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 노마드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책 제목과 부제에 낚였다. 아니, 그렇다고 이 책이 절대로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고 저자가 말하는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현재, 더 나아가 인생의 목표와 가치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꽤나 파란만장했으니까.
앞서 내가 낚였다고 한 건 책 내용이 아니라 단지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요 단어 때문이라고 고백하련다. 이상하리만큼, 아니 남들보다 쫌 심하게 나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그래도 서울 4년제 대학졸업했고, 대학원도 서울서 나왔음^^)
사회에 나와 보니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절실히 느꼈지만 이제 그런 열등감쯤은 쿨하게 넘겨주어도 될 나이인데 소위 말하는 SKY앞에서는 괜히 주눅드는 몹쓸병이 아직 고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어린 시절 에릭시걸의 “닥터스”를 읽은 후 사랑도 공부도 몸살 나도록 정열적으로 하는 대학생, 아니 바로 “하버드 대학생”에 대한 환상이 뼛속까지 박혀 있는 상태가 아직 그대로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연유로 “하버드”가 언급된 어떤 것이라도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가고 귀가 커져 온 정신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버린다. 이번 책 역시 출간소식과 함께 책 소개 글을 보자마자 “이건 읽어야 돼”라고 이미 마음을 정한 터였다.
책의 저자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로 한국 이름은 이만열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 책은 외국인이 쓴 책을 번역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역자가 없이 저자 이름만 달랑 보여 좀 당황했는데 내용을 읽고는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 편집자가 손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모든 문장, 단어사용, 게다가 동양학적 뜻과 풀이까지... 도저히 외국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의 글이라고 생각되지가 않았다. 학벌은 또 어떤가! 말 그대로 엄친아 저리 가라다.
예일대, 동경대, 대만국립대, 서울대,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라 한다. 여기에서 또 한번 저자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본문을 보면 흔한 외국인들의 한국 체류기처럼 이 책 역시 저자가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질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속내, 여러 해 동안 살며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등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흔한 한국체류 에세이류와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저자의 독서노트라고 밝힌 부분과 인문교육의 위기로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한 부분이었다. 특히 독서노트 부분은 쉽게 말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기술한 부분인데 언급된 책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연암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시작으로 장자의 나비이야기, 홍루몽, 살아남은 자의 아픔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가 깨달은 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풀이를 보면 저자의 학문적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가 한문도 알고 동양의 유수 대학들을 거친 학력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이 독서노트를 읽노라면 문학과 동양사상을 총체적으로 연결시킨 독자적인 시각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빨리 빨리 경쟁에 너무 몰입한 대한민국 교육, 더 나아가 인문학이 부재된 현재 상태에까지 시각을 넓힌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독서교육과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물론 저자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그냥 쉽게 읽고 지나가는 에세이가 아님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세상의 이치를 통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의 부활이야말로 찬란한 한국 문화유산을 빛나게 해 줄 원동력이라는 그의 말이 점점 깊이 각인되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제목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