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 - J Novel
이누무라 코로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공녀를 경호하며 단기로 적진 1만2천킬로미터를 돌파하라."

이 문장은 소설에서, 그야말로 모든 사건, 환경, 이야기의 무대를 하나로 묶어주는 존재, 

마치 로마의 (Via Appia) 아피아 가도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비공사)샤를르와 (차기황녀)파나는 신분도, 살아가는 방법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할

방향도 다르지만, 목적지 '레밤 왕국'으로 향하는 적지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간의

차이를 벌려놓는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아래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또 사랑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워 나간다. 

 

공녀가 비공사와 함께 하늘을 날기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에 의해서 자신을 짖누르는

사회의 의무에 순종했었다.     비공사인 샤를르는 그야말로 '천한 신분'을 타고나 자신의 비행기,

그리고 드넓은 하늘 위에서가 아니면 인간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인격으로서 참된 자유를

누릴수가 없었고, 귀족출신인 파나 역시 왕족과 결혼한다는 기정사실 속에서, 이미 정해져버린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화를내거나, 그에 저항할 권리조차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아마츠카미의 공세에 차기황녀를 대피시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은, 사실상 그들의 마음(욕구)에

강렬한 불을 당기는 계기를 제공한다.

 

아마츠카이 함대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리며, 비공사와 황녀는 일종의 전우애와 같은 감정을

나누다, 어느덧 건장한 남자와 여성이라는 이성간의 마음을 나누는 단계로 서서히 발전해

나간다.       그러나 샤를르에게 있어서 파나는 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예비국모'의 자리를

차지할 사람이자, 평소대로라면 얼굴은 커녕 그 그림자조차 대할수 없는 존귀한 신분의 아가씨

이기도 하다.       그의 감성은 파나와 함께 레밤황국도, 제정 아마츠카미도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신분'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이세상에 존재하는

사회의 의무와, 신분, 나라의 존재는 언제나 그들 머리위에 군림하며, 그들에게 의무를

다하라 명령하는 존재이고, 개인은 이러한 속박에 쉽사리 도망치치 못한다.  

 

샤를르는 결국 자신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파나를 뒤로하고, 목숨을 걸었지만, 명예, 아니 

감사의 말조차 듣지 못하는 익숙하지만,혹독한, 자신의 위치(현실)을 마주한다.       어자피

짐승처럼 취급받고, 미래의 부랑자라는 멸시를 받는데 익숙했기에, 결국 자신이'재주 부리는 곰'

에 불과했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도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 일에 대한

보수가 자신에게 두둑하게 주어지지 않았는가?  자신이 평생을 모아도 구경하기조차 못할 거금...

그야말로 인생을 3번이나 놀고 먹을 수 있는 두둑한 사금덩어리를 손에 쥔 비공사는 이제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만 몰두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황녀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파나를 위해서

모두 푸른 하늘에 흩뿌린다.    자신의 비행기로, 또 자신의 의지로 행한 첫 자유의지로서, 

이렇듯 레밤황국을 향해서 움직이는 전함을 맴돌며, 황금빛 축복을 흩뿌리던 그는 드디어 자신을

위한 최고의 보수를 받는다.     파나가 자신을 향해 말한것이다.  

 

'고마워 샤를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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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지배 -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
존 앨런 지음, 윤태경 옮김 / 미디어윌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논하기 전에 한번 상상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여러분들은 혹독한 기도원의

은총으로 이미 무언가를 섭취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상태이다.  이때!! 누군가가 여러분들이

원하는 음식을 단하나 건내준다고 제의했을때 과연 여러분들은 어떠한 음식을 원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주위의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역시 일반적인 예상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특징적으로 사람들은 제일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쓴맛이나,

단맛을 제외했다. 

 

이에 당연히 일반적인 채소나, 과일류도 그 대열에서 제외된다.      사람들이 제일 먹고싶어하는

음식... 그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것은 바로 치느님(프라이드 치킨)!! 이였다.  

 

이에 연상선으로 여러분은 이러한 일을 겪은 적도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식사를 한후

달콤한 디저트를 음미하며 디저트배는 따로있다고 이죽거리거나, 배부르게 식사는 했지만,

정작 원하는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어서 좀처럼 만족감(만복감이 아니다) 을 느끼지 못하는경우 

등등...이처럼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먹을 것으로 만족감을 얻기위해서는

바로 만복감과는 다른 무엇의 역활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어째서 우리들은 만복감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우리들은 배를채우는 행위를 위해서

'맛' 그리고 '식감'이라는 존재에 의지해야 하는가?  

