지막 왕자
차은라 지음 / 끌레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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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한반도의 역사는 암울하다.   일본에 의하여 나라를 강탈당하고, 스스로의 힘보다는 강

대국들의 이해에 의하여 민족이분열되고 또 잔인한 전쟁을 겪는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

게 있어서 조선 아니, '대한제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그다지 존경을 받거나, 동정을 받을

가치가 없게 느껴 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외부의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

한 책임'  분명 조선왕실을 이끈 왕족들은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을 병합한 일본제국.  그들은 표면적으로 조선왕실의 존재를 인정했고, 또 결과적으로 왕

족들을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병합을 정당화 하기위한 수단에 불과했으

니, 과연 그들이 정당한 왕족으로서, 또 나라의 존귀한 신분으로서 대우받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실제로 한국 문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덕혜옹주의 일생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식민지의 왕족, 대의명분을 위해 인정받은 지위의 실체는 실로 비

참한 것이다.   말 그대로 침략자를 위해 움직이는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소설)이우 왕자 또한 그러한 운명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다시말해 자신의 운

명에 절망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허나 적어도 그는 인정받은 지위에 만족하거나, 순응하는 인

물이 아니였다.    '저항' 이우왕자가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일제에 저항

한 대표적인 조선왕실의 인물로 알려져 있어서이다.   순종과 복종을 요구한 일본에게 저항한

식민지의 왕족... 이렇게 소설 속에 그려진 이우 왕자는 자존과 위엄을 갖춘 걸출한 인물이다.

허나 역사에 그려진 인물이라 그런지 일본 몰래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하거나, 몰래 어떠한 기밀

을 빼돌리는 등의 대담한 활동은 그려지지 않는다.    허나 만약 그럴 기회가 주인공에게 주어

졌다면?   아마 그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기꺼이 뛰어들지 않았을까?  그

리고 이우 왕자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 믿기 때문에 이러한 소설이 그려진 것이 아닐까?    이

렇게 소설 이우 왕자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위의 인물에 대한 하나의 인물상을 그려 나아

갔다.   끝까지 자존감을 버리지 않았던 인물... 바로 그것이 내가 느낀 이우 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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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재발견 - 자랑스러운 또 다른 한민족의 역사
한주 지음 / 유아이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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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과 같이 '나' 에게 있어서도 조선족이라 하면 크게 '불법체류자'와 '범죄자' 라는

인식이 무엇보다 강했다.  한국으로 넘어와 기껏해야 식당도우미로 일하거나, 생계형범죄 등

을 일으키는 소수민족... 분명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지만, 알게 모르게 그러한 인식은 많은 사

람들에게 있어서, 고정관념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남.북으로 분단되어버린 땅, 때문에 그 위에 자그마한 '자치'를 인정받은 간도지역은 어디까지

나 중국의 땅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민족과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

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특별방송 등으로 접한 영상과 같이 그들과 한국은 예전 아픈역사에

의해서 갈라진 같은 민족인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조선족에 대하여 이러한 글을 써 내려간다.

나라를 빼앗긴 비극의 역사 속에서, 대한제국이 없어진 그 공백의 기간동만 그 땅은 많은 조선

사람들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민족을 위한 교육과 저항이 뿌리내릴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기도 했으니, 근 현대사를 배워 나아가는 한국인에게 있어, 그 땅은 정말로 각별한 의미

가 있을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그곳을 근간으로 역사의 흔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의 업적이 소개되어 있

기도 하다.   한반도의 자주독립 그 목표를 위해 모든것을 걸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녹아있는

땅.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러한 땅에 무관심 하였는가?   흔히 "후진적이다." 정의하고 관심조

차 가지지 않았던 나는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그러한 편견을 품게 되었는가?    과거 고구려 발

해의 흔적 뿐만이 아니라, 근현대 많은 사건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곳.    특히 중국의 노골적

인 민족.문화 흡수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의 주장하는 것은 배움과 기억이다.  


극단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땅을 돌려달라는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힘껏 민

족성을 지켜 나아가고 있는 조선족 자치구의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과 우애를 표현하면 좋

겠다.  그들을 하대하고, 외면하면서 필요할 때만 한민족, 과거엔 조선땅!  이렇게 주장해 보았

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정과 교류는 작게, 그리고 끝임없이 유지하는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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