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흔히 대중 사이에서 인식되는 '제국'의 모습은 크게 거대한 중앙집권의 국가로 압축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역사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제국은 과거 로마제국과 같이 저마다 다른 인종과 문화를 아울러 어느 공동체에 합류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 나름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체제이다.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 또한 사뭇(동북아시아 특유의 사상이나 상식에 비추어) 그 체제를 접하며 '낮설다'는 감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느나, 결국 수 많은 나라들의 대표로서, 특히 어느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역활을 주도했다는 면에 비추어 볼때, 그 나름 왕가의 (지배에 대한)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통해서 그 '제국의 성격'을 알 수 있게 된다.

망자의 시신을 삼분하는 관습은 합스부르크 가문과 성체의 밀접한 연관성을 상징했고, (...) 군사적, 종교적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 만이 아니라 중앙 유럽과 합스부르크 가문에도 신성한 목적을 부여했고(...)

221쪽 페르디난트2세

결국 과거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의 새로운 질서, 또는 거대한 외국세력의 칩입에 대항하기위한 수단으로서 이 '모래알을 뭉칠 수 있는 조직'은 크게 기독교적 가치의 수호자 또는 실질적인 안정을 보장하는 맹주?라는 역활을 앞세워 명맥을 이어 나갔다. 때문에 곧 역활을 수행해야 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은 곧 이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뛰어난 문명과 강대한 이미지, 그리고 기독교세계에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신성한 사명 등을 버무려 '왕가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때문에 이들의 통치와 영향력은 비록 각각의 통치자와 그 세력 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이에 속한 무리들?이 해당 왕가의 정치력을 인정함으로서, 이후 오래도록 연합체 특유의 의식을 발전시켜 유지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밖에도 왕가가 지속됨으로 인하여, 유럽에서의 오스트리아 또는 합스부르크의 이름과 그 일족들은 분명 (유럽)세계사에 있어서 매우 영향력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7년전쟁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의 딸인 마이 앙투아네트... 그리고 그 무엇보다 세계1차대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사라에보 사건'의 당사자인 프란츠 페르디단트 대공 부부 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들이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일시적인 충동과 강조점은 약700년간의 세월에 걸쳐 바뀌었지만, 무엇보다 카톨릭 신앙을 향한 헌신적인 자세, 그리고 이단과 튀르크인들에 맞선 투쟁을 주도하는 그들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 합스부르크 제국의 개념에는 보편성이 담겨 있었다. 즉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결코 단일한 민족 집단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었다.

