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
승한 지음, 하지권 사진 / 불광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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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는 단짝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런 우리들을 보면 다른 친구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하면서 묻고는 한다. 어떻게 너희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어?라는 말을 입 속에 가득 담고서.
그녀와 나. 나이와 성별만 같을 뿐,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취향이며 식성, 기호, 하다못해 외적인 모양까지 하나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무척이나 내성적인 반면 그녀는 전교생이 알 정도의 외향성을 지닌 쾌활한 친구였고, 내가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면 그녀는 말로 단순명료하게 결론 내 버리는 쪽이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에 끌려 둘 도 아닌 친구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졸업 후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는 재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트러블이 생겨났고 한번 비뚤어진 마음은 좀처럼 복구되지 못했다. 물론 그 당시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어떤 자괴감과 열등감이 그런 관계의 원인이 되었겠지만 항상 뭔가를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 있던 우리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다 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리두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서로의 오해가 쌓이고 관계가 서먹해져버려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즈음,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누군가 한자 한자 정성스레 써내려간 손 편지를 받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더욱 놀랬던 건 봉투에서 그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봉투를 뜯어 두툼한 편지지를 꺼내는 데 알싸한 산 냄새가 코끝을 향기롭게 스쳐갔다. 그녀는 지금 전라도의 어느 산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고 있다고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템플 스테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는데 며칠 간 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정신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라했고 그녀는 대학에 가서 처음 맞는 여름방학을 그곳으로 정했다했다. 남들은 유럽이니 일본이니하며 해외여행에 심취했음이 분명한데 홀로 사찰에서 수양중이라니... 나는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역시 그녀답다라는 생각과 함께.
그 날 이후 우리는 예전의 관계를 초고속으로 회복했고 그녀는 지금도 가끔 산사기행을 떠나곤 하는데 난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마음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 책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을 읽다보니 그 옛날 그녀와의 일이 문득 떠올랐고 요즘 같이 심란함을 느끼는 내가 한번쯤은 시도해보아야 할 여행길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하는 중이다.

이 책을 쓰신 승한스님은 전국의 24개 산사를 돌아보는 동안 독자들에게 자연과 삶의 진리를 맛보는 신비로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보물처럼 고즈넉이 자리 잡아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사들을 찾아 함께 여행하면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상처받은 채 꼭꼭 닫혀있던 우리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 수 있는 그곳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이끌어주었다. 크고 작은 산사들에서 하룻밤 묵고 그곳에 얽힌 설화나 옛 이야기를 들으며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몸은 여기에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벌써 그곳에서 최고의 휴식을 맛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 길 한 걸음 한 걸음에 스님의 깨달음이 더해져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삶의 물음들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답하고자 마음먹었고 조심스럽게 그 물음에 답을 해나가는 동안 번뇌로 가득했던 마음에 드디어 작은 햇살이 비추는 묘한 경험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산사기행을 통한 치유의 길이었구나 싶다.

여태까지 나는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환(幻)으로만 살아왔다. 또 탐·진·치, 색·성·향·미·촉·법,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감옥에 나를 스스로 가두고 살았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갇혀 산 것이다.
나는 오늘 삼천사 마애불 앞에 엎드려 나에게 묻는다. 못나면 못난 대로, 뭉툭하면 뭉툭한 대로, 기울어지면 기울어진 대로 앉고 서서 나도 마애불 같은 눈과 코와 입술로 살아갈 순 없는가? 내 삶의 상감무늬를 새길 순 없는가?
화두(話頭) 하나 들고 산짐승처럼 걸어 나오는 나에게 삼천사 마애불이 속삭였다.
“너 없이 살아봐!”
“너 없이 살면 돼. ‘나’가 없다는 것을 알면 진아(眞我)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어.”
[본문 중]

