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냉소 사회 - 냉소주의는 어떻게 우리 사회를 망가뜨렸나
김민하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평점 :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발발하여 엄청난 규모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당시에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집회를 주도했던 이들의 주장을 지금 검증해 보면,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일베를 비롯한 우파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두고 "광우뻥"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며, 좌파에 의해 선동된 전형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일베를 통해 진실에 눈을 떴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당시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지만 이후에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괴담에 근거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고 일베로 전향하였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산 소고기 촛불집회의 열정과 열광이 식고 난 2010년대에는 냉소주의(cynicism)가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았다. 2012년의 대선과 일베의 등장은 그러한 풍조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냉소는 열정과 열광의 대척점에 존재하며, 정의나 도덕을 비웃는다. 한국사회에서 공식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민주주의와 남녀평등과 같은 가치를 상대화시키고 희화화함으로써 재미를 느꼈던 일베는 냉소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진보좌파 진영은 촛불집회 이후, 무력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광장에서 울려퍼졌던 "MB OUT"이라는 구호는 정권에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타격만을 가했을 뿐이고, 2012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는 실패하였다. 현실세계에서 정치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해 "광우뻥" 괴담 논란으로 인해 정당성까지도 흔들렸다. 시위의 열기로부터 빠져나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면 변종 프리온으로 인해 광우병이 공기로 감염된다는 소리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보기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경우가 많아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광우병 촛불집회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쉽게 긍정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생겨났다.
선동에 속았다는 느낌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가치나 대의도 의심부터 하고 보는 회의주의적, 상대주의적 외피(外皮)를 둘러싸게 된다. 냉소주의의 이면(裏面)에 있는 방어기제(防禦機制)는 무언가를 믿었지만 그것이 거짓이었을 경우에 받을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러한 냉소주의의 본질에 대해 김민하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냉소주의자의 어법은 그래서 '진정한 무엇은 있다'와 '진정한 무엇은 없다' 사이를 불규칙하게 오고 간다. '진정한 무엇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지금 여기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무엇'을 찾을 때까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12)
이렇듯 무력감과 체념이 뒤섞인 채 뒤틀린 냉소주의는 2016년 10월부터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며 벌어진 촛불집회와 함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2008년 촛불집회의 전말(顚末)을 알고 있는 냉소주의자들은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피력했을 것이다. 아무리 촛불집회를 해 봐도 새누리당이 10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탄핵안이 가결되기 어려울 것이고, 설사 가결이 된다 하더라도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으로 보건대 탄핵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고, 촛불집회 자체도 시간이 갈수록 그 열기가 사그라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이 냉소주의의 태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냉소주의가 틀렸다. 연인원 1500만 명 넘게 동원한 촛불집회는 불가능해 보였던 박근혜 탄핵을 성사시켰고,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진보좌파 진영의 염원이었던 정권교체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어차피 뭘 해도 안 돼"라고 말하던 냉소주의자들이 뻘쭘해질 차례였다. 물론 그렇게 탄생하게 된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엇갈리겠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대통령마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정치에 대한 실망->체념->냉소->혐오의 사이클로부터 벗어나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무언가 새로운 꿈을 꿔 볼 수 있는 단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