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를 끊으면서 전화기가 뜨끈뜨끈해진 것이 느껴졌다. 스마트 폰이 뜨끈뜨끈해질 정도로 엇그제의 악담에 대해서 이번에는 아주 멋진 반격을 했던 것이다.

 

"그래 그게 너야, 그게 바로 너 자신이지."

"너는 별다르나고." 그는 말꼬리를 흐리고 있었다. 

"이것봐, 네가 머리가 좋고 특별한 사상을 지녔다는 것은 인정해주지. 그렇지만 사는 것이 꼴도 아닌 것도 스스로 인정해야 할거야,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나는 기세등등하게 그를 칭찬하면서 약점을 꼬집었다. 

 

"내가 좀 무능한 것은 사실이야, 그렇지만, 여자들이 돈주고 몸주면서 따르는 걸 어쩌란 말이야. 어떤 년들은 완전 집착해서 몇달은 못살게 한다구, 이놈의 인기는 정말 식을 줄을 모른다 말이지, 최근에 만나게 된 년은 나와 만나기 위해서 오피스텔까지 따로 마련했다니까. 그러니 모텔비를 따로 낼 필요도 없는거지 나로서는 말이야, 이자식아 여자는 그렇게 꼬시는거야, 너처럼 그렇게 하다가는 평생 여자 뒤 꽁무니만 쫒아 다니는거지. 혼자사는 돈많은 여자일수록 소극적인 남자를 답답해하면서도 리드하는 재미를 누리고 싶어한다고"

 

그는 여자 편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게 바로 너야, 그게 바로 너 자신이지. 얼마전에 망신살은 그새 잊었냐, 그 여자가 망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나는 이번 반격이 제대로 한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전화 저쪽에서 한 3초간의 멈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쩌랴, 네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걸." 나는 그가 자기학대의 똥물로 빠지려는 걸 머리채를 잡아 올려주었다.

 

"그래 그렇긴 해" 금새 그는 마지막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놈도 전화를 끊고 마음이 복잡할테지. 남자간에 우정이야 이런 식으로 단발성 슈팅을 해가면서 절친해지곤 하는 거니까. 내일은 그 놈하고 회집에라도 가서 한 잔을 사면서 등이라도 두들겨줘?' 나는 그 놈과 경멸과 무시, 우정 이외의 많은 것도 나누고 있는 셈이었다. 그 놈이 소주한병을 마시고 묘한 여자 취향에 대해서 떠벌릴때면 묘한 대리만족까지 느끼게 되고 게다가 충고라도 몇 마디 던져주면 눈을 번쩍이며 듣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우쭐한 일주일을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내가 소설속에 집어넣을 만한 인물을 다수 알고 있고 속속들이 이야기 해주는 놈이기도 했다. 젊잖은 채하면서 블로그에 여자 나체사진을 올려놓고 거기에 걸맞지도 않는 문학이야기나 인문학 정치나, 철학이야기를 써놓는 나같은 놈보다야 더 솔직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자를 꼬시기위해서 침을 흘리는 방법이 차이가 있을 뿐인데 저놈은 노골적이고 나는 좀 고상할 뿐이다. 

 

월요일마다 있는  강의에 나오는 중년을 훨씬 넘긴 여자중에 하나가 옷을 좀 야하게 입고 오는데 나를 너무나 빤히 쳐다보며 열심히 듣는 척을 한다. 예전에 사귀었던 미술하던 년과 좀 닮았지만 새로운 맛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음 주에는 엘리베이터를 따라타고 슬쩍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좀 해야 할까 싶다. 이런 경우 너무 적극적이면 오히려 탈이 난다. 처음에는 가벼운 인사정도도 고마워하고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펼치는 전략과 그놈이 전개하는 방법은 차원이 다르지 않는가. 그놈은 연애에 예술이나 문학, 정치가 있음을 모르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그놈이 필요하다. 그 막무가내의 들이댐이 벌이는 사건의 전후가 늘 궁금한 것이다. 내일 저녁은 그놈과 회집에서 만나야겠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전화를 해 볼 모양이다. 그놈의 무식한 마누라가 교회를 간틈을 타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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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한심하기 짝이 없거든,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거나, 엘리베이터문에 반나절쯤 껴서 반성 좀 해라." 그 자식은 전화를 끊으면서 악담을 했다. "내가 바란게 뭐가 있다고 악담이야. 제길" 침대에 털썩 앉았을 때 거울에는 짧막한 검은 머리에 뾰족한 얼굴을 한 낯선인간이 출렁거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새끼가 누구게?" 측은한 표정의 그 낯선 자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삐죽거리다가 눈물 먼저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 새끼" 그 놈은 항상 믿을 만한 놈이 되질 못했다. 그냥 돌아누워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언젠가 정신없이 숙이의 몸을 뒤지고 있을 때 처럼 아니다, 숙이의 몸에서 그 놈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동시에 그녀를 사랑하면서, 내가 알게된 그 놈의 형상은 늘 거울 속에서 내가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의 일에 사사껀껀 간섭하는 놈이 되었다. 그놈을 닮은 귀를 덮어버린 머리카락이 싫어서 (귀가 싫다고 잘라버릴 수도 없잖아?)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버렸을 때, 미용실의 아가씨와 사귀고 싶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최고야, 내가 아는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걸"

 

머리카락을 그녀에게 맡기고 누워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자 내 눈에 수건을 덮으며 미소를 지었다.

 

"입도 덮을까요?"