살면서 점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힘들어지고 아무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본래의 나와 대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이는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정신에까지 이어져 육체마저도 허우적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우리의 아름다운 산사를 찾아 고요하게 정적을 깨는 풍경소리도 듣고 눈을 감은 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면 스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헤어나올 수 있으리라. 그리고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상처들을 느끼면서 잊고 있던 진짜 자유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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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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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의료와 관광을 접목한 일종의 신개념 서비스인데 환자는 자신에게 맞는 의학기술을 찾아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로 방문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새로운 곳의 관광, 휴양을 더하는 그야말로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리미엄 관광서비스’가 아닌가 싶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건 꽤 오랜 전 한국관광공사에서 잠깐 일을 할 때였다. 그 때 해외마케팅 부서에서 마케팅 관련 번역 자료를 찾고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태국과 싱가포르등이 의료관광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관광사례나 마케팅 기법을 번역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의료관광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느꼈었던 기억이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가깝기만 하면 쿠바로 의료관광을 가도 좋겠다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야 남미의 못 사는 나라 중 한 나라, 혹은 아직도 공산국가인 무서운 나라이겠지만 의료기술이 이만큼이나 발달한 곳이라는 걸 아는 이는 별로 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중의 하나이고.

 

하지만 쿠바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백신과 의약품을 개발하고 수출을 통해 거대한 외화획득이 가능한 나라이고 이들의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특히 수막염 B형 백신은 세계 유일의 백신으로 평가받았을 정도이다. 선진국보다 훨씬 싼 값에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돈 없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책 속에 나온 다른 예를 한 번 들어보자면,

1990년 어느 스페인 여성이 자동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모든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했지만 쿠바의 국제 신경회복 센터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고 불과 2개월만에 걷고 말을 하였다하여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어디 이뿐인가?

쿠바에서는 현재 ‘기적의 계획’이라 불리는 안과치료 프로젝트가 시행중이다. 볼리비아, 브라질, 자메이카인 등 15개국 이상의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환자들이 특별기를 타고 아바나로 날아와 수술 후 눈이 보이게 되어 돌아간다. 심지어 별 다섯 개짜리 관광호텔까지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박비,식사비는 물론 입국 경비도 무료이다. 이 시기에는 돈이 있어도 이 호텔들을 이용할 수 없고 심지어는 있던 사람들도 퇴거명령을 받는다. 왜냐구? 이 가난한 환자들에게 먼저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까지 17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의 수혜자가 되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들의 의료체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이고 그 기초도 무척이나 탄탄하다. 마을에서 환자와 함께 사는 패밀리 닥터 제도는 물론 외지, 빈곤하고 더러운 시골 촌 구석에서부터 실행되어지는 의료봉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그 위대한 탄생에 빛을 발한다.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의 경제봉쇄로 엄청난 위기에 닥쳐왔을 때 조차도 그들은 의료와 복지부분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 군사비를 삭감했을지언정. 이러한 노력이 바로 지금의 세계적인 쿠바 헬스 케어 시스템을 완성한 데 힘을 보탰고 이 제도를 이해하고 잘 따라준 많은 의사들의 희생정신도 결코 작지 않다. 혼자서만 잘 사는 엘리트적 욕망을 누르고 다 함께 잘사는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했던 그들의 소망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들은 미국의 방훼로 아직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의약품과 기술을 보유하는데 그것마저도 돈벌이에 급급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고 로열티를 받아 더 많은 최첨단 기술과 연구에 사용하지만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판매 로열티를 받지 않고 있다. 이유는 제 3세계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게 정한 것은 제 3세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건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p.102

 

해마다 300만 명의 아이들이 폐렴구군으로 목숨을 잃지만 미국산 백신은 4번의 투여량에 250달러나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쿠바는 값싸고 효과 좋은 백신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다.

자, 어떤가? 이런 곳이 바로 쿠바라는 나라란다.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이 나라가 이렇게 누군가의 프로젝트대로 수행되어 질 수 있었던 건 아직 공산국가이고 통제받는 국민이라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나고 자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의료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 쿠바의 헬스케어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데 그 이유는 옛날에는 혁명의 이름으로, 독재의 그늘에서 사회가 발전될 수 있었다면 지금 쿠바의 젊은이들은 너무 많이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까놓고 얘기해서 해외관광객을 하룻밤 상대해 받는 접대비가 그들 한달치 월급을 넘기고 돈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를리 없는데 그들이 언제까지고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자신들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겠냐는 말이다. 하물며 고급기술을 가진 의사들이 선진국들의 장밋빛 러브콜을 거부하기란 실로 어렵지 않겠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자국은 물론 해외에서 봉사하며 수행해온 놀라운 업적들은 책을 읽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제 3국에 행하는 아낌없는 의료 원조는 물론 의사란 비즈니스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하는 의사들. 돈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무상으로 교육시키는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의 정신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삐까뻔쩍한 첨단시설을 배경으로 담당의사랑 1분도 채 대면하기 어려운 대형병원이 아닌, 다 녹이 슬어 삐걱대는 의자에 앉아 진료를 받더라도 내 손을 잡고 내 아픔을 진지하게 듣고 처방해주는 그런 인간적인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란 생각이 오늘따라 더 간절해진다.

