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 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
한겨레 특별취재반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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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무렵이었나, SNS에서 "#그런데 우병우는? #그런데 최순실은?"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다. 다른 기사들에 현혹되지 말고 우병우와 최순실을 추적해야 한다는 네티즌들이 벌인 운동이었다. 당시 99%의 국민이 그랬듯이 나 역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어디서 또 이상한 음모론 주워왔나보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때는 최순실게이트라는 이름을 일대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순실 딸 정유라에 대한 이대 특혜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할 때도 설마 이런 일이 진짜일까 싶었는데, 10월 말 JTBC가 최순실 태블릿 피씨와 연설문 유출을 보도하면서 사태가 급격히 진전되었던 것이다.

JTBC와 손석희. 최순실게이트에 있어서 가장 임팩트 있는 한방이 JTBC에서 나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 보도가 없었더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JTBC가 최순실게이틔의 모든 것을 밝혀냈던 것은 아니다. 이대 미래라이프 반대 투쟁에서 이대에 대한 비리 혐의가 불거져 나오고 있었고, 안민석 의원은 최순실 모녀에 대한 의혹 추구를 2014년 무렵부터 시작했었다고 한다. 우병우에 관련된 의혹에 대해 조선일보가 비판 논조를 내기도 하는 등 전조는 있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은 9월 무렵부터 미르, K스포츠재단에 대한 전담 팀을 꾸리고 취재를 시작했다.

한겨레 기자들이 쓴 <최순실 게이트>를 읽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 그리고 최순실을 둘러싼 특종들 중 상당수가 한겨레 기자들이 발로 뛰어서 밝혀낸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태의 발단부터 전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전모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겨레 기자들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가려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상매체와 신문매체의 파급력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종이신문의 기사 역시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진영논리를 동원해 욕할 때를 제외하면) 신문 이름을 눈여겨 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한겨레, JTBC, TV조선, SBS 등 언론들의 활약으로 최순실게이트의 정체를 만천하에 밝혀내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영화였다면 이제 의혹을 밝혀낸 기자들은 박수받으며 해피엔드를 맞이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 일찍이 일베에서나 들을 법 했던 "한걸레"라는 명칭이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여당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조중동이나 다른 언론보다도 한겨레가 적폐 언론의 대명사로 난타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통령 부인의 이름 뒤에 '여사'가 아닌 '씨'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거나, 한겨레 전 편집장이 페이스북에 "덤벼라 문빠들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등의 사건들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언론들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고, 진보 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최순실게이트 보도 또한 몇몇 정의로운 기자들의 영웅적 투쟁의 결과로 서사(narrative)화되어서는 안 될 문제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겨레가 최순실게이트 국면에서 큰 활약을 한 만큼, 앞으로도 비판 정신이 살아있는 언론 보도를 계속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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