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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최고의 날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박채연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0월
평점 :
결국은 사랑이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 인생이 아름답게 완성되느냐 아니면 구질구질하게 추락 하느냐도 모두 사랑 탓이다. 이 불완전한 사랑을 두고 영원불변을 약속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실 그렇게 진실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생명체니까.
이 소설에는 두 명의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서른 살 대학 강사 파울리나는 정열적인 남미여성을 연상시키는 인물로 일도 사랑도 모두 화끈하게 하는 매력적인 여성이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주인공 역시 잘생긴 미남형의 대학교수 호나스이다.
둘은 첫 눈에 반해 사랑을 느끼고 연인관계가 되는데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파울리나와는 달리 호나스는 종종 연락이 두절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파울리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남녀 관계가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가 결국 한 쪽이 다른 쪽에 집착하면 의심과 경계가 생기고 자꾸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이 커플 역시 점점 상대를 의심하고 사랑도 슬슬 지쳐 가기 시작하는데 머리로는 용서가 안 될 지언정 가슴은 여전히 뜨겁기에 쉽사리 이별을 고하지도 못한다.
이런 불안하기만 한 사랑이 지속되는 가운데 파울리나는 드디어 호나스로부터 이별통보를 받고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는데...
줄거리만 보자면 사실 통속적인 연애소설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사랑과 이별, 그리고 복수에 이르는 구조는 내가 보아온 남미소설이나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다. 다만 이 책이 흔한 연애소설이라 치부하기에는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고 연결시키는 역량이 너무도 뛰어나 오히려 진짜 이야기는 파울리나와 미카엘라와의 대화로 완성되는 바로 그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사랑에 대한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모든 속성들과 본질에 대해 풀어놓은 이 부분은 주로 파울리나가 꾸는 악몽 같은 꿈들을 통해 방출되고 여기에 파울리나의 박사논문 [사랑과 연인들의 책]이라는 글에 요약 정리됨으로써 독자들은 잠시나마 사랑에 대한 인문사회서적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신비스러운 신화와 문학작품,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풍부한 사랑에 대한 본질들은 인류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도 계속 논의되고 탐구되어야 할 정답 없는 문제로 기억될 것만 같다.
사랑은 자신의 목소리도 어휘도 없다. 단지 연인들을 통해서 말할 뿐이다.
따라서 생생한 증언인 동시에 불확실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광적인 감정가 관능적 욕구, 흥분으로 가득 찬 정신,
초월하고자 하는 바람과 영원의 문턱까지 함께 즐기고자 하는
열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설명, 정당화와 변명을 반박한다.
사랑에 있어서 집단적이거나 사회적인 정체성은 없다.
그것은 유일한 경험이며 전부이고 은밀하며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용돌이치는 운명을 상기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할 때,
그 대답이 자신들의 심장에 찍혀 나타나도록 기도할 때에만
우리는 연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이 “사랑이란 단지 일회성인 것인가?”라고 질문할 때
연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본문 중]
그렇다면 그녀는 사랑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 내렸을까?
이는 책의 말미에 그녀가 사랑했던 연인을 위해 준비한 최고의 날을 직접 확인하면 알 게 된다고만 살짝 언급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