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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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 엄니 김수미의 인생 상담이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연재된 <시방 상담소>에 소개된 속 답답한 다양한 사연에, 김수미는 특유의 쌍욕으로 응답하는 욕쟁이 고민 상담가로 활약했는데 그게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상담 연령은 10대에서 40대에 걸쳐 있고, 크게 내용은 "나 / 일 / 가족 / 인간관계 / 돈 / 남과 여" 6개로 구분되어 있다.

 

브라운관은 물론 때때로 스크린에서도 인상적인 연기 활동을 해왔고, 맛깔난 음식 솜씨로 관련 사업을 펼치기도 하고, 몇 권의 책도 낸 팔방미인 김수미는 큰 굴곡이 없는 인생을 살아, 별다른 고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도 과거 돈 문제로 고생을 했던 적이 있고, 젊은 시절 외박이 잦고 바람을 피운 적 있는 남편에다 속 썩이는 아들도 있었다니 역시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장관도, 대통령도, 재벌가 사람들이라고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최소한 가족 중 한 명은 골칫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가정이 있다면 그 가족은 정말 복받은 가정일 테고.

다양한 상담 사례를 보니 어떤 것은 '뭐 이런 걸로 고민하나' 하는 것도 있고, '나도 이런 고민했었지'하는 내용도 보인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할 수밖에 없지 않나.

거기에 대한 김수미의 답변은 약간의 욕설이 포함된 시원시원한 돌직구다.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맛집에 가서 지청구를 청해 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71세를 살아 인생 공중파, 지상파, 산전수전 공중전, 육해공군 다 겪었다는 저자의 연륜과 번뜩이는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데, 대부분은 '간단한 게 최고'(Simple is the best)로 파악된다. 오래 묵혀서 좋은 고민은 없다. 바로바로 해소되지 않는 고민거리는 암세포로 변할 확률이 높다.

이래저래 고민하지 말고 인생 직진, 정면돌파의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견지할 것!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그 당시에는 왜 그리 그 일에 그렇게 온 마음을 빼앗겼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무조건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라는 철학으로 세월이 약인 건 분명 아니겠지만, 당시 죽을 만큼 괴로웠던 일도 지나고 보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깨치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터널을 지날 때 가장 어두운 순간은 출구가 나오기 바로 직전이라고 하지 않나.

인생만사 어둠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버티면 희망의 빛을 만나게 된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신께서는 인간이 견딜 만한 고통을 주시지

그냥 아파 죽을 고통은 주시지 않는다." - P 288

 

가족이든 친구든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토로하고, 고민을 함께 나누어 볼 만한 멘토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운아일 게다. 마땅히 그런 멘토가 없다면, 시시때때로 이 책의 여섯 개 챕터를 들춰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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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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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구도심 을지로에 수상한 가게가 생겼다.

인쇄소를 비롯한 타일, 아크릴같이 요즘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업종이 중심인 이곳의 막다른 골목 2층에 소주나 맥주가 아닌, 용감하게 '와인 바'를 차린 사람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이다.

'아로파 Aropa'는 나눔과 협동의 가치를 아우르는 단어로 남태평양 아누타라는 섬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라고 한다.(이 단어는 하와이로 넘어가서 아예 인사말이 됐다. 알로하~)

이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사람들이 경제공동체 청년아로파를 만들었고, 그들의 첫 결과물이 바로 을지로 와인바 '십분의일'이고, <십분의 일을 냅니다>(이하 <십분의일>)는 십분의일 초대 사장인 이현우가 그 과정에 대해 쓴 책이다.

 

청년아로파의 운영 방침은 이렇다.

기존 멤버 중 새 멤버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총회에서 신규 멤버를 추천하고 기존 멤버의 만장일치로 선발 여부가 결정된다. 만장일치인지라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멤버 영입이 안 된다.

십분의일은 멤버가 열 명이라 십시일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멤버라면 월급의 10%를 회비로 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멤버의 숫자와는 무관하다.

본인 소득(기본급)의 10% 회비는

- 회사원 : 매년 한 번 월급명세서 공개

- 프리랜서 : 최근 3개월 소득의 평균

- 백수 : 최소 회비 10만 원

이런 거룩한 규칙으로 갹출되며, 전업으로 일하는 사업장 대표에게 이 돈의 일부가 고정급으로 지급되는 구조다.

정관에 근거하여 움직이고, 주요 사항은 매월 총회를 거쳐 결정되며 각자 적절한 임무를 부여받고 순번에 따라 가게에 나와 시시때때로 일을 돕는다. 전업인 사업장 대표 1명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직업이 있는 멤버들이고, 이익공동체이긴 하지만 이들의 느슨한 연대는 기존의 틀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가장 흡사한 형태가 협동조합인 듯하지만 그와도 다르다.

