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이 영화는, 어떤 배우가 나오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다"라는 선호처럼, 때로는 "이 영화는 이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이니까 괜찮을 것이다"라는 선호도 요즘은 꽤 많이 존재합니다. 배우뿐 아니라 감독의 이름도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수 없이 많은 감독들이 수 없이 많은 영화를 연출하고, 나날히 높아져만 가는 한국문화의 가치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자신의 이름만으로 어느 정도 신뢰를 주는 감독들이 늘어가고 있는데요. 이번주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도 바로 그런 영화가 한편 있었습니다. 바로, 장진 감독의 <로맨틱헤븐>!! 저는, 개인적으로 장진 감독 특유의 분위기를 아주 좋아하는 팬이기도 한데요. 언제나 위트있지만,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 감동이 함께 하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던 장진감독의 로맨틱헤븐을 개봉하자마자 조조 프로그램으로 보고 왔답니다.
택시를 운전하며 치매에 걸려 이제 생을 얼마 남기지 않고 병원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돌보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지욱은 언제나 투덜투덜 불만투성이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단란한 나름의 가족을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퇴원후 집에서 모시기로 하는데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욱은 할아버지에게 아주 오랜 시간 그리워하며 살아온 첫사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지욱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일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병원 안, 이 병원에는,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만큼이나 생의 마지막 경험해야 하는 아픈 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병 때문에 일년 가까이 이식할 수 있는 골수를 기다리며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녀도 있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 하는 이제 막 죽음을 맞딱드린 상처입고 고통스러운 남편도 있죠. 모두가 살기 위해 들어오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병원안에서 지욱은 할아버지의 사연도,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의 삶도, 홀로 남은 남편의 아픔도 스치듯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지욱은 택시 운전 중에 사고를 당해 생각지도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로맨틱헤븐>은 우리가 결코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삶, 그 이후의 모습을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입니다.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 가야 하는 바로 그곳, 누군가는 천국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저승이라 부르는, 바로 그곳과 그곳에 가기 전 우리가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영화이죠. 살아서는 갈 수 없기에, 사람들의 환상속에 늘 존재하는 곳, 누구도 정확하게 그곳을 다녀왔다 말할 수 없기에 언제나 궁금증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바로 그곳과 그 시간들에 대한 장진감독의 상상 속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색체를 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사랑이라는 관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자리잡고, 하나님의 모습과 천국의 모습들을 소재로 하고 있으니까요. 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기에 참 좋았더라" 식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넣는 등의 위트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오로지 기독교 정신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데요. 죽고 난 다음 사람들이 가야 하는 그곳에 대해 '그곳은 그렇다더라'가 아니라 '그곳은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상상과 바람을 더 많이 집어넣고 있습니다. 이승에서 죄를 짓고 선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해서 유황불이 끓는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을 후회하는 곳. 장진 감독이 <로맨틱헤븐>에서 그리는 죽고 난 다음의 세상은, 그렇게 이 세상과는 다르지만 결코 이 세상과는 떨어질 수 없는 우리 삶의 또 다른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장진 감독이 꿈꾸는 죽음 이후의 세상.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브루스는 한 지방방송국의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입니다. 그리 유명하거나 유망한 인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즐기며, 언젠가는 앵커자리를 꿰찰 수 있으리라는 꿈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에게는 그를 사랑해주는 여인도 있습니다. 사실, 뭔가 특출나고 위대한 인물은 아니지만, 브루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리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스는 조금 투정과 불평이 많은 편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 보다는 언제나 투정과 불만이 넘쳐났던 브루스, 그는 어느날, 어느 골목 빌딩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 인물을 만나고 난 다음 브루스는 하나님처럼 모든 것들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이 능력을 브루스에게 주고, 자신은 휴가를 떠나버렸다는 것이죠.
브루스 올마이티는 어느날 전지전능한 절대자의 능력을 가지게 된 한 남자가 그 능력을 통해 자신이 평소 꿈꾸던 모든 것들을 얻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평소 그렇게 하고 싶던 앵커 자리도 꿰차고, 비싼 옷도 맘대로 입고, 차도 화려하게 바꾸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 그는 이런 능력을 가진 대신 하나님의 업무도 함께 해내야 하는데요. 언제나 자신의 소소한 일들만 불평해대던 브루스에게 전 인류가 가지는 고민과 고통은 결코 잘 해낼 수 없는 임파서블한 임무인듯 합니다. 그리고 그가 평소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여유만만해 하는 동안,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외로움과 고통으로 그에게서 멀어져만 가죠.
