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왕자 1 - 조선의 마지막 왕자
차은라 지음 / 끌레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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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한반도의 역사는 암울하다.   일본에 의하여 나라를 강탈당하고, 스스로의 힘보다는 강

대국들의 이해에 의하여 민족이분열되고 또 잔인한 전쟁을 겪는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

게 있어서 조선 아니, '대한제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그다지 존경을 받거나, 동정을 받을

가치가 없게 느껴 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외부의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

한 책임'  분명 조선왕실을 이끈 왕족들은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을 병합한 일본제국.  그들은 표면적으로 조선왕실의 존재를 인정했고, 또 결과적으로 왕

족들을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병합을 정당화 하기위한 수단에 불과했으

니, 과연 그들이 정당한 왕족으로서, 또 나라의 존귀한 신분으로서 대우받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실제로 한국 문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덕혜옹주의 일생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식민지의 왕족, 대의명분을 위해 인정받은 지위의 실체는 실로 비

참한 것이다.   말 그대로 침략자를 위해 움직이는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소설)이우 왕자 또한 그러한 운명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다시말해 자신의 운

명에 절망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허나 적어도 그는 인정받은 지위에 만족하거나, 순응하는 인

물이 아니였다.    '저항' 이우왕자가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일제에 저항

한 대표적인 조선왕실의 인물로 알려져 있어서이다.   순종과 복종을 요구한 일본에게 저항한

식민지의 왕족... 이렇게 소설 속에 그려진 이우 왕자는 자존과 위엄을 갖춘 걸출한 인물이다.

허나 역사에 그려진 인물이라 그런지 일본 몰래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하거나, 몰래 어떠한 기밀

을 빼돌리는 등의 대담한 활동은 그려지지 않는다.    허나 만약 그럴 기회가 주인공에게 주어

졌다면?   아마 그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기꺼이 뛰어들지 않았을까?  그

리고 이우 왕자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 믿기 때문에 이러한 소설이 그려진 것이 아닐까?    이

렇게 소설 이우 왕자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위의 인물에 대한 하나의 인물상을 그려 나아

갔다.   끝까지 자존감을 버리지 않았던 인물... 바로 그것이 내가 느낀 이우 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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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재발견 - 자랑스러운 또 다른 한민족의 역사
한주 지음 / 유아이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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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과 같이 '나' 에게 있어서도 조선족이라 하면 크게 '불법체류자'와 '범죄자' 라는

인식이 무엇보다 강했다.  한국으로 넘어와 기껏해야 식당도우미로 일하거나, 생계형범죄 등

을 일으키는 소수민족... 분명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지만, 알게 모르게 그러한 인식은 많은 사

람들에게 있어서, 고정관념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남.북으로 분단되어버린 땅, 때문에 그 위에 자그마한 '자치'를 인정받은 간도지역은 어디까지

나 중국의 땅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민족과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

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특별방송 등으로 접한 영상과 같이 그들과 한국은 예전 아픈역사에

의해서 갈라진 같은 민족인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조선족에 대하여 이러한 글을 써 내려간다.

나라를 빼앗긴 비극의 역사 속에서, 대한제국이 없어진 그 공백의 기간동만 그 땅은 많은 조선

사람들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민족을 위한 교육과 저항이 뿌리내릴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기도 했으니, 근 현대사를 배워 나아가는 한국인에게 있어, 그 땅은 정말로 각별한 의미

가 있을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그곳을 근간으로 역사의 흔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의 업적이 소개되어 있

기도 하다.   한반도의 자주독립 그 목표를 위해 모든것을 걸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녹아있는

땅.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러한 땅에 무관심 하였는가?   흔히 "후진적이다." 정의하고 관심조

차 가지지 않았던 나는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그러한 편견을 품게 되었는가?    과거 고구려 발

해의 흔적 뿐만이 아니라, 근현대 많은 사건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곳.    특히 중국의 노골적

인 민족.문화 흡수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의 주장하는 것은 배움과 기억이다.  


