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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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선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사표(死票)는 없으니 소신껏 투표하자는 것이 평소 지론었지만, 막상 15명(사퇴한 두 명을 포함)의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를 보자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 두세 명 중에서 그나마 덜 최악인 후보에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양자구도였던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에는 의석 수가 5개 이상인 당의 후보만 다섯 명이었다. 그러다보니 최악을 피하기 위한 사표심리를 자극한, '홍찍문'이니 '안찍홍'이니 '심찍홍'이니 하는 상대 후보 비판이 난무했다. 유권자들은 항상 사표를 막기 위해서 차악에 투표하거나 사표가 될 것을 각오하고 소신투표를 할 것을 강요당한다. 그로 인해 소수정당들은 후보단일화를 은연중에, 혹은 대놓고 종용당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대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하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대선과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도 대선이 있었는데,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 대선은 결선투표제를 채용하고 있는 바, 이번 대선에서는 극우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과 중도신당인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진출했었다. 이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전통적인 우파와 좌파를 대표하는 공화당과 사회당의 후보가 결선투표에 낙선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와 샌더스 현상에서 나타나듯이, 전통적 우파정당과 좌파정당의 몰락과 극우, 극좌 세력의 약진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선을 보면서 이러한 상황을 '예언(?)'한 소설이 떠오른다. 미셸 우엘벡이 2015년 출간하여 큰 화제를 모은 <복종>이다. <복종>은 2022년 대선에서 국민전선과 이슬람박애당(가공의 정당으로 보인다)의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자, 극우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좌우가 합작하여 이슬람박애당의 대통령이 당선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소설의 배경인 2022년보다 5년 먼저 실현되었다. 현실세계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한 앙마르슈는 소설 속의 이슬람박애당과 마찬가지로 기존 정당의 좌우대립에서 벗어난 신생정당인 것이다.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과 신생 정당의 대중적 인기는 2010년대 들어서 서양 국가들을 강타하고 있는 현상이다.

소설 속에서 이슬람박애당의 집권은 소르본 대학의 이슬람화와 일부다처제 도입 등의 현상을 부르지만, 실업률 해결과 경제 기조 회복 등의 긍정적 효과를 낳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19세기말 프랑스 소설가 위스망스를 연구하는 문학교수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이슬람박애당의 집권으로 인해 정치적 격동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그는 프랑스 사회의 다문화사회화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유럽 문명의 쇠락(衰落)에 우울해하는 백인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럽 문명의 쇠락은 주인공의 자아의 불안과 중첩되며 나아가 남성성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기 때문이다.

소설 주인공과 같은 제1세계 백인 중년 남성 지식인의 고뇌에 대해 한국의 독자가 감정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은연 중에 나타나는 주인공 화자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듯이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던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인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슬람박애당의 집권 이후 일부다처제나 여성의 히잡 착용이 사회에 지배적이 되는 상황이 그려지게 된다. 트럼프 당선이나 브렉시트 (Brexit)같은 충격적인 결과는 그러한 징후(徵候)라고 할 수 있겠다. 멀지 않은 미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을 소설화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위스망스를 비롯한 프랑스문학에 대해 조예가 있었다면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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