브루스 올마이티는 짐 캐리라는 재능있는 코미디 배우와, 모든 영화에서 자신의 역할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배우 모건 프리먼이 출연하는 영화입니다. 짐 캐리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코믹 연기와, 다른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영화의 소재이자 출연진으로 끌어온 몇 안되는 영화이기도 하죠. 특히나 이 영화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백인의 모습이 아니라, 모건 프리먼이라는 흑인배우가 연기하는 흑인 하나님입니다. 여러모로 참 신선한 설정이었죠. 게다가 모건 프리먼이 연기하는 하나님은 매일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보기에 참 좋았더라"만 읇조리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짜증과 불만만 달고 사는 인간에게 본인도 버럭 짜증을 내고, "니가 한번 해봐라"라는 식으로 능력을 위임하고 휴가까지 떠나버리죠. 언제나 위엄있고, 권위를 지키는 신의 모습이기 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마치 사람들처럼 말이죠.
브루스 올마이티와 로맨틱헤븐의 공통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위엄있는 절대자의 이미지를 조금 더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끌어와 마치 우리와 눈과 어깨를 함께하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묘사한다는 점이죠. 로맨틱헤븐에서 이순재라는 걸출한 원로배우가 연기하는 하나님도,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모건 프리먼이 연기하는 하나님도, 바로 이 점에서 절대자라는 권위 보다는 인간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덕분에 이 두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글로 읽게 되는 뭔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하나님 보다는, 아버지처럼 자상한 두 눈으로 우리를 쓰다듬고 있을 하나님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포근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던 크리스와 그의 아내 애니는, 어느날, 사고로 얀과 마리를 모두 한꺼번에 잃게 됩니다. 행복했던 가족은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함께 사라지고, 아내 애니는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모든 것들을 멈추어 버리죠. 그리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 크리스에게 이혼을 해달라 말합니다. 크리스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아내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아내의 바람대로 이혼에 합의하죠.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크리스 역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단란하고 행복했던 가족. 이제 그 가족은 모두가 죽음이라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 애니에게 고통으로 남습니다. 가족을 너무도 사랑했던 크리스, 크리스는 자신이 죽은 후 홀로 남겨진 아내를 떠나지 못하고 그녀의 곁을 맴돌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애니가 그린 그림 속에서 그녀의 천국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개인적으로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벌써 10여년도 더 전에 개봉했던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영상과 메세지들이 당시의 저에게는 꽤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기 때문인데요. 이 영화 덕분에 그 전까지는 그저 가족영화전문배우 정도로만 생각했던 로빈 윌리암스를 열렬히 좋아하게 되었고, 또 영화 속에 그려지는 죽음 이후의 모습에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크리스는 그녀가 그린 그녀의 천국 속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천국이라는 낯선 곳에 떨어진 크리스, 그리고 천국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크리스는 자신이 천국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홀로 남겨진 애니 때문에 천국의 삶을 만끽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국에서 애니가 자살을 선택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크리스 자신은 천국에 있지만 그가 사랑했던 애니는 자살했기 때문에 천국에 올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그녀는 죽어서도 지옥에 있습니다. 크리스는 그녀 홀로 지옥에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곁을 지키기 위해 천국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지옥으로 향하죠. 그리고 그는 애니가 있기에 <천국보다 아름다운> 지옥을 만나게 됩니다.
로맨틱 헤븐은 여러모로 천국보다 아름다운과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로맨틱 헤븐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기억하고 싶어하던 순간, 그리고 가장 그리워 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천국의 문턱를 밟게 됩니다. 그래서 택시기사인 지욱은 매일매일 지금만을 생각했던 탓에 죽은 바로 그 순간의 모습으로, 함께 사고로 죽은 할머니는, 할머니가 가장 그리워하고 추억했던 소녀의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서죠.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천국에서 자신이 가장 바랬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죠. 살아있을 때 가장 원했던,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으로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제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며 가장 인상깊었던 점이기도 했는데요. 로맨틱 헤븐에서 바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 자신이 가장 원했던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다른 그 어떤 것이 없다고 해도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되어주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죽기전의 삶과 죽은 후의 삶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죽음 이후의 삶도 이생의 삶이 이어지는 또 다른 공간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천국이 천국일 수 있는 이유는, 또, 사람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라는 바로 이야기도 두 이야기가 서로 닮은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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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의 세상, 누군가는 자신이 사후를 다녀왔다고도 하고, 미리 다녀올 수 있다고도 하지만, 사실 죽음 이후의 시간과 삶은, 정말 죽어보기 전에는, 육신을 완전히 버리고, 영혼으로 남겨지기 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절대자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 역시 죽어봐야 비로소 가까이 갈 수 있겠죠. 하지만 영화들은 이렇게 가끔 상상을 해줍니다. 우리가 결코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하나님과, 우리가 절대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천국을 말입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것이 인간인지라, 죽음이후의 삶도 이렇게 오로지 아름답게만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들을 보며 꿈꿔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만약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곳에서 절대자를 만나게 된다면, 이 영화들 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