513쪽

이처럼 해당 왕가가 지니는 유럽사회에서의 영향력은 다른 여느 (전통적인) 왕가와 비교하여 뒤떨어지지 않는 전통과 역활을 드러냈다. 물론 이후 근현대에 이르러, 민족자결주의와 독립의 의지를 바탕으로 오랜 전통적 지배력을 상실하는 등의 그 역활이 끝나버리기는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왕가의 역활이 끝난 이후의 '유럽이 걸어간 길'을 생각하면 나름 서로의 보편성을 인정한 융합의 시대가 도리어 (정치적인 면에서) 안정적이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루 유럽은 저마다의 독립을 쟁취하며, 그들 국가와 민족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했다. 물론 과거 신성로마제국 (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동체) 체제에서도 저마다의 '급'이 있었고, 또한 차별도 존재했지만, 문제는 이제 현대의 새로운 국제정치의 장에서 필요한 것은 어느 체제 속의 서열이 아니라, 각각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공동체의 결집 그리고 무엇보다 '소수집단을 괴롭힘으로서 스스로들의 우월성을 증명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합스부르크왕가와 그 지배의 상실은 곧 당시 시대에 (일시적인) 공동의 유대감의 상실을 의미했다. 이는 그만큼 오래도록 유럽의 접착제로서의 역활을 수행한 체제가 그때까지의 유럽에 어떠한 의미였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거다란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세계대전과 비극 그리고 현대의 유럽의 정세 속에서 등장한 유로와 나토 등의 새로운 공동체의 출연을 바라보며, 과연 오늘날 현대의 유대감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유럽이 걸어가는 길... 그리고 그것이 곧 세계화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마주하며) 다시끔 해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땀의 과학 - 나와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지적 모험,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사라 에버츠 지음, 김성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우 무더운 여름날! 나는 여지없이 (일하며)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그 와중 옷이 달라붙고, 찝찝하며 더욱이 괜스레 짜증이 나지만, 허나 혹여 내가 땀이 나지 않는 신체를 가졌다면... 결국 나는 이 여름날 열사병은 커녕 목숨을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퍼진 '땀의 역활'은 크게 의학(또는 생리학)의 영역에 머문다. 실제로 인류가 땀을 흘리는 덕분에 (그 후손인)우리들 또한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나름) 체온을 유지하고, 또는 문명 속에서 강제된 고된 노동에도 견딜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 땀은 몸 속의 수분이나 노페물을 배출하는 생리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든다. 결국 생존에 필요한 신체의 특징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밖에 과학은 땀에 대하여 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각설하고 이 책은 미래의 과학이 땀을 이용하여, 인류의 수많은 편의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지문을 이용하거나, 동공과 같은 신체적 특이점을 이용하여 '보안 기술'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과 같이 혹여 신체에서 배출되는 땀 속에서 보다 다양한 정보를 뽑아내거나 또는 분류할 수 있다면, 결국 그 기술은 오늘날 수 많은 한계를 드러내는 과학수사 등에서도 보다 유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분석 기법을 통해 용의자의 냄새 지문에서 나타나는 화학적 구성이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물체에서 나오는 냄새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 체취에서 발견되는 373가지 화학물질의 농도를 추적함으로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109쪽 땀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는 땀을 흘리는 것... 아니 땀을 흘리고 방치해 두는 것에 대하여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아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개인의 땀이 아닌 인종적인 특징으로서 독특한 땀의 체취(냄새)가 나는 경우,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향수나 바디워시 등 (나름)화장품이 기술이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고전적인 향료를 뛰어넘는 생산성과 강렬함을 이용하여 '상품'을 만들고 또 그 상품의 필요성을 어필하기 위하여 현대적 가치의 '에티캣'이 광고되어 온 현상을 바라볼때... 결국 많은 땀을 흘리는 불쾌함 또는 (개인)스스로의 의지 따위로는 도저히 어쩔수 없는 생리현상을 감추기 위해서, 어쩌면 인류는 이길 수 없는 그러나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피부에 땀이 비치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옷에 땀이 배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모두 한 세기에 걸쳐 기업들이 우리를 세뇌한 결과다. 그들은 사회적 소외에 대한 두려움을 사냥감으로 삼는다.

345쪽

이처럼 땀은 현대 사회에 보여지는 이중성, 특히 기술과 사회적인 인식 사이에서 저마다의 해답을 찾고 있는 나름의 방황?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었다. 물론 앞으로 이 책이 소개하는 어느 기술이 실현될 것인가? 또는 미래 사회에 어떻게 스며들것인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류의 기술이 발전함으로서, 보다 인체의 특징과 그 활용에 대한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또 실현하려고 하는 모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는 것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 어떠한 순간을 마주한 '목격자들' 또는 이후 이를 기념하거나 기억하며 정리한 기록은 모두 세상에 역사의 기록라는 가치를 부여받았다. 때문에 기록은 이전의 어느 상황과 또는 글쓴이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척도가 되어주지만, 적어도 이 책의 주제인 우편은 개인 사이의 통신수단으로 활용되는 부분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생활(또는 내용)이 보호될 수 있는 (우편) 고유의 특징 덕분에 단순히 역사의 기록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난해한 부분이 있다.

허나 세세히 들여다 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은 모두 세계사 속 높은 명성을 얻은 위인들이다. 때문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인물 본연의 역사적 평가는 내리려는 사람이나, 모두 이후 남겨진 편지를 '각각의 자료로서 참고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물론 이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훌륭한 사행활 침해 행위이다. 그러나 속된말로 그들 스스로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면 죽기 전 "마땅히 불태웠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물론 나름 유서를 통해 파기를 요청한 인물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인류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하여! 그들의 편지는 곧 세상에 경매로 곧 잘 올라오고는 했다.

