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을 묻다 -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권보드래.천정환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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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60년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553)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4.19혁명으로 문을 연 1960년대는 이윽고 혼돈 속에 빠져들어간다. 4.19 혁명으로 경무대를 떠나는 이승만을 보고 군중들은 박수를 치며 "위대하신 이승만 박사를 다시 대통령으로 모십시다"(478)라며 외치기도 했고, 그해 7월에 있었던 총선 여론조사에서는 "초인적 독재자"를 구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497) "선의의 독재"를 갈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발발한 5.16 쿠데타에 대해 대중과 지식인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4.19 혁명 당시 군부가 보인 태도에 대한 우호적 감정과 쿠데타 세력의 민정이양 약속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5.16 쿠데타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책은 아직 박정희의 장기집권이 가시화되지 않았던 1960년대 초중반의 여러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을 당시의 저작들과 잡지들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이어령과 함석헌이 발견하려고 했던 한국 민족의 특수성, 김수영과 <사상계>가 열광했던 서구식 자유주의, 통일혁명당의 김질락이 북한에서 수용하려 시도했던 공산주의, 최인훈이 꿈꾸었던 중립화 노선 등등 이 시기 다양한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이 교차하는 모습을 이 책은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그 밖에 여성, 교양, 자기계발, 간첩 등과 같은 개념들의 사회적 역사 또한 이 책은 탐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1960년대의 일본문화 수용이다. 4.19 혁명 이후, <빙점>을 비롯한 일본 소설, 일본 음악 등의 일본 문화가 한국으로 급격히 유입되었고, 김승옥은 다자이 오사무, 엔도 슈사쿠, 오에 겐자부로 등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525).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발생했지만, 반대로 대중적 수준에서 일본문화 수용이 광범위하게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오히려 일본 문물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규제를 가했다. "요컨대 국교 재개를 추진한 박정희 정권은 '매판'과 '반민족'의 혐의를 벗기 위해 대중문화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 금수조치는 한편으로는 (피상적) 민족주의에 근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 대중'이라는 엘리티즘적 이분법에 근거한 것이었다"(546)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 지식인들의 모순은 1960년대부터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문화연구는 꼭 필요한 작업이고, 이 책은 그러한 의미에서 꼭 나와야 할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 대해 무지했던 탓도 있어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지만, 지적 흥분을 충분히 제공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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