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한심하기 짝이 없거든,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거나, 엘리베이터문에 반나절쯤 껴서 반성 좀 해라." 그 자식은 전화를 끊으면서 악담을 했다. "내가 바란게 뭐가 있다고 악담이야. 제길" 침대에 털썩 앉았을 때 거울에는 짧막한 검은 머리에 뾰족한 얼굴을 한 낯선인간이 출렁거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새끼가 누구게?" 측은한 표정의 그 낯선 자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삐죽거리다가 눈물 먼저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 새끼" 그 놈은 항상 믿을 만한 놈이 되질 못했다. 그냥 돌아누워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언젠가 정신없이 숙이의 몸을 뒤지고 있을 때 처럼 아니다, 숙이의 몸에서 그 놈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동시에 그녀를 사랑하면서, 내가 알게된 그 놈의 형상은 늘 거울 속에서 내가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의 일에 사사껀껀 간섭하는 놈이 되었다. 그놈을 닮은 귀를 덮어버린 머리카락이 싫어서 (귀가 싫다고 잘라버릴 수도 없잖아?)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버렸을 때, 미용실의 아가씨와 사귀고 싶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최고야, 내가 아는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걸"

 

머리카락을 그녀에게 맡기고 누워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자 내 눈에 수건을 덮으며 미소를 지었다.

 

"입도 덮을까요?"

"ㅎㅎ, 입술로 덮어줘"

 

아, 이건 아닌데, 좀 너무 했다 싶은 순간 그녀의 얼굴이 싸아 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이래서 안되는거야. 약간의 긴장감. 약간의 긴장감이 있어야 했는데. 쩝'. 하여간 순식간에 젊잖지 못한 손님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의 머리카락을 자못 부드럽게 감기면서 가끔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머리카락 속으로 헤집으면서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가끔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눈을 뜨면 입술이 있을 듯했다. 새로운 사냥감이기에 그녀는 너무나 나약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미용실 아가씨가 좋다. 그녀와 사랑하는 꿈을 꾸곤하니까. 그래서 항상 이 곳으로 온다. 내가 좋아하는 아가씨는 제법 권총이라도 차듯 몇가지의 날카로운 가위를 허리춤에 차고 나를 겨냥하곤했고, 그 때 마다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동시에 그 부드런운 말씨하며 가끔 슬적 와닻는 손길과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강도가 조절 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녀의 삶과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어떻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사냥감이 털썩 누워 겨우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순간, 그 목숨을 쥐고 있는 순간과 유사하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상가의 미용실에 그녀는 가끔 문을 빠끔 열고 건너편에서 팔고 있는 붕어빵을 사러 사뿐 사뿐 걸어가거나, 그 옆 트럭에 팔고 있는 귤이라도 사려고 기웃거릴 때면 나는 그녀의 씰루엣이 멀리서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해도 만족 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눈길로. 그녀는 나에게 가끔 쫓아보는 사냥감이었다. 그런데 숙이 떠나고 그 날 부터 그녀가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숙이 보다 몸매도 나아. 어쩌면 저 맑은 피부가 목선을 따라 이어져 있을지 모르겠어'.

 

이 글을 읽고 있는 한심한 년놈들이여, 이제 더 이상 나라는 속물을 들여다 필요가 없다고 느끼지 않는가? 이 공원에서 벌써 10여년이 넘게 좌판을 벌리고 하루에도 몇번이고 빠지지 않고 들러보고 기웃대지만, 그리고 이것 저것 올려놓지만 사실 나는 단지 여기 저기 몇푼에 원고를 넘기는 이름 없는, 아 참, 그리고 이혼한 척하고 사는 소설가 일 뿐이니 말이다. 쌕스없이 살고 있으니 이제 혼자 사는 남자의 호르몬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것이고, 나의 말투도 그럴 것이다. 물론 지나는 여자마다 새로운 여자이고 만나는 여자마다 아름답고 혼자사는 풍요로운 여자라면 모두 관심이 있다. 누구라도 사귀어왔고 누구라도 사귀게 될 것이다. 소설가가 장래희망이라는 김**양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지만, 사실 여기 저기 가끔 나가는 강의중에 눈길만 돌려도 아니,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올 아줌마들이 널려 있으니 내가 정확하게 숙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으니라. 함께 살고 있는 거울 속에 그 인간이야 지가 필요할 때 가끔 나와 나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있을 뿐이고 대체로 나의 생활은 안락하고 편안한 편이다. 그러니 나를 시기할 일도 없거니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한심한 년놈들이여, 이 책을 그만 덮기 바란다. 내 활자가 기어나가 책 밖으로 가끔 손 발을 드러내고 흔들어 댄다고 한들, 그대를 위해 손짓하는 것이겠는가, 그대들의 고매하지 못한 흥미에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마지못한 제스춰를 해보는 것도 사실은 거울 속에 그 놈이 시킨 일일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거울 속에 그 놈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고? 그렇다면 나와 시간을 보낼 필요가 더더욱 없지 않겠는가. 인생도 짧은데, 그냥 가던 길 마저 가시고 나는 그놈의 이야기를 하면 그만이다. 그놈이야말로 나의 원수이니 내가 그 거울을 깨지 않고 그 놈과 단판을 벌이던가 아니면 그 놈과 화해할 것인지는 하여간 그거야 오로지 나의 일일테니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 남아도는 구경꾼이라면 가라. 거기 쪼그리고 앉아있는 단발머리의 촌스런 아줌마여, 남편이 바람피고 있는 것도 모르고 충실하게 그를 믿고 살아 왔던 그 멍청한 표정 그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니 가던 길 마저 가라. 여기 이 공원에서 내가 넉두리를 한다고 한들 그대를 위한 것도 아닐 것이고. 자유롭다는 대한민국 이 땅, 이 275센티의 두 개의 신발이 디디고 넉두리를 한다고 한들, 내 입을 막을 것인가 말이다. 네 년의 웃고 있는 주둥이를 내가 먼저 찢어 한 접시 썰어놓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안주 삼을일이다. 어이 거기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 가던 길 가라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산다고. 이 공원이 당신 거냐고. 집에 있는 아줌씨 몰래 이 여자 저 여자 구미가 돋을 때마다 건드리던 그 손길 그냥 흔들면서 지나가라고. 지성인인척 하던지 말던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아니 이건 뭐야. 거기 벤치에 누워서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으면 어쩌자는 거지?  거기는 내 자리다 이거지. 이봐 이제 적당히 일어날 수 없을까?

