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이펙트 - 인류 탄생의 과학적 분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1
재닛 브라운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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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에 대한 '과학적 견애"의 대명사 '종의 기원' 

원래 제목 "자연선택, 또는 생존경쟁에 선호되는 종족의 보존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을

편찬한 찰스 다윈은 서방세계에있어서 신에 도전한 가장 발칙한 '인간' 이기도 하지만, 영국의

뛰어난 인물들 중에서, 세상의 한 지평을 연 위대한 과학자.  라는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주장한 자연속에서의 동물의 진화론적 관점은 19세기에 있어서 엘리트와 종교계의 끝없는

관심과 논란이 되었다.   그들은 '우리는 단지 자연과 주변의 동물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한

한 종류의 동물에 불과 한가?, '우리는 과연 신의 사랑을 받은 '신들의 자손' 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주제"(당시에는)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고, 그 논쟁은 2012년이

된 오늘날 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진화론은 이제 오늘날에는 과학적 상식에 가까운 지식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아직도 신에 대한 무례함을 범하고 있는 진화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많다, 그들에게 진화론이란, 과학적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하나의

가설과 주장에 불과하며, 실제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를 '법으로' 처벌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책 종의 기원 이팩트는 학문,생물학적 관점을 주제로 쓴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을 그대로 번역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찰스 다윈이 '적자생존'의 과학적 개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비글호 탐험부터,

그의 저술활동이 당시 시대와, 현대시대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나? 하는 평가를

내리는 책에 가깝다.

 

영국에서 부족함없이 자라나고, 부호의 아들로서 풍족하고 여유로웠던 환경이 그를 진정한

영국신사의 품격을 지니게 해 주었고,5년 동안의 해상탐험과 연구활동은 그가 생물학에 대하며,

기존의 관점을 벗어나게 해준 역활을 했다.  실제로 그의 저서는  신을 살해했다. 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중에게 의해서 불태워지지 않았고, 종교계의 비난도 파문도 당하지

않았다.  그는 종의 기원을 쓴 후에도 영국 생물.지리학회의 영향력 있는 회원이였고, 존경받는

과학자이자, 신사 이기도 하였으며, 그가 살고 있는 지방의 유명인이기도 했고, 가정에 헌신하는 인상적인 아버지 이기도 했다.  그는 세상이 "그의 저서"에 열광하고, 논쟁하고, 비판하는

도중에도 그 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그의 비평을 흘려듣는 제3자의 '중립'입장을 취한다.

인기와 관심에 편승하여 자신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려는 시도도, 자신의 이념과 지식이 '진리'

라고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시대는 자연스럽게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의

의견을 수용했으며, 그를 존중하여 주었다.

 

과학의 발전, 출판의 발전, 그리고 대중의 계몽적 사상의 발전이 만들어낸, 공감적 의식의

은혜를 입은 과학자..  다윈 그의 견애는 아직도 존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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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너를 사랑해 - 특별한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새로운 세계
홍새나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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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야에 따라, 그 해석과 느끼는 바가 다르듯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사랑과 인연이 넘치는" 관계  또 한 긍정적인 면도 보이고, 그 반대의 면도 느끼게 되는 일면이

있다.    부모는 아이들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무안한 이기심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태어나기 전에는 '부디 무사히 태어나기를' 빌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부디 빨리 말을 하고 걷기" 를 바라며, 걷고 말하기를 마치면,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지는 욕심이다.

 

그러나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식에게 사랑과 공을 들이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예를들어 무사히 태어나지 못하고,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자식을 가지게 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바치는 사랑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능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애아, 자폐아, 미숙아...등등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을 가진다는것은 분명하게 '불운하다' 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 부모들이 아이를 버리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낳은 아이들을 그대로

기르고, 사랑하고, 배우게 한다.   남들과 조금 '다를 뿐' 그 아이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나의 자식 이라는 '개념'을 가지게 되고, 또 너그러워 지는 부모님들.   

그러한 부모님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숙한 아이들을 관대하게 보아주는 사회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미숙아들의 정서와 능력에 알맞는 가정교육 방법이 더 중요하다.   

 

아이들의 교육과 '정서함양'의 역활은 '가정'의 역활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적인 '아이' 에게는 가정보다, 특수학교의 전문적인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한국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으로 박혀있는것이 현실..

 

그러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부모도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그에

맞는 화목한 정서함양을 위해서 노력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기 위한 책...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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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6
브록 콜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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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아이들.. 이 책은 그 제목처럼 캠프에서 '버려진' 두 소년,소녀의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여름캠프의 '전통' 에 따라 아이들은 어리숙하고 만만해 보이는 아이를 골라

'고트(goat) 섬으로 보낸다.  알몸으로 버려진 소년과 소녀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해프닝에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곧 그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섬을 탈출하고, 자신을 싫어하는 캠프와 '무례한 아이들'을 피해서 가능한 멀리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알몸뿐인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것은 얼마없다.      