(...) 당신이 16일과 21일에 쓴 편지를 받았소. 편지를 쓰지 않는 날이 많더군, 그때는 무얼 하고 있소? 아니요, 나의 사랑.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걱정이 돼서 그러오 (...) 오시오, 나의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나는 당신을 자주 생각한다오(...)

1776년 4월 24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조제핀에게

그렇기에 (다행스럽게도!)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는 이전 위인들의 인간적인 면 뿐만이 아니라, 어느 행동에 대한 고뇌,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그의 인식과 책임이 어느정도가 되는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책 속에는 단순한 편지의 내용 뿐만이 아니라, 역사에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 언제 누구에게 또 무엇 때문에 그러한 편지를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석을 함께 곁들인다.

결국 편지를 매개체로 한 '어느 인물의 탐구'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새로운 형태로 역사를 접하게 해주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어느 이가 상대에게 무엇을 전하는 과정을 통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그 스스로의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된다. 물론 어느 편지 중에는 어디까지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가식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또는 철저하게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결국 편지를 쓰는 발신인 스스로의 성격이나 목적을 마주할 수 있게하니, 결국 이 모두의 편지는 곧 발신인 모두를 발가벗기는 가장 유효한 열쇠가 되어준다는 감상을 받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진왜란과 거북선 논쟁의 새로운 패러다임 - 민족의식을 탄생시킨 임진왜란 거북선 구조 논쟁의 새로운 가설, 도(櫂) 젓기
김평원 지음 / 책바퀴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속에서 활약한 '진짜' 거북선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과연 오늘날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가. 물론 오래전에도 수 많은 학자들은 그 정답에 다가서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상 거북선의 세세한 설계도 등이 발견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현대에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임진왜란의 전란에서 활약한 돌격선이자, 전후 좌우 위력적인 대포를 발사할 수 있는 (거북머리를 단) 장갑 함선이였다는 것 뿐이다.

(이는 철갑선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철갑 또는 목재를 둘러 탑승 인원을 보호하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 부족'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거북선은 (나름) 역사학을 통해 복원되고, 더욱이 대중 사이에 어떠한 상식선 등으로 정형화되었다. 예를 들어 나의 어린시절에는 철갑의 지붕에 유황 안개를 뿜어대는 (고개를 치켜세운) 작은 용머리를 가진 전투선이 흔히 '이순신 장군이 만들어 낸' 거북선이였고, 특히 주변 그 누구도 그 거북선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는 분명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전투선의 모습 등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이는 단순히 이전의 '기록'에만 매몰되어 경직되어왔던 '역사학의 변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야말로 역사 속의 거북선을 복원하고자 하는 대전제를 목표로 그 밖의 진행과정 속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 즉 주변의 다양한 전문 기술 등의 조언을 받아들임으로서, 단순히 이전 기록에 부합하는 해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선박, 특히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위력적인 전투선을 복원하는 시도를 통해 결국 오래전 잃어버린 거북선의 본질을 재발견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오늘날 '역사학의 성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을 타당하게 '상상 재현' 하기 위해서는 (...)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순신 거북선 원형에 집중되었을 뿐, 1795년 당시 실물로 존재했던 통제영 거북선과 거북선을 추정 재현하는 연구들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72쪽

때문에 이후 거북선의 원형을 발견하기 위한 학술적 연구와, 거북선의 실질적 복원을 시도하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는 결국 현대 역사학의 가치 속에서 융합하였다. 그렇기에 흔히 영화에서 보이는 '거북선' 또한 단순히 오락적 요소나 어느 상징성을 띄는 소모품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발전한 역사적 성과 또는 오류의 수정 가운데 다듬어진 결과물을 마주하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독자들은 거북선의 복원을 통해서 많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전 많은 이들이 거북선의 원형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그 (관심 등의)과정을 통해, 임진왜란의 발발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 더욱이 거북선이 왜적을 맞아 위력을 떨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사실) 등을 마주하며, 분명 한국인으로서의 동질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받은 점은 없었는가?