2인이 하는 동업도 힘들다는데 '이런 식의 운영이 가능할까, 수익은 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은 성업 중이고, 이후 '빈집 ; 비어있는 집'(와인 바), '아무렴 제주'(게스트 하우스), '밑술'(양조장)로 총 4개의 사업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저자 이현우의 전직은 드라마 피디였단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이 책은 일단 재미있고 맛있게 읽힌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고, 몇몇 에피소드에는 작은 후일담까지 배치해 놓아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2016년 10월 가오픈을 하고, 장사가 잘 될까 고민한다.

'과연 내년에도 여기서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2019. 10. 22.

3년째 여기서 맞이하고 있다.

감사하고 지겹다.

내년엔 다른 데 가야지.」 - P 159

저자가 그랬듯, 십분의일 멤버들이 그랬듯 대부분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직장 생활을 하면 작게라도 내 사업을 하는 꿈을 꾸고, 자영업을 하다 보면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또박또박 급여가 나오는 봉급쟁이 생활이 그리운 법이다.

많은 독자들은 <십분의일>을 읽으며 자극받고 '나도 주위 지인, 친구들과 한 번 도전해 봐?'하는 생각이 들 거 같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전업이 아니라면 급여의 1/10만 내고 그래도 내 가게니 하는 생색도 낼 수 있고, 고단한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도 만들고... 손해만 안 보면 할 만하지 않을까!

망해봐야 1/10이고, 그래도 10명이 홍보 영업하고 함께 머리 맞대면 낫지 않겠는가.

당장 추리소설을 함께 읽는 모임 멤버들과 북 카페 모델에 적용해 보고 싶을 지경이다.

저자는 식욕, 성욕 다음으로 인간의 세 번째 욕망은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무리 짓고 싶은 욕구'를 꼽는다고 한다. 본인의 성향이 여기에 부합하는지, 십분의일 모델에 도전하기 앞서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할 점검사항이다.

저자는 비교적 낭만적으로 청년아로파의 결성과 십분의일의 안착을 그려 냈지만 그게 그리 수월한 일만은 아니었을 거다. 비가 새서 물을 받아야 하는 가게를 낭만으로 볼지 궁상으로 볼지는 당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십분의일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사업 모델이 확장하고 있기에 이런 책도 나오게 되었다.

과정이 아름다운 데다 결과마저 기대 이상인 이런 미담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좋은 책은 읽고 나서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낸다.

일단은 힙지로에 위치한 스웩 넘치는 '십분의일'을 방문해 보자. 그래서 시그니처 메뉴라는 '짜파게티 그리고 계란 치즈'에다 와인 한 잔하고, 혹시 사장님인 저자가 있다면 책 잘 읽었다고 수줍게 사인도 요청해 보고... 이단은 그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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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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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그림 형제 동화전집>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1권이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200편과 "어린이를 위한 성스러운 이야기" 10편을 합해 도합 210편이 수록된 완역본으로 총 페이지는 1,062페이지에 달한다. 다행히 아서 래컴, 월터 크레인 등 여러 삽화가들의 다양한 삽화들이 실려 있어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으며, 책의 앞부분에 아서 래컴이 그린 컬러 화보는 별도로 모아 놓았다.

그림 형제의 이 동화집은 이들이 약 200년 전 수집했던 이야기들이 원작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유럽 지역에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채집해서 모아 놓은 것에 가까운데, 그림 형제는 동화를 통해 인간적인 심성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여기에 실린 210편의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또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기도 하다.

그림 형제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들은 여섯 형제 중 첫째와 둘째였다고 한다.

어려서는 유복한 가정에서 어려움 없이 잘 자랐으나, 아버지가 마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가세가 기울어 가족 모두 고난을 겪었다. 결국 그들의 인생 자체가 어렸을 때는 '왕자'급이었다가 근근이 남의 도움으로 학업과 삶을 이어가던 시기에는 '쫓겨나거나 버림받은 왕자'였고 마침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동화집의 저작자가 되어 다시금 왕자의 자리를 되찾은 삶을 살았으니, 동화의 주인공과 흡사하다.

"이들 형제는 그들의 저작물이 독일 민족 사이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노력의 일단이 되기를, 또 민족에 바치는 긍지의 일단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정의, 자유, 평등 그리고 민족 - 이 네 가지 이념에 그들의 책을 바친 것입니다... (중략)

이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문학적 동화'가 지상에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고, 또 입으로 전해진 동화에 충실하면서도 그 형식에서나 그 이념에서나 당시 독일의 중류층 구미에 가장 알맞은 동화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 역자 해설(P 13)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헨젤과 그레텔, 라푼첼, 브레멘 음악대..."

