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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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내 대답은 좀 빠르다 싶게 튀어나왔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p.33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제목 때문에 무심코 집어든 책이었다. 꽤나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줄거리를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또 뭐 빵빵한 상도 탔다고 하니 한번 믿어보고 싶어 선뜻 구매를 했다.

읽는 내내 뭔가 큰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라 내심 기대했지만 그런 재미보다는 글을 읽는 재미를 만났다고 하면 옳을까? 어떤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의 내용이 재미있다기 보다는 나는 작가가 주인공들을, 상황들을,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런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충격적인 반전까지 더한다면...

사실,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 도대체 내가 이해못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어도 집중을 못하고 그런 까닭에 읽은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심각한 디지털 증후군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지적했던 그런 유형의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토니 웹스터만 몰랐던(?) 그의 인생과 전 여자친구 베로니카에게 벌어진 불행한 사건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반전인지도 모르겠고...

웃긴건 이 책의 반전, 결말이라는 문구로 네이버에 검색어가 완성되는 걸보니 나같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가 보다.

 

그렇담 뭐가 문제였을까?

뭔가 의도하지 않은 채로 관객들을 속이는 마술사처럼 독자를 속이려 했다면 작가가 너무 과욕을 부린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각치 못한 반전이나 결말을 대했을때 아차! 싶은 기분을 느끼는게 훨씬 솔직하다고 느끼는 편이다. 물론 줄리언 반스의 글구성력이 수준이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저자의 의도가 이렇게도 어렵게 이해되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다.

 

다만, 그가 말하려는 인간이 반복하는 사실과 기억사이의 왜곡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를 빚는지, 또 왜곡된 기억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 얼마나 끔찍한 상처를 생성해내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책 제목때문에 호기심이 들기는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제목이 가진 묘한 뉘앙스가 더욱 인상적으로 기억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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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최후의 날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빅토르 위고 지음, 한택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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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이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세대를 이어 두고 두고 읽히는 명작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남긴 책에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사형수에 관한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사형수 최후의 날.

제목만 봐도 좀 섬뜩하다 싶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사형수가 보내는 최후의 날은 어떨까하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미국 사형수들이 먹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제목으로 사진들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식사는 다양하고 맛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맛보는 마지막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맛일까? 아니면 맛조차 못 느끼는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올까?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먹을 것을 방금 전에 가져왔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세심하게 잘 차린 식탁이었고, 닭고기와 또 다른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기왕 차린 것! 먹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처음 입에 넣은 모든 것이 도로 밖으로 나왔다. 그처럼 모든 것이 나에게는 쓰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듯했다.” <본문 중>

 

사실 이 책은 1829년에 빅토르 위고가 익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그리고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알려진다. 작은 감방에서 하루 하루를 견뎌내는 사형수의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미련, 고독감과 피폐해지는 정신력이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이 소설이 더욱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건 독자들에게 던져준 ‘궁금증’이다.

책 속 주인공인 사형수는 현재 감방에 갇혀있는 자신의 신세와 느낌,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사랑하는 가족, 특히 딸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쩌면 단두대의 날카로운 목이 내려치기 바로 직전, 영화처럼 사형이 중지되는 극적인 생존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교도관과 옷을 바꿔 입고 도망칠 궁리를 하기도 하고...

 

그러나, 정작 그가 왜 사형수가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이야기가 전개되어 독자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그의 과거와 죄를 만들어본다. 빅토리 위고는 초판이 출판되고 3주 후가 돼서야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저자를 알게 된 이상 많은 사람들이 살인사건의 경위를 첨부해달라고 요청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즐거움일수도 있고 작품 속에 좀 더 빠져 들기를 바라는 의도일수도 있다. 역자는 독자들이 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느끼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형수의 이야기에 동참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글쎄..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의 의도대로 적극적으로 사형수에 공감하며 이해하게 된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죽음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에게 공포, 극한의 공포 그 자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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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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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이라는 말이 점점 실감나는 요즘이다. 정치권이야 이미 검은 돈이 가장 활기를 띄는 곳이니 말할 필요 없고, 물질 만능주의 정신이 윤리도덕적인 면까지 변화시키는 게 문제다. 10억을 벌수만 있다면 나쁜 짓을 해서 감옥을 다녀와도 좋다는 초등학생들의 설문조사를 그냥 허허 웃고만 지나갈 수 있는지...오늘 읽은 이 책을 보니 생각보다 더욱 끔찍한 미래가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이 커지는 느낌이다.