 

이처럼 우리는 위장이 주는 생물학적 만족보다는 뇌에 전달되는 전기신호에 더욱 민감하다.   

그야말로 살기위해 먹기보다는 먹기위해서 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문명인'의 본보기로서,

우리들은 바삭하고, 짭짤하며,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형태보다 인간들이 스스로의 창의력으로

가공하고 재 탄생시킨 새로운 맛을 추구한다. 

  

이에 이 책은 음식의 고고학적 발전과정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일종의 의학에 해당하는

'뇌과학'에서 찾는다.    이 책의 정의에 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이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원인은 살기위해서 음식을 먹는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보고있다.      우리들은 앞에서

거론 했다시피 자연적이지 않는 맛과 식감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류가 그러한 맛에 길들여지는

과정에서는 자연적인 식재료가 무엇보다 큰 역활을 차지했다.     인류는 그야말로 다른 동물들이

엄두도 못내는 다양한 맛을 위장에 소화하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바삭함은 곤충에서,  얼큰함은 매운 채소(고추)에서, 담백함은 사냥한 고기에서, 그리고

짭짤한 맛은 바닷물이나 자신의 온몸??? 에서...  이같이 손에 집고 입에 털어 넣을 수 있는

모든것을 맛보고, 소화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뇌에 '친숙한 맛'으로 인식되어 대대손손

그 데이터가 이어져 온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구석기의 사람들과 다른것이 무엇인가?   우리들은 그들이 먹은 맛에 대한

개념을 그대로 답습하고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우리는 곤충의 바삭함 대신,

포테이토칩이나 튀김이 주는 바삭함에 만족한다는 것 뿐이다.      메뉴는 달라졌지만,

추구하는 맛은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사실을 상당히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실험을 했고 그 결과를 이 책 속에 담았다.   맛은 배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혀와 뇌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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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딸 개암 청소년 문학 18
엘로이즈 자비스 맥그로 지음, 박상은 옮김 / 개암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역사소설과, 이성과의 사랑을 다룬 할리퀸 로맨스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역사적 무대'가 되는 고대이집트의 존재, 그리고 그 왕국을 지배하는 하트셉수트여왕, 그리고

최종적으로 여왕이 실각하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역사의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트셉수트 여왕이 실각하게 되었는가? 하는 중요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예소녀 마라' 의 존재를 등장시키며, 그녀가 살벌한 이집트 궁정에서

두명의 남자 (귀족 셰트투) (여왕의 오른팔 센무트) 의 사주를 받아, 이중첩자의 역활을 수행하며

결국'셰르투' 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자신의 진실을 내비치는 내용을 다룬 '저자만의 이야기'를

창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마라는 굶주리고, 채찍질당하고, 천대받는 현실속에서 그만의 쾌활함과

자신의 프라이드를 굽히지 않는 당찬 아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중에들어 두명의 사내가

교대로 자신들의 '첩자'가 될것을 명령할때 그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것은 자신의 허리춤에

느껴지는 묵직한 금덩어리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의 존재였다.       

그러나 투트모세3세를 위해서 일하는 셰르투를 만나고, 투트모세3세와 결혼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왔지만, 결국 '이방인' 으로서 대접받는 불쌍한 시리아 공주와 친구가 되면서, 그는 어느덧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위로하고, 동정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냥하고 귀족적인 아가씨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예출신에 첩자로 이용되는 자신의 신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느덧 셰르투를 사랑하게 되면서,자신이 이중첩자로서 사실상 셰르투의 안전을 위협하고, 또

그를 속이고 있다는 것에 괴로워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대로 고백하기에는 자신의 위치가

너무나도 위험하다.      이에 마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최대한 셰르투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남자가 원하는대로 투트모세 3세가 이집트의 파라오로 등극하는 그 순간 모든것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지만, 셰트투는 결국 그녀의 고백을 듣기도 전에 그가 이중 첩자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녀를 '이집트를 위해서' 죽이려고 한다.  

 

이에 마라는 그 어느쪽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위기를 맞이하며,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서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센무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고, 그녀는

결국 센무트와 하트셉투스 여왕 앞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며 반란군의 정보를 내놓을 것을

요구당하는데.... 이때 혁명군을 이끌고 여왕앞에 등장한 셰르투는 고문당한 여인 마라를 보고,

그의 진심을 이해했고 결국 그는 '노예소녀를' 그의 '남작부인'으로 맞이한다.  

