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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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보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의 뒷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책 소개가 실려 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1776년,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애덤스미스가 잊은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저녁을 차려 준 그의 어머니다.

이 문장을 보고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어머니는 왜 지나가던 옆집 아저씨가 아니라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줬을까? 그야 당연히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주는 것이 아무런 사랑도 느끼지 못하는 타인에게 저녁을 차려주는 것보다 더 많은 기쁨과 만족감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기심과 사랑은 이 책이 전제하는 것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 관계가 아니라, 사랑 역시 넓게 보면 이기심이라는 동기의 일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기심에 대해서 금전적 의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협소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예화(例話)에도 드러나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종종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복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말이다.
실제 사람들은 다시는 가지 않을 식당에도 팁을 남긴다. 경제적 인간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팁을 남기지 않아도 종업원이 자신의 수프에 파리를 넣는 등의 복수를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팁을 다시 자기 주머니 속에 넣는다. (146)

팁(tip)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종업원의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한국이나 일본 등의 팁 문화가 없는 나라 사람들이 미국 등 팁 문화가 있는 나라 사람들보다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면, 팁은 이기심/이타심의 문제가 아니라 관습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들르지 않을 가게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이유는 종업원의 복지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관습적인 생각을 벗어나서 팁을 안 주기로 결정할 경우에 발생하는 어색함이나 민망함, 스트레스보다는 팁을 주는 데 드는 금전과 시간 귀찮음이 비용이 덜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경제학이 전제로 하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관념이 남성중심적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한다.

남성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경제학에서도 그랬고 성 문제에서도 그랬다. 여성에게 이 자유는 금기 사항이었다. (중략)
여성에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임무가 주어졌다. 여성은 출산과 생리라는 신체적 제약 조건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리적일 수가 없고, 이 때문에 그들은 합리성과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규정되었다. (51)

이런 주장을 한 경제학자가 있단 말인가? 깜짝 놀라서 미주(尾註)를 확인해 보았다. 이 책의 미주는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이 언급되는데, 해당 부분에 대한 미주는 없었다. 아마도 "여자는 남자보다 덜 합리적이다"라는 속설과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의 전제를 혼동해서 허수아비 때리기를 한 것 같다. 이는 영어권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남자(man, men)가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던 것에 기인한 오해다. 물론 man이 인간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비판 받아야 하겠지만,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經濟人)과는 관련이 없다. 적어도 여성이 남성보다 덜 합리적이라고 전제하는 경제학 이론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경제적 인간이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다른 누구보다 저자 자신이 성별에 관한 고리타분한 이분법(남성=인공/여성=자연, 남성=합리적/여성=비합리적, 남성=이성적/여성=감성적, 남성=정신/여성=육체)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인간이 남성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관념이며, 경제학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리라. 그보다는 성별이나 인종, 문화, 연령,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이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적 의식으로 농축될 수 있다"(260)는 경제학적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물론 이 책에서 드러나는 경제학에 대한 비판 중에는 생각해 볼 점이 적지 않다. 경제학이 이상적인 이념형(ideal type)만을 전제로 한 결과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하거나 정책적 실패를 야기했다는 지적, 여성들의 노동이 저평가받고 있다는 비판, 전세계의 여성들이 대부분 저임금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가 되지는 못한다는 지적 등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런데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전제한다. 고로 경제학은 틀렸다. Q.E.D."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성급한 추론이 아닐까?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합리성 문제에 대해서 더욱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제학에서 사라진 여성의 경제활동을 논하면서 저자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1895)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대해 긍정적으로든, 비판적으로든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신기하다.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의 <가부장제와 자본제>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를 다루고 있어 비교하며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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