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바야흐로 눈이 즐겁다는 여름이 돌아왔다.  

덕분에 보여주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한 남녀의 고통스런 다이어트도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뭐 여성들이야 1년 내내 다이어트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옛날 문헌이나 고대문명의 유적지를 찾아보면 배도 볼록 나오고 살집이 두둑한 여인이 다산과 부를 상징한다고 했건만 시대가 바뀌니 당연히 미의 기준도 변하는게 맞나보다.
그나마 과거 우리는 복스럽게 생긴 여인을 맏며느리감이라고 치켜세운 것도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강남 며느리처럼 보이려면 윤기 좌르르 흐르는 화장기 적당한 피부에 살짝 마른듯한 몸집, 그 위에 단아한 옷을 입어야 얼추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다이어트는 여성들에게 더 혹독하기만해서 뚱뚱한 여성은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인양 취급받은 지도 오래되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비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언제까지 비틀어진 시각으로 인간의 몸을 속박하고 집착할 것인가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이 재미있게 소개된 책이 나와 읽었는데 [Fat, 팻 -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우선 이 책에서 언급한 fat은 단지 비만하다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역적, 문화적, 문맥상으로 ‘지방’ ‘살’ ‘기름진’ 등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비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나 어떤 실용적인 정보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른 책을 찾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문화인류학 교수인 저자들이 fat에 얽힌 문화적이고 독특한 이야기거리를 찾아내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덧붙였을 뿐이다. 따라서 날씬함만을 강조하는 현대인들에게 이건 나쁜게 아니겠냐는 비판같은 것도 없고 그저 이런 관점도 있고 저런 문화도 있다는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것으로 나는 이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니제르에서 저자는 거리낌없이 말하기로 유명한 여자에게 뚱뚱함의 매력이라는 주제를 어렵게 꺼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질문한 이의 순진함에 짜증을 내며 쏘아붙였다.
“이봐요. 저기 푹신한 요 위에서 자고 싶어요, 아니면 이 딱딱한 땅바닥에서 자고 싶어요?” (p.39)

이 부분에서 나는 풋!하고 가볍게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쩜 이리도 유쾌한 비유를 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가 찾아갔던 니제르는 여자들이 뚱뚱해지고 싶어서 마음껏 먹는 환상의(?) 나라였고, 거대한 힙과 뚱뚱한 몸은 성적매력이 물씬 풍기는 몸매로서 모든 이들의 선망이 대상이 된다. 게다가 살찌는 비법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데 이것을 많이 말해서도 안된단다. 어떻게 살을 찌웠는지 자주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켜 그 아이는 살이 빠지거나 아프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이쯤되고 보니 인간이 정해놓은 어떤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제한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그곳이 전부인양 믿고 오류를 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만 니제르의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른 몸을 이상적으로 선호하다보니 각 나라마다 fat에 대한 이야기거리가 정말 풍부하다. 미국으로 넘어가 보자.
영어에서 ‘뚱뚱한 fat'은 ’모아놓은 재산 the fat of the land', '두둑한 지갑 fat wallet', '수입이 좋은 일 fat job' 등의 표현을 써 ‘부유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만큼 부와 비만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진다고도 할 수 있는데 뚱뚱해질 정도로 과소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경제력과 부를 가졌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갱스터 래퍼들은 잘 사는 것과 잘 먹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들에게서 엄청난 거구의 랩퍼들이 자주 발견된다. 




[Illustrator: Gurdev Baljeet]


1인당 성형외과 의사의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브라질은 또 어떤가. 한 달에 150달러도 벌지 못하는 인구가 전체의 60%가 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이 나라에서 한 해에 행해지는 성형수술이 35만건이라면 상상이 가는가. 게다가 이들에게는 아름답기 위한 수술부터 살을 빼기위한 의료행위까지 성형은 숨기고 비밀스럽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며 과시하는데 이는 직설화법으로 하자면 자기가 성형수술을 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수술이 그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야. 그건 바로 사회적 지위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그만한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말하는 건 멋진 일이지. 그래서 클라우디아나 클라우디아 가족들이 수술 이야기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거야. 그건 클라우디아 가족이 돈이 많다는 걸 보여주거든.” (p.208)

어느 문화에서는 성적매력을 위해 살을 찌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가 하면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경제력과 부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살을 빼고 성형을 한다. 그런가하면 백인 여성의 뚱보 포르노는 통용이 되어도 풍만한 흑인 여성의 포르노는 유통되지 않는 인종차별이 이런 부분까지도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저자들은 fat에 관한 각각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과 맥락들,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추어지고 누락된 ‘스토리’들을 재구성해나가면서 우리에게 비만과 뚱보에 대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 여주인공의 열혈팬들에겐 조심스레 사과하는 바이다!]

자, 이쯤되면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니제르로 날아갈 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금의 대세에 맞춰 평생 S라인을 염원하며 극성스럽게 살 것인가 그건 순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다. 이 책에서만큼은 단지 뚱뚱하다고 해서 죄가 된다고 보지는 않으니까.
다만 나에게 있어 세상이 내세운 잣대에 맞추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인식의 차원이라는 것으로 사고가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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