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단주의에 빠진 일본인.   '나'보다 '우리'라는 인식이 강한 사람들. 그리고 협동, 공동의 질서

를 우선시하는 배울 점 많은 가치관 등 이렇게 많은 인식들은 처음(나 스스로가) 외국인을 인식

했던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치 '고정관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한때

의 군국주의로 인해 그러한 가치는 맹목적인 충성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악습으로서 기능하

며 그 일본이라는 나라와  국민에 있어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 것도 사실이기에, 전쟁후 변화하

는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그러한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묘사했다는 점에

서,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소설의 주인공은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장애로 인하여 본 모습도

끔찍할 뿐 만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조차도 기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그가 느끼는 현실과 미래는 분명히 독자인 나 스스로가 생각하고 그리는 것보다 더욱

비참하고 어두울 것이다.    때문에 그가 생각한 해결책은 보다 외지고 한적한 곳에 숨어들

어 최대한 누군가와 접촉없이 살아가는 것이였다.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 일행은 아직 과거의

 습이 간직되어 있는 외진 시골에 정착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러한 시골에서조차도, 정체된 것

이 아닌, 무언가 다른 변화의 소용돌이가 점차 커다란 모습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는데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수퍼마켓 천황' 심지어 이민온 조선인에 의하여 운영되

는 거대한 경제력 앞에, 시골사람들의 전통, 생활모습, 가치관 까지 변화하는 모습을 본 주인공

의 동생은 마을풋볼팀을 만들어 마을의 청년을 규합하며 일대 세력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

에 의해 추대된 리더인 그는 수퍼마켓을 공격하고, 상품을 약탈하고, 심지어 조선인을 몰아낸

후 앞으로 마을이 나아가야할 미래까지 제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는데,  이

에 저자는 그러한 격렬한 변화의 모습 속에서, 방관하는자, 열광하는자, 혐오하는자 등 여러 가

치관을 드러내는 모습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지도자' 이자 '순교자'를 상징하는 동생속의 갈

등과 욕망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상처와 속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세상에 존재했던 많은 구

원에 대한 이미지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 뿐인가?   결국 수퍼마켓천황 또한 불법적인

점거와 약탈을 극복하는 동시에,더욱더 강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못할 존재로 다시

등장하기에 이르니, 마을청년들이 보여준 용기와 행동은 결과적으로 작은 객기에 불과한 셈이

되었다. 


만엔 원년 과 풋볼... 이 소설에 등장한 이 둘의 사건은 이른바 '반란'이다.  현실의 변화를 위하

여 폭력을 선택한 사람들 그리고 그 말로는 그야말로 시대상과 겉모습만 다를 뿐 결과는 언제

나 실패로 돌아간다.   갈등을 풀 해결책으로 빼어든 칼!  그러나 열쇠가 아닌 칼은 결코 닫힌 문

을 열수가 없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해냈다.)   그러나 이들이 느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접근,

불안과 같은 가치는 역사적으로 일본이 겪었던 많은 진통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점을 생각하

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치관으로서 상당히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일본인에게 있

어서, 이 소설은 한국으로 치면  '저항' '시위' '최루탄'으로 얼룩진 어느 과거의 저항운동의 이

미지를 느끼게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간간히 일본의 소식을 접했기에, 실제로 여러 지역의 명물로서 '동물역장'이 있다는 것 정

도는 알고 있었다. 허나 이들 대부분은 인간에게 친숙한 강아지와 고양이같은 동물이지, 이 책

과 같은 펭귄이라는 특이한 동물은 아니다.     정말로 복잡하고, 삭막한 '역' 이라는 공간에...

