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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구판절판


소설이든, 혹은 드라마이든, 그것도 아니면, 영화나 전래동화의 주인공이든, 작가라는 창조자에 의해 만들어진 전해지거나 옮겨진 이야기들은 대게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은 세상이다보니, 만들어지는 이야기도, 천차만별,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혹은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의 그들의 이야기에 누군가의 눈과 귀를 끌어다 앉히게 하기 위해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요소.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사랑이든, 연민이든, 그것도 아님 동정이나 정의감이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에 무언가의 이야기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그 이야기에 동조하고 공감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이리라.



그래서 일까?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공감이라 불리울만한 감정의 동요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인공에게 여러 특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가장 선한 본성이라든지, 혹은 행위의 정당성이라든지, 혹은 그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불우한 환경이나 근거들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동안, 그 주인공이 왜 그렇게 해야했는지, 혹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하는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수록 그 이야기는 성공적이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록 그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진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다보니, 책이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는 비슷한 공통점들이 한가지쯤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선한 일면을 가진 사람이었네..'식의 여지말이다. 바로 그 본질적인 인간의 선한면을 바탕으로 이야기들은 그를 정당한 이유가 있는 악인, 혹은 어떤 상황에도 정의를 쫓는 선인으로 만들어낸다. 최소한, <바보들의 결탁>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바보들의 결탁>은 첫 장을 펼치고 한참 동안을, 바로 이 규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하다" 따위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의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의 행동과 말들을 따라가다보면, 짜증스럽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기 까지 하다. 이전의 수 없이 많았던 이야기와 영화, 드라마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어이없는 캐릭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이그네이셔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얻지 않은채 홀 어머니에게 빌붙어 사는 백수 중의 백수이다. 꽤 오랜 시간 백수생활을 하고 있으니, 지금쯤이면 주눅이 들어 뭔가 소일거리라도 없나 이리저리 두리번 할 법도 한데, 이그네이셔스는 황당하게도 이 끝날줄 모르는 백수생활에 뭔가 거창하고 장엄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그의 백수생활이 정당하고도 고결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참 천연덕스럽게도 늘어놓는다. 도대체 뭐라고 쓰고 있는건지도 모를 낙서같은 기록들을 이리저리 끄적이며, 마치 노트들이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을 전인류적 과제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기까지 한다.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등한 존재가치를 지니며, 자신은 그들보다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에 세상과 섞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 이그네이셔스의 이 논리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노무 자슥, 한 대 확 쥐어박고 싶네'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 듯 하다.

<바보들의 결탁>은 바로 이 문제적 골치덩어리 이그네이셔스와 그의 어머니 라일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몇몇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물론, 가장 특이한 인물은 이그네이셔스이지만, 그를 둘러싼 인물들 모두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니, 이 이야기가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장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듯 하다.

<바보들의 결탁>은 읽어내려가는 초반에는 분명, 굉장히 신경거슬리고, 짜증스럽게 하는 이그네이셔스의 행동과 말투들로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뭔가 가르쳐야 할것도 같고 혼도 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이그네이셔스의 이러한 자기방어 방식에 묘한 동정과 측은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녹녹치 않은 세상에 스스로 녹아들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에 실패한 청년, 그리고, 그안에서 자괴감에 빠져 우울하고 침잠하기보다는 세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해야하는 그의 신세가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바보들의 결탁>이 쓰여지던 과거와 지금의 세상사 모두 살아가기 빡빡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기도 하다.

<바보들의 결탁>은 분명 즐겁고 행복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삐딱하고 냉소적인 이그네이셔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과거와 다를바 없이 현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그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수 없이 많은 이그네이셔스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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