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 -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정현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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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라디오 방송 작가 정현주의 사랑 에세이 <그래도, 사랑>이 예쁜 새 옷을 입고 재출간되었습니다!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정현주 작가는 20년 이상 인기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하였는데요, MBC <별이 빛나는 밤에>, <꿈꾸는 라디오>, KBS <최강희의 야간 비행>,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등의 작가로 대중들 사이에서 유명하죠. 지금은 "북스리스본" 책방을 운영하며 낭독회, 북토크 등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목차는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 그리고 그리움까지 사랑을 하는 순서대로 되어 있는데요,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한 제목마다 사랑에 대한 짧은 이야기 한 편과 이어서 영화 속 사랑 이야기 한 편이 엮어져 나오는데,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라디오 방송의 사연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동받은 에피소드 한 편을 제 목소리로 낭독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사랑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작가가 라디오 사연처럼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사랑의 온기로 인해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사랑이 변하는 과정, 그리고 이별과 그 이후의 그리움까지 모든 사랑의 과정과 모양들을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 사랑은 언제나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많이 울기도 했지만, 내 마음의 깊이를 넓혀 준 것도 사랑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인간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No man is an island. 어쩌면 세상이 너무 악해져서 사랑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자꾸 희망을 품게 합니다. 나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책 제목처럼 "그래도 사랑", "다시 (열렬히)사랑"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깊어져요, 우리.
시간과 함께 낡아지지 말고.- P91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로 이 마음을 전할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들은 보통 아주 간단합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로 충분합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사랑을 망칠 뿐이에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셀리느가 말했죠. "신은 너와 나 사이에 있어." 사랑 또한 그렇습니다. 둘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홀로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며 두려움을 키워갈 필요가 없죠. 용기를 낸다면 헛된 고민으로 흘려보낼 시간에 함께 사랑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 좋은 사랑은 복잡한 말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복잡한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사랑 앞에서 심플해지는 지혜와 편안해지는 용기가 함께하길 바라요.- P40

사랑이 쉽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 상처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상처와 화해하세요. 스스로를 안아주세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P322

결혼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 맞을까?" 그 질문에 대해 답해주고 싶은 말은 결혼은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지만 연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서로를 조율하며 가는 과정이니까요. 조율의 과정을 즐기면 연애와 같을 테고, 조율을 포기하고 대립하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흡사 ‘죽음 같은 결혼‘이 되겠죠. 어느 쪽의 삶을 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저는 ‘결혼은 평생 가는 연애‘라는 말이 참 좋네요.-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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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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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밖의 세계는 영화 <설국열차>처럼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혹한기이다. 17세 소녀인 주인공 전초밤은 초여름밤의 산책을 부러워하며 스노볼 안의 세상을 동경한다. 하지만 스노볼은 겉으로 보기 좋게 꾸며진 세계에 불과하다. 스노볼 안은 추위로부터 보호되어 따뜻한 반면, 자신의 삶이 녹화·편집되어 드라마로 만들어져 스노볼 밖으로 송출된다. 추위 걱정 없이 따뜻한 날씨를 맘껏 누리는 스노볼 안과 달리, 스노볼 밖은 끊임없이 발전기를 돌려야 따뜻한 물로 씻고 생활할 수 있는 평균 온도 영하 41도의 혹한기이다. '날씨'의 차별이 계층을 만들고, 온도가 억압의 장치로 사용된다.