아니 그보다도 펭귄 스스로 살아갈 환경으로서 적합한 곳인지 어떤지 그 걱정부터가 앞서지 않

는가?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선택하였을때의 나는 보다 현실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동화적인 판타지

로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뛰어난 펭귄'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허나 소설에 등장하는 펭

귄은 정말로 걷고, 놀고, 싸는 진짜 동물로서의 펭귄이다. 심지어 전차에 타고 내리는 '회귀

본능'에 충실할 뿐, 소설의 이야기에 있어, 그 동물이 가지는 범위는 제목에 비해 너무나도빈약

하다.  그러나 반대로 펭귄은 분실물센터의 마스코트로서, 또 어느 등장인물들과의 강력한 인

연이자, 연걸고리로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귀여움을 뛰어넘어, 그리

고 볼거리를 뛰어넘어, 철로의 인연을 이어주고, 치유해 주는 공간으로 안내하는 동물... 그리

고 그 속의 한명의 직원과 '분실물 센터'라는 공간은 어느덧 단순이 잃어버린것을 보관하는 곳

이 아니라, 어느 이 스스로가 버리고 싶은것, 잠시 내려놓고 싶은것, 그리고 잃어버린것을 되찾

아가는 바로 그러한 곳으로 표현되며, 독자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곳? 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

든다.


그러니 상징은 상징일뿐, 이 소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범위에 들어가 있는 것

이다.   사람이기에 전철을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그리고 뚜렷한 목적을 위해 어딘가로, 또

는 마음의 피로나 상처를 입고 휴식처를 향하여 전차에 몸을 맡기거나, 아니면 단순히 여행을

통해서 나 자신의 욕구를 다스린다.    이럴때 만난 인연, 그리고 그들에게서 받는 용기와 화해

그리고 이해의 이야기.  이에 이 소설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최신 개정 8판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외 옮김 / 풀빛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시아에 진출한 맥도날드, 홍콩거리에 줄지어 햄버거를 기다리는 진풍경... 이러한 세계뉴스

를 접하면서도 놀라지 않았던 나에게 있어서, 새삼 '맥도날드의 위상'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 사

건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관계자의 차를 빌려타게 된 날 평소 인스턴트, 햄버거 따위는 거들

더도 보지않았던 그 사람의 차에 떡하니 맥도날드의 포장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을 때

이다.    그는 무엇보다 간편하다 말했다.  차에서 주문하고, 차에서 뚝딱 해치우는 식사.   어느

덧 그는 식사의 영양, 만족스런 포만감보다  '빠르게 먹을 수 있다' 는 장점에 매료됨으로서, 그

야말로 철저한 한식파였던 자신의 가치관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이처럼 패스트푸드는 오늘날의 식문화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가족이 식탁

이나, 밥상에 진득하게 앉아 30분 아니면 한 시간을 들여 식사하는 모습은 이미 보기 힘든 모습

이 되어버렸고, 싸고, 빠르고, 열량이 높은 햄버거와 음료는 이제 특식이 아니라, 바쁜 일상인

의 편리한 식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러한 소소한 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라 하여, 패스트푸

드가 나쁘다 정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저자는 이에 더 나아가, 맥

도날드식 '합리성'이 미국 더 나아가 (맥도날드가 진출한) 전세계의 문화 경제, 그리고 무엇보

다 인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에게 있어서, 맥도날드는 더없이 효율적이고, 빠르게 무언가를 소비시키는 시스템을 확립

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일부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분담시키고, 획일적인 식단을 강요하는 

'빠른식단'을 대중들에게 안착시킴으로서, 맥도날드식 서비스에 익숙한 충직한 소비자를 양성

하는데도 성공하였다.   물론 그 맥도날드화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생고기를 썰

고, 그릴위에 햄버거를 굽고, 손님들의 요구에 소금과 후추의 양을 조절하고, 먹는사람과 요리

하는 사람이 서로 바라보는 옛 미국의 버거와 그 시스템을 추구하지만, 세계화에 의하여 그 가

치는 점점 더 작아지고 또 약해질 뿐이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어째서 맥도날드가 세계화에 알맞는가?   그것은 바로 합리성이다.  

