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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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에서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의 놀랍도록 질서정연한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대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폭도로 변하는 것이 당연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국민성에 대해 경탄을 표했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보면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상황은 일본인들의 특수한 국민성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본성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1906년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2005년의 카트리나 태풍 사건까지 있었던 여러 재난 상황들을 분석하며 패닉에 빠져 이기적 폭도가 된 대중들이라는 정부와 관료, 언론과 대중매체가 퍼뜨린 통념과는 다른 진실을 발견해낸다. 재난 이후의 상황에서 상호부조와 이타주의의 공동체, 저자가 '재난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공동체가 발생하게 된다. 오히려 재난 상황에서 패닉과 폭력을 야기하는 집단은 정부나 군대, 경찰 등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저자는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도 그 예로 들고 있다). 재난은 경우에 따라서 일상에 균열이 난 비일상의 공간에서 축제와 혁명을 포함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장이 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사례로 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핼리팩스, 뉴욕, 뉴올리언스, 멕시코시티 등이 상대적으로 시민의식이 높아보이는 북미의 도시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의 국가들의 경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동일본대지진이 생각났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많은 일본인들이 당시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장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달간, 백만 명의 일본인들이 원전 반대 시위에 참여하며 새로운 변혁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베 정권이라는 반동으로 귀결되었고, 일본사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전을 재가동하고 예전과 같은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 왜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이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계기가 되지 못했을까?

한국의 세월호 참사는 어떤가? 세월호 참사 직후, 사람들은 새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적폐 청산을 말했다. 잊지 않겠다며 눈물짓던 사람들은 무엇을 남겼을까? 고심 끝에 해경 해체? 대통령의 7시간 음모론? 특조위를 둘러싼 정쟁과 일베의 폭식투쟁? 그리 냉소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때 이름을 알린 방송사가 최순실의 태블릿을 발견하며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언론의 연일 터지는 특종에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고, 국민들이 국회를 움직여 특검 수사와 헌재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과 이후의 언론통제에 관한 사실들도 밝혀지려 하고 있다. 현재 언론과 검찰 등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최순실게이트와 탄핵정국이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에 쌓인 적폐들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3.11처럼 관성과 망각이 이끄는 대로 business as usual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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