누구라도 이 정도 제목은 다 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개구리 왕자', '작은 빨간 모자' 같이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이야기도 부지기수다. 막내 여동생이 마법에 걸린 오빠들은 구해낸다는 '열두 왕자'의 서사는 안데르센의 '야생 백조'와 거의 동일하다.

어찌 보면 전 세계 어디나 동화의 세계는 비스름하다.

(대부분 남자) 주인공의 모험을 통한 시련의 극복, 권선징악과 보은으로 대표되는 주제,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해피 엔딩, 동물들의 의인화, 악덕한 계모와 그 딸들, 빼어난 미모를 강조하는 여주인공, 짧은 이야기로 전달되는 삶의 지혜와 교훈...

거기다 그림 형제 동화의 특징이 하나 추가된다면 "어린이를 위한 성스러운 이야기"를 위시하여 '천국으로 간 재단사', '천국에 간 농부', '이브의 자식들'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강한 종교적인 색채다. 성서에서 바로 나온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당시 민중들에게 자연스레 청교도적인 삶의 자세를 전파한다.

210편의 이야기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한 편은 의외로 1페이지도 안 되는 167. '천국에 간 농부'다.

「가난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농부가 죽어서 천국에 도착하는데, 부유한 남자가 천국에 들어갈 때 천국의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부자가 천국에 온 것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환대를 기대하던 농부는 소란한 환영 없이 조용히 천국에 들어간다. 농부는 성 베드로에게 왜 부자와 다른 대접을 받는지 항의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당신은 부자와 똑같이 천국의 모든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은 매일 오지만, 아까 온 사람 같은 부자는 백 년에 겨우 한 사람밖에 오지 않는답니다." - P 904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잔혹동화'라는 수식어가 당연하다는 듯 붙는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는데, 우선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원제 : 재투성이 아이)부터 시작하자.

우리가 아는 아동용 버전은 '신데렐라의 누이들이 신데렐라가 남긴 유리구두를 신어 보지만 발이 맞지 않는다' 정도로 기억한다.

원본은 이렇다.

「큰 딸은 신발에 발을 집어넣기 위해 엄지발가락을 자른다. 같은 방법으로 둘째는 뒤꿈치를 조금 자르고.

결국 이 둘은 신발에 발은 집어넣지만 황금 신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하얀 양말이 온통 새빨갛게 물든다. 또한 비둘기가 악덕 자매의 양쪽 눈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쪼는 바람에 이들은 맹인이 된다.」(No Mercy! - 자비란 없다)

아무리 기억해봐도 이 정도 피바다는 아니었다!

"강도들은 여자의 고운 옷을 갈기갈기 찢더니 여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아름다운 몸을 토막토막 썰어 거기다 소금을 뿌렸습니다." - 40. 강도 신랑 P 319

"엄마는 소년을 들어다가 토막토막 썰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솥에다 넣고 끓였습니다." - 47. 향나무 P 345

선혈이 낭자한 묘사가 도처에 흥건하다.

'향나무'의 엄마는 물론 계모이고 이렇게 요리된 소년은 맛있는 아빠의 식사가 되었다가 다시 환생하긴 하지만, 한니발 박사가 꼬리를 내리고 갈 이런 잔인성은 아동용으로는 물론 적합하지 않다.

'잔혹동화'의 명성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210편이나 실려 있기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원형을 만나 본다 생각하면 틀림없다.

짧은 건 불과 1페이지 분량이기도 하고, 길다고 해도 그리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진 않는다.

다만 1,0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집중해서 며칠 사이에 독파하는 건 그다지 권하고 싶진 않다.

아무래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집중도 면에서도 그렇고, 흥미라는 측면에서도 쉬엄쉬엄 다른 책을 읽다가 또다시 <그림 형제>로 돌아와 읽고... 이런 방식으로 읽어야 질리지 않고 재미있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인지라 성인인 부모가 읽고 내용을 순화하여(!) 자녀들에게 한 편씩 잠자리에서 읽어준다면 최고의 부모로 등극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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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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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은 기본적으로 '외길 인생'에 대해 찬탄과 존경을 보내는 작가다.

<배를 엮다>에서는 '대도해'라는 일본 국어사전을 만드는 이들의 장장 15년 세월을 담담하게 다루었는데, <사랑 없는 세계>에서는 식물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 연구소가 무대다.

<배를 엮다>가 사전에 미친 이들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그 대상이 식물이다.

사전 편집부의 '마지메'가 마쓰다 연구실의 '모토무라'로 재탄생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들 모두 세상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도대체 누가 애기장대에 관심이 있고, 기공이 인쇄된 옷을 입는단 말인가!

소설의 상당 부분 연구소 리포트를 보는 듯한 상세하고 집요한 묘사로 이 작품은 '식물학 로맨스'라는 명칭을 얻었고, 작가는 흔하지 않은 소재에 도전한 노고를 인정받아 일본 식물학회의 특별상을 수상했다.