스노볼 밖에 살면서 스노볼 안에서 만든 드라마를 보며 자란 주인공 전초밤은 자신이 배우 고유리의 외모를 똑같이 닮았음에도 그녀의 삶을 동경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고유리 배우의 담당 감독인 차설이 찾아와 고유리가 죽었다며 전초밤을 스노볼로 데려간다. 전초밤은 죽은 고유리를 대신해 새로운 가족과 살며 고유리의 삶을 연기하는 대가로 스노볼 밖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모든 이들이 동경하는 스노볼에 살게 된 전초밤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스노볼의 어두운 면을 우연히 보게 되고, 이곳에서 계속 가짜 고유리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스노볼의 설계자인 이본 그룹은 스노볼이 무한한 지열이 생성되는 지역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런데 사실은 "지하 발전소"에 사형 선고된 사형수들을 가둬 놓고 쳇바퀴를 돌리게 하여 생성된 동력으로 스노볼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노볼 체계에 불응한 사람들을 인간 과녁으로 사용해 쏴 죽이는 스포츠인 "바이애슬론 경기"를 모두가 즐기게 하여 스노볼 체계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켜 왔다. 




"스노볼에는 '따뜻한 진통제'와 '부유한 마취제'가 널려 있으니까요." 
-<스노볼> 가제본 p.263


주인공 전초밤은 스노볼에서 "퇴직자 마을"로 쫓겨나고 다시 스노볼로 돌아가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마주친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전초밤은 배우 고유리가 감독 차설이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삶에 불과하며, 자신이 고유리를 대체할 여러 복제인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 세계"인 그곳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모든 것의 비리를 밝히기로 결심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라인홀드 니버는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내게 허락해 주소서"라고 신께 기도했다. 그런데 전초밤은 바꿀 수 없는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순응해 자신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고, 실패하든 실패하지 않든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뛰어들어 이를 바꿔보려 시도한다. 그녀는 용맹함을 가진 잔다르크와 같은 인물이다. 작가는 '전초밤'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초여름밤의 전초'와 같은 그녀의 혁명적 숙명을 예견해 놓은 것이 아닐까.



작가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개척해 나가는 전초밤과 친구들을 통해 우리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전초밤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러 고유리 대체품과 함께 힘을 합쳐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여러 고유리 대체품 중 하나인 '소명'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들은 신이 아니에요,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고요. 당신들은 남에게 고통을 줘서도 안 되고, 당신들이 누군가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착각도 제발 버려요. 그건 당신들이 남의 영혼을 제멋대로 휘저을 핑계밖에 되지 않으니까." -<스노볼> 가제본 p.426 


전초밤은 스노볼 안에서 '가짜 나'로 살아가며 따뜻한 안락함을 누리는 것보다, '진짜 나'의 삶을 살기를 선택하고 더 이상 고유리를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쟁취해낸다. 

 

"이로써 우리의 탄생 목적이 사라졌다. 나를 기다리는 위대한 인생 계획과 화려한 수식어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내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내일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허상을 흉내낼 필요도, 나의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일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의 또 다음 날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스노볼> 가제본 p.429)"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작은 개인들의 연대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나 같은 작은 개인이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거기서 불씨는 꺼져버리지만, 작은 불씨가 모이고 모여 큰 불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전초밤과 친구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의 목차에서부터 '나'+'너' 에서 '우리'가 되듯이, 작가는 작은 개인들이 모여 연대하면 불가능해보이는 일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스노볼'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의 입맛에 따라 법이 바뀌기도 하고, 이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것은 서민들이다. 하지만 <스노볼>을 통해 작은 개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대한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스노볼>이 웹툰, 웹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자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쳇바퀴를 돌리는 두 다리에 힘이 솟는다. 나와 타인의 삶이 딱히 구별되지 않는 이 쳇바퀴 무덤을 떠나, 오직 나만이 연출할 수 있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스노볼을 향해 나는 부지런히 달린다. 쳇바퀴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부쩍 스노볼에 가까워진다.- P28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그날 버스에 우리 셋이 타고 있지 않았어도 너희 아빠는 똑같이 행동했을 거야. 가만히 앉아서 다같이 죽을 바에는 자기 하나를 희생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다 살릴 사람이니까.