"ㅎㅎ, 입술로 덮어줘"

 

아, 이건 아닌데, 좀 너무 했다 싶은 순간 그녀의 얼굴이 싸아 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이래서 안되는거야. 약간의 긴장감. 약간의 긴장감이 있어야 했는데. 쩝'. 하여간 순식간에 젊잖지 못한 손님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의 머리카락을 자못 부드럽게 감기면서 가끔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머리카락 속으로 헤집으면서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가끔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눈을 뜨면 입술이 있을 듯했다. 새로운 사냥감이기에 그녀는 너무나 나약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미용실 아가씨가 좋다. 그녀와 사랑하는 꿈을 꾸곤하니까. 그래서 항상 이 곳으로 온다. 내가 좋아하는 아가씨는 제법 권총이라도 차듯 몇가지의 날카로운 가위를 허리춤에 차고 나를 겨냥하곤했고, 그 때 마다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동시에 그 부드런운 말씨하며 가끔 슬적 와닻는 손길과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강도가 조절 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녀의 삶과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어떻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사냥감이 털썩 누워 겨우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순간, 그 목숨을 쥐고 있는 순간과 유사하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상가의 미용실에 그녀는 가끔 문을 빠끔 열고 건너편에서 팔고 있는 붕어빵을 사러 사뿐 사뿐 걸어가거나, 그 옆 트럭에 팔고 있는 귤이라도 사려고 기웃거릴 때면 나는 그녀의 씰루엣이 멀리서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해도 만족 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눈길로. 그녀는 나에게 가끔 쫓아보는 사냥감이었다. 그런데 숙이 떠나고 그 날 부터 그녀가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숙이 보다 몸매도 나아. 어쩌면 저 맑은 피부가 목선을 따라 이어져 있을지 모르겠어'.

 

이 글을 읽고 있는 한심한 년놈들이여, 이제 더 이상 나라는 속물을 들여다 필요가 없다고 느끼지 않는가? 이 공원에서 벌써 10여년이 넘게 좌판을 벌리고 하루에도 몇번이고 빠지지 않고 들러보고 기웃대지만, 그리고 이것 저것 올려놓지만 사실 나는 단지 여기 저기 몇푼에 원고를 넘기는 이름 없는, 아 참, 그리고 이혼한 척하고 사는 소설가 일 뿐이니 말이다. 쌕스없이 살고 있으니 이제 혼자 사는 남자의 호르몬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것이고, 나의 말투도 그럴 것이다. 물론 지나는 여자마다 새로운 여자이고 만나는 여자마다 아름답고 혼자사는 풍요로운 여자라면 모두 관심이 있다. 누구라도 사귀어왔고 누구라도 사귀게 될 것이다. 소설가가 장래희망이라는 김**양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지만, 사실 여기 저기 가끔 나가는 강의중에 눈길만 돌려도 아니,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올 아줌마들이 널려 있으니 내가 정확하게 숙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으니라. 함께 살고 있는 거울 속에 그 인간이야 지가 필요할 때 가끔 나와 나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있을 뿐이고 대체로 나의 생활은 안락하고 편안한 편이다. 그러니 나를 시기할 일도 없거니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한심한 년놈들이여, 이 책을 그만 덮기 바란다. 내 활자가 기어나가 책 밖으로 가끔 손 발을 드러내고 흔들어 댄다고 한들, 그대를 위해 손짓하는 것이겠는가, 그대들의 고매하지 못한 흥미에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마지못한 제스춰를 해보는 것도 사실은 거울 속에 그 놈이 시킨 일일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거울 속에 그 놈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고? 그렇다면 나와 시간을 보낼 필요가 더더욱 없지 않겠는가. 인생도 짧은데, 그냥 가던 길 마저 가시고 나는 그놈의 이야기를 하면 그만이다. 그놈이야말로 나의 원수이니 내가 그 거울을 깨지 않고 그 놈과 단판을 벌이던가 아니면 그 놈과 화해할 것인지는 하여간 그거야 오로지 나의 일일테니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 남아도는 구경꾼이라면 가라. 거기 쪼그리고 앉아있는 단발머리의 촌스런 아줌마여, 남편이 바람피고 있는 것도 모르고 충실하게 그를 믿고 살아 왔던 그 멍청한 표정 그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니 가던 길 마저 가라. 여기 이 공원에서 내가 넉두리를 한다고 한들 그대를 위한 것도 아닐 것이고. 자유롭다는 대한민국 이 땅, 이 275센티의 두 개의 신발이 디디고 넉두리를 한다고 한들, 내 입을 막을 것인가 말이다. 네 년의 웃고 있는 주둥이를 내가 먼저 찢어 한 접시 썰어놓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안주 삼을일이다. 어이 거기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 가던 길 가라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산다고. 이 공원이 당신 거냐고. 집에 있는 아줌씨 몰래 이 여자 저 여자 구미가 돋을 때마다 건드리던 그 손길 그냥 흔들면서 지나가라고. 지성인인척 하던지 말던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아니 이건 뭐야. 거기 벤치에 누워서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으면 어쩌자는 거지?  거기는 내 자리다 이거지. 이봐 이제 적당히 일어날 수 없을까?

 

저벅 저벅 벤치 쪽으로 걸어가자 주변에 모였던 대 여섯 사람들이 내가 가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말했지, 여긴 내자리라고, 알아? 내 자리. 비켜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고 신문지를 벗겼을 때 나는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맙소사, 어떻게 여기까지 온거야' 그 남자, 거울 속에서 언제 나와 그곳에 누워 있는 거였다. '제길,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거야?'