사회의 상식선에서 본다면...아니.. 그들이 조금만 더 사회에 익숙한 청소년이나 '어른들' 이였다면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로 모든것을 해결 할 것이다.   경찰, 미아센터 등등 사회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수단도 얼마든지 있고,  도움을 받은 후에는 자신들을 비참하게 만든 아이들과

캠프를 상대로 '정의'에 의한 복수(너!!고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지혜로운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책 속의 어린 아이들은 '싫은것을 피해 멀리 달아난다' 는 본능에 따라 솔직하게 움직인다.  스스로 되도록 캠프와 멀리 떨어져, 부모님을 만나고, 이 불쾌한 현실에서 달아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소년과 소녀가 서로  의지하며 나아가는 '집으로' 는 제3자의

손해와 피해를 야기한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욕구와 필요성, 도덕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두 아이들의 정의일 뿐이다.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동전을 훔치고, 옷을 훔치고, 심지어는 남을 속이는 행위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금은 '비상시'이고 나중에 해결되면 '갚는다' 는 식의 자기만의 방정식이 있다.  

게다가 나중에 가서는 수첩 쪼가리에 끄적거린 '차용증'을 건내며 자신의 처지에 맞는 도움을

주기를 바라게 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물론 그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귀환길은 경찰, 보안관,

부모님의 열성적인 수색활동에 의해서 종결되어 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해낸 스스로 자립하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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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바로크시대와의 만남 - 바흐.헨델.비발디의 시대 클래식 시대와의 만남 2
클라이브 웅거 해밀턴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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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과 기괴함을 상징하는 바로크(baroque)는 1600년대부터 1750년대 까지 서양의

문화를 형성했던 문화가치를 총칭하는 이름이였다.    물론 과거를 지배했던 아이콘 '지저스 Jesus'  '마리아 Maria'  '할렐루야!! hallelujah' 에서....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자연의

이미지, 통치자를 위한 찬양,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이교도 (민간신앙.영웅) 들을 이용한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우리들이 흔히 바이올린 이라고 생각하는 악기가 등장해, 듣는 이로 하여금 넘치도록 격양적인 '감동의 도가니' 를이끌어냈던 그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의 '변화'이자 '축복'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시대가 마음에 든다.  바로크 시대가 도래하자, 이제 음악이란 신을 찬양하는

'찬양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고, 음악을 이해하는 예능&지식인이란  성직자라는

고정관념 또한 없어졌으며, 이제 음악이란 나라를 지배하는 왕과, 신하, 그리고 대중들을

즐겁게 하는 역활을 지니는 진정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그 가치를 더욱더 발전시킨 바흐, 헨델, 비달디 등등(음악수업에 한번쯤 들어보았던) 거장들이 웅장한 오페라와 입체적인 협주곡

그리고 현란한 칸타타를 탄생 시키기도 했다.

 

이 책도 그러한 문화의 선각자들의 이야기가 책의 주요 이야기로 등장한다.   

시대적 가치에 제한을 둔 책이라, 바로크의 가치를 이을 천재적인 음악가(베토벤, 모짜르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무엇보다도

책 앞표지에 들어있는 음악시디에 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 41가지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   그것이야말로 그 많은 클래식 서적의 범람에도 이 책을 건택하게 하는 제1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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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는 순간 행복이 된다 - 말보다 따뜻한 몸의 언어, 터치
이달희 지음 / 예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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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언어를 사용한지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언어만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덴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것이 현실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인간의 언어와 동물과 같은 체스처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두가지를 섞은 전달행위는 그야말로 '진실된 정보의 전달'

이라는 의미에선 그 이상 좋은 방법이 없을 정도로 효과가 뛰어나다.

 

정보의 전달은 공동체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고,이성과의 사랑을 속삭이고, 수만,수억의 가치를 가지고 흥정하는 '비지니스'에도

쓰이는 정도전달의 행위... 그러한 행위를 위하여 생겨난 효과적인 '터치' 행위에 대한 고찰을

담은 서적이 바로 이 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실제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시작 할때

'악수'를 한다.  언어로 인사하고, 서로 고개를 숙이는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 그 상대방에 대한  불신의 마음이 싹트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인 것인가?  

콘서트 장에서 수퍼스타를 향해서 손을 번쩍 드는 행위도,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도.

영화관에서 아무도 모르게 연인의 손을 한번 꼬옥~~ 잡은 행위도.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교감'의 행위에 해당한다.  

 

당신이 신들린 언행과 웅변으로 카르타고 제국을 멸망시키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실각시킨 大 카토의 웅변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손짓.발짓을 포함한 '터치' 교감이 없다면 그 위력은

반감 될 것이 뻔하다.   생각해보자. 자신의 웅변에 감동했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의 악수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그 순간, 당신을 향한 응원과 감동은 순식간에 적대의 가치로 돌변할 것이

뻔하지 않는가?  스킨십이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가 없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좋은

어버이는 이 세상에 없다.   

 

스킨십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것처럼 당연한 것은 없다.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

그것을 진정으로 스마트한 생활의 일부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원초적인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고, 사람과 사람의 '터치'에 익숙해지자.

 

(그렇다고 아무나 껴안는 변태가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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