 

저벅 저벅 벤치 쪽으로 걸어가자 주변에 모였던 대 여섯 사람들이 내가 가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말했지, 여긴 내자리라고, 알아? 내 자리. 비켜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고 신문지를 벗겼을 때 나는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맙소사, 어떻게 여기까지 온거야' 그 남자, 거울 속에서 언제 나와 그곳에 누워 있는 거였다. '제길,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거야?'

 

"이봐요, 도데체 뭐하는 거요? 도데체 왜 날 따라다니는거냐고?"

 

눈을 부시시 뜨는 척하더니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는 그 놈은 영락없는 거울 속에 그 놈 이었다. 그 놈은 내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다가와 신문지를 젓힐줄 몰랐다는 듯이 날 바라보면서 비굴한 웃음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나는 여기에 누워 있을 뿐이고, 댁이 신문을 벗기는 통에 잠을 못자는 거 뿐이에요. 여기에 내가 누워 있다고 한들, 댁을 방해할 턱도 없고, 말도 안되는 설교를 내가 못하게 한거도 아니고, 도데체 나에게 바라는 게 뭐라는거요?"

"말도 안되는 설교라니?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설교를 했단 말이요? 도데체 나를 따라다니는 이유가 뭐요?"

 

나는 언성이 좀 높아지는 것을 억제하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것 보세요, 저기 사람들이 댁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인단 말이요? 당신의 그 쯤에 제멋대로 찟어진 구멍 두 개를 통해서 세상이 보지는 않는다 말인가? 댁이 한참동안 주변에 여자들 이야기나 하고 있지 않았소?"

"기가 막히는군, 가관이군. 내가 저 인간들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요? 진심이요? 나를 뭐로 보는거요 도데체, 난 말이요, 험험, 저 인간들 들으라 말한 적도 없고 저 인간들이 그 쯤에 뚫인 구멍으로 소리를 들었을 뿐이요"

"헛참, 귀를 입처럼 닥칠 수도 없을 테고, 열려있는 귓구멍으로 들리는 것을 어쩐단 말이요? 댁이 숙이하고 헤어졌든지 이혼을 했던지, 그리고 미용실 처녀와 무슨 일이 있던지 그게 동네방네 할 일이냐 말이요."

 

거울 속에 그 인간은 끝내 내 편이 아님을 밝히는 발언만 일삼았다. '그래, 저 인간은 내 편일 수가 없어. 그런데 왜 내 집에 내거울속에 거주하는거야. 내쫓아내야해. 기왕에 이렇게 된 김에 여기서 아예 끝장을 봐야겠군.'

 

"그래, 니가 내 거울 속에서 살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참아온 이상 이제 다시는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 숨지 말라고. 다시는 집으로 따라 들어오는 일따위 하지 말란 말이야. 그리고 사사건건 내 인생에 콩내라 팥내라 하지도 말란 말이지. 이상, 이상이야 끝, 끝, 알겠지. 끝이야 . 미련도 없어 귀신같이 따라다니지 말란 말이지 이 한심한 인간아"

 

나는 속이 시원하도록 내뱉았다. 그동안 괴롭혀진 순간들을 모두 단번에 이렇게 대면한 김에 다 화풀이하는 요량으로 이리저리 생각나는 말마다 억양을 올리며서 시원하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하아, 속 시원해, 싸가지 없는 년놈처럼, 찰거머리처럼 거울에 붙어 있었던 놈이니 이제 이렇게 시원하게 떼어버릴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 놈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으니 말이다.'

 

"나 다 알거든" 

 

그놈은 만성 축농증이 있는 코를 씰룩거리며 마치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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