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복도 아래로
로이스 덩컨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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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 라고 기록했다.   물

론 그 극찬은 극히 과장된 표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서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것도 사실... 과연 그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치는 무엇

인가?  단순히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것이 아닌, 셰익스피어 그 자체에 집착하게 하는 그 가

치관!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집착의 가치가 묻어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소녀이다.   그녀는 새로 재혼한 어머니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어느 기

숙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도시와 동떨어진 그 시골의 풍경과 정막함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거리지만, 결국 서서히 모여든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나름대로의 학교생활

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뒤레부인을 포함한 기숙학교의 존재는

주인공 키트의 신경을 묘하게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단순히 좁고, 어둡고, 낡은 학교의 으

스스함이 아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무언가.    실제로 모여든 작은

학생 그룹은 별안간 성격이 변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재능을 꽃피우거나, 엄청난 피로를 호소

하는가 하면, 키티 자신도 나날이 말라가는 몸과, 손 마디마디의 통증을 느낀다.


과연 그 학교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 원인에는 뒤레부인의 집착이 큰 부분

은 차지한다.    뒤레부인은 이른바 영적능력을 이용해 모여든 학생들을 '영매'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선별한 학생들을 그릇으로 사용했고, 그 그릇에 담긴 여러 '혼'들은 대가로 생

예 못이룬 다양한 흔적을 세상에 남긴다.  


예술가, 과학자, 문학가... 과거 세계에 명성을 떨친 영혼들에 의해서 다시 세상에 등장하는 '결

과물' 이에 뒤레 부인을 포함한 교직원들은 모두 한통속이 되어, 학생들의 자유를 빼앗았다.     이름없는 학생들의 가치보다, 옛 명인들의 결과물이 더욱 더 가치있고, 보배롭다.    이

에 키트는 선생들의 그 음모를 알게 된 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저항 할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실제로 어느 학생은 서서히 자기것이 되어가는 '지식'에 매료되어 스스로 영매가 되는것을 선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키트의 선택은 분명 그것과는 다르리라!  이 책의 의미란 바로 그에 대

한 키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또 그를 통해서 재미를 느끼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이

러한 감상도 가능하리라. '타인의 생을 먹어가며 이어가는 예술이란 그 얼마나 끔찍한 결

과물인가.'  '명인들의 예술이란 그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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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식당
아베 야로 외 지음, 정문주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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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국민, 중학교 였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가게(거리)는 오늘날과는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

었다.   그러나 이른바 '프랜차이즈' 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당시 사람들은 그 개념이 부여하

는 '질 좋은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 '평균적인 맛' '빠른 회전율' 등에 빠져들었으나, 정작 오

늘날에 있어 프랜차이즈란 그 이름도 무색하게 '대기업의 노예계약'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문

젯거리' '단순히 공장음식을 데워 팔 뿐인 영혼없는 가게' 라는 오명을 듣는 부정적인 이미지

가 더욱더 부각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요즘 일본(한국도) 에는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 방랑의 미식가 같은 여러 '식문화'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들이 등장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식 (식재료)에 대한 불신, 전통(식문화

)의 단절...  그리고 언제부터 외식이 비만을 조장하고,건강을 해치는 저질음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을까?    이처럼 이 책의 저자들은 나름 이러한 의문을 시작으로 단순히 맛 뿐만이 아

니라, 저자들의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가게.  즉 각각의 요리인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골목의

밥집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맛 인터뷰를 진행한다.    

물론 솔직히 이들의 직업은 요리인도 아니요, 전문적인 맛을 평가하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

니다.   그러나 '심야식당'을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맛'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보였다

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이 토론하고, 맛보고, 휼륭하다 칭찬하는 그 모든것이 은근히

설득력 있고, 또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옛날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의 맛을 이어 나아가고 있는 골목 골목의 작은 가게들... 언젠가 나

이가 든 '나'는 과연 가정의 맛 다음으로 어떠한 맛을 기억하고 추억할까?   저자에게 있어서,

거리의 맛은 '싸고' '양 많고' '일일이 손질한 따뜻한 밥'이다. 싸구려 맥주가 어울리는 닭튀김,

섬마을 출신인 저자의 취향에 알맞는 바다의 맛을 살려낸 수 많은 가게들.   그에 비해서 나

스스로가 맛보는 거리의 맛은 얼마나 건조한 것인가?   그리고 언젠가부터, 맛있는 식사를 잊어

버리고 살기위해 먹기 시작하였는가?  그렇기에 책의 제목 그 '오아시스'라는 이름에 어쨰서

인지 이끌린다. 이 복잡하고 무미건조한 콘크리트의 사막 속에서, 과연 그들의 오아이

스는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고 그들의 감상을 공유할 '독자'는 그 물 맛?을 느끼고

어떠한 해갈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나 뿐 만이 아니라, 오롯이 글을 읽는 각각의 영역

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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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 - 아름다운 味를 얹다
유종하 지음 / 워크컴퍼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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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음식들을 살펴보면, 음식의 맛 뿐만이 아니라 시각. 즉 '보는 아름다움' 도 상당히 중요

하게 다루어진다.   때문에 서양의 음식들은 아름다운 색의 소스를, 중국의 음식은 입체적이고

웅장한 장식을, 일본의 음식은 보다 정교한 장식을 선호했는데, 한식은 이 보다는 평범하고 또

소박하지만, 위의 '고명'을 통해서 보다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의 장식을 선호한 흔적이 엿보인

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면 고명이란 상당히 단순하다.  나물이나, 체소를 체썰거나 어긋썰

고,  계란지단이나 작은 고깃조각을 어느 양념을 치지 않은 체 가지런히 놓아 두는 것이 전부

이다.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고명없는 한식은 가능하다.   그러나 고명없는 한식은 어째 무언

가 부족한 느낌을 받기도 하다.    생각해 보자, 아삭한 오이 고명이 없는 냉면이란 얼마나 어색

한가?  그저 채썬 오잇조각이 없을 뿐인데... 그 얼마나 어색하고 또 아쉬운가? 