극단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땅을 돌려달라는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힘껏 민

족성을 지켜 나아가고 있는 조선족 자치구의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과 우애를 표현하면 좋

겠다.  그들을 하대하고, 외면하면서 필요할 때만 한민족, 과거엔 조선땅!  이렇게 주장해 보았

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정과 교류는 작게, 그리고 끝임없이 유지하는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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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센티미터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김혜리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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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소심했던 성격덕분에 나는 친구를 잘 만들지 못했다.   주로 어른들을 상대하거나, 아

니면 동성보다 이성과의 인연이 보다 잘 닿았던 '나'  허나 그중 지금껏 기억에 남은 어느 '여자

아이'의 기억은 상대적으로 보면 나름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아이들의 놀림을 받

은 후 분한마음에 함께 손을 잡으며, 그 높디높은 아파트 계단을 울며 올라 집으로 향하던 날,

그리고 (운동치인) 나를 이끌어 어떻게든 놀아보겠다고, 고무줄이나 공기같은 그들만의 세계

에 나를 이끌었던 것도 나의 친구였던 그 여자아이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아

이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어린시절의 추억의 존재

일 뿐, 그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다.    그야말로 지금의 나는 새로운 환경, 그리

고 하루하루 다가오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내며 인생의 흔적을 축적하는 세상 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러하지 못하다.   주인공은 어린시절 만났던 어느 '인연'을 그 누구

보다 소중하게 한다.  인연과 사랑을 키워가며, 마음속에서 점점 그 위치를 굳여가는 어느 존

재.   물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름답다 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이 둘만의 행복으

로 이어지려면 '함께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가능하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함께하

지 못한다.   서로의 마음에 그들이 있지만, 교류하지 못하는 마음은 항상 애절할 뿐... 제3자인

독자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괴롭기만 할 뿐이다. 


그날의 인연이 너무나도 커다란 탓일까?  주인공은 그 이후의 인연에 대하여 진지해지지 못한

다.  새로운 인연, 새로운 사랑... 마음속 깊이 누군가를 품은 사람에게 있어, 그 새로움은 배신

과 같은 것일까?   나는 이러한 미련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할것만 같다.   누군가의 말과 마

음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동경하던 스승의 격려, 친구의 격려, 연인과

의 약속, 부모의 기대... 흔히 사람들은 이 같은 인연의 속박으로 인하여 용기를 얻거나, 압박

을 받는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기억이 없다.   사람의 인연으로 인한 방황

을 겪지 않은 '나'는 이들의 마음이 그저 답답하게 다가 올 뿐이다  플라토닉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그 당사자들의 아픔을 뒤로한체 그저 아름답다 표현한 들 그 어떤 위로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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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달루시아
전기순 지음 / 풀빛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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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글을 쓴다면, 일반적으로 그 글에는 저자 나름의 지식과 주제

가 잘 버무려져야 한다.  그 곳의 교통망, 유명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수 많은 관광객들과는 달리 '현지인'들과 같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저자 나름의 '팁'

까지... 이렇게 여행기는 여행을 가는자, 계획하는자, 글로서 만족해야 하는자 들에게 그 나름

대로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라 믿고있다.     그러나 이 책의 글은 일반적인 체계와는 성

격이 다르다.   자신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풀어가는가

싶더니, 돌연 그 곳에서 상상한 많은 몽환적인 이야기가 페이지 곳곳을 장식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단순한 스페인, 답사기, 여행가이드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

해 보면 상당히 주관적인 그만의 여행기를 접하는 느낌이다.   때문에 이 글에서 어떠한 매력

을 느끼는가?  이 글을 통하여 안달루시아에 대한 동경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는 나는 자신이 없다.   아마도 그와 같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적어

도 나에게 있어서는 '현실감과는 동떨어진 소설과 같은 글이다.'  하는 감상이 든다.  그러니 단

순히 글의 아름다움으로 이 책을 마주하자.    그러면 '저자가 무엇에 매료되고' '무엇을 기억하

고 있으며' '무엇을 매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많은 해답을 발견 할 수

있다.   