 

"이봐요, 도데체 뭐하는 거요? 도데체 왜 날 따라다니는거냐고?"

 

눈을 부시시 뜨는 척하더니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는 그 놈은 영락없는 거울 속에 그 놈 이었다. 그 놈은 내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다가와 신문지를 젓힐줄 몰랐다는 듯이 날 바라보면서 비굴한 웃음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나는 여기에 누워 있을 뿐이고, 댁이 신문을 벗기는 통에 잠을 못자는 거 뿐이에요. 여기에 내가 누워 있다고 한들, 댁을 방해할 턱도 없고, 말도 안되는 설교를 내가 못하게 한거도 아니고, 도데체 나에게 바라는 게 뭐라는거요?"

"말도 안되는 설교라니?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설교를 했단 말이요? 도데체 나를 따라다니는 이유가 뭐요?"

 

나는 언성이 좀 높아지는 것을 억제하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것 보세요, 저기 사람들이 댁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인단 말이요? 당신의 그 쯤에 제멋대로 찟어진 구멍 두 개를 통해서 세상이 보지는 않는다 말인가? 댁이 한참동안 주변에 여자들 이야기나 하고 있지 않았소?"

"기가 막히는군, 가관이군. 내가 저 인간들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요? 진심이요? 나를 뭐로 보는거요 도데체, 난 말이요, 험험, 저 인간들 들으라 말한 적도 없고 저 인간들이 그 쯤에 뚫인 구멍으로 소리를 들었을 뿐이요"

"헛참, 귀를 입처럼 닥칠 수도 없을 테고, 열려있는 귓구멍으로 들리는 것을 어쩐단 말이요? 댁이 숙이하고 헤어졌든지 이혼을 했던지, 그리고 미용실 처녀와 무슨 일이 있던지 그게 동네방네 할 일이냐 말이요."

 

거울 속에 그 인간은 끝내 내 편이 아님을 밝히는 발언만 일삼았다. '그래, 저 인간은 내 편일 수가 없어. 그런데 왜 내 집에 내거울속에 거주하는거야. 내쫓아내야해. 기왕에 이렇게 된 김에 여기서 아예 끝장을 봐야겠군.'

 

"그래, 니가 내 거울 속에서 살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참아온 이상 이제 다시는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 숨지 말라고. 다시는 집으로 따라 들어오는 일따위 하지 말란 말이야. 그리고 사사건건 내 인생에 콩내라 팥내라 하지도 말란 말이지. 이상, 이상이야 끝, 끝, 알겠지. 끝이야 . 미련도 없어 귀신같이 따라다니지 말란 말이지 이 한심한 인간아"

 

나는 속이 시원하도록 내뱉았다. 그동안 괴롭혀진 순간들을 모두 단번에 이렇게 대면한 김에 다 화풀이하는 요량으로 이리저리 생각나는 말마다 억양을 올리며서 시원하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하아, 속 시원해, 싸가지 없는 년놈처럼, 찰거머리처럼 거울에 붙어 있었던 놈이니 이제 이렇게 시원하게 떼어버릴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 놈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으니 말이다.'

 

"나 다 알거든" 

 

그놈은 만성 축농증이 있는 코를 씰룩거리며 마치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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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까지 길게 길게 그리고 나른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멀리서 인천대교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 아찔하게 높은 곳으로 차가 올라가고 그 곳을 건너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제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도로를 질주하는 나같은 운전자가 있으니 운전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하리라. 숙이 떠나고 내 삶이 지속적으로 지옥의 불길과 심연의 바다속으로 숨을 쉬지도 못하고 질식하듯 방황 속에서 살아온 것이 이제 몇개월 이던가. 그럼에도 삶은 지속되었고, 사회적 요구는 빈껍데기의 몸뚱어리를 필요로 했다. 전화를 받았으며,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었고, 일을 진행시켰고, 무섭게 스스로를 학대했다. 12시가 넘어도 사무실에 앉아 일에 몰두했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사무실로 나갔다. 머리 속은 텅비어 있었고, 손발은 바빴고, 입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곤 했다. 그리고도 언어조작은 멈추질 않고 나름 의미있는 발언도 했다. 그래서 일은 그렇게 이어졌고, 날은 지나갔으며, 생명은 끈기있게 지속적으로 호흡과 심장박동을 이어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살아있기만 하면 살아지는 것이다.

 

오늘은 티보 맥클랜드 박사가 오는 날이다. 이것도 내가 해야하는 일중에 하나다. 박사가 일주일 동안 머무르는 동안 그의 방문지에 가서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그의 연구와 프로잭트를 도와주는 것. 인천대교를 지나니 다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니 낮잠이라고 자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에소프레소라도 한잔 마셨으면, 아 껌이라도 씹었으면, 그것도 없고, 창문을 열었다. 바닷가를 다 지나갔는데도 어디선가 바다냄새나는 공기, 비릿한 냄새가 없는 이 습한 바다공기와 내리쬐는 햇살 어디선가 기억의 한 켠에는 숙과 함께 같던 포구와 해안가, 그리고 바람이 생각나는 순간 이었지만..그것도 사실은 졸음 속에서 아련하였다. 드르럭 드르럭, 차로에 표시해진 과속방지 선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바람에 잠에서 완전히 깼다. 그리고 대한항공이라니, A구역 15번 녹색으로 칠해진 기둥옆에 차를 세웠다. 아직도 시간이 남았구나. 에소프레소는 한 잔은 할 수 있겠군.

