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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절판


말을 하지 않는 침묵과, 말을 하지 못하는 침묵에는 다른 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무엇도 전달하고자 하지 않는, 그저 간직하거나 혹은 지켜내야하는 침묵에는 비장함과 의연함이 깃들어 있겠지만 입 밖으로 꺼내었을때 그 고결함과 아름다움을 해칠까 두려워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꺼내어 놓을 수 없는 침묵에는 고통과 외로움이 담겨 있을테니까.. 그 누구의 이해도 필요치 않고 단지 존재 하나만으로 그 의미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의 당당함과,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철저한 소외와 외로움의 아픔은 누가 뭐래도 같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그프리트 랜츠의 <침묵의 시간>안에 담겨 있는 간결하고도 깊은 침묵을 맞딱드렸을때에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홀로도 그 존재를 완성하는 의도된 침묵인지, 혹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강요된 침묵인지말이다. 크리스티안과 슈텔라의 사랑에 부여된 침묵은, 어쩐지 그 두가지 다가 아니거나 혹은 그 두 가지 모두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침묵의 시간>은 그래서 의연하고 당당했으며 동시에 외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침묵의 시간>은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야기를 담는다. 고등학생과 학교의 영어 선생인 크리스티안과 슈텔라의 사랑말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성장하는 남학생과,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눈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성인인 여선생. 혹여나 입밖으로 새어나가 다른 이들이 바라본다면,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을 그 사랑의 이야기가 슈텔라의 예기치 않은 사고로 맞이하게 된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녀의 추모식장에서 크리스티안의 머릿속에 남겨진 그녀와의 기억들과 맞물려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 <침묵의 시간>은 그래서 시종일관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크리스티안의 침묵 속에 그의 머릿속으로만 울려퍼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선생님이라고 불리우기엔 너무도 어려보였던 스텔라, 그리고 그녀의 수업과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크리스티안의 관계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때에는 절대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혹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날카로운 질타를 받아야 하는 금기시된 관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갈망하게 되고 더욱 지키고 싶은 관계이기도 한 그들의 사랑은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그리움과 아련함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때로는 존경과 경외의 시선으로 크리스티안의 마음을 뒤흔든다. 학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하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부자연스럽기 보다는 그 누구보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스텔라의 모습에서 크리스티안은 사랑하는 여인을 느끼고 자신보다 성장한 성인 여성의 당당함을 찾아내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크리스티안에게 스텔라는 사랑이기 이전에 존경의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자신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주관과 사고방식은 고등학생인 크리스티안에게는 아직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었을테니 말이다.

자신의 학생인 크리스티안과의 사랑앞에 사랑을 인정할 줄 알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았던 스텔라. 이야기는 그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그들의 사랑을 끝내고 있지만 크리스티안의 사랑은 책 속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녀가 없는 바로 그 세상에서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이제 자신만이 간직하게 된 그녀와의 사랑 앞에서 침묵을 선택한다. 세간의 편견어린 시선에서 그녀와 그와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좀 더 아름답고 당당한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랑앞에 망설이고 선택을 주저했던 크리스티안의 단 하나의 선택. 바로 슈텔라의 영원한 사랑 크리스티안으로 남기 위해, 크리스티안은 침묵이 주는 고통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그녀와의 사랑앞에 당당하게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어쩌면 수 없이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들을 하나씩 없애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은 사랑앞에 망설이고 주저했지만 크리스티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슈텔라는, 크리스티안보다 망설임과 주저함대신 당당하고 의연함을 선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침묵의 시간>은 그래서 크리스티안의 사랑의 기억이고, 청춘이며, 영원히 간직해야할 가장 아름다운 고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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