여행지로서 충분히 매력적이고, 화려하고 유명한 곳을 고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마

음속에는 어떻게 안달루시아가 자리잡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스페인 문학과

그가 발을 딛던 그 땅들과의 인연을 저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나는 이 책

을 접하며 바로 그러한 주제를 접했다고 본다.  그는 단순히 눈으로 본 시각의 아름다움만을 추

구하는 것이 아닌,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린 그만의 시각으로 안달루시아를 보는 것

같다.     적어도 그의 상상은 무한하다.     저자의 눈앞에는 지금껏 많은 문학인들이 표현한

풍경, 등장인물, 사건이 생생히 표현된다.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표현, 그러나 분명 존

재하는 그 근본에 대한 예찬을 접하는 것.  나는 바로 그러한 매력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존재

이유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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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피터 스탠퍼드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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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이러한 종교,역사,인물에 대하여 어디까지나 일정한

상식과 정보에 의지하고 있고,또 그 이상의 지식욕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유다에

대한 인물은 나름 흥미가 있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 좋아했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

퍼스타'의 주연에 해당되는 인물이였고, 또 그 작품에서 그려지는 유다의 이미지가 참으로 인

간적이고, 매력적인 것으로 나에게 다가온 탓이다.


세상의 상식이 어떠하든 작품속에서의 유다는 배신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의 많은

감정을 표현한다.   그는 세상의 상식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불신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신의

섭리'에 의해서 순교해야 하는 예수를 동정하고 또 스스로의 배신에 대한 격렬한 후회와 반성

을 표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다 마치 야누스와 같이, 선과 악이 버무려진 가장 인간같

은 인물이 바로 유다였다.   그러나 세상에 비추어진 유다는 분명 그러한 이미지가 아니리라...

아니 내가 접한 유다는 이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이들에 의하여 자유로운 해석이라는 살

이 붙은 현대의 유다의 모습이다.   때문에 나는 그 변화하는 유다의 모습을 접하고 싶었고, 또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러한 유다의 변천사를 논한다.     서양세계의 영원한 '배신자'  과연 그

에의해서 서양의 사고방식과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때 저자의 시각은 참으로 재미있다.    책의 전반부 그는 나름의 범죄수사관이 된다.   최후

의 만찬,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 예수, 유다의 키스를 시작으로 들이닥친 로마병사들... 이렇게

이야기만을 보면 하나의 사건으로서 상당히 긴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  의심의 눈

으로 바라보면 수 많은 의문점이들이 고개를 쳐든다.   어째서 유다가 은화30개에 예수를 배

신하게 되었을까?   당시의 개념으로 바라보아도 은화30개는 상당한 푼돈인데 말이다.   그리

고 예수를 노린 제사장과 로마의 병사들은 진정으로 예수의 존재를 유다의 배신을 통해서 알아

야 했을까?   그동안 수많은 가르침과 기적으로 유명해진 예수는 자신의 존재를 가린 비밀결사

단의 수장도 아니고, 또 자신을 대중들에게 스스럼 없이 내보인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니였던가?


어찌되었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유다는 기독교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

다.  그리고 (조금은 억지스럽지만)유다가 유대인이자 예수를 돈을 받고 팔아버렸다는 그 기록

에 의하여, 중세의 유대인과 고리대금업자들은 평생 '죄인'의 딱지를 붙이며 살아야 했다.     "

유다는 평생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죄인" "모든 악을 상징하는 위인" 그의 피는 땅을 더럽히고,

썩어가는 살은 광범위한 악취를풍기며, 사람들에게 '악'이란 무엇인가? 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

가 되어버린 유다의 상징성.   그 상징성 때문에 서양에서 수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심지어 중

세를 넘어 근대에 이르러서 까지 혐오주의와 학살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과연

독교에서 유다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이고, 또 지금껏 받아들여온 사람들 속의 유다

서로 어떻게 공존하였는가?   어드덧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 바로 이러한 궁금증이 자연

스럽게 드는 것 같다.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의 존재가 만들어졌다는 나의 의식은 잘못된 것

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용'이 용서되는 사회가 만들어질 오늘날까지 유다는 혐오를 넘

어, 금기, 이단의 상징으로서 비난만의 대상이였다는 것은 역사의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러한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가 고맙다.  그리고 오늘날에 그려지는 유다가 마음에 든다.    비록

종교는 유다의 구원을 말하지 않고 있지만, 세상은 점차 그의 반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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