아빠 얘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가 눈에 어른거리는 것도 잠시, 눈발이 더 세진다. 이제 내 이마에서 쏘아지는 한 줌 빛이 비추는 건 끊임없이 나를 덮쳐오는, 무섭도록 새하얀 눈 괴물뿐이다.- P39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던 하늘이 점차 보라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지평선이 불타는 것처럼 빨갛게 변한다. 그에 맞춰, 이제 곧 스노볼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하늘이 분홍빛으로 바뀌면서 저 멀리 거대한 스노볼이 시야에 들어온다. 모든 게 하얗게 얼어붙어 있는 주변 땅과 똑같은 지구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푸르다. 그 처음과 끝을 절대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투명 천장이 반짝거린다. 마치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하얀 우주에 홀로 떠 있는 생명의 행성처럼 보인다.- P87

"해리야."
차설 디렉터의 목소리에는 묘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 그녀에게서 한 번 두 번 해리라고 불릴 때마다 정말로 전초밤이 세상에서 지워져 가는 느낌이다.
"나는 너를 반드시 해피 엔딩으로 만들 거야."
차설 디렉터의 목소리가 결연하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비행기가 스노볼의 출입국 관리소 앞 활주로에 착륙한다.- P90

"나 역시, 너희를 이용하는 또 다른 어른이 될까 봐 겁이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차향의 고백에는 진실된 울림이 있다.
"어른이라는 작자들이 말하는 옳고 그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무언이든 너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게 중요해. 왜냐면, 차설조차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이 너희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액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줬다고 믿는 인간이니까."- P378

이로써 우리의 탄생 목적이 사라졌다. 나를 기다리는 위대한 인생 계획과 화려한 수식어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내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내일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허상을 흉내낼 필요도, 나의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일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의 또 다음 날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P429

당신들은 신이 아니에요,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고요. 당신들은 남에게 고통을 줘서도 안 되고, 당신들이 누군가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착각도 제발 버려요. 그건 당신들이 남의 영혼을 제멋대로 휘저을 핑계밖에 되지 않으니까.-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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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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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고픈 가을에 선물 같이 찾아온 임경선 작가의 신작,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출간 전에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작가님의 낭독으로 출간 전 선연재 방송을 들으며 출간되기만을 기다려온 소설이라 가제본 신청에 당첨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이후 2년 만에 나온 작가님의 소설이어서 가제본을 받자마자 들뜬 마음으로 하루 만에 읽었다. 이 책은 나에게 ‘고단한 하루 끝에 찾아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소설’이다. 사랑은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만 쌉싸름하기도 하다. 작가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를 통해 사랑의 두 가지 색깔을 보여준다.



30대 중반의 건축설계사 수진은 변화보다는 평온함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일을 할 때만큼은 어떤 어려운 경우에도 “한계를 기회로 만들어보자.(p.22)”고 말하며 건축 부지의 단점도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건축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녀의 연인 혁범은 은색 안경테에 반듯하고 깔끔한 외모에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남자이다. 조직의 혁신을 추구하다가 내부 고발자로 찍혀 직장을 그만두면서 새 건축 설계 사무소를 차리고 수진을 불러 같이 일하게 된다. 수진에게 혁범은 존경하는 선배이자 우상 같은 존재이다. 그는 일에 집중할 때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면서도 언제나 부드럽고 단호한 사람이다. 그런 혁범을 옆에서 오래전부터 지켜봐 온 수진은 그를 동경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한 차례 결혼과 이혼으로 혁범의 마음은 지쳐있었다. 그는 수진을 통해 위로받지만 정작 자신은 사막과 같이 황량한 사람이다. 그가 계속 전처와 만나며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수진은 서운함을 느낀다. 수진은 혁범과 사귀면서도 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외로워한다. 혁범과 같이 있으면 수진은 답답하고 숨이 막혀서 밤에 달리는 습관을 갖게 된다.








그런 수진의 앞에 한솔이 나타난다. 수진보다 8살 어린 정원사 한솔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남자다. 큰 키에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인디언 보조개가 인상적인 그는, 수진과 마주칠 때마다 해맑게 웃는다. 앞치마를 두르고 흙과 식물을 매만지는 그가 등장할 때마다 주변 공기는 푸른 빛이 감돈다. 그런 한솔은 수진에게 정직하고 무해한 존재 (p.19)이다.