 

사실, 이 책은 소재만으로도 읽고 싶게 만든 파격적인 줄거리를 가진 책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사회에서는 돈 많은 노인들이 값을 쳐서 젊은 몸을 대여(렌탈)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엔더라고 불리는 7,80세의 노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돈으로 10대의 몸을 빌려서 생활한다는 건데 처음에는 상상력이 좀 뛰어나는 정도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책을 점점 읽어나가면서 왜 이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거지?라는 의문을 스스로가 품게 되었다. 즉 소설치고는 너무도 그럴듯한 이야기에 넋을 잃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과학기술적으로도 왠지 조만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야기의 아귀가 하나 하나 들어맞아 가는 과정들이 섬뜩할 정도였다. 거기에 스릴러와 반전까지... 정말 간만에 쉬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간 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역시 인간의 욕망을 위해 완벽하게 복제된 또 다른 인간의 삶을 조명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각성을 요구한 바 있었다. 이처럼 예전에도 클론이라 불리는 인간복제 소재를 가지고 우리가 가진 그릇된 욕망을 끔찍하게 표현한 책들이 꽤 있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만다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거대한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를 주축으로 하면서 돈만 있으면 영원한 젊음마저도 거래할 수 있음을 비꼬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댄 멋진 소설이지만 결코 소설로만 즐길 수 없는 이 묵직한 기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삶이 소설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점점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 때문에라도 더 깨름직함을 던져주는 이 소설, 스릴러가 가미된 한 편의 멋진 공상과학 소설이기는 하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다가올 미래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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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프랑수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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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고전작품은 쇼핑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조르주 상드의 1840년대 작품이다. 사생아 프랑수아의 고단했던 삶과 사랑에 눈뜨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신파적이면서도 애절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읽혀졌다.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사생아’의 뜻을 찾아보면,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대받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의 일부 기독교국가에서는 일부일처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어서 이러한 사생아의 탄생을 탐욕과 부정의 열매로 규정해 비인도적인 학대도 심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생아 프랑수아 역시 고아원에 버려졌으나 그를 키웠던 여인은 젖을 뗄 무렵 사망하고 그는 또 다시 50세의 노처녀 자벨에게 맡겨진다. 자벨이 프랑수아를 키우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에서 사생아들에게 지급하는 약간의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또 심부름꾼으로 쓸모도 있고 해서였다. 그렇다고 아무런 온정도 없이 그저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프랑수아를 맡은 건 아닌 듯 보였다. 중간에 그를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수아는 사생아에 대한 개념조차 모른 채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천하게 생각하여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언젠가 자벨 역시 자신을 다시 고아원으로 보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라서(진짜 버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으니) 더더욱 누군가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로 극심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모습들이 그의 행동, 말투에 하나하나 베어 나왔고 나는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 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극에 달했다.

 

“프랑수아, 벌써부터 그렇게 무조건 참기 시작하면 정말 한이 없을 거야.”

그러자 프랑수아가 펄쩍 뛰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

 <p.46>

 

프랑수아는 자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친절한 우리 엄마! 엄만 왜 내게서 떠나려고 해?

내가 엄마가 보고 싶어 슬픔에 잠겨 죽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기에 엄마가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야?...(중략)

엄마, 날 그냥 있게 해 줘. 이렇게 빌게, 응? 항상 엄말 도울게.

엄말 위해 일할 테야.

내가 맘에 안 들면 날 때려도 좋아. 나 아무 소리도 안 할게.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하더라도 날 보내진 말아 줘.“

<p.55>

 

아...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버려지지만 않는다면 때려도 좋고, 죽도록 일만 시켜도 좋으니 제발 다시 양육원에 보내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아프게 상상되었다.

하지만, 이들 모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주인집 마님 마들렌은 프랑수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자신이 그의 어머니가 되어주겠노라고 선언해 버린다.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몰래 이들 모자를 도와왔던 그녀는 워낙 박애정신이 투철하고 심성이 착했기에 프랑수아가 두 번 버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그를 제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라 외쳤고 그녀의 이런 선언을 들은 프랑수아는 그때부터 오직 마들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라 각오한다. 마치 영화 브레이킹 던에서 늑대인간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되어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운명에 놓이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프랑수아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서서히 개척해 가는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평생 엄마로 모시고 아끼고 보호할 것이라 맹세한 마들렌의 곁을 억지로 떠나야 했지만 그는 한시도 그녀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고통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바로 이 부분부터 조르주 상드는 프랑수아를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비참한 운명을 살아야 했지만 그는 마들렌 못지않게 인정이 많고 온순하며 가장 인간다운 면을 보여준다. 물욕과 색욕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는 가진 것 하나 없지만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이 된 그의 모습은 완벽한 외모와 영리함까지 겸비했으니 더욱 매력적이기 까지 하다. 이 프랑수아라는 인물을 소설 전면에 내세운 작가는 그가 사생아임에도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라는 걸 부각시킴으로서 당시 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관행들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다만, 프랑수아가 한 여인에게 품은 연민과 애절함은 이해가 가지만 사랑으로 바뀌는 변화의 감정은 완급조절에서 아쉬움이 있다. 너무 급하게 감정선의 변화가 생겨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소설적 재미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남장여인으로 살아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던 저자 조르주 상드가 어떤 인물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싶었을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조르주 상드>

