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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100쇄 기념 아트 에디션)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6월
평점 :
조선시대의 양대 전란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정유재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비교하면 병자호란이 훨씬 암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각지에서 의병들이 궐기하기도 했고, 권율, 김시민, 곽재우, 유성룡, 윤두수, 이산해, 이덕형, 이항복, 곽재우, 김천일, 조헌, 서산대사, 사명대사, 논개, 허준 등의 쟁쟁한 위인들이 활약했다. 반면에 삼전도의 굴욕으로 끝난 병자호란의 경우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 파죽지세로 진격해 오는 청나라 군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간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청나라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인조와 최명길, 김상헌, 김류, 이시백, 그리고 성 안의 대장장이 서날쇠와 나루터 사공의 딸 나루 등의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다. 원군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청군에 비해 성 안의 조선군은 상대가 되지 않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물자는 점점 떨어져 가는 남한산성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절망의 나날을 살아간다.
(전략) 안팎으로 통하는 길이 멀고 외가닥이어서 한번 막히면 갇혀서 뚫고 나가기가 어려우며, 아군이 성문을 닫아걸고 성첩을 지키면 멀리서 깊이 들어와 피곤한 적명이 강가의 너른 들에서 진을 치고 앉아 힘을 회복할 수 있고, 성 밑이 가팔라서 안에서 웅크리고 견딜 수는 있으나 나아가 칠 수가 없으며, 좌우가 막히고 가운데가 열려 적이 열린 곳을 막으면 목이 눌리고, 목이 눌리면 안팎이 통하지 못하여 원군을 불러서 부릴 수가 없으며, 또 성이 산에 기대어 있다 하나 성 밖 산봉우리에서 성 안이 손샅처럼 굽어보여 내리쏘는 적의 화포를 피할 길이 없고, 성 안 농토의 소출이 백성들의 일용에도 못 미쳐서 적이 성을 깨뜨리지 않고서도 말려 죽일 수도 있고, 도성과 민촌이 가까워서 멀리서 온 적들이 약탈과 노획으로 군수를 충당하며 머물 수 있으니 병서에 이른 대로, 막히면 뚫기가 어려워서 멀리 도모할 수 없고, 웅크리고 견딜 수는 있으나 나아가 칠 수 없으므로 움직이면 해롭고, 시간과 더불어 말라가니 버틸수록 약해져서 움직이지 않아도 해롭고, 버티고 견디려면 트인 곳을 막아야 하는데 트인 곳을 막으면 안이 또한 막혀서, 적을 막으면 내가 나에게 막히게 되니 막으면 갇히고, 갇혀서 마르며, 말라서 시들고, 적이 강을 차지하니 물이 적의 쪽으로 흐르고, 안이 먼저 마르니 시간이 적의 편으로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라 말하는 지관들도 있었는데,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덕의 거룩함을 말하는 목소리는 컸고, 곤궁함을 말하는 목소리는 작았다. 큰 목소리는 높이 울리면서 퍼졌고, 작은 목소리는 낮게 스미면서 번졌다. (35,36)
원군이 올 가망이 없는 가운데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변한다. 성문을 열고 항복할 것인가, 아니면 싸우다 전멸할 것인가? 책 소개에는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말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生即死 死即生)"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에서 죽어서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척화파 김상헌이고, 살아서 죽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주화파 최명길이다. 양쪽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나름대로의 논리와 고뇌를 가지고 있다. 김상헌은 "무도한 문서를 성 안에 들인 수문장을 벌하시고 적의 문서를 불살라 군병들을 격발케 하옵소서. 애통해 하시는 교지를 성 밖으로 내보내 삼남과 양서의 군사를 서둘러 부르셔야 하옵니다. 이백 년 종사가 신민을 가르쳐서 길렀으니 반드시 의분하는 창의의 무리들이 달려올 것입니다"(145,146)라고 말한다. 최명길은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터인데,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넋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는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314,315)라고 말한다.
인조는 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뇌한다. 영의정 김류는 "출성과 수성은 결국 다르지 않을 것"(238)이라며 오락가락한다.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이라고 해서 수성하여 버틸 수 없음을 모르지 않고, 주화를 주장하는 최명길이라고 해서 청나라 군대에 임금이 무릎을 꿇는 것이 치욕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출성과 수성은 모두 가야만 하는 길이고, 갈 수 없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조와 최명길, 김상헌의 내면 묘사는 상당히 깊이가 있으며 무게감이 느껴진다. 문제는 소설에서 민초들의 대표로 등장하는 성 안의 대장장이 서날쇠와 뱃사공의 딸 나루다. 이들은 소설 속에서 대상화되고, 인조나 김상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기능적 역할만을 수행한다. 나루는 변변한 대사조차 없고, 서날쇠 역시 조정이 성에서 나가야 백성들이 살 수 있다는 말을 할 뿐이다. 나는 인조와 대신들의 이야기만으로 이 소설이 충분히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5)라고 말한다. 만약 저자가 서날쇠와 나루를 등장시켜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고 삶을 이어가는 민초들의 꿋꿋한 인생을 그리고자 하였다면, 그 부분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인조나 김상헌, 최명길에 비해서 서날쇠나 나루의 인물 묘사는 피상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