한솔은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한솔을 보며 배우 박보검 또는 서지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임경선 작가도 요조와의 북토크에서 소설이 드라마화 된다면 이한솔 역에는 박보검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행여 수진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항상 배려하고 신경을 쓴다. 한솔은 수진에게 화분을 선물하고, 그녀의 풀린 신발끈을 묶어주며 즉흥적으로 그녀에게 고백한다. 그는 수진에게 매일 편지를 쓰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수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한솔의 편지는 메마른 수진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혁범이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수진은 한솔과 더욱 가까워지고, 수진의 마음은 한솔 쪽으로 기운다. 수진은 엄마가 어렸을 적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이유를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도 답을 얻지 못하고 상처로 남는다. 상처 많은 수진에게 한솔이 보여주는 세계는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그녀는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이름 모를 죄책감을 갖는다.



수진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한솔과 자신을 방치해두는 혁범 사이에서 갈등한다. 수진도 한솔을 사랑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 온 혁범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온 혁범이 수진과의 저녁 식사 중에 수진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며 실수로 유리잔을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극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웅크려 앉아 안경 없이 깨진 유리잔을 맨손으로 만지며 울음을 터트리는 혁범의 모습에서 수진은 이름 모를 연민을 느끼고 혁범 옆에 남아 있기로 결정하게 된다. 한솔은 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고 수진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수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어준 한솔이 불쌍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을,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이 주는 평온함을 택한 수진의 선택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 소설이 짙은 여운을 주는 이유는, 각박한 회색빛 세상에서 나보다 타인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한솔과 같은 초록 빛깔 사랑이 존재하며, 우리 안에서 존재하는 사랑의 마음을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나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네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네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주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먼저 나를 내어주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가만히 부르는 이름>, p.216, 작가의 말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서로 미움의 마음을 키우는 대신, 정원사 한솔이 보여준 적의 없는 초록 빛깔 사랑으로 내 안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이끌어 내본다. <가만히 부르는 이름> 소설의 제목처럼, 지금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드럽고 사려 깊게 불러보라고.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면서 살아가자고.










나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네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네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주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먼저 나를 내어주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P216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 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 어쨌든 이제 그것들이 내 곁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무게나 선명함, 그리고 소중함을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얻은 것이란 걸."-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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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이유 - 카르페 디엠, 시간의 의미를 기억하라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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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 번쯤은 '카르페디엄(Carpe Diem)', '욜로(YOLO)'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카르페디엄은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나온 경구로, '오늘을 붙잡으라(Seize the day)'라는 의미이고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는 뜻이다. 한동안 욜로가 유행하여 젊은이들은 퇴사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일을 그만두고 잡업을 하는 자칭 프리랜서들이 늘어났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책을 내기까지 했다. 나도 여행한 것으로 책을 내서 이 대열에 합류할 뻔 했지만 다행히 구직을 하여 프리랜서를 면하게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인생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며 매일의 일상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생이란, 잠시 왔다가는 안개와도 같은 것”이라고 성경에서 얘기하듯이,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기에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우리에게 인생의 원대한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 계획들을 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의미 있게 살다갈 수 있을까?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책 『오늘을 사는 이유(Carpe Diem Redeemed)』에서 카르페디엄(Carpe Diem)의 의미를 세 가지 -순환적(cyclical), 언약적(covenantal), 연대기적(chronological)- 시간관을 통해 고찰하며, 가장 위대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시간의 의미와 함께, 이 땅에서 한 번뿐인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통찰력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던져준다.



