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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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그림 형제 동화전집>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1권이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200편과 "어린이를 위한 성스러운 이야기" 10편을 합해 도합 210편이 수록된 완역본으로 총 페이지는 1,062페이지에 달한다. 다행히 아서 래컴, 월터 크레인 등 여러 삽화가들의 다양한 삽화들이 실려 있어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으며, 책의 앞부분에 아서 래컴이 그린 컬러 화보는 별도로 모아 놓았다.

그림 형제의 이 동화집은 이들이 약 200년 전 수집했던 이야기들이 원작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유럽 지역에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채집해서 모아 놓은 것에 가까운데, 그림 형제는 동화를 통해 인간적인 심성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여기에 실린 210편의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또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기도 하다.

그림 형제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들은 여섯 형제 중 첫째와 둘째였다고 한다.

어려서는 유복한 가정에서 어려움 없이 잘 자랐으나, 아버지가 마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가세가 기울어 가족 모두 고난을 겪었다. 결국 그들의 인생 자체가 어렸을 때는 '왕자'급이었다가 근근이 남의 도움으로 학업과 삶을 이어가던 시기에는 '쫓겨나거나 버림받은 왕자'였고 마침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동화집의 저작자가 되어 다시금 왕자의 자리를 되찾은 삶을 살았으니, 동화의 주인공과 흡사하다.

"이들 형제는 그들의 저작물이 독일 민족 사이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노력의 일단이 되기를, 또 민족에 바치는 긍지의 일단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정의, 자유, 평등 그리고 민족 - 이 네 가지 이념에 그들의 책을 바친 것입니다... (중략)

이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문학적 동화'가 지상에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고, 또 입으로 전해진 동화에 충실하면서도 그 형식에서나 그 이념에서나 당시 독일의 중류층 구미에 가장 알맞은 동화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 역자 해설(P 13)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헨젤과 그레텔, 라푼첼, 브레멘 음악대..."

누구라도 이 정도 제목은 다 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개구리 왕자', '작은 빨간 모자' 같이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이야기도 부지기수다. 막내 여동생이 마법에 걸린 오빠들은 구해낸다는 '열두 왕자'의 서사는 안데르센의 '야생 백조'와 거의 동일하다.

어찌 보면 전 세계 어디나 동화의 세계는 비스름하다.

(대부분 남자) 주인공의 모험을 통한 시련의 극복, 권선징악과 보은으로 대표되는 주제,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해피 엔딩, 동물들의 의인화, 악덕한 계모와 그 딸들, 빼어난 미모를 강조하는 여주인공, 짧은 이야기로 전달되는 삶의 지혜와 교훈...

거기다 그림 형제 동화의 특징이 하나 추가된다면 "어린이를 위한 성스러운 이야기"를 위시하여 '천국으로 간 재단사', '천국에 간 농부', '이브의 자식들'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강한 종교적인 색채다. 성서에서 바로 나온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당시 민중들에게 자연스레 청교도적인 삶의 자세를 전파한다.

210편의 이야기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한 편은 의외로 1페이지도 안 되는 167. '천국에 간 농부'다.

「가난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농부가 죽어서 천국에 도착하는데, 부유한 남자가 천국에 들어갈 때 천국의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부자가 천국에 온 것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환대를 기대하던 농부는 소란한 환영 없이 조용히 천국에 들어간다. 농부는 성 베드로에게 왜 부자와 다른 대접을 받는지 항의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당신은 부자와 똑같이 천국의 모든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은 매일 오지만, 아까 온 사람 같은 부자는 백 년에 겨우 한 사람밖에 오지 않는답니다." - P 904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잔혹동화'라는 수식어가 당연하다는 듯 붙는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는데, 우선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원제 : 재투성이 아이)부터 시작하자.

우리가 아는 아동용 버전은 '신데렐라의 누이들이 신데렐라가 남긴 유리구두를 신어 보지만 발이 맞지 않는다' 정도로 기억한다.

원본은 이렇다.

「큰 딸은 신발에 발을 집어넣기 위해 엄지발가락을 자른다. 같은 방법으로 둘째는 뒤꿈치를 조금 자르고.

결국 이 둘은 신발에 발은 집어넣지만 황금 신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하얀 양말이 온통 새빨갛게 물든다. 또한 비둘기가 악덕 자매의 양쪽 눈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쪼는 바람에 이들은 맹인이 된다.」(No Mercy! - 자비란 없다)

아무리 기억해봐도 이 정도 피바다는 아니었다!

"강도들은 여자의 고운 옷을 갈기갈기 찢더니 여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아름다운 몸을 토막토막 썰어 거기다 소금을 뿌렸습니다." - 40. 강도 신랑 P 319

"엄마는 소년을 들어다가 토막토막 썰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솥에다 넣고 끓였습니다." - 47. 향나무 P 345

선혈이 낭자한 묘사가 도처에 흥건하다.

'향나무'의 엄마는 물론 계모이고 이렇게 요리된 소년은 맛있는 아빠의 식사가 되었다가 다시 환생하긴 하지만, 한니발 박사가 꼬리를 내리고 갈 이런 잔인성은 아동용으로는 물론 적합하지 않다.

'잔혹동화'의 명성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210편이나 실려 있기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원형을 만나 본다 생각하면 틀림없다.

짧은 건 불과 1페이지 분량이기도 하고, 길다고 해도 그리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진 않는다.

다만 1,0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집중해서 며칠 사이에 독파하는 건 그다지 권하고 싶진 않다.

아무래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집중도 면에서도 그렇고, 흥미라는 측면에서도 쉬엄쉬엄 다른 책을 읽다가 또다시 <그림 형제>로 돌아와 읽고... 이런 방식으로 읽어야 질리지 않고 재미있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인지라 성인인 부모가 읽고 내용을 순화하여(!) 자녀들에게 한 편씩 잠자리에서 읽어준다면 최고의 부모로 등극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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