 

그 아가씨는 나를 알아봐주었다. 요즘 계속 외국에서 손님이 오니 말이다. 외국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들러던 카페베네에 아르바이트 여학생, 방긋이 웃으며, 마치 기억이라도 하듯, "에소프레소요?" 했다. "음... 네.." 귀염성있는 아가씨는 에소프레소 더블을 새까만 작은 잔에 가져와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보통은 가지러 가야했는데, 책을 읽고 있었더니 못들었나보다. "고마워요..미안해요." "괜찮아요, 선생님." 하면서 그녀는 밑줄을 잔뜩 긋고 있는 내 책을 흘깃 들여다 보았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호기심이 가득찬 눈을 들여다 보았다. "알랭드 보통이야" "네.."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계산대 뒤로 물러갔다. 다른 사람들이 주문하려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책에 밑줄 잔뜩 치면서 읽고 있는 것이 이상했던가? 내가 선생처럼 입었나? 혼자 생각을 하면서 다시 책에 빠져들었다. 이사벨은 숙과 좀 닮은 면이 있다. 물론 좀 더 읽어 봐야 하겠지만, 이 책도 마침내 둘이서 헤어지는 것으로 끝날 것이 틀림없어. 이사벨이 숙이 같은 여자이고, 주인공이 나같으니 말이야. 조금 뻔해지기 시작하자 빨간 실책갈피를 꽂으며 일어났다. 에소프레소를 다 마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도착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항에서 구경하는 가족간의 재회는 항상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다. 게이트 A에서 기다리려하니 시카고에서 도착한 비행기가 있었다. 엄마와 떨어졌던 꼬마 남자아이가 엄마를 발견하더니 엄마에게 다가가기를 망설이다가 마침내 꾸벅 인사를 하는 걸, 엄마가 크게 팔을 벌리자 안기고는 울어버리는 장면이라든지. 그리고 그 안고 눈을 잠시 감는 엄마의 모습이라든지. 남편의 눈길과 잠시의 포옹이지만 애틋한 몇 초간의 멈춤의 순간. 아빠와 외할머니를 보고는 달려드는 외손녀, 나이 좀 든, 유학중 일 듯한 나이든 아들이 나오자 어쩔 줄 몰라서 손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수줍은 중년을 훨씬 지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아들과 포옹을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포옹을 하는 모습. 한결같이 그들의 포옹에는 잠시의 멈춤이 있다. 그 몇초간의 멈춤에는 짙은 애정이 배어 있다. 그들이 정말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서로 반목을 하고 싸우기도 하든지 말든지, 공항은 가족임을 증명하는 장소인 것 같다. 그리고 손님으로 온 사람들을 반기는 사람들, 그들은 포옹을 하더라도 그들의 포옹은 좀 다르다. 깊게 포옹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포옹하고 몇 초간의 멈춤이 없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티보 맥클랜드박사는 게이트 B에서 나온 것이다. 예전 모습에 좀 더 흰머리가 희끗해진 것 빼고는 여전히 젊잖고 신사답고, 그리고 이지적인 모습이었다. 얼마만의 조우인가? 스위스 컨퍼런스에 지난 해에 잠시 만났으니 겨우 몇 개월 만이지만, 마치 오랜 만에 만난 듯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반가워 했다. 그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학자였다. 차안에 자리를 잡자 그는 책을 두 권 내민다. "하나는 당신의 인생에 조언을 위해서, 다른 한 권은 직업을 위해서 선물하는 겁니다."  그가 내민 책은 거이 도체스터가 쓴 거였고, 다른 하나는 David Nicolls의 책이었다. 나는 인생의 조언을 그에게서 얻고 싶었다.

 

"헤이, 티보 맥클랜드 박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던가요? 가족? 개인적인 성취? 성공? 사랑? 미래의 꿈? 과거의 기억? 재정적인것? 어떤 것이던가요?"

"아, 그건 좀 무거운 질문이군요, 인터뷰인가요?"

"하하, 아닙니다. 좀 무거우면 오늘 대답하고 좀 가볍게 만들어 내일 답을 바꾸어도 됩니다."

"오, 그래요?"

"하하, 그래요, 아님 중요도를 배분해서 여러가지로 대답해도 좋고요, 저를 위한 조언이라고 칩시다."

"아하, 음. 글쎄요,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였어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했는가. 주변의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동료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실패했을 때, 그들이 원했던 것을 해주지 못 할 때, 늘 저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없었는 것이었는지, 할 수도 있는데 못한 것이었는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 아, 그렇군요. 좋은 대답이에요. 현명한 대답이에요. 한가지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가지 중요한 것들 사이에 있는 것들이군요. 전혀 다른 각도의 대답이군요. 고마워요.."

 

그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부드러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좋은 친구였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했고 지금도 그런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내가 너무나 사랑해서 떠난 숙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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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4일 지금은 10시 1분이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내가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들리는 타각거리는 소리뿐. 오른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밖으로 내다보이는 창가에 네가 서 있곤 했었는데. 그리고 가끔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곤 했었지.

 

"네, 다음에 다시 전화 드릴께요. 지금은 쫌."

 

너는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한참 전화통화를 하고 들어왔지.

 

"누구?"

"엄마, 집에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내가 알면 안되는 일?"