우리가 올바른 시간관을 갖고 있을 때에만 하찮은 것과 중요한 것, 지나가는 것과 영구적인 것, 임의적인 것과 의미심장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가 뒤돌아볼 때에만 점들을 연결해서 우리 인생이라는 대본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p.200-201)



저자는 먼저 순환적, 언약적, 연대기적 시간관을 비교하며,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언약적 시간관을 제시한다. 순환적 시간관에서 인생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으로 불교의 윤회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각자가 이전 생애에 지은 업보(카르마;karma)에 따라 환생하여 다음 생에서의 자리가 결정된다. 순환적 시간관에서 인생은 한 번뿐인 유일한 것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므로 현생의 의미가 작아지고 개혁의 의지 또한 적다. 싯다르타는 삶을 ‘고해(고통의 바다)’라고 했듯이, 윤회를 믿는 자들은 쳇바퀴 같은 생의 고해 속에서 순환의 고리를 끊어줄 구원자를 찾기보다, 요가나 명상 등을 수련함으로써 내면의 정념을 다스리며 삶을 견뎌낸다.

저자는 순환적 인생관에 대하여 변화와 개혁이 없고 진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일하려는 혁명적인 요소가 없다고 비판한다. 또, 저자는 쇼펜하우어가 했던 “역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인류의 길고 무겁고 헷갈리는 꿈일 뿐”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만일 만물이 돌고 돌아 항상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간다면, 냉혹한 카르마와 운명의 무거운 압박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 인생이 계속 돌고 도는 것이라면 역사 속에서 우리가 취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 순환적 시간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언약적 시간관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선불교에서 인간은 '아무런 잔물결도 일으키지 못하는 연못에 던져진 돌'에 불과하다면, 언약적 시간관에서 는 인간을 '연못에 던져져 잔물결(변화)를 일으키는 의미있는 존재'로 본다. 언약적 시간관에서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존재라면, 순환적 시간관에서 인간은 우연히 존재하는 여러 생명체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순환적 시간관에서 시간과 역사는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므로 그 의미가 적었다면, 언약적 시간관에서 역사와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큰 목적을 향해 발맞춰 나아가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97년, 141×376㎝,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미술관 소장



순환적 시간관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 순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계절을 거치면서 출생해서 성장하고 노화하여 죽음에 이르는 삶의 흐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기에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특별한 존재이다. 우리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자의식과, 시간의 범위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나가며, 미래를 계획하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과거로부터 배운 것들로 현재를 살아나가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모든 성인에게는 과거가 있고 모든 죄인에게는 미래가 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저자는 성경의 역사관에는 운명, 불가피성, 필연성, 또는 역사적 결정론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니체가 말한 “영원한 회귀”도 없고, 요기 베라(Yogi Berra)가 말한 “또다시 데자뷔”라는 것도 없다. 자유란 진정한 선택, 진정한 창조성을 의미하므로 진정한 변화와 진정한 혁신이 언제나 가능하다. 우리는 경험에서 배우고 이후에는 다르게 행동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 언약적 시간관에서 우리는 거대하고 확고부동해 보이는 사회 환경과 정치 환경도 바꿀 수 있으나, 훨씬 더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엉성하게 깎을지라도

결국 그것을 실현하는 분은 신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



언약적 시간관을 열어주는 것은 신의 섭리와 인간의 협력 관계, 신의 주도권과 인간의 동의를 잇는 고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들, 곧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동행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그분의 목적을 증진시키는 일에 그분과 기업가 파트너가 된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과 언약한 협력자가 되어 세상을 본래 설계되었고 언젠가 또다시 그렇게 될 상태로 고치고 회복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언약적 시간 속의 인생은 언제나 신의 섭리 아래 있다.




너는 특별하단다(You are special),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연대기적 시간관은 언약적 시간관에서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신과 영원의 관점(sub specie aetermitatis)을 배제한 '직선적' 시간관념이다. 그러나 언약적 시간관에서 우리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각자 인생의 목적을 부여받고 지음 받은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역동적으로 일하시며 우리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의지(free will)'를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우리가 선택한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명기 30장 19절)”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인간에 주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 자유의지를 타락하는데 써서는 안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선택은 항상 결과를 낳을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과 역사의 심판 앞에 책임 있는 존재로 겸손히 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간이 '지구 행성의 신'이 되는 “주인 세대(the master generation)”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이 방종하여 자유를 잘못 사용하면 스스로 중독의 노예가 되는 타락의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언약적 시간관념 안에서 이 모든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의 눈 앞에서 사는 것이라는 경외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Le Christ apothicaire prescrivant à Adam et Eve le remède du salut. Chants royaux sur la Conception, couronnés au puy de Rouen de 1519 à 152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① 하나님 앞에서 걸으며 ②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③ 이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여, 다가오는 위대한 주님의 날에 소망을 두는 모든 이들과 다함께 일하면서 겸손히 오늘을 붙잡자고 제안한다.

