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캐나다는 G8 국가들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에서 이민이나 유학을 가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캐나다의 정치나 문화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점이 거의 없다. 물론 지난 해 쥐스탱 트뤼도가 최연소 총리로 취임하면서 전세계에서 캐나다 총리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 직전에 10년간 총리를 지낸 사람이 스티븐 하퍼라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해 나사니엘 호손, 에드거 앨런 포,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를 거쳐 레이먼드 카버와 토니 모리슨까지 수많은 영국, 미국, 아일랜드 작가들이 등장하는 영어권 문학사에서 캐나다 작가들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짤막하게나마 언급되는 정도다. 앨리스 먼로가 20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캐나다 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과문하게도 호주나 뉴질랜드 작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인도, 나이지리아, 남아공,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작가들은 영어권 문학의 거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말이다.)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는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께,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101통의 편지가 수록된 책이다. 101통의 편지를 쓴(그 중 몇 편은 친구들이 대신 써 줬지만)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로 영어권 문학상의 최고봉인 맨 부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2007년 4월 16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내며 동봉하기 시작된 편지는 2주에 한 번씩 계속되다가 2011년 2월 28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편지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그리고 약 4년간 얀 마텔은 스티븐 하퍼의 보좌관이 보낸 형식적인 답장 일곱 통만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에 서평집이나 독서에세이는 많지만, 캐나다 수상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모은 책은 이 책밖에 없을 것이다. 얀 마텔은 수상이 라틴아메리카를 순방할 때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그리스 위기가 불거졌을 때는 사포의 시를 보낸다. 캐나다 원주민에 대한 책, 퀘백 사람이 쓴 책, 환경문제나 테러에 대한 책 등등 캐나다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책들을 추천하기도 한다. 캐나다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텔은 특히 캐나다 작가들이 쓴 책들을 다수 추천한다. 물론 러시아, 스웨덴,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등 다양한 작가들의 책 또한 추천한다. 캐나다의 정치, 사회, 문학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마텔이 스티븐 하퍼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때는 예술에 대한 예산이 삭감되었을 때다. 그는 "사천오백만 달러로 국민의 문화적 표현보다, 또 국민의 정체성보다 더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살 수 있습니까?"(229)라고 말한다. 그 다음 편지에서는 수상이 읽어야 할 독서 리스트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얀 마텔은 왜 수상에게 백여 권의 책들을 보냈을까? 한국어판 서문을 대신하여 그는 당시 취임한지 얼마 안 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대통령님이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하자면, 소설이나 시집 혹은 희곡을 항상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중략) 독서하는 시간을 통해 대통령님은 긴장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은 뒤로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중략) 그렇기에 독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중략)
스티븐 하퍼 수상은 절대 문학 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퍼 수상은 똑똑하지만, 재미는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위험을 멀리하고 편협한 생각의 보호막 아래 자리잡는 사람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스티븐 하퍼 수상은 대통령님은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될 정치인입니다.(중략)
저는 대통령님께 책을 읽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캐나다 수상보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미국 대통령을 본받아야 할 귀감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할 때 대통령님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14,15) 

여기서 저자가 101통의 편지를 쓴 이유가 드러난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시인을 추방하고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고 했던 플라톤이 들었다면 기겁할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는 일종의 문학 만능주의적 관점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더 나은 인격을 도야하고,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대체로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기분전환 삼아 문학 작품을 읽어서 나쁜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캐나다의 수상이 해야 할 일들 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 것이 우선순위의 상위에 있어야 할까? 저자의 믿음처럼 문학은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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