 

너는 그냥 말없이 다시 문을 닫고 나갔어. 내가 네 전화기가 궁금했던 것은 정확하게 그 때부터야. 너는 엄마라고 했지만, 남자 목소리, 그리고 네 곤란한 표정. 그리고 너의 어색한 표정. 그 때부터야, 내 가슴속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던 것은. 왜 하필이면 엄마라고 했어? 목소리가 아니잖아? 나는 네가 원망스러웠어. 삼촌, 큰아빠, 뭐..그럴듯했어야 할 거아니야. 내가 모르도록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면 말이지. 나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내가 알기를 바랬던 건가? 그날 기억해? 내가 너를 처음 보았던 날 말이야. 그 파리에서의 저녁파티.

 

나는 선배의 아뜰리에가 그렇게 정리정돈 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지 않았지. 내가 초대받아 갔을 때 그 선배는 아마도 너를 의식했었던가봐. 네게 관심이 있었던 거야. 그 파티에 한시간 정도 후에 나타난 너를 처음 보고서야 선배가 왜 애타게 너를 기다렸는지 알것 같았어. 짙은 청녹색 원피스를 입은 너의 모습,  너는 부근 아스테릭스파크를 지나왔는지 네게서는 수풀 냄새가 났었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선배의 시선이 네게로 갔기 때문에 나도 너를 보지 않을 수 없었지. 너는 현관벽에 걸려있는 에로틱한 남녀의 인도판화를 잠시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왔어. 선배의 기타리스트 친구들이 끊임없이 키타를 번갈아 가며 치고 있었고 몇사람들은 이미 와인과 맥주에 취해있었어. 나도 와인 두잔과 맥주 세잔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근의 깔깔 거리며 웃는 여자들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였지. 그렇다고 네가 그런 효과에 힘입어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아니었어. 아마도 너는 선배보다는 그의 그림에 관심이 있는 듯 했으니까. 선배가 그의 아뜰리에에서 전시한 그림은 모두 그의 것이 아니었지만, 너는 그를 숭배하는 눈길로 바라보았지. 내 시선은 그 숭배의 눈길을 따라 다니고 있었고, 그 미소에 굴복했던 거야. 그래서 보드카에 토닉 얼음을 흔들며 소파에 주저 앉았던거야. 선배가 한국에 와이프한테서 급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네가 내 옆에 그렇게 오래 앉을 행운을 얻지도 못했겠지. 바로 그때 부터야. 정확하게 그때 부터. 너를 사랑한 것이.

 

나는 너와 같은 유형의 여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예술이나 예술가와 관련을 맺어보려고 애쓰는 한 때는 큐레이터지망생이었다던, 수상쩍은 예술가들에게 과장된 존경심을 품고 있는 여자 말이야. 본인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생활의 황량함에서 벗어나기위해 예술가 인척을 조금만 해준다던지, 혹은 조금만 예술가적이거나 현학적인 체하면 마구마구 애착을 느낄. 며칠 논문을 쓰느라 까칠하게 자란 수염에 존경심을 표시를 하는 너 같은 여자, 그리고 집안이 조금 부유하다 싶으면 마구 마구 웃음과 호의를 뿌려대는 여자. 그래서 너에게 눈길이 갔었음에도 그리고 네가 지독하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아이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지. 결국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피했던 유형의 여자 말이야. 너는 그런 여자 였는데. 선배가 돌아왔을 때, 너는 다시 선배의 좌파적인 발언에 매혹된듯 보였으니까. 마르크스가 연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적어도 사실이야. 막시즘과 동물보호단체의 감상주의 그리고 물질주의적 애착이 뒤섞여 그가 설명하는 그림과 그 가격에 감탄하던 눈빛. 채식주의에 빠져있던 나조차도 성욕에 꿈틀거리게 만드는 너의 취약한 정신, 너에게 내가 데이트를 신청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끌렸다는거야.

 

졸업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조금은 압박감을 느끼던 터라 너에 대해서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하고 부엌쪽으로 걸어 갔던거야.  네가 뒤에서 어깨를 치지 않았으면 어슬렁 어슬렁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르겠어. 파울라너맥주병을 따자 거품이 병으로 흘러 손에 젖었길래 손으로 훔지며 될아섰을 때 네 얼굴이 다급해 보였어. 

 

"맙소사, 나 좀 구해주세요."

"무슨 일이에요?"

"지갑이 없어졌지 뭐에요. 선배한테 말하는 거 보다, 모르는 사람한테 도움을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선배한테는 비밀로 해줘요. 칠칠맞지 못하다고 생각할거에요. 미안해요 초면에"

 

아, 이건 무슨 횡재란 말인가. 너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내 귀에는 우뢰소리처럼 들렸어. 이층 계단에서 선배가 내려오면서 나를 아니 정확하게 너를 발견하고 우리쪽으로 걸어오자, 내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었지.

 

"선배가 오나요? 나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척 해줄래요? 첫 눈에 반한 것처럼"

 

나는 네 허리에 손을 대고 가볍게 춤을 추었지. 그때서야 비지 피의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거야. 너는 금새 취기라도 있는 듯 내게 머리를 밀착을 했잖아. 

 

"전 롤랑바르트하고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 책과 경쟁을 해야 하잖아요? 책에서 오르가즘을 느꼈다니까."   

"제가 읽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도 살아 숨쉬는,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너의 뻔한 하이파이에 맞장구칠 요랑으로 손을 댔을 뿐이라 생각해. 

 

" 맥주 더 마셔라, 네가 좋아하는 파울라너 채워놓았는데."

