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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품절


아직 그리 많은 나이라 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리다 보면, 그 즈음의 어느 한 순간, 딱 하루가 그림처럼 떠오르고 안개처럼 사라질때가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떠올려지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고 따스해지는 시간들, 그리고 때로는 나의 인생 전체를 흔들거나 뒤집을 수 있었던 영향력을 가졌던 그 날 말이다. 언제인지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인생의 한 순간, 선명하거나 흐릿하게 기억을 뒤흔드는 힘을 가진 그 날을 가르켜 나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one fine day라고 이름짓고 싶었다

파인데이즈는 그렇게 누군가의 인행을 감싸는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이다. 시간이 흘러흘러 모든 것들이 희미해진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 기억만큼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듯한 인생의 날들에 대한 이야기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스쳐가는 일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기억될 이야기가 담긴 파인데이즈는 그래서 마치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만났던 그 언젠가의 일처럼 친근하고 따스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총 4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파인데이즈에는 학창시절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적인 누군가에 대한 기억, 또 언제나 누구나 맞딱드려야 할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 앞에 비로소 대면할 수 있었던 그 언젠가 젊음을 간직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또 그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었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외로운 이들에 대한 사연과 긴 세월을 거슬러 이루려 했던 사랑이야기까지 때로는 특별하고 때로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차곡히 쌓여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인데이즈에 담긴 이야기들은 기억의 어느 순간을 헤집고 돌아다녀야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소 몽환적이고 신비롭다. 그리고 그래서 추억이라 이름짓고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4가지 이야기 모두 그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라면, 고통스럽고 잔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이야기인 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멀고 먼 시간이라는 길을 걸어 과거로부터 멀어졌기에 더욱 아름답게 가공된 기억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어느 멋진 날들이었다 말할 수 있는 인생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의 과거에 대한 잠시의 상념의 순간을 선물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인생의 어느 멋진날은 아마도 이 이야기의 파인데이즈처럼 학창시절의 희미한 기억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직 나에겐 아버지의 죽음과 숨겨진 아버지의 과거를 맞딱드릴 일도 없고, 다른 이에게 꺼내어 놓지 못할 잔인한 진실이 있지도 않으며, 노년에 이르러 과거를 지켜내야할 순간에도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덮은 그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지목하는 인생의 파인데이즈에는 해당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도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희미하게 떠올리고 지켜야 하는, 혹은 아직 맞딱드리지 못한 진실이 남아있는 인생의 파인데이즈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지금 이런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적어내려가고 있는 이 순간 역시 인생의 파인데이즈 중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고.. 파인데이즈는 그렇게 인생의 아름다웠던 어느날의 의미와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움과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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