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정치 - 유머와 반전이 넘쳐흐르는 서민의 정치 에세이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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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귀순한 북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이 수십여 마리나 발견되면서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회나 육회 같은 음식에 대해 께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아졌고, 나 역시 오랜만에 구충제를 먹었다. 그 무렵 라디오의 시사 방송에서 "회를 먹음으로써 얻는 이득이 기생충의 위험을 상쇄합니다. 육회요? 맛있잖아요. 드세요. 선지요?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것만"라고 대답한 '육회한' 인터뷰가 화제가 되었다. 기생충 연구자 중 가장 유명한 서민 단국대 교수였다.

요 며칠 서민 교수가 이번에는 유쾌하지 않은 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 블로그에 올린 '문빠가 미쳤다'라는 글이 문제가 된 것인데, 이 글에서 그는 이른바 '문빠'에 대해 "환자"라고 하는 등, 원색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 글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서민 교수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비판이 몇 가지 있었다. "박근혜 때는 찍소리도 못했으면서"라거나 "박근혜 때였으면 교수 그만뒀어야 할 것"이라는 비판들이다. 서민 교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경향신문에 박근혜 정부를 비판, 풍자하는 칼럼을 거의 매주 연재하고 있었지 않은가? 그 칼럼들만 모아서 최근에 <B급정치>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반어법으로 가득한 그의 칼럼들은 당시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러 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그런 사실들을 모를 수는 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반응은 서민 교수가 박근혜 정부 당시 썼던 칼럼들의 링크를 근거로 박근혜빠로 몰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이순신 장군을 보다"라는 글과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등이다. 칼럼 본문을 읽어보면 이 글들이 반어법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나 윤창중 대변인을 비판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이다(2006년에 쓴 "차라리 박근혜가 낫겠다"라는 글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 칼럼은 나 역시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반어법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 상당수 네티즌은 제목만 보고 본문은 읽지 않는다.
2. 상당수 네티즌은 행간에서 숨겨진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것은 네티즌들의 독해력과 문해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풍자와 반어법, 패러디가 가진 본질적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반어법은 '나는 A라고 쓰지만 독자들은 B라고 이해해 줄 것을 기대하는' 암묵적 전제 위에서 비로소 성립하는 맥락의존적 발화다. 그런데 A라고 쓰여있는 것을 B라고 이해하는 것은 저자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독자의 선의가 작동해야만 한다. 독자가 악의를 가지고 해석하거나 적어도 선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A라고 쓰여진 부분을 비판하게 된다. 어떤 글이 원래 쓰여진 맥락으로부터 단절되어 떠돌아다니게 되는 SNS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이순신 장군을 보다"라는 제목을 본 사람이 본문은 확인도 하지 않고 이 사람은 박사모인가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작금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쨌든 이번에 화제가 된 "문빠가 미쳤다"는 글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저자는 청와대 수행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폭행을 당한 기자들을 비난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어긋난 행태를 지적한다. 그리고 이른바 '문빠'라 불리는 네티즌들의 진영논리와 이중잣대 등을 비판하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문빠가 환자이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 부분이다. 이것은 사실 여부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레토릭으로서도 부적절하다. 심지어 저자는 의사이자 의대 교수인데 "환자"라는 말을 매도(罵倒)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은 우려스럽다. 역시 풍자와 조롱은 양날의 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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