" 오케이, 저기 김빠지게 기다리고 있는게 제 맥줍니다."

 

너의 머리카락이 내 가슴에서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 같았고 그 때마다 수풀 냄새가 났지.

 

"제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러지 말아야 할 때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굴어요. 냉랭하게 굴지 못하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질 까봐 두려워요. 그래서 친근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부인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길 바라나봐요."

 

나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리라 생각을 했어.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슴같이 굴다가 내가 만약 내 속을 드러낸다면 너는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똑같이 말했겠지. 너는 사냥하고 싶게 만드는 동물이었던거야. 그러고 보니 내가 너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사냥했던 걸까. 지금 생각하니 둘다였던 것 같아. 그리고 지금은 놓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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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이런 남자가 다 있을까. 뭇 여성을 호리고도 남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남자, 입을 열때마다 기지가 반짝이는 화술과 입가에 그리고 발음에 어린 수줍음,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주목을 끄는 언어의 조합으로 강의를 하던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처음으로 손에 잡았다. 그의 철학 강의는 매력적이고도 남음이 있다. 그의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소설일까, 에세이일까, 아니면 심리철학서일까. 장르도 묘하지만 글의 스타일도 그의 어투만큼 묘하다. 관점을 이리저리 프레이저처럼 바꾸는 것도 그렇고 아주 디테일 한 것에서 리얼리티를 성취하는 것도, 그리고 번역도 마음에 든다. 반면에 등장인물이나 플롯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건축회사에 다니는 주인공이 클로이라는 여성을 비행기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와 헤어지는 이야기이다. 헤어지게 된 것은 클로이의 배신이다. 클로이가 주인공의 회사 동료인 윌과 원나잇 스탠드를 하게되고 그 관계가 지속되자 주인공은 그것을 감지하고 있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와중에 마침내 클로이가 그것을 그것을 고백함으로서 둘 관계는 산산 조각이 난다. 그후 우리의 주인공은 다른 여성 레이첼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 끝을 맺는다. 

 

플롯이 이리도 평이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현실을 성립시키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길을 끈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읽게 만든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알랭드 보통의 묘한 심리묘사와 화려한 서술과 인용의 조합을 통해서 전혀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세밀하게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똑같은 사건을 거꾸로 보게하기도하고 다른 방향에서 크게 혹은 작게 보게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그 사랑에 눈이 머는지, 그리고 그 사랑에서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우선  그 사람을 이상화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다른 모습을 모두 제거해버리고 우리가 이상화하고 싶은 부분만을 보게됨으로서 사랑을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싫어하는 모습은 아예보지 않거나, 축소시킨 채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하게 되지만 실은 정말로 상대를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니까?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과장 덕분에 우리는 습관이 된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에게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믿음을 가지게 된 어떤 사람에게 우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자신에게서 시야를 돌려 다른 사람을 보기 마련이고 이 봄은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바라봄에서 필시 하나의 각도를 채택하여 끊임없이 그것에 집중하고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 사랑의 시작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특히 끌리게 되며 그것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결함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희망이 자기 인식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 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성,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 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선택한 사람주위에 사랑의 방역선을 쳐놓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가진 결함으로 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사랑스럽다고 결정해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 [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주인공은 갑자기 클로이를 확대하고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없으면 죽을 것같은 정도로 깊이. 무지가 사람을 더욱 용감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랑학에서도 적용된다. 단순한 망상에서 사랑은 출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망상은 정확한 각도와 순간과의 절묘한 일치의 순간 끌어당기는 순간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절묘한 일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리 작은 의미의 언어라 할지라도 수천가지 수만가지의 애매모호한 의미를 갖게 되므로 사랑은 다시말해도 무지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다. 따라서 확실함, 과학성 등을 철두철미하게 믿거나 숭배한다면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외없이 그런 사람도 사랑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다. 사랑이 무지에서 또는 망상이나 과장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사랑의 창조적 특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랑의 상태에서는 보통의 의사소통에 유용했던 언어가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는 심정적 상태가 생겨나게 되고 그것은 어떤 사전의 뜻풀이로도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된다. 그래서 모든 작은 디테일에서 의미를 찾으려한다.

 

순수와 공모릐 중간에 걸려 있는 클로이의 모든 행동에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문장의 끄트머리에서, 그녀의 웃음의 입꼬리에서 유혹의 흔적을 찾아낸 것 같은데, 맞나? 아니면 나의 욕망이 순수의 얼굴에 투사된 것뿐일까?

 

사랑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작은 디테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의 손짓, 눈길, 그가 하는 말, 그가 쓴 글에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것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의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무시하기도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도 무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집착은 어떤가. 사랑은 곧 잘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올 전화에 집착하게한다.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클로이가 며칠뒤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오히려 준비했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양말을 널다가 기습을 당했다. 나는 침실에 있는 전화로 달려갔다. 내 목소리에는 긴장과 분노가 담겨 있었는데, 만일 종이에 쓰는 글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능숙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유혹이 된다.