 

당시 상드가 남장여인으로 행세했던 건 여성의 작품은 출판하지 않는다는 당시의 사회적 차별에 항의하며 남성 문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겠다는 그녀만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는 평생 ‘사랑’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삶을 노래했으니 어쩌면 이 책의 주제가 남녀간의 질기고도 뿌리 깊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 조르주 상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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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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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라는 책은 몇 해 전 서점에서 일하는 후배가 선물한 책이었다. 지방의 대형서점에서 근무하는 그 후배는 주말에 쉬지 못하기 때문에 평일에 휴가를 내어 한 번씩 서울로 올라와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 역시 겸사겸사 서울 살면서도 가보지 못한 서울구경을 그녀와 하면서 즐겁게 놀고는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약속장소에서 나를 보자마자 서점으로 끌고 가 책 한권을 선물했는데 그 책이 바로 <완득이>였다. 올라오기 전에 주려고 한 권 사두었는데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면서. 그럼 다음번에 만나서 주면 되지 같은 책을 뭐하러 또 사냐고 했더니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얼른 읽었으면 싶었다며 추천해준 책이었다.

그녀 말대로...난 그 책을 정말 맛있게 읽었더랬다. 작년에 개봉된 영화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이 책 <가시고백>은 그렇게 나에게 대단한 첫인상을 안겨준 김려령의 신작이다. 작품이 어딘지 모르게 완득이와 많이 닮아 있지만 여기에는 또 이 책만의 재미와 감동이 한 아름 들어있었다. 사실 내가 김려령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이 ‘젊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이제는 접할 수 없는 고딩들의 팔딱팔딱 살아있는 은어나 속어를 엿보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고민과 세상이 파릇파릇 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동안 피폐한 삶을 노래하는 어른들의 고뇌 가득한 문장들을 접하다가 한 번씩 이런 김려령의 ‘젊은 책’을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흥이 나고 또 세상이 그렇게 파래 보일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그냥 읽기만 해도 내 감성까지 다시 회춘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성은 맛깔스런 캐릭터들의 조합을 들 수 있다. 이번에도 완득이의 ‘똥주선생’을 능가하는 ‘용창느님’을 탄생시켜 아이들이 단단해지도록 애정을 아끼지 않았고 ‘완득이’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싱싱한 아이들을 이번에는 무려 4명!!이나 등장시켜 주었으니 황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아이들이 가슴 속 가시들을 빼내며 성장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뭉클하고 안쓰럽던지...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는 천재적인 도둑놈(?) 해일은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손끝을 타고 태어났다. 목표물을 확인하는 동시에 바람처럼 가볍게 공기를 가르고 물건을 손에 넣는 기술이 기가 막히다. 생계형 도둑도 아니고 그저 습관처럼 몸에 체화되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도 못하는 요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어린 도둑이다.

그런가 하면 친아빠를 미워하고 부정하면서도 힘껏 내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지란은 그녀만의 방식으로 아빠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열혈 고딩이고,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친구 한 놈 옆에 두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게 했던 멋진 녀석이 진오였다. 그리고 18세 소녀의 사랑에 대한 감수성을 제법 말랑말랑하게 잘 표현해 주었던 다영이까지 이 사총사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자 책을 통해 새로 만나게 된 친구들이었다.

 

책은 각자 가슴속에 크고 작은 가시들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우정을 쌓다가 마침내 그 가시들을 하나 둘 빼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힘겹지만 그들 곁에는 이미 그 고통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켜줄 친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어미닭의 품 없이 따뜻한 보살핌만으로 껍질을 깨고 부화한 병아리처럼 그 녀석들 역시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보듬어주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있어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가슴속에 콱 박힌 가시를 제 손으로 뽑아낼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갖게 된 아이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쯤 나는 알게 되었다. 가시가 박혔던 자리에는 이미 상처보다는 사랑이 몽글몽글 자라나고 있었음을 말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온기를 듬뿍 받으면서...

참 따뜻한 김려령표 이야기, 이번에도 성공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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