① 하나님 앞에서 걷기

신앙생활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토대는 하나님 앞에서 걷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성품을 묘사하려는 일은 헛수고로 돌아가겠지만, 그의 행위를 모아 보면 그 성품이 드러날 것이다.” 라고 괴테가 말했듯이, 한 사람이 말하고 행하는 방식,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항상 한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는 최상의 방법이며 우리의 심중에 의향과 동기를 드러내준다. 진리의 다층적 실재는 믿음으로 영위한 삶을 통해, 즉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삶의 실체를 통해 그 진가가 드러난다.

믿음의 삶은 단지 믿음을 진술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늘을 붙잡는다는 것은 결코 갑작스러운 충동이나 계획되지 않은 영감을 따라 무작위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새해 결심처럼 일시적 생각이나 의도가 아니다. 오늘을 붙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삶의 방식의 창조적 표현이고, 항상 시간과 역사와 인생이 “하나님 아래” 있음을 알며, 그분 앞에서 신실하게 그분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걷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사는 것이고, 그것 없이는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필수 토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② 시대의 징표를 읽기

오늘을 붙잡고 시간을 구속하고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두 번째 요건은 이 순간과 이 시간을 분별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태복음 16:3)라고 말씀하신다.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우리의 분별력 없을을 꾸짖으신 것이다.

우리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 또는 인터넷을 들고 '시대의 징표를 읽도록' 부름받았다. 저자는 성경을 색안경을 끼고 오독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현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직접적인 격려에 의해 반드시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상황에 관한 진리를 아시고, 우리의 더러운 렌즈를 닦고 우리의 눈을 열어 현재 일어나는 현상과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는 일을 볼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③ 자신의 세대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오늘을 붙잡고 시간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따르는 데 필요한 세 번째 요건은 우리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노력이다. 다윗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이였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시며 흡족해 하셨다(대상 12:32). 그에게는 분별력이 있었다.

저자는 현시대의 세속적인 유행과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말고, 다윗과 같이 분별력을 가지고 “선지자적 반시대성(Prophetic Untimeliness)” 정신으로 예수님의 가치관을 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지자적 반시대성이란 저항적 사고방식으로, C.S. 루이스는 “진보는 저항적 재료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선지자적 반시대성 정신을 갖고 사는 삶이란, 인생을 성경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시대의 징표를 읽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식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삶이라 말한다.




오늘을 사는 이유, 오스 기니스




오스 기니스는 마지막 ‘끝은 끝이 아니다’장에서 언약적 시간관에서의 끝(마지막 때)의 개념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오스 기니스 가문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중국에 뼈를 묻은 선교사 집안의 일원으로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염병에 걸린 중국인 군인을 치료하다가 전염병에 옮아 54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모님 두 분 모두 할아버지가 설립하신 허난성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다. 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동안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등의 힘든 일도 많았지만 중국인들을 섬기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항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셨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저자의 부모님이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사역이 중단되고 중국을 떠나야 했을 때, 사람들은 그 모든 사역이 낭비된 것이 유감스럽다고 그들을 위로했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낭비되었다고요?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특권을 누렸고, 현재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께 달려 있지요.” 중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평안히 잠든 가운데 세상을 떠나셨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어도 하나님의 언약적 계획 안에서는 ‘끝’이 아니라 중국의 선교에 불을 지피는 ‘시작’이었던 것이다.



