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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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제목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2015년에 출간되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한국이 싫어서> 또한 제목이 가진 임팩트가 가장 중요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무렵부터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한국사회에서는 꿈도 희망도 없다는 담론이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제목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한 1인칭 화자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는 그러한 '헬조선' 담론의 맥락에서 한국사회의 절망을 반영한 소설로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재인이 뻐기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목소리 큰 게 통해. 돈 없고 빽 없는 애들은 악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라고 하더라. 하, 정말 그런 거야? (중략)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악다구니도 못 쓰는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182)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악다구니도 못 쓰는' 사람으로서 이 소설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에는 공감이 되었다. 솔직담백하다 못해 위악적이기까지 한 계나의 거침없는 내레이션은 술술 재미있게 잘 읽힌다. 호주 이민의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성공담은 읽으면서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데 다소 새삼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일제시대부터, 아니 구한말부터 (헬)조선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만주로, 연해주로, 일본으로, 해방 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 교민은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 등 생활수준이 좋은 영어권 국가로의 이민도 상당한 규모에 이른지 오래다. 굳이 새로운 점을 발견하자면, 이전 시대의 이민들은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타향살이를 버텨냈다면, 소설의 계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버리고 호주행을 기쁘게 선택했다는 점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이민을 선택한 사람들도 한국이 너무너무 싫었을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최인훈의 <광장>에는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된 주인공이 남한도 북한도 싫다며 중립국 인도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소속되지 못한 주인공은 중립국을 선택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배제된다는 점이다. 중립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주인공은 원리원칙을 고수하다가 같은 중립국행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왕따를 당한다. 결국 인도에 도착하기 전에 주인공은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아마 인도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주인공은 그토록 원했던 중립국에서도 배척당했으리라. <광장>의 주인공에게 중립국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유토피아였겠지만,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이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광장>의 주인공은 어디에도 소속되기를 거부한 절대적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어쩌다 보니 <한국이 싫어서>가 2016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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