 

La mejor medicina es la que previene. (최고의 의료는 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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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의 공책
공효진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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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상당수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연예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연예인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고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기도 한다. 

특히 예쁜 여자 연예인이 착용하는 옷, 가방, 악세사리는 걸어 다니는 광고라고 할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공효진’이라는 한 명의 대한민국 여배우가 있다. 분명 그녀는 연예인이다.
대중들에게 예쁘게만 보이고 싶고 보는 시선 때문에라도 멋지게 꾸미고픈 여배우가 모피코트 하나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
이유는 그 제품이 단지 여우의 털이라는 것만으로.
이뿐만이 아니다. 집에서는 예쁜 화초를 키우고 강아지와 함께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한다. 환경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철저히 분리배출 할 뿐 아니라 돈 좀 번다고 쓸데없이 비싸고 큰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렇게 소박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그녀가 지구와 지구인들에게 좀 슬프지만 결코 절망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공효진의 공책』이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시내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칸에서 이 책을 발견 했을때만 해도, 저자의 이름이 공효진이라는 걸 볼 때만 해도 이 책이 우리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흔한 다른 연예인들의 책처럼 패션이나 다이어트,미용에 관한 책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친해진 어느 지인께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공효진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연세가 좀 있으시다^^) 이 책을 읽고는 참 괜찮은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 배우에 대해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 출연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가 쓴 책 내용에 감동했다고 하는 말들이. 나는 저자처럼 열혈 환경보호자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도 열심히 지구를 지키는 방법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참 많았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한 번 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거창하게 환경운동가의 흉내를 내지는 않더라도 평범하게 지구를 보호하는 방법들을 눈여겨보는 그런 수준의 사람일 뿐이다.
그러다가도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서 알면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 지구파괴 행위를 하기도 하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럴 땐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또 한번 자극을 받고 반성하게 되니 참으로 고맙다.

더욱 놀라운 건 저자의 이름값으로 마케팅하려는 뻔한 출판사들의 출간 제의를 그동안 거절해오다가 이번 책은 저자 스스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발간하게 되었다는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행동하는 청춘은 이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에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녀라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놓기 쉬웠을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녀는 많은 옷들을 협찬 받고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연예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예쁜 옷이라고 덥석 입지 않는다. 그것이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벗겨 이용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지구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자며 환경문제를 고민했던 그녀가 몇 마리의 여우가 희생된 여우털을 입고 브라운관에 선다면 사람들은 그녀의 진정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비난의 화살을 돌릴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책을 쓰기가 많이 고민스러웠을테다.

하지만 이런 고민마저도 책 속에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그녀가 난 더 신뢰가 갔다. 그녀 역시 많은 순간 갈등하고 그 욕망에 져버리기도 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도 사고 싶은 예쁜 퍼코트를 고민하다가 사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그렇게도 사고 싶어했던 퍼코트가 반값도 안하는데 사다줄까?라는 은밀한 유혹을 하는 전화 한통을.
그녀는 그만 오케이하고 받았지만 결국 쉽게 입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이성과 의지가 욕망을 압도하게 되었다고 실토하는 이 여배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그녀는 책 속에서 지구를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법과 마음, 또 여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욕망을 짓누르고 조금은 불편해야 한다는 생각과 행동을 예쁘게 보여주고 있었다. 청구서에 붙은 비닐도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것부터 한 번 사용한 지퍼백을 재활용하는 이야기까지 이는 실제로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그녀야말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지구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도 지적했지만 밤에도 환하게 켜져 있는 전기조명을 볼 때면 그 전력소모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저자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얼마나 많을까?
하나하나의 작은 생각과 배려, 행동들이 모여서 얼마나 큰 일을 해내는지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목소리와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하다. 