매장의 직원들은 특별한 능력을 요구받지 않는다.  맥도날드의 시스템은 언제나 몇 백개의 버

거를 만들어도 똑같은 맛의 버거를 생산 할 수 있으며, 매장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과거의 식당

문화를 옛가치로 전락시킴으로서, 소비의 극대화를 실현했다.   허나 그 때문에 맥도날드의 직

원 들의 임금, 처후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열악해 졌다.   심지어 맥도날드 최고주주의 1년

급여와 성과급을 하급크루의 급여로 모으려면 족히 천년이 걸린다는 보고서도 제출되어 있다.

그러니 빅맥지수를 포함하여 맥도날드가 추구하는 시스템은 그야말로 자유경제 시스템의 롤모

델이자, 장.단점을 고루 관찰 할 수 있는 최고의 표본이라 할만 하다.    버거의 표준화, 계층간

의 격차, 운송,생산,소비로 이어지는 시스템... 과연 이로 인하여 드러나는 맥도날드의 미래는

과연 현대의 전세계의 나라의 미래와 어떠한 연관점을 보여주고 있을까?  그리고 결국 우리들

은 인간성이 결여된 철저한 관리체계속에서 살아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이러한 물

음에 이 책은 그 상당한 해답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나는 생각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의 야욕 아베신조를 말하다 - 제2 메이지유신 꿈꾸는 아베 신조 책략 심층 분석
이춘규 지음 / 서교출판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쯤 일본과 진실한 우호를 나눌 날이 올 것인가?   과거 고이즈미 전 총리때도 그러했지만,

오늘날 아베총리의 집권하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보면, 그 날은 정말로 멀고도 멀다.    그러

나 특히 아베의 존재와, 그 주장에 의하여 새롭게 형성된 갈등도 있느니, 그 문제점이란 (일본

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과 '위안부' '역사 교과서 왜곡'이 그 대표라 할 만하

다.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베란 '강력한 우익'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났고,

또 그 비판여론도 강력하다.    허나, 무엇때문에 그가 우익을 추구하는가?  과연 그는 일본을

어떠한 나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가?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아베를 어떠한 지도자로 인식하

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면, (나의) 주변의 답은 언제나 비판과 실망, 경계와 같은 대한

민국 중심의 해답만 들려 올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보다 중립적인 이야기를 접해보고 싶었

고, 마침 이 책은 저널리스트였던 저자에 의하여 나름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 인물을 평가

한다'는 점에서 나름 내가 추구하는 바에 알맞았다.


아베에 대하여, 이에 저자는 일본의 역사, 그리고 아베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는 '조슈사람'에

대한 밑바탕을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 때문일까?  나는 지금껏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던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어째서 새롭게 요시다 쇼인이 재조명되

었을까?  정치적 명문가인 아베 신조가 느끼는 의무의 영역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주변나라

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문제를 정책으로 밀고 나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아베는 상당히 강력한 자기주장을 지닌 지도자다.  그리고 한국에서 비판적이였던 많은

정책들은 반대로 일본 국내에 있어서, 플러스 효과를 발휘하는 면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잃

어버린 10년... 장기적인 불황에 침체된 일본의 분위기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할 수있다' 느끼

게 해준 지도자로서, 아베의 평가는 한국인이 느끼는 빵점짜리 지도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허

나 그렇다고 해서 '아베 알고보면 좋은녀석이야' 라는 인식의 변화를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 증거로 오늘날의 일본을 보라.  일본은 현재 남.북의 갈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일본 스

스로의 외교,군사적 입지를 강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노골적인 역사왜곡을 통해서 미래의 갈

등의 골 까지 만들었으니, 쉽게 정의하면 타인의 위기와 약점을 사정없이 이용하는 야비한? 모

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인간(나라)를 과연 나는 친구로서 우애를 표시 할 수 있겠