 

이와같이  이 책은 이집트의 역사적 의미를, 저자 나름대로의 창의력으로 보환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소하거나 중요한 일부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나는 특히 이 책의

진행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노예'라는 표현에 딴지를 걸고 싶다.   사실 고대 이집트시대에는

'노예' 즉 사람의 신변을 사고 파는 행위가 없었다.      물론 이집트의 모든것이 파라오의

소유로 이집트인 전부, 또는 전쟁에서 포획한 포로들까지 일종의 왕가를 위한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개념'은 있었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인권유린'이나, '진정한

노예생활'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의 원본을 접한 것이 아니라, 그를

번역한 번역분을 본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실제로 '노예'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는 한다.         그러나 단순히 번역의 실수라고 단정해도, 이책이 전하는

단어의 오류가 심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과거의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이 책도 이집트시대에 대해서 지울수 없는 오류를 전하는 책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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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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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할머니가 손자에게 물건의 소중함과 더불어,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고 무엇이든

참을 수 있는 인내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듣던 며느리가 

갑자기 할머니에게서 아이를 때어놓더니 할머니에게 "나의 아이를  패배자로 만들지마세요!"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 이야기는 90년대

이른바 미국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미국사회를 구성하던 '국민성' 즉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누리지 못하는 것이 일종의 '무능함'으로 인식되던 시대.. 내가 보고 인식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 역시, 이같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적극적이고, 포기나 좌절을 모르며, 넘치는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넘치는 자원과 경제력이 주는 단물을 마음껏 음미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였다.   자신들이 세계경제의

중심이라는 자만심, 뒤쳐진 자에겐 금전적인 도움은 줄지언정 동정은 하지 않는 매정함,

이러한 미국의 자존심은 어느덧 2006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금융위기는 어느덧 미국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국민성'에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고뇌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국민이 국가를 이끌어간다는 자존심이 희박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이유에 대한 의문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이 소설의

구절처럼 '사회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 일종의 사회의 소외자로서, 하나의 계층을 이루어

그들만의 희노애락을 가지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여진다.

  

주인공 마일즈 헬러 또한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직장'에서 사람이 몰락하면서 만들어낸

수 많은 흔적들을 접하며, 인생은 어둡고, 최선을 다해도 언젠가는 자신처럼 뒤쳐지고 버림받을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암울한 인생관을 믿고 다듬으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젊은 학생시절

가족에게 씻을 수없는 상처를 입고, 집을 뛰쳐나와  이같이 사회의 밑바닥에 해당하는

'더러운 일'을 맡아 하고 있지만, 그는 주위의 직장동료들과 같이 무의미한 음담패설을 내뱉거나,

(법을 위반하며) 자신의 사익을 챙기는 행위에 무감각하다.      그는 사회에 기대지 않고,

사회에 요구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무건조한 삶속에서 결국 자신의 삶의 목적..

 즉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의미'를 공원에서 만난 어여쁜 멕시코 소녀에게서 찾는다. 

 

이로서 주인공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를 사랑한다.      이는 미국사회에선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중범죄로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였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의 가르침과 지원에 힘입어 더욱 발전하고, 아름다워지며, 지적 으로도 성숙해지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일종의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나 비열한? 그녀의 가족들은 소녀와

동거한다는 사실을 구실삼아 주인공에게 상당한 금전을 요구하고, 결국 마일즈(주인공)은

계속되는 협박에 못이겨 소녀와 잠시 헤어져 자신의 친구가 거주하는 뉴욕의 '선셋파크'까지

도망친다.

 

이로서 센셋파크의 버려진 작은집에서 '무단거주'하는 사회의 소외자들은 (또다시 절망속에 빠진)

마일즈를 포함해 4명으로 늘어났다.         한때의 열정에 못이긴 대가로 결국 뱃속의 생명을 지운

여자,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따라잡지 못해 결국 모든것을 포기한 남자, 자신의 성 정체성(게이)에 대해서 마음 깊숙히 증오를 간직하고 있지만, 결국 그 욕구에 굴복하게 되는 남자, 그리고

그들에게 합류한 마일즈...  이들은 그들만의 아지트인 낡은 집 안에서 그들끼리의 우정과

동지애를 다지며, 사회가 또 자신을 무자비하게 내모는 그날까지(퇴거명령서를 코앞에 들이미는

그 순간까지) 투쟁할 것을 맹새한다.

 

그러나 결국 불안하지만, 나름대로의 안정을 찾은 4명의 낙오자들은 어느덧 스스로 자신의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또 자신이 사회에 입은 상처를 점점 극복하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비축하고,

다시 사회의 품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용기를 낸다.     주인공인 마일스도 역시 헤어진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곧 성인이 되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과의 재결합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자신이

입은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간다.       그러나 종장에 들어 마일즈는 퇴거명령서를 들이밀며

들이닥친 공무원을 폭행함으로서 또 다시 도망자로서 살아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다.

