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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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날 할머니가 손자에게 물건의 소중함과 더불어,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고 무엇이든

참을 수 있는 인내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듣던 며느리가 

갑자기 할머니에게서 아이를 때어놓더니 할머니에게 "나의 아이를  패배자로 만들지마세요!"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 이야기는 90년대

이른바 미국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미국사회를 구성하던 '국민성' 즉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누리지 못하는 것이 일종의 '무능함'으로 인식되던 시대.. 내가 보고 인식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 역시, 이같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적극적이고, 포기나 좌절을 모르며, 넘치는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넘치는 자원과 경제력이 주는 단물을 마음껏 음미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였다.   자신들이 세계경제의

중심이라는 자만심, 뒤쳐진 자에겐 금전적인 도움은 줄지언정 동정은 하지 않는 매정함,

이러한 미국의 자존심은 어느덧 2006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금융위기는 어느덧 미국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국민성'에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고뇌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국민이 국가를 이끌어간다는 자존심이 희박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이유에 대한 의문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이 소설의

구절처럼 '사회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 일종의 사회의 소외자로서, 하나의 계층을 이루어

그들만의 희노애락을 가지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여진다.

  

주인공 마일즈 헬러 또한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직장'에서 사람이 몰락하면서 만들어낸

수 많은 흔적들을 접하며, 인생은 어둡고, 최선을 다해도 언젠가는 자신처럼 뒤쳐지고 버림받을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암울한 인생관을 믿고 다듬으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젊은 학생시절

가족에게 씻을 수없는 상처를 입고, 집을 뛰쳐나와  이같이 사회의 밑바닥에 해당하는

'더러운 일'을 맡아 하고 있지만, 그는 주위의 직장동료들과 같이 무의미한 음담패설을 내뱉거나,

(법을 위반하며) 자신의 사익을 챙기는 행위에 무감각하다.      그는 사회에 기대지 않고,

사회에 요구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무건조한 삶속에서 결국 자신의 삶의 목적..

 즉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의미'를 공원에서 만난 어여쁜 멕시코 소녀에게서 찾는다. 

 

이로서 주인공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를 사랑한다.      이는 미국사회에선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중범죄로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였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의 가르침과 지원에 힘입어 더욱 발전하고, 아름다워지며, 지적 으로도 성숙해지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일종의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나 비열한? 그녀의 가족들은 소녀와

동거한다는 사실을 구실삼아 주인공에게 상당한 금전을 요구하고, 결국 마일즈(주인공)은

계속되는 협박에 못이겨 소녀와 잠시 헤어져 자신의 친구가 거주하는 뉴욕의 '선셋파크'까지

도망친다.

 

이로서 센셋파크의 버려진 작은집에서 '무단거주'하는 사회의 소외자들은 (또다시 절망속에 빠진)

마일즈를 포함해 4명으로 늘어났다.         한때의 열정에 못이긴 대가로 결국 뱃속의 생명을 지운

여자,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따라잡지 못해 결국 모든것을 포기한 남자, 자신의 성 정체성(게이)에 대해서 마음 깊숙히 증오를 간직하고 있지만, 결국 그 욕구에 굴복하게 되는 남자, 그리고

그들에게 합류한 마일즈...  이들은 그들만의 아지트인 낡은 집 안에서 그들끼리의 우정과

동지애를 다지며, 사회가 또 자신을 무자비하게 내모는 그날까지(퇴거명령서를 코앞에 들이미는

그 순간까지) 투쟁할 것을 맹새한다.

 

그러나 결국 불안하지만, 나름대로의 안정을 찾은 4명의 낙오자들은 어느덧 스스로 자신의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또 자신이 사회에 입은 상처를 점점 극복하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비축하고,

다시 사회의 품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용기를 낸다.     주인공인 마일스도 역시 헤어진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곧 성인이 되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과의 재결합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자신이

입은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간다.       그러나 종장에 들어 마일즈는 퇴거명령서를 들이밀며

들이닥친 공무원을 폭행함으로서 또 다시 도망자로서 살아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다.

 

젊은날 마일즈는 이같이 자신을 괴롭히는 '운명' 을 피해서 도망자로 살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가족들의 사랑과 자신이 발견한 행복을 부여잡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 빌어먹을 운명과 맞서 싸울것을 다짐한다.     그는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용기를

낼수 있었을까?  이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니면 앞으로 하고 싶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있으니까?  아마도 그 둘 모두가 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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