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와 국가로서의 우애를 주문 할 수 있겠는가?   아베와 최근 드러

난 트럼프...  무엇보다 집안의 문제를 위해서라면 독불장군이 될 수 있는 그 위인들의 모습은

분명 '외부인'으로선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굳이 저질적인 표현을 쓰자면 그들은 '매우 치밀

한' 소인배의 정치를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답이 없는 시대 홍종우와 김옥균이 꿈꾼 다른 나라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껏 접하는 정보의 방향 때문인지, (나는) 비교적 일본에서 주장하는 정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정보는 그 비교에 있어서 지극

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 그 중 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즉 조선말기 이후 일제 강점기

로 이어지는 '그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중립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민감한 주제라고 생

각하고 있다.   


허나 의외로 일본과 대한민국이 공통적으로 '그 시대에 필요했던 인물'로 의견일치를 보이는

인물이 있으니, 그 인물이 바로 위 주장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옥균'이다.   물론 그들이 서로

인정하는 부분은 다르다.   일본은 일본대로 자신들의 힘을 빌려 근대와, 자주권을 확립하려했

던 움직임을 방패삼아 한반도에서의 정치.군사활동을 정당화하려는 의도 때문이고, 한국은 정

체된 왕조국가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가로서의 큰 변화를 시도했던 인물의 포부와 그 의의를

인정하는 것이니까.   때문에 나는 독자로서, 이처럼 보는 눈에 따라 그 평가도 의의도 다른 '훗

날 후손들의 평가'에서 이 책이 과연 어떠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가려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책은 김옥균 한사람의 평가 뿐 만이 아니라, 그의 운명을 바꾸어버

또 한사람의 인물에 대한 평가도 요구하는 서적임을 알게 되었다. 


암살자와, 희생자, 조국의 충신과 대역죄인, 그리고 훗날 뒤바뀌어 버린 두 사람의 역사적 평가

와 인식...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이분적 사고는 올바른 역사를 마주하는데 최

대의 장애물이다.   무엇이 올바른가, 무엇이 최선인가!  그에 대하여 오늘날의 후손들이 '정답'

을 고를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 질문에 대한 결과를 학습하고, 또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과

연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생의 선택지에서, 나와 여러분들은 올바른 정답의 길을 고르고 걸어

나아가고 있는가?   혹 나의 선택이 올바르다 믿고 있지만, 훗날의 사람들은 그 선택을 나쁘다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역사는 때론 명확하기도 하지만 모호하기도 하다"  저자는 바로 그

역사의 이중성을 이 두명의 위인에서 부여함로서, 나름대로의 면죄부를 쥐어주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으로 김옥균의 '을미사변'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는 김옥

균을 홍종우가 암살함으로서, 변화의 강줄기 하나가 말라버린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한번 주장하였지만,  단순히 암살자는 나쁘다. 반대로 혁명가의 죽음

은 안타깝다.  같은 뻔한 인식으로 이 책을 접하면 한된다.    이 두명은 비록 추구하는 가치관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바로 '한반도' '국가'의 자주.독립.부흥이다.    정체되어 낙후된 나

라, 그것을 변화시켜 서양처럼 근대화를 이루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위기의식을 함께했으

나, '그 누구가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가치를 달리한 두 사람의 움직임은 바로 역사의 한

사건을 만들어 냈다.    저자도 주장하지 않는가?   정답이 없는 시대 두 사람은 다른 꿈을 꾸었

다. 라고 말이다.   때문에 두 사람의 인생과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그들에겐 반

드시 '개혁가' '지사(志士)'라는 밑바탕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서로

가 실패의 길을 걸었지만, 단순히 사리사욕을 위해서 나라를 팔고,민족을 배신한 무리들과 함

께 뭉뚱그려 평가를 내린다면,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그리고 승자만을 기억하는 것

또한 이제 벗어나야 할 낡은 인식이라는 것도 함께 공유하였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