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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평점 :
신데렐라.
이 얼마나 익숙한 이름인가?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천천히 젖어오는 망상이라면 왕자를 만나 하루 아침에 최고의 왕비가 되는 행운의 여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니 오해하지 마시길. 게다가 주인공들은 네 명의 남자들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성공을 꿈꾸고 쾌락을 즐기고 안락함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 4명의 주인공 나에게는 너무 낯설다. 변태같고 냉소적인 이 캐릭터들에 공감이 안가는 건 나뿐인걸까?
힘들게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자꾸 의문이 든다..왜? 왜? 왜?
너희들은 그런식으로 말을 하고 살아가는 거니? 대 놓고 묻고 싶을 정도다.
음...역시 프랑스문학은 나에게 버거웠던 거다. 영화도 왜 프랑스 영화는 그렇게 어렵고 난해한지 항상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문학도 별반 다르지 않음이다. 물론 읽는 동안 만나게 되는 묵직한 삶의 문제점들, 인간들의 고뇌와 갈등은 나에게 ‘사유’하는 힘을 발휘하게 하기도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개운하지 않다는 게 문제점이랄까? 휴...
성공한 증권 브로커였지만 이 모든 것이 한낱 물거품으로 끝나고 쫒기는 로랑 달. 그나마 이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자 공감이 가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그 외에 티에리 트로켈과 파트리크 네프텔. 그리고 이 책에서도 작가로 등장하는 에릭 라인하르트.
어쨌든 이들은 현대사회의 희생양이자 이단아들이다. 거침없는 욕망과 속세의 물결에 휩쓸려 자기 자신도 잃어버린 채 삶 속에 부유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특히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목에 포크를 꽂고 자살한 파트리크 네프텔의 아버지는 제 3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나에게조차 충격적이고 무섭다. 그러하니 그 죽음을 목도한 파트리크 네프텔이 이 험한 세상을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이미 그의 삶은 깨진 유리조각이 되어 더 이상 온전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 이 집은 이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종말과 죽음의 장소일 뿐. 그 무엇도 새롭게 창조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 생각이 파트리크 네프텔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때의 강렬한 충격이 그에게서 외부 세계를 빼앗았고, 그를 침묵을 지키는 벙어리로, 무감각하고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계획, 꿈, 미덕, 야망, 돈, 성공, 자신감, 책, 영화, 사랑, 우정, 직업에 대한 모든 생각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 P. 197
뭐랄까. 빽빽한 활자의 숲을 거침없이 달리다 이제야 목적지에 도달했으나 마음이 참 찜찜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 주변에서는 그렇게 흔히 볼 수 없을거라고 믿었던 이 주인공들이 어느 새인가 한 번씩 타락을 꿈꾸는 나의 모습, 혹은 처절하게 삶에서 패해 널부러진 주변 누구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이 기이하면서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 작가. 이 욕망과 세상에 유린당한 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에 대해 다양한 각도와 시각으로 관찰하고 드러내놓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다음 번에는 좀 더 인간적이고 희망적인 우리네 얼굴도 바라봐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