 

나 하나가 책을 낸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거야. 좀더 큰 목소리와 큰 힘이 필요하지. 사실 나는 그러니까 책을 내는 이유가, 좋은 영향을 주려는 것보다, 안 좋은 영향을 좀 줄이고자 하는 거야. (p.208)

좀 더 큰 힘과 목소리가 하나 되어 지구가 건강해지는 그 날까지 그녀와 나 모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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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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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눈이 즐겁다는 여름이 돌아왔다.  

덕분에 보여주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한 남녀의 고통스런 다이어트도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뭐 여성들이야 1년 내내 다이어트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옛날 문헌이나 고대문명의 유적지를 찾아보면 배도 볼록 나오고 살집이 두둑한 여인이 다산과 부를 상징한다고 했건만 시대가 바뀌니 당연히 미의 기준도 변하는게 맞나보다.
그나마 과거 우리는 복스럽게 생긴 여인을 맏며느리감이라고 치켜세운 것도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강남 며느리처럼 보이려면 윤기 좌르르 흐르는 화장기 적당한 피부에 살짝 마른듯한 몸집, 그 위에 단아한 옷을 입어야 얼추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다이어트는 여성들에게 더 혹독하기만해서 뚱뚱한 여성은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인양 취급받은 지도 오래되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비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언제까지 비틀어진 시각으로 인간의 몸을 속박하고 집착할 것인가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이 재미있게 소개된 책이 나와 읽었는데 [Fat, 팻 -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우선 이 책에서 언급한 fat은 단지 비만하다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역적, 문화적, 문맥상으로 ‘지방’ ‘살’ ‘기름진’ 등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비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나 어떤 실용적인 정보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른 책을 찾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문화인류학 교수인 저자들이 fat에 얽힌 문화적이고 독특한 이야기거리를 찾아내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덧붙였을 뿐이다. 따라서 날씬함만을 강조하는 현대인들에게 이건 나쁜게 아니겠냐는 비판같은 것도 없고 그저 이런 관점도 있고 저런 문화도 있다는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것으로 나는 이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니제르에서 저자는 거리낌없이 말하기로 유명한 여자에게 뚱뚱함의 매력이라는 주제를 어렵게 꺼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질문한 이의 순진함에 짜증을 내며 쏘아붙였다.
“이봐요. 저기 푹신한 요 위에서 자고 싶어요, 아니면 이 딱딱한 땅바닥에서 자고 싶어요?” (p.39)

이 부분에서 나는 풋!하고 가볍게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쩜 이리도 유쾌한 비유를 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가 찾아갔던 니제르는 여자들이 뚱뚱해지고 싶어서 마음껏 먹는 환상의(?) 나라였고, 거대한 힙과 뚱뚱한 몸은 성적매력이 물씬 풍기는 몸매로서 모든 이들의 선망이 대상이 된다. 게다가 살찌는 비법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데 이것을 많이 말해서도 안된단다. 어떻게 살을 찌웠는지 자주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켜 그 아이는 살이 빠지거나 아프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이쯤되고 보니 인간이 정해놓은 어떤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제한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그곳이 전부인양 믿고 오류를 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만 니제르의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른 몸을 이상적으로 선호하다보니 각 나라마다 fat에 대한 이야기거리가 정말 풍부하다. 미국으로 넘어가 보자.
영어에서 ‘뚱뚱한 fat'은 ’모아놓은 재산 the fat of the land', '두둑한 지갑 fat wallet', '수입이 좋은 일 fat job' 등의 표현을 써 ‘부유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만큼 부와 비만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진다고도 할 수 있는데 뚱뚱해질 정도로 과소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경제력과 부를 가졌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갱스터 래퍼들은 잘 사는 것과 잘 먹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들에게서 엄청난 거구의 랩퍼들이 자주 발견된다. 