 

전화기의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테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말하는 매력적인 사람의 역할은 만나기 정말로 쉽지 않은 상대이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라하는 사람 [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 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양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상대의 마음에 안겨줄 줄 아는 사람이다." 라고 쓴다. 맙소사. 그런 유사한 이야기가 시중에 나돌기는 한다. 속된말로 '줄듯 말듯 애태우는 여자'인것이다. 뿐만아니라 여자의 또는 남자의 수줍음은 많은 것을 감추어 준다. 그래서 수줍어하는 남자나 여자는 더욱 매력적이고 상대를 애태우게 된다. 그 수줍음의 표현뒤에 감출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애매모호함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는 모호한 신호들과 마주쳤을 때, 이런 분명한 태도의 결여를 수줍음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 더 좋은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도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그렇다고 말을 못 한다. 이렇게 자신의 유혹의 대상이 수줍어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사랑은 애초부터 상대방에 촛점을 강조하고 보기 때문에 아부할 준비가 완벽하게 갖추어지게 되며 상대방의 단점도 사랑하게 되고 단점조차 장점으로 보이게 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망설임이 수줍음뒤에 감추어지거나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결정적 기준에 맞추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라는 자아의 특질을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곧 나의 모든 개인적인 특징을 버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무가치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버린다는 것은 묘한 것이다. 이 자아리를 버리는 순간은 육체적인 것과도 관계가 있다. 자아를 버리는 정도는 친근함의 정도와 관련이 있으므로 육체적인 가까움, 즉 접촉의 정도와 균형을 이루려하는 것이 우리의 인식이기도 한 모양이다. 그래서 키스를 하면서도 키스속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키스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역으로 키스나 육체적 접촉을 생각을 차단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성기와의 접촉이 뜻하는 친밀함과 그녀의 삶의 나머지 미지의 영역 사이의 불균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육체적 헐떡거림과 더불어 피어나는 그런 생각들은 무례하게도 욕망의 법칙들에 맞서서 불괘한 정도의 객관성을 끌고 들어오고, 그럼으로써 우리와 함께 방 안에 있는 제 3자, 지켜보고, 관찰하고, 또 심지어 판단까지 하는 자의 위치에 올라서려고 하는 것 같았다.

 

...

나는 키스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둘러싼 공식적 신화이다. 침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그들의 벌거벗은 상태를, 그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불가사의를 일깨우지 않겠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특별한 공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과 행위, 몸의 작은 움직임에 조차 촛점을 맞추게 되면 그가 또는 그녀가 가진 사물까지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물건의 배열, 옷을 입고 벗어놓는 자태까지도 오나별하고 세련되고 일반적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는 사람은 어떤가. 사랑받는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쉽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상대방이 적극적일 때 오히려 거절하고 상대방을 애태우는 자이다. 즉 상대가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사랑에 투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상대가 마르크스주의자인경우 상대방의 행동과 상대의 행동에 대한 관심에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 투쟁이후에 마르크스주의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학교 배구팀 주장이었고, 아주 아름다웠으며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녀는 언젠가 학교 식당에서 내가 사준 오렌지 스쿼시를 앞에 놓고 앉아서 일허게 말했다." 어떤 남자가 9시에 전화를 걸겠다고 하고 진짜로 9시에 전화를 하면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아. 결국 그 남자가 필사적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뭐겠어?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남자는 나를 계속 기다리게 하는 남자야. 9시 30분이 되면 나는 그 남자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되거든."

  나는 그 나에도 그 애의 마르크스주의를 직관적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애의 말이나 행동에 관심이 없는 척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몇주 뒤에 처음으로 그애와 키스를 할 수 있었다. 

 

대단한 감정적 격변을 예고하고 운명과 연관지으며 때로는 삶과 죽음의 귀로에 오르게 하는 사랑은 상대방과의 차이점보다 유사성에서 더욱 결속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차이점에 대해서 느낄 때 서운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빠져나오면 거기에 육체적 경계뿐아니라 수많은 점에서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사성을 찾는 것은 사랑의 한 증상인 것이다.

 

사람들은 차이를 따지는 것보다는 유사성을 부여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그러나 이론가들이 말하듯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몸을 분리하고 있는 살갗은 단지 육체적 경계일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심리적 분수령 -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일 뿐이다.- 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사람과 유사성을 찾기는 아주 쉽기도 하고, 그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하기를 갈망하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사랑의 증상인것이다.

 

내가 그녀를 알기 전의 그 모든 세월과 습관들. 그러나 그것도 그녀의 코의 모양이나 눈의 색깔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일부였다. 모든 관계에 내포된 분열이 눈에 보이면서, 나는 익숙한 환결에 대한 원시적인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되었다. 새로 배우고, 나자신을 제시하고, 내가 순응해야 할 왼전히 새로운 사람,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내가 앞으로 클로이이게서 발견할 모든 차이를 생각하며,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일 그 모든 시간, 우리의 세계관이 양립할 수 없는 시간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창 밖으로 월트셔의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내가 이미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 그 집, 부모, 역사의 특이한 점까지 이미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갈망했다. 

 

사랑은 아예 처음부터 기독교적인 사랑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증상은 다른 종류의 사랑과는 차이가 있다.

 

기독교적인 사랑은 침실로의 이행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적 사랑의 메시지는 특정한 경우보다는 보편적인 경우에 어울린다. 모든 여자에 대한 모든 남자의 사랑, 서로 코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두 이웃간의 사랑에 어울리는 것이다.

 

...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너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는 네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너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이제 너에게 상처도 주겠다.

 

이렇게 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독특한 관계가 성립되며 서로에게서 평정을 찾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갈등하게 되고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 판매소 주인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 상대방을 통치하려고 하며 간섭하고 통제하고 심지어 압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옷입는 모양, 말하는 모습까지 이런 저런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의 말을 빌리면 최소한의 통치가 가장 바람직한 통치인 동시에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다. 사랑할수록 그 사람을 멀리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깨물지 말아야하고 손안에 넣어두지 말아야하고 너무 껴안아서 질식시키지 말아야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은 사랑하는 방법을 말해준다.)