 

젊은날 마일즈는 이같이 자신을 괴롭히는 '운명' 을 피해서 도망자로 살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가족들의 사랑과 자신이 발견한 행복을 부여잡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 빌어먹을 운명과 맞서 싸울것을 다짐한다.     그는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용기를

낼수 있었을까?  이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니면 앞으로 하고 싶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있으니까?  아마도 그 둘 모두가 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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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전 1
아오키 쿠니코 지음, 임희선 옮김, 후쿠다 야스시 원작 / 학고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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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일본의 그 여느 위인들을 뛰어넘는 범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한국인으로선 그가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가? 하는 척도를 가늠하고

느끼는 데에는 한.일 양국 간의 거리만큼 공감하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료마를 그려낸 많은 문학작품들을 보고 이해 한다면, 그가 "료마가 없으면 메이지도 없다. 

아니 근대 일본국 자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는 대단한 평가에 걸맞는 상당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료마는 그 당시의 상식, 전통적 가치관을 파괴했고, 국적없는(탈번 낭인) 빈약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삿쵸(사츠마 죠츄)동맹을 성사시키는 것은 물론, 당시 권력의 중심이였던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권을 내려놓은 '대정봉환' 을 실현시키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그야말로

그는 사무라이 시대를 끝내고, 신분사회를 박살내고, 막부에 의한 전통적 지배방법까지

뒤집어 엎은 '혁신의 달인'으로서, 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위업은 그야말로 눈부시다는 단어에 어울리는것으로서, 사람들은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에 대해서 놀라워 함은 물론, 이를 배우기 위해서 그의 인생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었고, 그 관심은 당연히 나중에 출연하게 될 수 많은 '료마집(문학작품)'들의 주요한 이야기의

초점을 사카모토 료마가 얼마나 대단한 위인이었나? 하는 그의 업적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에

집중하게 했다.

 

나도 당연히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 같은 작품들을 본 사람으로서, 료마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고증' '업적의 묘사' '사카모토 료마가 얼마나 영웅다운가?' 하는 것에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등장한 새로운 료마 이야기'료마전'은

그러한 가치관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 책으로서, 

내용면에서 상당히 신선한 책이라는 느낌을 주는 책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2010년

대하드라마 '료마전'을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다지 새롭다거나, 신선한 느낌이 드는 책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이 책은 그 드라마의 각본을 '소설화'한 책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같이 이 책은 '미쓰비시 기업'을 창시한 료마의 라이벌, 이와자키 야타로가 료마를

회상하는 것으로 첫 이야기의 운을 띄운다.       그는 이 이야기를 이어가며, 작디 작은

도사라는 섬나라의 하급무사로서, 상급무사에게 내리 눌리는 시대의 부조리에 순종하는 료마,

그리고 곧 그러한 전통적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번을 뛰쳐나온 료마, 그리고 나중에는

도사인이 아닌 일본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가는 료마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야타로가 떠올리는 료마는 어디까지나, 부잣집에 태어나 고생도 모르고, 배고픔도

모른체로 귀하게 태어난 칠칠치 못한 바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바보가

어느덧 자신을 뛰어넘고,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친구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저 운만 허벌나게 좋을뿐인 그 바보가!! 그저 실실거리는 웃음만으로 여자나

홀리고 다니는 천하의 멍청이가!!  그 멍청이가 새로운 일본을 만들었다."     이 책은 가장

증오스럽지만, 가장 소중한 존재...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인정하고픈 혼란스러운 마음을 지닌

야타로가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료마를 회상하기를 멈추는 것으로 이야기의 그 끝을 맻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다 시피, 이 책은 이러한 료마의 이야기를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해서 지어졌다는 '어떠한 목적'이 있는 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이 책은 40~50대가 주요 독서층인 기성세대를 위한 료마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20~30대의 신세대를 위해서 이어진 료마의 이야기이다.        그중 특히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료마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인데,  이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이

부여하는 안정을 위해서 자유의지와 자신의 가치관을 희생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주의의

경종을 울리는 역활을 해 준다.     

 

료마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것을 모두 떨쳐버렸다.   그는 나라도, 가족도, 여자에 대한 사랑도

뛰어넘어, 오로지 자신이 지향하는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게 웃는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이에 책은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는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통과 사회에 대항하기를 주저하지 마라'  "젊은이여 료마처럼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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