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으면 제일 먼저 너를 만나러 갈게 - Novel Engine POP
시오미 나쓰에 지음, 나나카와 그림, 김봄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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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즘 시대' 운운하는 것은 본의가 아니지만, 그래도 소위 개인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언제부터인지 인간이 보다 더 섬세하고, 민감하며, 심히 약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 스스로가 시대착오적인 극기를 주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또 개인의 입장에서도 '나'스스로만을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이에 앞으로의 사람이 어떠한 존재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적어도 내가 궁리해야 할 분야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위의 질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하는  부류가 존재한다.  이에 아마도 그 제일에는 교육자가 아닐까? 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이 소설을 쓴 저자 또한 교사라는 역활을 수행하며,  이를 통해 얻어낸 문제와 고뇌, 그리고 그 해법을 녹여내 이 가상의 소설을 출판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의 등장인물 또한 현 시대의 (일본) 학생들!   그야말로 아직 미성숙한 개인끼리의 내면의 문제, 그리고 그 미숙함끼리 충돌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모습에 대한 보다 생생한 이야기를 드러내며, ​이에 대하여 가장 필요한 해결책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답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결국 표지에 드러난 두 가람 또한 서로의 이해, 이끌림, 대화를 통해서 점차 앙숙과 같았던 관계를 청산한다.    한때 서로의 입장과 사고방식 그리고 지레짐작을 통해 오해를 하고 있었다면?  결국 그 오해를 푸는데 있어서도 단순한 것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허나 오늘날의 세상에 '누군가에게 솔직하다' 라는 것은 어쩌면 매우 어렵고도 또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아니! 도리어 서로의 소통수단이 보다 다양해지고 또 광범위해진 이후, 개인은 점차 가까운 사람과 멀어지고, 또 나름의 가림막을 드리워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뭐든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통해, 점차 개인화가 되어 가지도 한다.


때문에 위의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마스크'는 그 개인화의 상징으로 이해가 될 수 있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고, 또 모범적이라는 이미지 뒤에서, 결국 여주인공 또한 상대에 대한 미움, 주변에 대한 스트레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점점 더 위축되어 갈때!  이때 그녀의 가장 큰 '적'이 가장 큰 이해자 (또는 연인)으로서 발전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무엇이 필요했을까?   이에 한번 이 소설을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에 대한 나름의 메시지를 발견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는 가상의 영역을 넘어, 그 각자의 삶에 있어서도 나름 필요한 '치유'를 제공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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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의 탄생 : 메이지 유신 이야기 - 요시다 쇼인부터 아베 신조까지
서현섭 지음 / 라의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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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의 아베총리가 스스로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 드러내었을 때, 실제로 일본사회 곳곳에 있어서도 그에 대한 영향력이 서서히 감지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이웃나라 한국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우려를 표하되 스스로의 귀와 눈을 막는... 소위 '더러워서 피한다'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물론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 특히!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째서 오늘날의 한.일 관계가 이처럼 냉각되었는가에 대하여, 단순히 일본의 양심?을 욕할 뿐 그리 더 파고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여느 일본의 총리와는 다르게, 일본 대부분의 국민에 있어서, 최고의 위인을 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사카모토 료마가 보다 더 압도적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의 이상과 행동력, 그리고 사상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도, 한.일은 보다 공통된 장점을 발견하고 또 공유 할 수 있기에, 적어도 나의 생각에 의하면 료마가 요시다 쇼인보다 보다 더 일본의 자랑으로서 드러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드라마) '꽃 타오르다'를 비롯하여, 정치.사회에 있어서 이른바 '죠슈의 바람'은 매우 거세게 들이차고 있는 것이 현실!  그야말로 과거의 일본! 이른바 유신의 명성을 계승하는 명문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러내며 신 시대의 번벌정치를 획책하고 있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지금의 일본의 모습 그 자체라고 정의 하겠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이미 언급했지만 '어쩌서 쇼인인가?' 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면 그 나름대로 책 속의 지식을 빌리는 것이 최고이다.   실제로 역사 속 요시다 쇼인은 일본에게 있어서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다.  그야말로 근대의 일본 '유신'을 성공시키고, 또 그 유신의 중책(고위직)을 맡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스승으로서, 이를 일본 민족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그의 촌숙(서당)은 근대 일본의 요람, 그리고 쇼인과 그들의 문하생은 존경받아 마땅할 일본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되기도 하다.


허나 문제는 세상의 인식이 변함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의 가치가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와중에 있어서, 유독 현대일본의 수뇌 스스로가 그 옛 가치에 긍지를 표하고 있다는데 있다.   말 그대로 그가 일본인으로의 자랑거리를 드러냄에 있어서도, 또 민족의 자긍심을 주문하는데 있어서도 그 부국강병의 메시지 안에는 분명 약육강식의 밑바탕이 깔려있다. 