그렇기에 저자는 그 고명만을 다룬 이 책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한식'에서만 접 할 수 있는

그 단순한 멋, 그리고 요리와 어울려 혀와 목구멍을 가득 만족시키는 고명의 숨김 맛... 이렇게

저자의 고명 예찬은 참으로 맛갈나고 또 설득력 있다.   거기에다.  애초 요리사인 저자의 능력

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와 그에 걸맞는 고명도 소개하고 있으니, 나

름 요리책으로 참고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이라는 감상도 함께 받는다. 


생각하여 보면 한식의 장식은 상당이 간단하다.  그러나 여느 다른 장식과는 달리, 한식의 고명

은 식사로서 모두 먹는이의 입을 즐겁게 한다는 음식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하다.   이른바 고명

은 횟집의 무채처럼 남겨지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멋지고 합리적인 한식의 세계... 그 어우

러짐의 미학은 분명 접할 가치가 충분한 한민족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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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여행 - 위안부 소녀동화
Hstory 지음 / 도슨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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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페이지 정도의 내용을 가진 그림책, 비록 그 분량은 적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주장은 지금도

상당히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이 표현하는 것은 과거 위안부 들의 끔찍했

던 실상을 마주하라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비록 강산이 변했다고

해도, 오늘날 그들을 잊지 않고, 생각하는 이들... 즉 과거의 '소녀'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후

대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는 그 내용   소녀상이 늘어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살

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가해국 일본을 향하여 사죄와 그에 걸맞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르다' 는 것을,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주장하는것! 또 지배와 전쟁 부흥의 으로 이어

진 그 역사 속에서, 청산하지 못한 여러가지 문제중 위안부의 끝맽음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그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   나는 이 책의 짧은 이야기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느낀다.


오늘날 위안부의 위치는 어디인가?   시대의 피해자들은 오늘은 어디인가?  이에 누구는 이미

흘러갔다 하고, 누구는 끝났다.    말하고, 또 누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한다.    그러나 내

가 생각하기에 위안부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아직 그 분들의 목소리가, 울분

이 이 세상에 퍼져 나아가고 있다.   비록 그 울분이 점차 약해지고, 또 줄어가도 있지만, 그것

으로 이 여정이 끝났다 여기면 안될 것 같다.


아직 이 세상에는 '자발적인 위안부 모집' '자발적인 성 상품화(매춘)' 이러한 주장을 국가적 차

원에서 강력히 밀어붙이는 일본이 있다.   그러한 거대한 벽 앞에서, 나는 이 작디 작은 힘이나

마 희생한 그리고 한을 품고 스러진 이 소녀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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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이야기 - 시대를 움직인 뒤틀린 정의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월러 뉴웰 지음, 우진하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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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일만명을 죽이면 영웅이다."  상당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역사

적으로 비추어 볼 때 그리 틀린 주장만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지도자들은 그

러한 사상을 실행했는데, 이에 오늘날 후손들은 그들을 비추어 흔히 폭군이라 칭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폭군의 등장에 주의하라' 말한다.   권력을 휘둘러 사익을 취하고, 권

력에 도전하거나 위태로운 혼란을 가져는 자를 꺼리낌 없이, 철퇴로 응징함은 물론 공포로서

대중들을 내리눌러 정치를 행하는 자를 폭군이라 말하고 또 이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에 있어서, 과연 그러한 형태의 폭군이 얼마나 있겠는가?   세습

군주와 같이 절대적인 힘을 남용하고, 사유화 하고, 꺼리낌 없이 휘두르는 그러한 형태의 군주

는 (내가 알기에는) 북한의 김정은 정도 일 것이다.   때문에 대중들이 생각하는 폭군은 과거

의 '왕'이다.   그리고 이 책에 보여지는 폭군의 예 또한 왕정시대의 왕이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

하고 있다.    허나 이 책은 동시에 (로마)고대 공화제, 프랑스 혁명, 근대 와 같은 다른 정치 형

태에서도 폭군이 등장 할 수 있다는 증명 또한 빼먹지 않고 있다.    카이사르, 올리버 크롬웰,

스탈린 등 역사적으로 위대한 위인이자, 살육자 폭군으로 이름을 알린 그들의 이야기... 정말

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과연 오늘날의 세상에 그러한 위인이 등장하지 않으리

란 보장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일종의 위기감 같은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스스로 쟁취하거나, 탈취하거나, 대중들에게 부여받는 '권력'  지도자란 그 권력 위해서 자신

의 평가를 써 내려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이 책 처럼 결코 녹녹치

않다.   그 증거로 오늘날의 박정희는 과연 개혁자인가?  아니면 독재자인가?   이 한 질문 만으

로도 정치색이 두개로 물들어 적지 않은 논란거리가 일어나는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현실이

아니던가?   물론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 또는 대의를 위해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라는 그 사

명을 주장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사명을 면죄부로 인정 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

하고 또 책임을 물을 것인가 하는 그 선택이 왕 스스로, 또는 일부지도층의 손아귀에

서 벗어나,차 민중(국민)에게 넘어가는 그 과정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누리고 지키

는 활동을 멈추지 말라는 이 책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폭군은 국민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 드러난다.   그리고 그 독은 나라 온 나라

뿐 만이 아니라, '나'라는 그 개인의 미래까지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다.   폭군, 혼군으로 인하

여 피흘리는 존재가 누구인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봄이 어떠한가.  혹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바람같은 세상과 정의론 앞에 명군과 폭군의 경계란 배 다른 형제와 같은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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