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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품절


한가지 일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세상에, 특별한 재능과 노력으로 두 가지 세가지 일까지 성공적으로 해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두가지 직업을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직업과 취미를 높은 수준으로 해내기도 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눈에 띄고 관심을 받는 사람들은 아마도 연예인들이 아닐까?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단지 노래하고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꼭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버니먼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쓴, 닉 케이브 역시 그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가수겸 영화배우, 또 작가이니 말이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이고, 또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작가이기도 한 닉 케이브,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떤 세상을 담고 있을까?


<버니먼로의 죽음>은 한 여인의 자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장품 외판원인 남편과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가족을 꾸리고 살고 있었던 여인. 이 여인이 죽음을 맞이한 후 남겨진 아버지 버니먼로와 아들의 이후 이야기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별 볼 일 없는 화장품 외판원의 삶을 살고 있는 버니먼로에게 아내의 죽음은 아들과 단 둘이 남겨지는 거대한 충격과 책임감으로 다가오고, 폐암으로 삶을 마감해가는 아버지에게도,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아버지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이라 말하는 아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부정이자 마지막 자존심. 버니먼로는 바로 그 마지막 하나의 자존심이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아들과 함께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점점 추하고 망가진 모습만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끝없는 절망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여정. 아들은 아버지에게 길을 안내하고, 아버지는 창꼬치에게도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이겨내려 하는 의도와 전혀 다르게 엇나가는 그 길은, 버니먼로에게는 살고자 했으나 죽게 만드는 좌절을 안겨주고, 아들에게는 위대한 나의 아버지가 사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짓을 일삼는 난봉꾼에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하는 과정으로 바뀌어 버린다. 어쩌면 조금은 희망적이고,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시작한 길이 돌이킬 수 없을만큼 어긋나버리는 과정,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과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버니먼로의 죽음>은 그래서 삶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세상에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버니먼로의 죽음>에서 버니먼로는 자신이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잘 나가는 세일즈맨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하고, 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어긋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낼수록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몰두한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 할 수록 절망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유일하게 원초적인 욕망만이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여정이 끝나갈수록, 그리고 아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처참할수록 이성을 벗어던지고, 성적욕망에만 사로잡혀가는 것이다. 점점 이성을 상실하는 버니먼로의 모습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들이고, 이 비극이 다시 그를 성적 욕망만으로 채우는 악순환. 이야기는 그렇게 삶에 대한 책무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한 남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좌절과 고통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어느 구절처럼, 착하게 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인생은 착하게 살기보다는 살아간다는 바로 그 생존의 의미를 찾는 것 만으로도 때로는 힘겹고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한 순간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사치이고 무가치한 일인지도 모른다. 착하게 사는 것과 그 이상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버니먼로처럼 나약하고 별볼일 없는 인간은 어쩌면 난봉꾼이나 사기꾼이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상에 자신을 남기기 위해 난봉꾼이 되고 사기꾼이 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버니먼로가 아내를 잃고 무능력한 화장품 외판원인 자기자신을 책망하며 세상의 무게와 고통을 두려워만 하는 대신,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한번쯤 믿었다면, 그 신뢰의 눈길마저 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아들의 믿음을 한번쯤 자신도 믿어보았다면, 그토록 대책없이 무너져 내리지만은 않지 않았을까? 착하게 살며 사회에 기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생존이라는 인생의 숙제 앞에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서 있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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