때문에 적어도 그 가치아래 '노려지고 있는' 입장에 있어서, 분명 이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분명 과거의 일본은 저마다의 번의 체제, 일종의 봉건제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민족주의에 기대어 성공했다.   또한 그 당시 아직 '근대화의 밑바탕'을 마련하지 못했던 동방(국가들)에 실망해 이를 두고 '미래를 함께 할 파트너로서' 부적합하다 주장하는 것 또한 정한론 등의 뿌리로서 이해가 가능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 있어 '정한론'은 애초에 그 성립차제에 오류가 있다 주장하고 싶다.   이제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그리고 세계의 여느 나라와 비교해 열악한 국가가 아니다.   그야말로 체제, 국력, 국방, 경제... 이 모든 분야에 있어 경쟁의 관계에 있는 만큼!  이제 일본 또한 과거 스스로의 긍지?에서 졸업해 또 다른 형태의 협력과 번영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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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히 살아있네
장 도르메송 지음, 정미애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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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물론 저자의 준비된 지식과 자료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더 나아가 저자 스스로의 의식 또한 더해진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저자의 '혼이 담긴' 나름의 작품의 위치에 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었다.   이처럼 나 스스로가 위와 같은 서문을 띄운 이유는 나 개인적으로서 이 책의 줄거리보다는 보다 그 밖의 배경에 더 큰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저자 나름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후의 작품이며, 특히 그 내용에 있어서도 더 포괄적인 '인류'의 가능성 그것을 표현하는 '문명의 이미지' 가 보다 잘 드러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에 저자 스스로가 노년의 마지막 메시지로서 '역사'라는 무대를 선택했는가? 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이에 독자는 오롯이 작품이 말하는 인간과 문명, 그리고 그 연속성에 대한 나름의 '찬가'를 접하는 것으로서, 스스로 이를 유추하고 또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찬가'를 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자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앞서, 세계의 역사! 특히 프랑스의 역사라는 지식에 보다 큰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름 큰 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 개인 스스로는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가진 인물이기에,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소위 세계4대 문명에 대한 묘사, 그리고 더 나아가 중세.근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많은 사건과 인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했다.   허나, 문제는 그 이후 프랑스인이였던 저자 스스로가 표현한 프랑스의 역사!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모범의 역사를 찬미하는 순간!  나는 그 생소함에 결국 소설 속의 길을 잃어버리고 우왕자왕 해매고 다녀야 했다.


물론 이에 저자 스스로가  표현하고자 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인류라는 공동체를 일인칭 시점으로 돌려본다면, 과거의 그 무수한 사건과 인물... 그리고 남겨진 유산의 모습 모두에게 있어서 '인간'은 오롯이 그 기억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가 이를 통하여, 역사학 강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   결국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은 저자 개인의 지식과 긍지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적어도 '나'는 세느강 한 켠에 종이배 하나 띄어봄직한 감성과 열정!  소위 프랑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이 책을 접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처럼 프랑스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지 못했던 독자의 입장에 있어서, 분명 이 글은 점점 더 읽어갈수록 애매하고, 어려웠던 것으로서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다.  혹여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작품' 등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맨 프럼 어스라는 영화를 먼저 접할 것을 권한다.   물론 그 영화와 소설, 이 둘이 가지는 줄거리는 다르다.   허나! 그와는 달리, 비교적 오래도록 계승해 온 인류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변화 할 인류의 모습 이 두가지의 예를 주제로, 보다 더 열린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분명 이 둘다 나름의 공통된 매력을 발산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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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평화와 종교를 말한다
하비 콕스.이케다 다이사쿠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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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옛 종교의 기능 대부분을 '다른 가치들에' 넘겨 준 사실 속에서... 과연 종교가 다시 본래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것이 필요할까?   물론! 이 뜬금없는 질문에 대하여, 그 각각의 대답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여담을 풀어가자면, 이미 이에 대해서 여느 다른 많은 작가들이 진즉에 해답을 내놓고 있다 말 할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것이 쉽게 생각하자면, 종교가 다시 본래의 기능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자연스레 인간 또한 그 아래 복속되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른바 가상의 작품 속 '종교' 대부분은 이른바 세기말을 통해 다시 옛 권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과거의 국가, 법치, 행정, 과학, 물질주의 등 인간의 내.외적 가치를 충족해온 대체물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인간은 다시 문명의 요람'이라는 옛 향수에 기대 앞으로를 살아가게 될 가능성을 그 여느 작품들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처럼 위의 '메시지'를 접해온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나름대로 종교를 '하나의 울타리와 같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많은 종교가 주장하는 '평화'등의 메시지들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믿음이란 인간의 내면의 선함을 드러내는 가장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세상에 가장 권위있는 종교의 수장이 '메시지'를 전하고, 또한 가장 참다운 지식을 담은 경전이 최고의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와중에서도, 역시나 세상은 갈등과 전쟁 그리고 살육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그렇기에 과거와 현재... 이른바 전통적 종교의 한계 또한 이 현상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인간간의 갈등, 사회와 국가간의 갈등에 더해, 종교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과연 이 책에서 드러난 평화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른바 종교는 어떠한 변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까?   이에 이 책은 종교의 미래 그 자체를 위해 고뇌하고, 또 실현한 두명의 지식인을 앞세워 하나의 '대담'(對談)의 형태로서, 독자를 설득하려 하고 있다.