장인 정신으로 따지자면 남자 주인공인 후지마루도 부족하지 않다.

아직 30세도 되지 않았지만 요리로 인생 승부를 걸겠다는 노선이 확고하기에, 종업원은 자기 혼자뿐인데도 불구하고 작지만 맛있는 양식당 '엔푸쿠테이'에서 식당 주인 쓰부라야를 사부로 모시고 온갖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수련 생활을 이어간다.

그런 그가 배달을 하던 중 만난 모토무라에게 반하게 되는데 그녀는 본인이 연구하는 식물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그녀도 주위를 맴돌며 계속 은근한 애정을 보여주는 성실한 후지마루가 싫은 건 아니지만.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예요." - P 96

이런 초강력 실드라니!

독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결국 후지마루의 사랑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없다'고 모토무라를 공략하여 애정이 꽃 피는 결말을 기대하기 십상이나 미우라 시온은 그런 독자들의 애타는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

다시 한번 소설의 제목을 보라. "사랑 없는 세계!"

식물학에 대한 세부 묘사가 다소 독자들을 질리게 만드는 경지지만, 그래도 <사랑 없는 세계>에는 미우라 시온의 장기가 다시 한번 발휘되어 있다. '전문가 소설'로 칭해도 좋을 만큼 특정 직업에 대한 엄청난 취재와 연구를 거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온기"말이다.

모토무라는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던 실험의 최초 설정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그때 그녀에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조언을 해 준 사람은 지도 교수나 팀원들이 아닌 비전문가 후지마루였다.

이 과정을 거쳐 그녀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다른 면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본인이 그렇게 사랑하는 식물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도 큰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후지마루는 사랑하는 상대가 그토록 좋아하는 '연적' 식물에 대해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본인이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된다.

비록 본인이 원하는 사랑을 얻지는 못했으나, 이 과정을 거쳐 두 명의 주인공은 분명 한 뼘 이상 성장했다.

결국 이 소설은 "일과 사랑에 열정을 다하는 이들의 따사로운 성장의 기록"인 셈이다.

최근 식물 기르기에 재미를 붙이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은 주저 없이 <사랑 없는 세계>에 빠져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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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 영리한 자기 영업의 기술
박창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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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을 포함한 다양한 직군의 일을 했고, 현재는 본인의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박창선 저자는 좌충우돌 부딪히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브런치에 풀어낸 지 2년이 되었고, 올해 1월 기준 구독자 1만 6천 명, 누적 4백만 뷰의 인기 작가로 성장했다.

그가 이번에 쓴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의 부제는 "영리한 자기 영업의 기술"이다.

왠지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거 같고, 저자세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여간 영업은 어렵게 다가오고 다소 부정적이다.

보통 영업이라 하면 보험, 자동차, 부동산, 다단계 등을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무엇 하나 영업과 관련되지 않은 게 있나 싶기도 하다.

결국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외교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영업을 하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일개 개인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본인의 실력이 정말 뛰어나서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제발 함께 일하자고 요청이 쇄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꿈같은 일이고, 현대는 끊임없이 본인의 능력을 PR 하고 남에게 인식시켜야 살아남는다.

 

브랜드 디자이너 박창선의 창의적인 생각, 넓고 깊은 공감력, 본업인 디자인 감각까지 탁월한 문장과 결합되어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자기 영업의 비법을 전수하는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어떻게 하면 '나'라는 개인 브랜드를 잘나가는 명품 브랜드로 만드느냐 하는 다양한 방법과 통찰을 제시하는데, 사회 생활하는 직장인들이 참고해서 활용할 부분을 많이 담고 있다.

'직장인들의 실존 매뉴얼'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지 않으면서 본인의 주장을 관철시키는지, 직장에서 독립을 하려 할 때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연스럽게 본인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본인의 아이디어를 섹시하게 포장해서 프레젠테이션 하는지...

회사와 시장을 누비며 몸소 겪고 쓴 프로 영업러 저자의 결론을 아주 간략하게 보자면,

"재주는 남다르게, 아이디어는 탁월하게, 브랜딩은 단순하게!"로 요약된다.

저자는 매우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인다.

본인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 인용하고 있고,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미시적 통찰도 돋보인다. 다만 PART 1, 2, 3으로 구분되어 있는 본문 내용은 큰 차별화가 느껴지지 않았고, 초반 이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분위기라 읽어나가는 재미는 덜 했고, 많은 걸 이야기한 거는 같은데 뭔가 결정타가 없는 느낌을 준다. 학창 시절 뙤약볕 아래서 들었던 교장님 훈화 말씀 같은...

'1인 브랜드'의 중요성은 성공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다. 그렇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영리한 자기 영업의 기술'은 필수적이고, 이 과정을 거쳐 우리는 '잘 팔리는 나'를 만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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