 

자유주의적 사상가들은 통치자들이 국민을 사랑하기 때문에 통치한다는 말을 그만두고, 분별력 있는 최소한의 통치에 집중할 그런 따뜻한 마음이 생겨난다고 대답했다. 자유주의 정치학의 가장 위대한 옹호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가 1859년 출간한 [자유론]은 사랑없는 자유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옹호이다. 밀은 국각가 아누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하며, 개인적인 생활을 이렇게 저렇게 영위하라거나, 무슨 신을 섬기고 어떤 책을 읽으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력있게 주장했다. 밀은 완국이나 압제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의 신체 및 정신적 규율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근대 국가는 가능한 한 뒤로 물러서서 국민이 스스로 통치하게 해야한다고 덧붙혔다. 남녀관계에서 괴로워하면서 그저 옴싹달싹할 수 있는 여지만이라도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 처럼. 밀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삶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거나 자유를 얻으러는 노력을 방해하지 읺는 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어떤 구성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때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상대방과의 깊은 신뢰나 믿음이 먼저 선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서로를 확인하는 단계가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자유로이 서로가 떨어져도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있는 경우이다. 이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진 부부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있다. 

 

사랑이 오래전에 사라져버리고 껍질만 남은 결혼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각방을 쓰면서 출근하기 전에 부엌에서 만나 몇 마디 건네는 관계. 상호 이해에 대한 희망은 오래 전에 포기하고 대신 통제된 오해에 기초하여 미지근한 우정을 지속하기로 합의한 관계. 저녁에 세퍼즈 파이을 함께 먹을 때에는 정중하게 예의를 지키지만, 새벽 3시에는 잠을 못이루고 감정적 좌절에 가슴 아파하는 관계.

 

반면에 사랑의 순간은 상대방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순간이다. 그 특정한 모습에 빠져들고 그것을 확대인식하는 순간이다.

 

무한히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맞은 편 욕조에 누워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왜 우리의 욕망이 이 특정한 얼굴, 이 특정한 입이나 코나 귀를 선택했는지, 왜 이 목의 곡선이나 보조개가 우리의 완벽성의 기준에 그렇게 정확하게 응답했는지 묻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의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들의 얼굴 풍경만큼이나 독창적이고 특색있는 방식으로 매력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재규정한다.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감탄하는 미에 대한 기준은 플라톤의 미에 대한 기준과는 다르다. 플라톤의 경우 아름다움의 객관적인 기준이 수학적인 황금률로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만인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우연이라기 보다는 필연인것이다. 실로 Leon Bsttista Ablertti는 사람의 몸을 600조각의 단위로 나누어 그 비율의 넓이, 부분과 부분사이를 측정하여 플라톤적인 아름다움을 제시한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은 경이롭기는 하지만 필자에 따르면 멱살을 쥐지 않는다.

 

어떤 그림은 우리의 멱살을 쥐는 반면, 다른 그림은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눈의 언어는 말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에 고집스럽게 저항한다.

 

주인공의 클로이에 대한 아름다움은 플라톤적인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결정 근거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칸트의 판단력비판에 나오는 견해에 가깝다. 그것은 뮐러-리어의 착시에 가까운 것이며, 스탕달의 말대로 '행복의 약속'인 것이다.

 

실제로 클로이의 얼굴에 내가 좋은 삶과 동일시하는 특질들을 암시했다. 그녀의 코에는 유머가 있었고, 주근깨는 순수를 이야기했고, 치아는 관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당돌한 태로를 암시했다.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행한 일탈이 아니라, 심리적 미덕의 지표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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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얼굴은 대개 매력과 비뚤어짐 사이에서 동요한다. 완벽함에는 어떤 압제가 있다. 심지어 어떤 싫증이 느껴진다. 과학적 공식과 같ㅇ느 독그마의 힘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있다. 이보다 유혹적인 아름다움의 경우에는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각도조차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떤 빛에서나, 어느 때에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미는 아슬아슬하게 추를 희롱한다. 자기 자신에게 모험을 건다. 비율의 수학적 규칙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고 모험에 나서서, 추로 미끄러질 수도 있는 바로 그 세밀한 곳들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마르셀 프루스타가 말했듯이,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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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상력은 클로이의 치아 사이의 틈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했다. 클로이의 얼굴은 그 모호함 때문에, 오리와 토끼가 둘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트겐쉬타인의 오리-토끼 그림과 비슷했다. 이 그림에서는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상상력이 오리를 찾으면 그는 오리를 보게 될 것이다. 상상력이 토끼를 찾으면 토끼가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의 경향이다. 물론 나를 지배하는 주된 경향은 사랑이었다.

 

알랭드 보통에게서 놀라운 것은, 주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정당화가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든지 혹은 사랑때문에 가능하다든지 하는 것보다 그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인식하는 자에 대한 시선의 전환에 있다. 즉 아름다움의 시선을 주는 자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 있다.

 

그리스 조각상처럼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위험은 그 위태로움 때문에 보는 사람의 눈을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치아 사이의 틈으로부터 철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훌륭한 치열 교정 의사가 필요한 것 아닐까? 보는 사람의 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보는 사람이 시선을 거둘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역시 클로이의 매력의 한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에 관한 주관적 이론은 기분 좋게도 관찰자를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만들어버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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