물론 나 또한 (익숙한) 이케다 다이사쿠 같은 지식인의 주장, 또는 개선점을 접하면서 앞으로 발전해야 할 종교의 모습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처럼 앞으로의 종교의 모습이란?  지금과 같은 '믿음을 강요하는 수단'을 벗어나, 보다 포괄적인 선함을 표현하는 종교...즉 '넓은'교감의 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생각한다.  ​    그야말로 미래의 종교는 '카톨릭' '이슬람' '불교'등의 스스로의 울타리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또 장점을 받아들이는 큰 변화를 겪어야 할 것이며, 그 변화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날 '반종교주의'속에서 위기를 겪고있는 각각의 종교... 그 자체가 재평가 될 수 있다! 라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위 아 더 월드'는 여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희망의 노래(메시지)로 다가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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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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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뉴스) 등을 들여다보면, 때때로 기적에 가까운 사건을 겪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적의 실체가 단순히 만남이나, 복권 당첨과 같은 것이 아닌, 이 책과 같은 '생존의'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결국 이에 대하여 제3자가 얻어낼 수 있는 감상이란 오롯이 불행을 당한 당사자에 대한 위로의 감정을 품는 것 하나로 좁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겠다.


이처럼 책 속의 저자가 드러낸 불행이란, 감히 최악이라 정의해도 무엇하나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과거 비행기 사고를 직접 겪은 단 한명의 생존자이며, 더욱이 그 생존과정에 있어서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그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큰 괴로움을 겪어 나아갔기에... 결국 이에 대한 고백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입장에 있어서는? 역시 나 저자의 그 경험 자체에 대하여, '최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저자가 그 스스로의 생존기만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책을 출판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실제로 저자는 이 불행을 통하여, 분명 적지 않은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 되고야 말았지만,   이와 다르게, 그의 생존무대가 되어 주었던 '자연림' 특히 페루의 밀림에 대한 애정만큼은 저버리지 않았다는 그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그 나름 저자는 '하늘 길'에 앞서, '정글'이라는 환경에 대한 보다 강한 거부감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그야말로 페루의 정글은 추락한 비행기를 감추고, 또 그 속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과, 저자 스스로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을 강제하기도 했다.   물론! 그 고통의 본질 자체가 위대한 '자연의 순환' 이라는 것에 걸맞다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산 자의 입장에선 그 '죽어간다'(또는 해체되어 간다)라는 것이란 두번 다시 겪고싶지 않은 부류의 것이 분명할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책을 통해, 정글의 보호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비록 정글이 그의 '생존'과 '구조'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 할지라도...  결국 그는 어린시절부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정글과 그 속의 생태계에 대하여, 전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세상은(또는 어느 독자들은) 저자의 이 마음을 왜곡해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사고 이후 최악의 피해자, 기적의 생존자, 개심한? 환경운동가 라는 세상의 평가를 들으며, 때때로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주변의 평가에 의하여, 이'동물학자'의 실체가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아니면 그는 단순한 세상의 평가와 위로, 유명세를 발판삼아, 자연의 수호자라는 새 삶의 형태를 선택한 인물인 것인가?   이에 대하여, 이 책이 드러내는 가장 큰 주제는 과거의 주인공이 겪어낸 생존의 이야기가  아닌, 이후 그의 삶 전체를 상징하게 된 '자연'에 대한 저자의 진실된 사랑을 확인하고, 또 이해하는 것에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이에 저자의 마음을 통한 글을 마주하다보면, 그의 '애정'은 그 나름대로의 계승에 가까운 것이다.  비록 이후 소원해졌지만, 아버지와 (죽은)어머니... 이 둘과의 기억과 애정, 열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페루의 정글, 또 동물에 대한 탐구심이였다.  때문에 이를 통한 시선에 따르자면, 저자는 여전히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아가는 여린 사람에 가깝다.  그야말로 삶의 어두운 한 면을 외면하며 살아온 여느 한 명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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