결국 이는 오래전부터 한민족에게 있어 거북선 등은 어느 민족적 긍지, 또는 우월성을 공유하고 대중화 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지고 또 그에 만족해왔다는 뜻이다. 허나 오늘날에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다 다양한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무수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는 결국 현대인들이 단순히 정형화된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가져다주는 다양함과 불완전성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똑똑해지고 또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거북선의 모습 또한 '가설'에 불과하다. 때문에 오늘날 어느것이 '정답인가'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과 다툼보다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현대 불확실한 '역사를 마주하는 탐구자'로서, 모두가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보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또 그 주장을 증명하는 활동을 이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로드 - 길 위의 삶, 호보 이야기
잭 런던 지음, 김아인 옮김 / 지식의편집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obo 호보 / 인터넷 사전에서는 '떠돌이 일꾼'으로 정의되었지만,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을 접하다보면 커다란 의문이 든다. 물론 이 책은 호보의 의의를 방랑자에 두고 있다. 특히 저자 스스로가 방랑자의 삶을 살았기에, 그는 이 수 많은 일화를 자유와 결부시키지만, 반대로 (흔히) 사회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결국 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를 읽고 있으면 많은 이들은 '분노의 포도'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같은 대공황을 맞이하며, 많은 이들이 일과 보수 그리고 직장을 얻기 위해서 떠돌이가 되고, 또는 여느 토박이들의 박해와 착취의 대상이 되었지만, 단 하나 이들은 (사회화에) 감내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다면, 호보는 보다 다른 방식을 통해 스스로의 인간의 존엄을 표현한 존재이다.

각설하고 '직업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떠도는 이유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호보들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사회학의 가치로 볼때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을 기점으로 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파산이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이들은 오늘날 한 시대를 가늠 할 수 있는 '특별한 예'로 취급되지만, 이에 정작 호보들에게는 여느 수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과 결론따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남의 집 뒷문에서 권위있는 평론가들이 단편 소설의 미학적 요소라고 평가하는 진정성과 현실성을 키울 수 있었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15쪽

그렇기에 호보는 결국 세상에 '해결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만약 현대의 가치를 투영한다면, 사회가 이들을 위해 해야만 하는 정책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안정적인 직업을 알선하거나 교육시키는 것 부터, 당장 필요한 생활지원에 이르기까지, 어디까지나 사회적 약자로 인식되는 이들을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 다시 품기 위해서, 기나긴 역사 속에서 국가는 보다 민주화된 제도를 갈고 닦아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의 미국은 이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호보는 사회의 안전망 또는 경계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새로운 가치 속에서 모인 이들로 구성된 현대의 떠돌이들이 되었다.

때문에 책 속의 주인공 또한 여느 호보의 길을 걷는 존재중 하나에 불과하다. 허나 그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주인공) 호보는 크게 '그다지 미래(의 가치)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 순간의 휴식과 음식(또는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타인의 호의는 물론, 그들의 동정을 받기 위한 거짓을 꾸미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때문에 이들 '부랑자'는 여러 부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당시의 세상 속에서 호보들은 '무임승차의 달인' 이였고, 타인의 동정심을 먹어치우는 '대식가' 였으며, 특히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세상의 진리를 떠받들고 있는 절대 다수와는 다른 별난 소수파들이였다.

때문에 이제 다시 자본주의의 정신이 재건된 세상 속에서, 이러한 소수파들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인간 본연의 가치 중 '자유' 라는 렌즈를 통해 이들을 들여다본다면... 어쩌면 이들의 삶은 '호보 강령'이라는 것을 통하여 보다 인간미 넘치는 존재로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1.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할 것, 다른 사람이 휘두르게 두지 말 것.(...) 15.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동료 호보들을 도울 것, 언젠가 당신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240쪽 호보 윤리 강령

결국 이들은 그 무엇보다 자유를 선택한 존재들이다. 당시 자본주의의 불안정함을 마주하며, 단순한 부지런함 만으로는 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안정'을 얻을 수 없다면... 반대로 그 울타리를 벗어나, 오롯이 스스로만을 책임지는 삶을 산다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물론 이를 반사회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이후 히피 문학에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이유삼아 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호보는 과거 미국 문화의 한 틀을 차지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전 서부개척시대와 비슷하게 거칠고 황량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그 삶을 개척하는 '무법자' 로서, 어쩌면 오늘날 전형적인 규범에 저항하는 문제아? 들은 그러한 과거의 호보정신을 오늘날에도 계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