오스 기니스 가문의 가훈은

“내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Spes mea in Deo est)”였다.

하나님은 모든 것보다 더 크시니

모든 상황에서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으라.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을 사는 이유(Carpe Diem Redeemed)』 , p.189



성경은 ‘끝(종말)’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악인에게는 그에 맞는 정해진 결말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끝’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종말로서의 끝(finis)’은 ‘목적으로서의 끝(telos)’과 동일하지 않다고 라인홀드 니버가 말했듯이, ‘종말로서의 끝’에 도달할 때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하심 아래 ‘목적으로서의 끝’을 향해 열려있다. 우리의 실패로 끝난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어떻게 목적으로서 끝을 맺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종말처럼 보이는 끝이 사실은 그분의 역사 안에서 중대한 목적들을 향해 움직인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업은 현실적으로 끝이 종말임을 바라보고, 소망을 품고 목적으로서의 끝을 위해 일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과 협력할 때 우리는 종말 속에서도 그분의 더 높은 목적을 섬길 수 있다. 심지어 그 높은 목적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능력을 벗어날 때에도 그럴 수 있다. 신실하게 행한 일과 믿음으로 영위한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인간의 도성은 항상 줄줄이 무너지겠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하다. 십자가의 끝이 놀라운 부활의 목적으로 이끌었듯이, 마지막 때의 묵시는 언젠가 메시아 시대의 회복으로 이끌 것이다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끝은 끝이 아니다. 믿음은 낙심하는 방향으로 자라면 안 된다. 믿음은 항상 그 소망을 통해 격려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어둠과 낙담과 낙심의 시기에, 심지어는 폭력과 전쟁, 죽음과 혼란의 시기에도 선지자의 메시지가 새롭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히브리서 2장 4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어둡지 않은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할 뿐이다.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대해 다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거울로 희미하게’ 볼 뿐이다. 슬프고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헷갈리는 과거의 모든 부분, 온갖 악과 수수께끼로 채색된 과거는 메시아의 재림 때 밝히 드러날 미래의 빛에 조명되어 말끔히 풀릴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설득』에서 얘기했듯이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고, 시간 역시 최후의 묵시(apocalyptic), 곧 베일이 벗겨지는 날 온전히 설명될 것이다.

“그분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도래할 때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소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 신뢰하고 순종하고 일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뒤돌아보며, 소망을 품고 앞을 내다보며 살아간다. 우리가 하나님의 협력자이자 공저자로서 크고 작은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붙잡고 시간을 구속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인생은 짧지만,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인생을 최대한 선용하고, 하루하루를 붙잡도록 부름받았다. 가장 위대한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걸으면서,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고 애쓰면서, 항상 우리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면서, 다가오는 위대한 주님의 날에 소망을 두는 모든 이들과 다함께 일하면서 겸손히 오늘을 붙잡자!




우리가 올바른 시간관을 갖고 있을 때에만 하찮은 것과 중요한 것, 지나가는 것과 영구적인 것, 임의적인 것과 의미심장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가 뒤돌아볼 때에만 점들을 연결해서 우리 인생이라는 대본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P200

시간과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중요성이라는 한 쌍의 진리 아래. 시간과 역사는 어디론가 가고 있고. 우리 각자는 본질적으로 유일무이하고 중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과 세대, 나아가 전체 역사 안에서 담당할 독특하고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날 우주, 언젠가 무의미하게 사라질 우주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기이하고 우연적인 존재가 아니다.
- P49

하나님은 인격적이셔서 역사에 관여하고 인간과 교류하신다.- P51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주로서 언제나 시간 바깥에 계시고 시간 위에 군림하신다.- P69

Live for today(오늘의 위해 살고); Plan for tomorrow(내일을 위해 계획하고); Remember yesterday(어제를 기억하라). -Aesop(이솝)- P9

Beware the barrenness of a busy life.(열매 맺지 못하는 바쁜 생활을 경계하라.) -Socrates(소크라테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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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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