[Illustrator: Gurdev Baljeet]


1인당 성형외과 의사의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브라질은 또 어떤가. 한 달에 150달러도 벌지 못하는 인구가 전체의 60%가 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이 나라에서 한 해에 행해지는 성형수술이 35만건이라면 상상이 가는가. 게다가 이들에게는 아름답기 위한 수술부터 살을 빼기위한 의료행위까지 성형은 숨기고 비밀스럽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며 과시하는데 이는 직설화법으로 하자면 자기가 성형수술을 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수술이 그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야. 그건 바로 사회적 지위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그만한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말하는 건 멋진 일이지. 그래서 클라우디아나 클라우디아 가족들이 수술 이야기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거야. 그건 클라우디아 가족이 돈이 많다는 걸 보여주거든.” (p.208)

어느 문화에서는 성적매력을 위해 살을 찌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가 하면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경제력과 부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살을 빼고 성형을 한다. 그런가하면 백인 여성의 뚱보 포르노는 통용이 되어도 풍만한 흑인 여성의 포르노는 유통되지 않는 인종차별이 이런 부분까지도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저자들은 fat에 관한 각각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과 맥락들,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추어지고 누락된 ‘스토리’들을 재구성해나가면서 우리에게 비만과 뚱보에 대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 여주인공의 열혈팬들에겐 조심스레 사과하는 바이다!]

자, 이쯤되면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니제르로 날아갈 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금의 대세에 맞춰 평생 S라인을 염원하며 극성스럽게 살 것인가 그건 순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다. 이 책에서만큼은 단지 뚱뚱하다고 해서 죄가 된다고 보지는 않으니까.
다만 나에게 있어 세상이 내세운 잣대에 맞추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인식의 차원이라는 것으로 사고가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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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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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힘을 북돋아주는 주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책. 총천연 칼라의 익숙한 신뽀리가 등장하는 만화가 아닌 일상의 풍경들이 잔뜩 담긴 포토에세이... 그래서 좀 낯설었다. 박광수라는 저자는 나에게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로만 기억되던 작가였으니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책을 펼치니 그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온전히 담았다는 사진과 감성이 풍부한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프로를 흉내낸 것 같은 멋만 잔뜩 들어간 사진도 아니었고 입이 쩍쩍 벌어질 만큼 매혹적인 사진도 아니지만,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그렇게 정겨운 풍경들이 오히려 마음을 더 뒤흔들어 놓는다.
게다가 그 옆에 메모처럼 살짝씩 얹어놓은 그의 단상들은 지금 그의 삶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라는 감상과 함께 나의 생도 이런 방황과 갈등이 발견되는구나 싶은 단조로운 공감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좁은골목길을거닐어라.
   양어깨가골목의담벼락에닿을듯말듯한,
   혼자만이걸어갈수있는좁디좁은골목길을거닐어라.
   그곳에서마주오는자신과의생각과마주쳐라.
   행여몸을뒤로돌려서온길을거슬러피하지말고
   온전히자신의깊숙한생각과마주하라.
   삶의중요한결정들은결국혼자밖에할수없는것처럼,
   자신이자신의삶속에서어떤생각과어떤태도로
   살아가는지그좁은골목길에서마주하라.
   그래야만그좁디좁은
   골목길에서비로소나올수있는것이다.』(본문 138)


 

책에 나오는 그의 짧은 이야기를 옮겨보았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많은 글들은 글자와 글자사이에 여백이 거의 없거나 위에 인용한 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어서 처음 읽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함이 단번에 느껴질 즈음 마음 한켠에선 또 이런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뭐 어때? 작가 맘이지. 아님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의 의도일수도 있고. 항상 익숙한 게 좋은 건 아니잖아.’와 같은...
다만 내가 내린 결론은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우리와 조금은 달라서이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세상의 법칙인양 정해놓은 글자와 글자사이의 여백, 행간들을 규격에 맞추어 띄어쓰기를 해야 하는 그 법칙마저도 거부하고 싶었던, 그런 궁극의 자유를 글의 외형에서도 표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은. 남들이 거는 딴지 따위는 아랑곳없이 여긴 내가 창조해 놓은 세상이고 그걸 당신들이 이해한다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의뭉스러움.

저자도 밝힌바 있지만 ‘삶은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고, 질문을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기에 그 순간에는 온 마음으로 충실했고 후회가 없다’라며 스스로 지나온 삶을 소회한 듯한 말을 하였다. 그랬다. 저자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이 지나온 삶을 재발견했든 단 한순간도 깨닫지 못했던 어떤 진실을 발견했든 그것은 ‘삶’이라는 기나간 시간에 대한 다양한 과거와 현재, 미래였다. 어떤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기를 쓰기 보다는 순간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상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대견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앞에 펼쳐진 생은 온전히 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걸 즐기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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